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생긴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것과 같다.
<비혼주의 동거커플 동거집 ep.3>
에어프라이어를 바꿨다. 취향은 변하기 마련인지 많은 상품 중 메탈 소재에만 눈이 갔다. 하나 둘 상품을 알아보는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눈도 높아져 마지막에는 결국 스메그에 꽂혀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가또가 일단 저렴한 제품을 써보고 활용도를 지켜본 후에 스메그를 사자고 회유했다. 나는 가또의 이런 회유에 약하다.
야심 차게 베이킹에 도전하려는 내 패기가 아무래도 미심쩍었나 보다. 가또는 나보다 더 열심히 디깅을 하더니 8만 원에 판매하는 오븐 에어프라이어를 알아왔다. 정가는 20만 원 대지만 이벤트에 참여하면 8만 원에 득템의 기회가 있는 제품이었다.
8만 원에 오븐 에어프라이어를 산 게 큰 이득이라 생각했는지 이내 옆에 둘 선반이 필요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그 선반은 진짜 필요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하지만 그때는 꼭 ‘그’ 선반이 필요했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일명 ‘인디언 키친랙’. 인도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이라 그렇게 이름 붙었는데,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60만 원대에 판매하는 제품이다. ‘아니 세상에 저게 뭐라고 60만 원이나 해?’ 아쉬운 마음은 가격표를 보자 뒤로 보내졌다.
그런데 발견해 버렸다. 국내 사이트에서 30만 원에서 3천 원이 모자란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인디언 키친랙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허우적 대는 나는 한 달 정도 쇼핑 상세 페이지를 방문한 끝에 6개월 무이자 할부를 결심했다. 6개월의 기간에도 의미가 있다. 한 달에 5만 원이 넘지 않는 원금과 고가의 물건을 산 것에 대한 적당한 반성의 기간. 매 월 카드값을 갚는 날이면 할부 항목에서 인디언 키친랙을 보고선 참회의 감정을 맛보는 것으로 과소비를 반성한다.
30만 원이면 대단히 큰돈도 아닌데 그렇게 유난 떨 필요가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인디언 키친랙이란 것이 보기보다 실용도가 낮다. 그렇기에 그저 예쁘다는 이유에 30만 원을 써버린 것을 부정할 수 없다. 30만 원은 이 선반을 통해 내 취향을 드러내는 값이기도 하다. 다른 선반을 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사실 선반이 굳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30만 원까지가 내가 선반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취향의 한계다.
좋은 물건이야 많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좋은 물건이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세상엔 왜 이리 비싸고 좋은 물건이 많은지 당장 뭐라도 하나 가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요즘 ‘허세 인플레이션’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들리는 데 허세에 돈을 쓰기에는 얄팍한 지갑 사정에 너무 밝은 현실적인 인간이라 쇼핑 리스트에도 장벽을 켜켜이 세운다. 쇼핑의 기쁨과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좋은 물건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비례하게 많아지고 취향은 그만큼 정교해지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건 내 통장 잔고뿐인 것 같다.
언제부터 취향이 좋다는 말이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보그>의 페이지를 넘기던 18살 때부터일 것이다. 수많은 브랜드와 그보다 더 많은 상품 사이에서 어떤 것이 가장 내 맘에 드는지 선별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작업을 했었다. 새로운 컬렉션이 발표되는 패션쇼를 볼 때는 내 생각과 패션 에디터의 의견이 얼마나 상이한지로 스스로의 안목을 평가했다.
그러나 결국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미디어에 나오는 누군가의 의견이란 마케팅의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판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것들도 좋은 물건인 것처럼 충분히 포장 가능하다. 사실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게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능력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값싸고 좋은 물건, 비싼 만큼 좋은 물건, 비싸지만 좋은 물건.
좋은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 지다. 그러니 가성비도 취향이 될 수 있다. 취향에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닌 각자의 기호만 있는 거니까. 가또는 가성비를 추구한다. 이따금씩 가또가 주문한 택배 박스를 열 때면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시한폭탄을 여는 기분이다. 대체로 가성비가 좋은 제품의 디자인이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열에 아홉은 여지없이 ‘이거 너무 (내 기준에) 못생겼어’를 외치게 된다. 가또에게 중요한 건 경험이다. 가또에게는 물건도 경험의 수단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 궁금한 것. 이것이 가또가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귀에 꽂고 불을 붙이면 귀지를 제거해준다는 이어 캔들이나 굉장히 미세한 모로 치아 구석구석을 닦아준다는 칫솔, 이 칫솔 이후엔 굉장히 큰 칫솔 머리로 한 번의 움직임으로도 마치 2~3번은 칫솔질을 한 것 같은 효과의 칫솔 등. 문제는 배송비가 아까운 보통의 소비자인 가또는 이런 물건을 한 번 살 때 20~30개씩 사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한 번 써보고 별로인 제품은 그대로 수납장으로 들어간 채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경험적 소비에 경제력을 휘두르는 어른으로 자란 가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꽤 잘 알게 되었다. 취향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취향을 다듬어 간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사물 혹은 무형의 콘텐츠를 고르는데 심미적 기준이 없다고 해서 취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미세모보다 두꺼운 모의 칫솔을 선호하는 것도 취향이 될 수 있다. 개성이란 게 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인 만큼 취향도 개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낼 뿐 그 안에 좋고 취향, 나쁜 취향이란 건 없다.
요즘 디자이너 제품이나 명품 브랜드 제품이 가득한 ‘취향 좋은’ 브이로그를 보며 이런저런 글을 보게 되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워딩은 ‘명품의 대중화’였다. 명품을 선호하는 건 안목이 높다는 걸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명품은 대중화가 되었는데 대중적인 내 월급으로는 살 수 없다면?
물론 취향의 물건을 살 수 있는 그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거야 말로 멋진 일이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아니다. 가격택 앞을 손에 쥐고 언제나 취향과 허세와 합리적인 소비 사이에서 항상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특히 집이란 공간은 내 취향을 한데 모은 집합체가 되기 마련이다. 마치 브랜드 카탈로그 같은 브이로그를 볼 때면 우리 집에 초라해 보일 때도 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다.
이 집에는 지난 8년 간의 시간과 추억과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걸.
이 집에는 8년 간 달라져 간 내 취향과 그 취향이 변화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내 취향이 아닌 물건도 이 집에는 많다. 그러나 취향이 달라졌다고 해서 모든 물건을 다 새로 바꿀 필요도 없다. 물건이란 게 한낱 상품에 불과했다가도 돈을 지불해 내 것이 된 후에는 물건과 내가 섞여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나. 물건에 내가 덧씌워진 건지, 내가 물건에 덧씌워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후자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다루느냐가 취향인 것 같기도 하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
구태의연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미란다가 명품백을 마구 내팽개치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러니 값비싼 물건이 나오는 브이로그나 SNS를 보며 위축되지 말고 변하는 취향과 그 안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면 되지 않을까. 가령 이렇게 갑자기 메탈 소재에 꽂혀서 주방 한편을 메탈로 바꾸는 재미?
그래서 부엌의 스테인리스 존_오븐 에어프라이어와 인디언 키친랙이 위치한_에 둘 선반으로 이케아의 19,000원짜리 휠리스를 선택했다. 물론 이 자그마한 선반 하나로는 부족해 4개를 사서 연결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메탈 소재가 굉장히 좋고 내 경제 사정은 10만 원까지 이 구역에 허락했다. 그리고 약간 부실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선반이 만들어 낸 수납공간은 가또가 박스 째 사는 탄산수와 내가 박스 째 사 쟁이는 아몬드 우유를 전부 넣고도 자리가 남았다.
그리고 이미 손에 익은 오븐 에어프라이어는 당분간 계속 써 볼 생각이다. 스메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에어프라이어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많았다.
유튜브를 통해서 오븐과 키친랙 그리고 이케아 선반을 설치하는 과정을 시청해 보세요 : )
https://www.youtube.com/watch?v=dM4iZFMZL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