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구원하기
2022년 9월쯤이었던가 장 뤽 고다르가 9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다르 이전'과 ‘고다르 이후'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고전적 영화 스타일과 현대적 영화 스타일의 경계에서 영화 스타일을 크게 바꾼 인물이다. 많은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상물을 그리 즐기지 않는 나도 몇 편을 찾아볼 정도였다.
고다르의 영화 중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Sauve qui peut)』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의 메시지는 제목과 일치한다. 할 수 있는 자가 알아서 자신을 구하라. 이 영화는 영화 외적 이야기까지 함께 봐야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장 뤽 고다르가 자신의 삶으로 던지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와 68운동에 경도되던 고다르는 1967년 헐리우드식 상업 영화와 결별한다. 이후 상업적 배급망을 거절하고 필름이 아닌 비디오를 제작하며,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든다. 그러나 혁명과 투쟁 정신이 더 이상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상업 영화로 돌아오고자 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고다르를 할리우드 상업 영화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더 스토리』라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으나, 이 프로젝트는 다른 영화 때문에 미뤄진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고다르는 스위스에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영화로 결국 상업영화로의 복귀에 성공한다. 이후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한번 결별했던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 복귀를 위한 첫 프로젝트가 실패했지만 다시 한번 새로운 처음을 만들어내어 스스로 자신을 구하며 복귀에 성공한 것, 그래서 이 영화의 다른 이름은 “두 번째 첫 번째”이다.
“첫사랑을 하고, 첫 번째 경험을 하고, 첫 영화를 만들 때, 일단 그러한 경험들을 했다면 그것들은 반복될 수 없다. 그 경험이 나쁜 것이라면 그것은 반복이다. 그 경험이 좋다면 그것은 나선형으로 상승할 것이다.”
- 조나단 코트와의 1980년 대화 중
까짓거 한번 주춤하면 어떨까. 다시 처음을 만들어보면 된다. 그것이 정말 '처음'이라면 우린 다시 돌아오고 상승할 수 있다.
인생 전체가 주춤한 이야기도 있다. 볼 때마다 울컥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등장인물인 이지안 이야기이다. 미래를 기대하지도. 못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녀는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단 한 사람, 그녀의 회사 상사 박동훈만 그녀를 같은 인간으로서 대해준다. 이지안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박동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은 아저씨가 처음이었어요.”
그녀에게 박동훈이 건낸 네 번째 따뜻함은 그녀에게는 ‘처음'이었고, 그렇게 구원 받는다.
나 역시 고다르의 두 번째 처음, 이지안의 네 번째 처음을 바란다. 두 번째 첫 번째를 거친 후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고다르처럼,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두 번째인 첫 번째, 세 번째인 첫 번째가 다가오길 바란다. 삶에 완전히 지쳐버린 나에게 네 번째의 처음이 다가오길 바란다.
고다르에게 지병이 있었나 기사를 찾아보니, 스위스 법안에서는 허용되는 ‘조력자살', 즉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선택의 이유를 고다르는 “삶에 지쳤을 뿐이다.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항상 처음을 추구하던 그에게 이 결정 역시 또 다른 하나의 ‘처음'이었기를 기도한다. 편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