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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Jul 31. 2021

반려묘와 제주 한달살이

고양이와 함께 떠나자

<여름방학 프로젝트 #02>


20대 중반까지는 마치 역마살이라도 낀 듯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 지속되었다. 서울의 월세 살이 자취생이 그러하듯 2년마다 집을 옮겨야 했고, 어학연수, 유학 등 외국에 나가 있는 기간도 꽤 길었다. 그런 생활이 딱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거처를 옮길 때마다 리프레쉬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 과거의 실패는 과거의 장소에 묻어두고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가짐.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제주 한달살이를 결정하게 된 계기도 이와 같았다. 이미 8년째 살고 있는 월세집.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작고 편안한 공간이면서도 지난 8년 간의 실패와 아픔까지 새겨져 있는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았다. 이전과는 다른 나, 다른 일상을 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이 집에서의 나태가 관성처럼 달라붙었다.


사실 이런 마음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대학 시절, 오랜 시간 취업이 안 되던 시절, 겨우 취업한 직장 생활이 힘겨웠던 시절, 나는 서울, 아니. 한국을 떠나는 것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내 도피 행각엔 한 가지 옵션이 따라붙었다. 바로 내 고양이 먼지. 먼지를 두고 떠나는 옵션은 없었다. 무조건 떠날 땐 먼지와 함께 떠나는 전제여야만 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 거처를 옮기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만약 반려동물이 고양이라면 강아지보다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을 대비해야 하고, 국내가 아닌 국외로의 도피를 꿈꾼다면 상상 이상의 절차와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와 대면하면 떠나고자 했던 열의가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러다 비용 문제를 생각하는 순간 도피에 대한 열의의 마음은 언제 불이 붙었나 싶을 정도로 차게 식는다.  


내 인생엔 4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처음으로 내게 온 먼지와 가장 먼저 별이 된 룽지 그리고 사정상 시골 본가에서 엄마가 키우게 된 레오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뚜니. 이 아이들은 말하자면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 내가 키운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강해 많이들 반려동물을 부모 자식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과 달리 단순히 나이로 호칭을 정해 누나, 언니라고 칭했다. 처음 먼지를 입양했을 때가 26살이었는데 아직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기에는 생경한 느낌이 강해 그냥 누나라고 칭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서툴고 부족한 고양이의 반려인이었다.


고양이와 삶을 함께 한 이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한 곳에 뿌리내리게 됐다. 고양이가 갑자기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택시비와 검진에 필요한 항목은 전부 검사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함이 돈을 버는 것, 안정적인 생활을 구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이 정도면 나를 인간답게 만든 건 바로 고양이다.


제주는 도피처로 적당했다. 국내이면서 국외 같기도 한 곳. 적당한 휴향과 고립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 제주 한 달살이를 준비하는 모든 선택엔 함께 갈 반려묘 뚜니가 첫 번째 고려 대상이었다. 숙소, 이동수단, 동선까지 모두 뚜니에게 맞추었다. 반려동물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숙소를 기점으로 제주 생활을 계획했고, 생전 처음 비행기 우선 탑승이란 것도 했다. 비행기 좌석은 반려동물과 함께 탈 수 있는 가장 앞 좌석인 비행기의 두번째 좌석 거기에 옆자리 비움 서비스까지 모든 것은 뚜니의 스트레스 최소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이 바뀌는 것은 고양이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주 한달 살이를 뚜니와 함께 하는 것은 내 이기심에 뚜니를 희생시키는 것과도 같았다.


뚜니를 임시보호처에 한 달 동안 맡기는 것이 뚜니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다른 환경에 있어야 한다면 함께 있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렇게 뚜니와의 제주 한 달살이가 시작됐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집 고양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가 함께하는 여행과 같다. 흔히 반려동물을 아기에 비유하듯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던 적이 더러 있었다. 예약한 숙소에서 반려묘가 함께한다고 하니 하루에 사람 게스트 비용과 같은 2만 원이 추가되는 것을 보곤 이해가 되면서도 약간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주에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가장 ‘뚜니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나’, ‘제주에 오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후회를 했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을 보낸 후 생각이 달라졌다. 직장을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퇴사를 한 후에도 어련히 자신의 루틴에 맞게 잘 있겠거니 하며 적당히 무관심하게 지냈던 서울에서와 달리 제주에서는 시시때때로 뚜니의 상태를 체크하고, 조금 오래 외출을 하게 되고 혹시라도 뚜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귀가를 재촉하곤 했다. 관광도 시들해질 즈음엔 하루 종일 숙소 소파에 누워 뚜니와 뒹굴거리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그렇게 제주에서 나와 뚜니는 훨씬 가까워졌다.


호기심이 많으면서 겁도 그만큼 많아 4년째 침대를 함께 쓰면서도 쉽게 곁을 내주진 않았던 뚜니가 제주에서 처음으로 내 무릎에 올라 쉬었다. 작년 겨울 먼지가 별이 된 후 남겨진 존재들로 살았던 뚜나와 나 사이에 살이 붙었다. 먼지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우리의 세계가 멈춘 후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함께 떠나는 것은 녹록지 않지만 확실히 도움이 된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의 글과 함께 제주 한 달살이 이야기를 영상을 보일 예정이에요 :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름방학 프로젝트 유튜브

https://youtu.be/rNtQ6JQK6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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