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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25. 2019

폭식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다이어트와 섭식장애는 한 뼘 차이다

<나의 폭식증에 대한 이야기> #5

 

섭식장애 환자의 진단 기준은 무엇일까? 거식증의 경우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도 번역하지만 번역은 번역일 뿐 그저 음식을 안 먹는 것이다. 그리고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거부하는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살이 찌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혹시 살이 찌는 것이 싫어서 음식을 거부한 적이 있지는 않나?


폭식증은 거식증과 반대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이다. 그리고 폭식증 환자가 폭식을 하게 되는 원인은 살을 빼기 위해 오랫동안 먹는 것을 참다가 결국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혹시 살을 빼려고 음식을 참다가 야식으로 과식을 해버린 적이 있지는 않나?



거식증을 폭식증으로 만드는 충동 욕구


음식을 안 먹는 것과 먹는 것. 어찌 보면 정반대의 개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거식증과 폭식증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환자의 기질에 따라 그 두려움은 다른 방향으로 발현되고 그 양극에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문명으로 ‘Eating Disorder’인 섭식장애는 식이장애라고도 불린다. 둘 다 먹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흔히 알려진 거식증과 폭식증 외에도 음식이 아닌 것을 먹는 이식증, 먹은 것을 역류시켜 되씹는 되새김 장애, 극소량의 음식이나 특정 음식만을 먹는 회피적/제한적 음식 섭취장애 등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소아기나 유아기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거식증과 폭식증 또한 사춘기 시절에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의학적으로는 설명하나 국내 자료들 대부분이 2010년 이전에 나온 것들이라 최근의 세태를 반영했다고 보긴 어렵다.


대체로 섭식장애의 진행과정은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에서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폭식증으로 넘어간다. 거식증이 폭식증이 되는 과정에는 ‘충동 욕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내심이 강하고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심한 거식증이 될 확률이 높고, 충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거식증에서 폭식증으로 넘어가게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이러한 성격을 형성하게 되는 가정환경이 거식증과 폭식증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들 각자의 섭식장애


이렇게 거식증과 폭식증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닌 같은 원인과 비슷한 증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는 모든 환자를 거식증, 음식을 많이 먹는 환자를 모두 폭식증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 폭식형 거식증 환자였다.


거식증 환자의 경우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학지사의 이상심리학 시리즈 <섭식장애>에서는 이를 나처럼 주기적으로 폭식을 하는 폭식형 거식증과 계속적으로 음식을 절제하는 절제형 거식증으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폭식형 거식증 환자들은 발병 이전에는 체중이 많이 나갔을 확률이 높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구토를 하거나 설사제를 남용한다. 또한 그들은 절제형 거식증 환자들에 비해 더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며 행동을 통해 충동을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여기에 딱 부합했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싸움도 잦았던 가정환경 탓인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꼭 해야 하고 화가 나면 화를 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폭식증은 다이어트의 부작용


다이어트를 하며 나를 지배하고 있는 충동은 오로지 식욕에 대한 것이었고, 이 충동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닥쳐왔다. 시장을 지나가다 맡게 되는 떡볶이 냄새, 치킨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 TV에서 나오는 음식들과 그것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잠이 오지 않을 때 심심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시도 때도 없다.


일단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고 식욕을 제외한 다른 감각은 모두 마비된다. 음식을 입에 넣게 되기까지 먹어야 한다는 강력한 욕구에 초조함이 일며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이 떨리는 지경이다. 그렇게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상상 그 이상의 양을 먹는다. 지금이야 ‘먹방’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것이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지지만 그 이전엔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폭식증 환자들의 폭식은 결코 먹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증상으로 인해 먹을 때는 평상시 그 사람의 식습관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소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식욕이 일기 시작하면 제대로 씹지도 않고 단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배가 부르는 수준을 넘어 음식이 목까지 차올라 이러다 정말 위가 찢어질 수 도 있겠다 싶은 위의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다. 사람의 위가 늘어나는 것은 상상 이상이라 한번 먹을 때 치킨 한 마리, 피자 한판, 식빵 한통, 밥 한솥, 과자 열 봉지 정도는 한꺼번에 우습게 들어간다. 이때는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위에서 소화가 되기 전 이 모든 음식을 다 게워낸다.


이러한 증상은 폭식증 환자가 제어할 수 없다. 오랜 식욕억제와 불규칙적인 식사는 우리 몸의 배고픔과 배부름을 관장하는 식이 중추의 신호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망가진 식이 중추로 인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폭식증은 과도한 다이어트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환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병이고 제대로 된 치료가 필요하다.


섭식장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섭식장애가 암과 같은 병리현상이라 생각한다. 신체 어느 한 부분에 염증이 생긴 것도 모른 채 그것을 방치하다가 결국 암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식이 중추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식욕을 억제하다가 병이 생겨버린 것이다. 암 환자가 낫기 위해 수술, 방사선 등 여러 가지 치료를 하듯 섭식장애를 앓게 된 환자도 낫기 위해 여러 가지 치료를 해야 한다.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참는다고 나아지는 병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섭식장애는 완치가 힘들다는 것이다. 재발률이 높다. 섭식장애의 완치 방법은 섭식장애에 걸리지 않는 것뿐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리기는 상대적으로 쉬어도 낫기는 어려운 병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들 한다. 의지의 문제라며 그들에게 ‘대체 뭐가 문제야?’, ‘힘내’라는 무신경한 말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젠 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조금 시간을 주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정도로 의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어려서부터 너무 심한 경쟁에 노출된 사람에게 번아웃이 생기고, 미래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된 사람에게 공황장애가 생기듯 섭식장애도 외모가 곧 한 사람의 가치 평가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생긴 병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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