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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13. 2019

프로아나를 아시나요?

선미와 타인의 취향

<나의 폭식증에 대한 이야기> #2


선미가 8kg을 찌웠다. 지난 6월의 일이다. 공공연히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밝혀왔던 것으로 미루어 살이 찐 것이 아닌 살을 찌운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는 여전히 키 166cm에 43kg이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SNS를 통해 50kg이 된 것을 인증하며 선미의 몸무게는 뉴스에 오르내렸다.




거식증을 찬성하는 사람들


원더걸스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선미는 유난히 선이 얇아 멤버들 중 유독 눈에 띄었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가느다란 몸매는 여전해 과격한 안무를 소화할 때면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걱정이네’ 싶은 옆집 언니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체중이 늘어 건강해진 선미의 모습을 보고선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아유 이제 잘 챙겨 먹나 보네’ 싶은 그런 마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지 기사의 댓글들은 ‘전보다 예쁘다’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아닌 일부는 언제나 존재하고 선미의 체중에 있어서도 일부는 존재했다.


꽉 막히는 강남대로 위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항상 그렇듯 무의식적으로 인기글들을 둘러보다 우연히 읽게 된 선미 체중 관련 댓글은 내게 익숙하면서 기분 나쁜 기시감을 일으켰다. 댓글이 달린 글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선미의 영상이 두개 있었다. 같은 곡에 같은 안무를 하는 두 영상 속 선미의 달라진 점은 체형이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영상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선미가 있었고 두 번째 영상엔 좀 더 살이 찐 선미가 있었다. 내겐 그저 선미로 보였던 두 영상을 비교하며 글쓴이는 전후 영상 중 어떤 선미를 더 선호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두 번째 영상이 더 많을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댓글의 대부분엔 ‘전’, ‘닥전(닥치고 전)’ 등의 대답이 달렸다. 더구나 ‘전’ 영상을 지지하는 이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 머릿속엔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프로아나’


익숙하면서 기분 나쁜 감정은 몇 달 전 ‘프로아나’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결과 같았다. 프로아나(pro-ana)는 ‘찬성자’, ‘찬성론’을 뜻하는 영단어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의 합성어로 거식증을 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프로아나를 동경하는 이들을 ‘프로아나족’이라 부른다. 기사에서는 최근 10대~20대 초반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프로아나가 유행하고 있다고 했다. ‘뭐라고? 뭐가 유행이라고? 지금 뭘 지지한다는 거지?’라는 심정으로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몇 번이고 가사를 읽어 내려갔다.


‘홈트’, ‘크로스핏’, ‘시티런’ 등 운동으로 건강한 일상을 만들자는 신조어는 물론 다음 시즌 발렌시아가의 신상 하이힐보다 신상 스니커즈가 더 기다려지고, ‘레깅스는 이제 일상복’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는 이 시대에 일부 여성들은 ‘뼈 마름(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마른 상태)’을 동경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기사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처구니없음’은 이내 ‘기분 나쁨’이 되었다. 그 기사 속에서 십여 년 전의 나와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아나족이 되는 의식의 흐름


살을 조금 빼고 싶은 생각에 다이어트를 했더니 주변에서 ‘살 빠졌지?’라며 알아준다. ‘손목 좀 봐’, ‘허리 좀 봐’라는 말이 감탄사로 들리며 군살 없이 말라가는 자신의 몸이 좋아진다. ‘한 대 치면 부러질 것 같아’라는 말에 기분이 좋다. 다이어트 비법이 뭐냐는 질문에 ‘먹는 게 귀찮아서 안 먹어요’라고 대답하는 여배우의 마인드를 존경하고 그녀처럼 ‘모태 마름’을 동경한다. 다음 생애는 꼭 그녀처럼 마르게 태어나고 싶지만 이번 생을 일단 살아야 하니 지금 내게 주어진 몸뚱이 안에서 최대한 마르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몸뚱이는 모두 내게 타고난 식욕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이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어찌하지 못한다. ‘나는 왜 먹는 게 귀찮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들이 부러워진다. ‘아 나도 거식증에 걸렸으면’. 여기까지가 단순히 조금 살을 빼고 싶었던 사람이 프로아나족이 되는 사고의 흐름이다. 그리고 십여 년 전 내가 겪었던 사고의 흐름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의 나는 기아에 가까운 몸매가 되고 싶었다. 여기저기 앙상하게 뼈가 튀어나오는 게 좋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좋았다. 그런 몸매가 되고 싶어 음식을 줄여나갔다. 그러나 살을 빼면 뺄수록 더 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음식을 계속해서 줄여나갔고 결국 ‘초절식’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억지로 통제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따른다. 그 부작용으로 내겐 폭식증이 생겼다.


내가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잘못된 길을 돌아 다시 내가 가야 할 길로 돌아오기까지 영겁같은 시간이 걸렸다. 돌고 돌고 돌아도 제대로 된 길이 나오지 않을 때는 마치 내가 다람쥐 챗바퀴에 갇혀 죽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챗바퀴에서 빠져나왔고 내 생활은 안정됐다. 나는 굳이 또래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늦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다.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 뭐 먹을지 고민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갑자기 떡볶이가 당길 땐 그냥 먹으면서도 ‘아 살찌는데’라고 자주 말한다. 그러니까 평범하다는 얘기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내게는 오랜 시간 당연하지 않았고 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많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왔다. 강남대로 위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우연히 읽게 된 선미에 대한 댓글이나 프로아나에 대한 기사는 이런 내 일상에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잔잔하던 호수에 던져진 이 작은 조약돌이 만든 작은 파동은 이내 큰 물결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자꾸 나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했다. 계속해서 아주 익숙하고도 기분 나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파동은 잦아들었다. 파동의 에너지를 이용해 글을 쓰기로 했다. 섭식장애에 대한 글을 말이다. 프로아나를 동경할 수 있는 것은 거식증, 폭식증의 고통이 어떤 건지 몰라서, 섭식장애, 식이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들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알게 된다면 함부로 거식증을 동경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섭식장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섭식장애를 완치하는 방법은 섭식장애에 안 걸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섭식장애의 완치는 어렵다. 그리고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큰 기제는 타인의 평가다.


선미가 체중을 늘린 이유는 곧 있을 월드 투어를 대비해서였다. 활동을 하면 살이 빠지는 체질 때문에 강행군을 대비해 체력과 함께 체중을 기른 거였다. 전후 영상을 올리며 무엇이 더 나은지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몸매와 외모를 평가한다. ‘내 취향은 그렇다고’라는 얄팍한 핑계 뒤에 숨은 채로 말이다. 과연 타인의 겉모습이 누군가의 취향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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