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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18. 2019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다이어트가 폭식증이 되는 과정


<나의 폭식증에 대한 이야기> #3


삼시 세 끼라는 종교


살을 빼고 싶었다.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을 하지만 체중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던 내게는 아무리 줄인다고 줄여도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먹어야 할 구실들이 많았다. 먹는 것을 줄이는 게 너무 힘들어 운동량을 늘렸다. 하루 두 시간씩 걷고 두 시간씩 무언가를 들었다. 먹는 양을 줄이지 않고 하는 운동 덕에 나는 건강한 돼지가 됐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하고 점심은 저녁까지의 공복이 힘들 테니 꼭 먹어야 하고, 저녁은 공복에 잠이 오지 않을까 봐 먹었다.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은 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었다. 삼시 세 끼를 챙겼던 아빠의 영향일 수도 있고 언제나 먹는 것만은 부족하지 않게 챙기려던 엄마의 노력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아침밥 먹기 운동’이 일어났다. 그 일환으로 MBC 예능 <느낌표>의 ‘하자하자’라는 코너가 방영됐는데 꽤나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쌀 소비 촉진이 목적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침밥을 거르고 새벽부터 등교해야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애환을 담았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0교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사연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코너의 MC였던 신동엽이 매주 다른 학교를 깜짝 방문해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이 코너의 골자였는데  그 방송 이후 엄마는 가게일로 피곤한 와중에도 자식들의 아침을 꼭 챙겼다. 하루 세끼를 든든하게 챙겨 먹는 것이란 우리 집의 가훈이자 종교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급격히 살이 찐 이후로 다이어트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끼니를 거른 적은 없었다.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오전과 오후의 필수 교양강의 사이의 텀이 30분밖에 없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점심은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기어이 점심을 챙겨 먹느라 종종 강의에 늦기도 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매 끼니를 챙겨 먹었지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는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한 이후로 식품 영양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칼로리가 몇인지 어떤 성분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제품에 붙은 영양 성분표를 꼼꼼히 살폈다. 탄수화물이 많은 것은 섭취 불가, GI 수치가 높은 것도 섭취 불가, 지방과 당 성분이 있는 음식은 당연히 섭취 불가, 단백질은 무조건 많이.


지금이야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이란 말이 유행일 정도로 지방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고, 가르시니아가 불티나게 팔릴 만큼 탄수화물 과다 섭취가 체중 증가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본 나는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적’이라 생각했고, 쌀밥을 끊었다. 탄수화물에 함유된 당이 나쁜 것이라는 말에 설탕은 물론 당, 청 등이 들어간 음식을 모두 끊었다. 계란 노른자는 하루에 하나까지만, 두부는 칼로리가 높으니 한 끼에 100그램만 먹었다. 채소와 생선은 무조건 많이. GI지수(혈당지수)가 높은 감자는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고구마도 몸에 좋은 탄수화물이긴 하지만 칼로리가 높으니 중간 크기로 하루에 두 개까지만, 그리고 바나나도 좋은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지만 칼로리가 높으니 한 끼에 하나만 허용했다. 이 단계가 되면 음식을 먹을 때 자동으로 칼로리 계산이 된다. 50그램이 어느 정도인지 100그램이 어느 정도인지는 눈썰미로도 파악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는 먹었던 음식들의 칼로리를 합산한다. 1000칼로리가 넘으면 안 된다. 아침부터 먹은 칼로리가 800이 넘으면 앞으로 내게 주어진 것은 200칼로리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얼마나 먹어야 할지 음식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하나하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없어졌다.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쾌감


하나하나 음식을 통제해가는만큼 폭식에 대한 욕구가 하나하나 생겨난다. 만약 두 개까지만 먹어야 하는 고구마가 세 개째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바나나를 두 개 먹어버렸을 때 혹은 잡곡밥이 아닌 쌀밥을 숟가락 가득 담아 먹고 싶을 때도 폭식에 대한 유혹은 어김없이 밀려온다. 이 욕구를 참아냈을 때 내 몸과 욕구를 스스로 통제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실은 음식에게 통제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식단을 조절하는 만큼 운동도 많이 그리고 오래 하게 된다. 그때가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무엇을 먹었으면 그만큼의 칼로리를 다 소비했다고 생각될 때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도 내가 원하는 체중이 되지는 않았다. 운동하는 시간을 더 늘려보았다. 그래도 체중은 그대로였다. 아무리해도 나는 안된다는 자기혐오에 빠졌을 때 초절식이라 부를 수 있는 식단을 최후의 방법으로 해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내가 원하는 체중이 됐다.


살이 빠지니 꽉 조였던 옷들에 여유가 생겼다. 기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해낸 것 같았다. 욕심이 났다. 음식양을 더 줄이기 시작했다. 이때는 더 이상 음식이 먹어야 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음식의 영양 성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음식의 칼로리가 높은가 낮은 가만이 중요했다. 건강한 음식이 아닌 살찌는 음식으로 먹을 것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포만감에 옷이 타이트해지면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포만감이 드는 내내 내 몸이 점점 커지는 듯한 기분이다. 내 키가 2미터가 넘고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가 된 듯하다. 그런 기분이 사라질 때까지, 배가 꺼질 때까지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점점 더 음식을 줄였다. 더 많이 걷고 운동했다. 계속해서 배가 고팠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살이 빠지고 있으니까.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니까.


그러나 살이 쪄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이것을 깨닫는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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