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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Jul 18. 2021

왜 서핑이냐고 물으신다면

우린 모두 우주의 먼지일 뿐이야

<여름방학 프로젝트 #01>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지구과학이었다. 낮은 시험 성적 때문에 선뜻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속의 1등은 언제나 지구과학이었다. 그렇다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지도 않았고, 계절별 별자리를 꿰고 있지도 않았지만(딱히 관심 있지도 않았다) 내가 그 과목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지구과학을 흠모했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한 가지 개념 때문이었다. 이 커다란 우주에 지구는 수없이 많은 행성 중 하나이며 인간은 그 아주 작은 행성에 사는 아주아주 작은 먼지와도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


이 말은 자의식이 비대해질 때마다 나를 잡아줬다. ‘나란 인간은 그냥 우주의 먼지일 뿐이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이런 생각은 슬픔에서도 나를 구해줬다.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어차피 먼지에게 일어나는 먼지 같은 일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하면 TV에 나오는 스타도 나와(먼지) 같은 인간이란 생각이 들고 어떤 슬픔이나 아픔도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내 성향은 조너던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후 사회를 비웃으며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란 단어를 좋아하게 됐고, H.O.T.가 ‘열 맞춰’를 부르며 ‘공수래공수거’를 외치는 걸 본 탓인지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어차피 빈 손으로 가는 세상 나는 나로서 존재하다 가겠다며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르트르의 책을 쇼핑했다. 히피 패션이 유행하고 마침 대학에서도 히피즘에 대해 배웠을 때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외치면서도 인도 여행보다는 ‘섹스 앤 더 시티’의 도시인 뉴욕 여행을 꿈꿨다.


이런 모순된 사상 때문인지 나이를 먹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돈 따위 필요 없다며 저축과 재테크를 거부한 탓에 모아놓은 돈은 없지만 돈을 쓰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것도 써본 놈이 안다고, 돈 쓰는 데 거리낌이 없으니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눈은 높아지고 수중에 돈은 말라가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허세 강한 자의식 덩어리.


그러다 ‘내가 진짜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구나’라고 절감하게 된 계기는 역시 스노보드를 배우게 되면서다. 지금까지의 삶은 열심히 하면 그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어야만 했다. 스노보드를 시작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열심히 연습하면 그만큼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해야 할 나 자신과 실력을 향상해 줄 좋은 장비(장비빨은 역시 돈이다), 이렇게 두 가지가 충족되면 목표했던 정도의 실력은 당연히 늘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스노보드를 탈 땐 나와 장비,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눈. 스노보드는 보드를 발에 채우고 눈 위에서 미끄러져 산을 내려가는 스포츠다. 좋은 컨디션으로 비싼 장비를 들고 슬로프에 나가봤자 눈이 녹아있거나 얼음이 되어 있다면 그날은 보드는 제대로 타보지도 못한 채 그저 컨디션만 좋은 날이 된다. 거기다 혹한 속에 추위를 견디며 리프트를 타고 산골짜기를 올라가다 보면 ‘산은 산이요 눈은 눈이로다’란 말이 절로 나오며 인고의 시간 끝에 하얀 슬로프 정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매주 금요일만 되면 짐을 싸들고 스키장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는다. 주말을 위해 주중을 산다. 그러나 4계절이 돌고 도는 대한민국에서 스노보드를 탈 수 있는 기간이란 고작 3개월가량이다. 남은 기간 동안은 그저 겨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사실 서핑은 스노보드의 대체제였다.           


서핑은 말하자면 낚시와 같다. 보드 위에서 파도를 ‘잡아’ 올라타 물살을 가르는 이 스포츠가 어떻게 낚시와 같냐고? 그건 기다림에 있다. 낚시꾼이 입질을 기다리듯 서퍼는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높은 파도가 일정하게 치는 발리의 해변이라면 다르겠지만 한국의 해변에 들어오는 파도들의 열에 아홉은 서퍼들에겐 그저 흘려보내야 하는 바다의 움직임일 뿐이다.


열에 하나. 이때를 놓쳐선 안된다. 입질이 온 것이다. 멀리에서부터 들어오는 파도가 바로 보드의 가까이 쫒아 올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다가 파도가 곧 들이닥칠 것 같은 때, 두 팔로 빠르고 강력하게 패들링을 하여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 보드의 앞코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면 재빠르게 보드 위로 올라타야 한다. 테이크 오프.


이 한 번의 파도가 오기까지 서퍼는 보드 위에 올라앉아 그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부터 오고 있을 열에 하나의 파도를 놓치면 안 되기에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것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높인다. 바다가 예쁜 날은 파도가 없는 날이라고 하는데 그런 날 먼바다와 하늘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파도를 못 타면 어떻겠나 이렇게 멋진 광경을 물 위에 둥둥 떠서 바라볼 수 있는데’란 생각이 든다. 마치 낚시꾼들이 입질이 오기까지 작은 낚시 의자에 앉아 한없이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


국내에서 서핑을 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를 파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행에 가깝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스노보드를 탈 때는 느껴보지 못한 고행이다. 이 뿐이라면 인내심을 키워 수평선을 보는 재미를 느끼며 결국에는 오고야 말 파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파도가 왔을 때다.


하늘 아래 같은 파도는 없다고 했던가. 같은 해변, 같은 사람, 같은 장비일지라도 날마다의 파도는 저마다 다르다. 제설기로 보강을 할 수 있는 스키장과 달리 바다는 그저 제주 지역에 흐르는 해양성 난류?에게 비는 수밖에 없다. ‘제발 오늘은 내가 탈 수 있는 적당한 파도가 일정하게 같은 속도와 크기로 내가 타는 그 시간대에 와 주기를!’


이런 간절한 내 마음과 달리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 그중에서도 해변의 날씨는 하루하루 달랐다. 좋아진 세상 덕에 앱으로 간단히 예측 가능하기도 했다. 슬픈 건 이미 알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도는 내가 당해낼 수 있는 파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탈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파도’


제주의 파도는 잔잔하거나 사나웠다. 초반 2주 정도를 지낸 표선의 바다는 대체로 잔잔했다. 인내심을 길러야 했다. 후반 2주를 보낸 남서쪽의 바다는 사나웠다. 내가 갔던 날이 파도가 정말 좋은 날이라 지역 서퍼가 다 모인 날이라고 렌털숍의 직원분이 말하긴 했으나 내 눈에는 좋다기보다는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사나운 파도로 느껴졌다. 타는 것은커녕 패들링을 시작해야 하는 지점인 ‘라인업’으로 가는 것만으로 하루치의 체력을 몽땅 써야 했다.


멀리 해변가 모래 위에서 파도를 마주했을 때는 파도가 그저 해변으로 밀려오는 기분 좋은 물살로 느껴지지만 정작 파도 안은 혼돈 그 자체이고 내 머릿속도 그렇다. ‘과연 내가 이 파도를 잡을 수 있을까? 이렇게 큰 파도를? 그런데 이번에 안 타면 다음에 또 저런 파도가 올 거란 보장은 없어.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빠지면 어떡하지?’ 파도가 밀려오는 단 몇 초 동안 주마등?처럼 밀려드는 생각에 치여 결국 그렇게 하나, 둘 파도를 해변가로 흘려보내기만 한다. 그렇게 보내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만히 한 지점에 멈춰있기 위해, 조류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물속에서는 백조가 그랬다는 것처럼 하염없이 발을 구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3시간 동안 바다에 나가 겨우 한 두 번의 테이크 오프를 성공했다. 그만큼의 성공에도 눈물이 날 듯 기쁘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은 그렇게 거대해 보였던 파도가 고작 바다의 가장 얕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모래와 파도의 자그마한 부딪힘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작은 부딪힘에 잡아먹힐까 두려움에 떠는 작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고.


서핑을 할 때는 세상에 3가지만 있다. 나와 보드 그리고 파도. 이 중 어느 하나 충족되지 않는다면 꿈에 그리던 파도를 잡을 수 없다. 어리석게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내 육체와 내가 번 (많은)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드 그리고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파도. 결국 파도가 서핑의 히든카드다. 그런데 비단 서핑만이 그럴까? 지금껏 내가 성취해왔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오로지 나 자신의 실력과 돈으로 갖출 수 있는 환경 혹은 스펙으로 이룬 것일까? 분명 거기엔 인지하지 못했던 어떠한 요소가 더 있었을 것이다. 뭐 그것이 운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팔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믿는 것은 나름이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거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노력 이외에 거기엔 스노보드의 눈이나 서핑의 파도처럼 어떠한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  달간 열심히? 서핑을 했어도 아직 혼자 테이크 오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그게  노력 부족이나 보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공할 때를 기다리며 우주의 기운이 도울 때를 기다리라는 이야기냐고? 아니다. 파도가 있든 없든 그저 보드 위에서 물장구치는 것만으로 재밌으니   서핑을 해보시라. 아니라면 실패해도 너무 자기 탓만 하며 좌절하지 말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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