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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Dec 02. 2019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다

폭식증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나의 폭식증에 대한 이야기> #7


일 년 동안 폭식증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섭식장애는 임상적 치료나 수술적 치료보다 상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병이기에 의사마다 치료에 대한 각각의 방식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세 가지 치료가 병행된다. 상담과 인지행동 그리고 약물치료.



상담은 담당의와 대화를 통해 섭식장애의 원인을 알아보며 이를 개선하는 치료이고 인지행동 치료는 식사 일지를 쓰고 음식량을 늘려가며 신체적인 개선을 해나가는 것이다. 만약 아직 초기 증상이라면 약물 치료까지는 필요 없지만, 나의 경우 폭식증의 단계를 나누는 스텝 안에서도 가장 심각한 5 스텝에 해당되었기에 치료 초기부터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상담이나 약물치료의 경우 그 방법이 쉽게 떠오르겠지만 인지행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내가 어떤 음식을 누구와 먹었고, 어떤 기분이었으며, 먹은 후에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에 대해서 기록한 식사일지를 토대로 이뤄진다.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칼로리 계산을 위해 식사일지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렇게 조금씩 식사를 개선하여 음식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몸의 변화를 살피는 치료가 인지행동 치료다. 약물치료는 증상에 따라 환자마다 다른 약물을 처방받겠지만 내게는 식욕억제제와 항우울제 등이 처방됐다.



나는 병의 근원을 찾는 것보다 현재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더 쉬웠다. 상담보다는 인지행동 치료가 훨씬 빠르게 개선을 보였다는 얘기다. 인지행동 치료사는 하루 세끼의 적당한 양의 일반식을 먹고 식사 중간 두 번의 간식을 먹으라 권유했다. 허기를 느끼는 것은 폭식증 환자가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적은 양의 음식을 꾸준히 먹음으로써 배고픔에 대한 자극을 피하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식을 먹으며 칼로리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폭식증 환자는 자신이 정해놓은 섭취 칼로리가 넘어가면 불안감을 느낀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칼로리 계산이 아닌 먹는 행위에서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음식에 대한 공포감과 식사에 대한 인식 전환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중이 늘어야 한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체중이 느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으로 음식을 거부하는데, 그들에게는 체중이 조금이라도 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체중이 늘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고 환자가 생각하는 불안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인지행동 치료의 핵심이다. 그래야 정상적인 식단을 유지할 수 있고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의 회복이 가능하다.



나는 착한 학생처럼, 착한 아이처럼 착한 환자가 되어 치료에 집중했지만 체중이 쉽게 늘지는 않았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식사일지를 쓰고 폭토를 멈추고 병원에서 권고하는 식사 습관을 지켰다. 약도 열심히 복용했다. 그럼에도 내 체중은 늘지 않았다. 살이 찌면 안 된다는 내 안의 공포는 의사의 예측보다도 거대했다.



이와 같이 환자 자신이 치료가 왜 필요하고, 치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있음에도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를 깨부수기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점진적인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



상담은 치료에 앞서 진단을 위해 많은 양의 테스트를 한다. 담당의가 직접 해야 하는 테스트는 병원에서 진행하고 그 외에 설문지를 작성하면 되는 테스트들은 집으로 가져와 환자 혼자서 진행한다. 담당의가 진행하는 테스트는 데칼코마니와 같은 그림을 보고 느낀 바를 말하는 것이었고 집에서 해야 하는 테스트는 성격이나 우울증 진단 테스트였다.



이를 토대로 환자를 진단한다. 이후에 이뤄지는 가족상담에서는 이를 공유하며 앞으로 어떤 치료가 진행될 것인지, 가정에서 어떤 것들이 이뤄져야 하는지 등을 당부한다. 환자와 가족이 함께 하는 상담 후에는 환자를 제외한 가족만 별도 상담을 진행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가족이 함께 상담을 받게 되는데 내 경우 부모가 지방에 있는 관계로 두 달에 한 번 정도 가족 상담이 진행됐다.


    

상담 치료에서 담당의가 나에게 물었던 것은 바로 나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상담의 주인공은 환자다. 담당의는 상담 내내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인다. 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섭식장애의 치료에 있어서 병원 치료는 필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정신과 치료 기록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다. 바로 정신과 치료 기록으로 인해 부당한 일을 당할까 걱정되어서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 기록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5년간 기밀기록으로 보존하게 되어 있으며, 법률로 규정된 국가 사무에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열람이 금지되어 있다. 또한 의료법상 병원의 기록 보관은 10년으로 이 또한 의료법상 기밀 유지를 하게 되어 있다. 병원 자료를 본인의 동의 없이 열람하거나 복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니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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