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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Jun 15. 2021

퇴사 후 제주에서 서핑을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된 이야기



‘퇴사’가 출판가의 화두가 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퇴사를 했다’라는 말은 어쩌면 전혀 매력 없는 문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 년 주기로 퇴사를 했던 내게 퇴사란 잠시 회사를 쉬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방학이란 말이지.


이렇게 얻게 된 방학에 무엇을 하느냐면 그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기.


밥벌이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일상의 비용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아침마다 철근 같은 발걸음을 회사로 옮기는 이들에게 그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지낼 거라는 말은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사는 이의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다만 나도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누리게 된 방학이 처음부터 자의는 아니었다.


무수한 알바를 거치고  년의 수습 생활  가까스로 얻은  꿔왔던 직장인 잡지사. 그러나 정규직 전환 6개월 만에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하며 말단인 나는  번째 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고,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담보로 일정 금액을 국가로부터 지원받게 되었다. 그렇게 실업급여가 지원되는 6개월을  채워 방학을 보냈다. 그때  월급을 말하자면 당시 중소기업의 최저 연봉에 준하는 190 (수습이던 1년은 100 원이었다)기에 실업급여로 사는 일상은 몸에 베인 절약정신으로 버텨낼  있었다. 오히려 직장생활에 드는 교통비, 식대, 품위유지를 위한 기타  등이 지출내역에서 사라지니  여유 있는 삶이 가능했다.


6개월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채운  국내 여성지의 에디터로 이직했다. 연예인 가십을 주로 다루지만  쓰고 싶은 기사도  있는 잡지였다. 그곳에서 나는 월급 140 원의 상근 프리랜서 에디터였다. 프리랜서지만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정시 출퇴근은 해야 하며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정규직들이 받는 혜택은 어느  하나 누릴  없는 자리 말이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부여된 직함인 ‘잡지 에디터 내가 목표해오던 것이었기에 꿈을 이뤘다는 도취감과  개월 버티며 실력을 인정받으면 정규직이   있을 것이란 희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9개월이 난 후 1년이 지나도 정규직 전환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  마침 타이밍 좋게  직장 상사가 광고 회사 AE 이직을 제안했다.


지금껏 꿈꿔왔던 잡지와 에디터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는 자리이지만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있는 연봉보다   몸값을 불릴  있었다. 그러나  년이  되지 않았을  클라이언트로부터 듣게  성희롱 발언에 대한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다시 직장을 잃게 됐다. 그렇게  번째 방학을 맞이했다.


많은 시간과 부족한 돈. 위로금으로 받은 크지 않은 금액으로 재취업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노하우가 필요했다. 가급적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동네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 묵혀두었던 책을 읽고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을 정주행 하며 하루에 1시간 남짓 동네를 산책하는 생활은 정신과 육신을 건강하게 만들었다. 아 이렇게 좋은 백수 생활이라니. 이런 백수 생활을 나는 ‘옅은 숨을 쉰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큰 흐름의 변화나 파동 없이 잔잔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옅은 생활. 그런 생활만으로 대단히 행복했다.


대단히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단하진 않지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필요했다. 서울에서 홀로   있는 최소한의 돈의 필요성과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 고픈 욕심은 실수를 부른다.  해봐서, 몰라서 그랬다면 이해라도 갈만한 ‘상근 프리랜서 에디터 다시 하게 된다. 동일한 매체에서. 그것도 기껏 높여두었던 월급도 20% 정도 낮춰서 말이다.  


어김없이, 당연하게도, 이번에도 1년을 채워도 정규직 전환은 되지 못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정규직 전환을 장담하던 부장님은 TO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며 미안하다는  마디로 상황을 수습했다. 그때 우연하게도 스노보드를 접하게 됐다.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만들어 주는 . 깊은숨을   있게 만들어 주는 .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지속적으로 회사에서 타의적 퇴사를 했던 나는 처음으로 자발적 퇴사를 했다.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1~2개월 버틸 수 있을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스노보드를 마음껏   있는  달이 있었다. 그렇게 스노보드를 만나 깊은숨을   있게   섭식장애가 완치됐다. 아마 옅은 숨이 도달하지 않는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던 섭식장애에 깊은숨이 닿게 되어  순환이 병을 낫게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책을 썼다.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알았다> 섭식장애를 앓게 되고 이를 치유하게 되는 과정을 엮어낸 책이다. 책이 출간된  나는 섭식장애를 극복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극복했다고 스스로 믿었다. 그러나 섭식장애가 다시 발병했다.


가고 싶은 회사가 있었다. 설립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고, 매력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였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수직적인 잡지계에 있던 내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몇 단계의 면접을 거친 후 3개월의 수습기간까지 완료한 후 정규직이 되었다. 급여 조건도 좋았다. 대학 졸업 후 줄곧 불안정했던 수입은 급할 때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습관을 만들었고, 조금씩 몇 년 동안 쌓여가던 빛은 눈덩이처럼 불어 천만 원이 넘었다. 1년 동안 매력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대부분의 빚을 갚았다. 삶이 정상 궤도로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이기에 성장을 위하여 요구되는 노동의 강도는 건강을 무너뜨렸고, 수평적인 문화 속에서 자행되는 위선적인 행위들은 정신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다시 무너진 내게 섭식장애가 파고들었다. 그 회사에서 12개월을 버틴 후 자발적 퇴사를 결정했다. 깊은숨이 필요했다. 내게 안락함을 줬던 내 집과 내 동네는 이제 더 이상 내게 안락함을 주지 못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지난주 금요일 퇴직금을 모두 들고 제주로 왔다. 이곳에서 앞으로 약 1달 동안 서핑을 하며 지내려고 한다.


서핑이 스노보드가 그랬던 것처럼 깊은숨을   있게  줄지는 아직 모른다. 아직 파도를 ‘잡을실력도 없어서 서핑의 재미라고 해봐야 그저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는 성취감뿐이다. 제주가 주는 환경이 일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출간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글을   없었던 내가 다시 글로 쓰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글이 책이   있을까?’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일까?’ ‘요즘 대세에 맞을까?’라는 물음에서 벗어나니 쓸거리가 주변에 넘쳐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제주에서   동안 서핑하며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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