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나를 원나잇이나 즐기는 남자 이상으로 보지 않더라고. 하지만 난 하룻밤 자고 헤어질 만한 남자가 아니라 훨씬 가치 있는 남자야.”
오호…. 자신감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남자는 처음 본다.
“네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지 그랬어. 너는 겉모습보다 안에 가진 게 훨씬 많잖아.”
“매번 나를 증명해야 하는 것도 이골이 나. 언제나 그랬거든. 그래도 결국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걸. 내가 나를 숨기며 사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를 알아볼 사람이라면 이렇게 알아볼 테니까. 너처럼.”
부유한 부모 밑에서 기득권층으로 태어나 인생 쉽게 살며 오늘은 이 여자 침대에서, 내일은 저 여자 침대로 뛰어들고 살 것 같이 생긴 백인 양아치와 혼자 애 키우며 돈 많은 늙은 독일 노인네들이나 후리고 다닐 거 같이 생긴 동양 여자.
알고 보니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이 빌어먹을 선입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고고한 투쟁가였다.
“네가 그동안 만나온 여자애들이라면 나이가 많아봐야 20대 중반 아냐? 그 나이 때에는 내면을 보기 어려운 게 보통이지. 나도 1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 내가 그때 이렇게 사람 볼 줄 알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이혼녀가 되지도 않았을 거야. 하하.”
익살스럽게 웃는 나를 보며 그도 빙긋 웃었다.
“그래도 5년은 좀 너무 하다. 인생 황금기 같은 시기에. 괜찮았어?”
“쉽진 않았지. 대신 그 시간 동안 긴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됐어. 내 인생에서 좀 힘든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렇게 혼자 지내면서 하나님을 통해 많은 걸 깨닫고 배웠거든. 간절히 기도할 때면 나를 알아봐 줄 특별한 여자가 언젠가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 누가 될지 모르는 일이니 그녀가 나타났을 때 재빨리 알아보고 놓치지 않도록 나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기울이며 조용히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어.”
게이도 아닌 그가 5년 동안 여자 없이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던 이유였다.
그건 그렇고, 난데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말에 왠지 간담이 서늘했다.
별거를 시작하고 한참 힘들었던 초기에 아는 언니의 권유로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하는 예배에 발 한 번 잘못 들였다가 그들이 물어물어 우리 집까지 찾아오는 공포스러운 일을 겪었다.
원래 사이비라는 게 마음이 약해질 때 빠지기 쉽다 보니 독일에서 싱글맘이 된 뒤로는 특히 모든 안테나를 총동원해 늘 경계하며 살았는데…….
일단 나는 무신론자로, 오랫동안 종류를 불문하고 종교라는 것에 큰 회의를 갖고 살아왔다.
그러다 독일에서 싱글맘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우연과 행운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오며 어느 순간부터는 이 모든 일이 더 이상 우연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종교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아이와 내가 삶의 벼랑 끝에 몰릴 때마다 양을 몰듯 안전한 우리 안으로 밀어 보호해준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해가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것이 하나님인지는….
다만 선명하게 느낄 뿐이다,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나와 아이를 사랑하고 지켜준다는 것을.
그런 내 앞에 지금 앉아있는 남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니,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예수쟁이인가 싶어 모든 안테나가 곤두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게 그냥 비유적인 표현인 거야, 아니면 정말 귀로 듣는다는 거야?”
“정말 들려.”
“정말 들린다고? 그냥 맨 정신에 들리는 거야, 아니면 무슨…, 약 같은 거 할 때 들리는…, 건가…?”
중독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 교수부터 시작해 수업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마리화나 흡연 경험을 털어놓는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술, 담배와 오토바이로 비행을 하지만 독일 청소년들의 일탈은 마약과 섹스다.
나는 그냥, 독일에는 마리화나가 워낙 흔하니까 그런 거 하면서 일종의 환청을 듣는 게 아닐까 싶었을 뿐이다. 약이라는 말에 그가 순간적으로 실망하며 슬픈 기색을 띠었다.
“하……. 그런 거 아냐. 내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면 다들 그렇게 반응하더라. 그런데 너까지 그렇게 말하다니…….”
“미안해. 너를 무시하는 뜻은 아니었어. 다만,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서 말이야.”
“그냥 마음을 집중하고 가만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말을 속으로 전하면 대답을 들을 수 있어. 종교는 나도 없어.”
“종교가 없어? 그럼 네가 말한 신은 뭐야? 하나님이 아닌 거야?”
“하나님이 맞지만, 나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거야.”
하….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상당히 특이하다. 이거 정말 이단이 아닌가 싶어 신경이 곤두섰다.
“말을 정확하게 해야 돼. 나는 외국인이라 네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다고. 네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게 그러니까 갈래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야?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아니면 이슬람?”
“굳이 세간의 분류로 따지자면 개신교겠지. 하지만 난 종교의 한 갈래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그냥 믿음이 깊을 뿐이야. 종교는 사람이 만들어낸 정치적인 개념이니까. 요즘 세상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말씀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거짓말로 유혹하는 가짜들이 너무 많아. 난 그런 게 싫을 뿐이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religiös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gläubig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묘하다. 믿음이 깊다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내가 무신론자로 살게 된 이유와 똑같다.
“예수의 존재를 믿니?”
“그럼. 삼위일체니까.”
그렇구나. 그럼 기독교 교리에 맞다.
“어떤 교회를 다녀?”
“특정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교회면 공교회나 사교회 할 것 없이 가끔 예배 보러 가.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에 계시는 게 아니야. 늘 내 곁에 계시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성경을 읽는 게 차라리 나아. 그래서 늘 성경을 읽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가는 공교회가 있는데 여기서 가깝거든. 너도 언제 생각 있음 같이 가볼래?”
“좋아.”
종교와 신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와의 대화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치고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사는 크리스천을 만나본 일은 손에 꼽는다.
청소년기까지 신에 대한 질문이 수도 없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까지 두루두루 관심을 가져봤지만,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에 대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종교는 없었다.
차라리 양자역학에 입각해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고, 창조주(신)는 프로그래머라는 가설이 훨씬 설득력 있다.
그중에서도 의심하면 안 되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는 것이 진정한 신앙심인듯한 한국 기독교의 분위기는 특히 다단계 사기행각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신에 관한 내 순수한 궁금증은 기독교인들에게 쉽게 신성모독으로 치부됐고, 이 주제는 너무나 민감해서 차라리 입에 담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본 소위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은 탐욕스러웠고, 뒤에서 남의 험담하기 좋아했으며, 마음이 병들어 있었고, 남보다 잘되고 싶어 기도를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런 추악한 사람들만 골라 천국으로 데려가는 신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앙심이 깊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지금 내 앞에서 종교와 종교의 껍데기를 쓰고 삽질하는 기독교의 행각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그와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기도 하는 나의 20년 지기 친구. 그녀는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진실된 크리스천 중 한 명이자 내가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믿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말했었다.
“내가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네가 훨씬 더 크리스천같이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아.”
그가 내 가장 친한 친구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없는 대화 주제는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말이 통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에게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 내가 만났던 추악한 기독교인들과 종교 관련 범죄 사례를 예로 들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신과 종교에 관한 논리적 약점과 날이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침착하게 다 듣고나더니, 일단 내가 헷갈리고 있는 종교와 믿음, 신앙심의 개념을 구분해서 알려줬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추악한 행태나 종교인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실제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것이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주장의 논리적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내기 시작했다. 종교에 관한 내 의미 있는 비판들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냉정하게 독설을 하며.
그렇게 열띤 토론을 하며 그동안 쌓아왔던 종교에 관한 해묵은 찌꺼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자 나는 그간의 갈증이라도 풀듯, 쉴 새 없이 하나님과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주려 노력했고, 본인도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공부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질문들은 이미 성경에 나와있는 것들이니 내가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만나다니,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이 없겠다!
그는 자신이 힘들 때면 자주 읽는 성경 구절이 있다며 괜찮다면 너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알겠다고 하자 그는 핸드폰을 꺼내 성경앱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주는 독일어 챕터가 한국어로 무엇인지 몰라 한국어와 독일어 성경을 놓고 구약부터 하나씩 목차를 비교해나갔다.
고생 끝에 찾게 된 구절은, 이사야 제41장 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밥을 먹고, 우리 집에 열쇠가 부러진 채로 망가져서 며칠 째 잠겨있는 붙박이 청소도구함을 보여주며 문을 좀 열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연장이 필요하다는데, 그 연장통도 이 안에 들어있다.
그는 몇 번 문을 흔들어보더니 다음번에 올 때 연장을 가져와서 열어주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한 데다 예상치 못한 토론의 장이 열려 결국 산책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기분 상하지 않고 나의 시야가, 닫혀있던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짜릿했다.
그런 그가 하필 대학 동기라니….
대화 말미에 그가 괜찮다면 너와 너의 아이를 위해 기도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면 언제나 감사하다고 했다.
집에 도착한 그가 오늘 대화도 정말 즐거웠다며, 오늘 자신을 위해 베풀어 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밥을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인가 보다.
누군가가 베푸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볼 줄 아는 사람이고, 자신이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