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와 준 거 고마워. 너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은데, 행여 너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길 바래. 잘 자.”
“나도 고마워.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아. 너랑 있는 거 참 좋아. 너랑 아이에게 나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길 바래. 오늘 밤은 특별히 푹 쉬길 바랄게. 우리의 다음번 만남이 벌써 기쁘다! 마음으로 널 다시 한번 꼭 안아줄게. 잘 자”
그는 쿨했다. 진지하되 우울하지 않고, 다정하되 추접하지 않으며, 적극적이나 위협적이지 않은 그는 언제나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여차하면 나를 도울 수 있도록 내 마음이 허락하는 선 근처에 서 있으면서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내가 좀 더 안 쪽에 새로운 선을 그으면 그제야 한 발짝 성큼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날 이후 그는 한층 더 적극적이고, 유혹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금요일이 되자, 그는 오는 주말에 아이와 한번 더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해야만 했다.
밤 근무를 하는 싱글맘 친구가 일요일에 다시 아이를 봐달라고 해서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토요일 오전에 그 친구가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를 타러 가주기로 해서 3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지만, 토요일 오후에는 또 아이가 옆집 친구와 놀고 싶어 했다.
그 집 애엄마랑은 싸우고 벌써 한 달이 훌쩍 넘도록 대화가 없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새 아이들끼리는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아이들 약속을 취소하고 토요일에 그와 소풍을 갈 수도 있지만 내키지 않는다. 가뜩이나 그 집 엄마랑 사이도 안 좋은데 아이들 약속까지 취소하면 오해가 쌓이고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에게 이번 주말은 어렵겠다고 말했다.
내일 오전 아이가 자전거를 타러 갈 때 보던지, 아니면 이따 오후에 공원에 놀러 갈 생각이니 혹시 시간이 되면 잠깐 들르겠냐고 물었다.
“이야, 빈이한테 정말 즐거운 주말이겠구나! 괜찮아, 분명 다음에 또 소풍 갈 기회가 있을 거야. 오늘 몇 시쯤 공원에 갈 건데? 난 내일도 시간 괜찮아.”
놀랍게도 그는 내일도 시간이 되고, 오늘도 우리를 만나러 공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가 나를 남다르게 생각한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놀이기구에 붙어 72시간을 생존할 수 있다는 근거로 두 달간 폐쇄 조치되었던 놀이터가 다시 허락된 날이었다.
놀이터 주변을 하얀색과 빨간색이 번갈아 들어간 테이프로 빙 둘러 막아놓고, 금지 표지판을 세워 놓아 두 달 가까이 유령 마을처럼 휑 했던 놀이터에 아이들이 찾아오자 근방에 생기가 넘쳤다.
오전 내내 방에 갇혀 있던 아이는 신이 나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나는 근처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엎드려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걸어와 내 옆에 앉았고, 나는 우리가 늘 마시던 무알콜 병맥주 두 개 중 하나를 건넸다.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혀 와 맥주병 주변에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날씨가 좋은 데다 코로나 조치가 완화되어 잔디밭에는 듬성듬성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누웠다.
가만히 주변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커플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녀 둘이 피크닉 담요를 들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면서 티격태격하는 것이 보였다.
쫑알쫑알 쉴 새 없이 남자를 다그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딴청을 부리며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둘 다 동유럽 계열이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서 이 좋은 날 남자 친구랑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서도 저렇게 화가 났을까 싶어 귀를 쫑긋하고 들어 보았다.
“너는 맨날 시간이 없다고 하잖아. 어제도 바빴고, 그제도 바빴고, 내일도 바쁘고!!!!! 왜 맨날 그렇게 바쁜데!!!!!”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나왔잖아. 지금 같이 있으면 된 거지.”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지! 지금 나오면 뭐해! 내일은 또 나 혼잔데!”
“그럼 어떡해, 할 일이 있는 걸.”
“몰라! 짜증 나!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나는 안중에도 없어! 넌 정말 못 됐어!”
잔소리의 내용은 온통 남자가 바빠서 서운하다는 말 밖에 없었다. 옆에서 듣는 내 귀가 다 따가울 지경인데도, 남자는 인내심 있게 그 잔소리를 다 들어가며 맥주를 계속 들이켰다.
그 커플이 들을까 봐 그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저 남자가 일어나서 집에 안 가면, 우리가 자리를 옮기자! 귀 아파서 더는 못 듣겠다.”
그러자 그도 같은 생각이라며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남자가 여자에게 진하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잔소리를 멈추고 조용해졌다. 평화가 찾아왔다.
왜 남자는 항상 바쁘고, 여자는 항상 서운할까.
논리도, 맥락도 없이 서운하다는 말로만 15분이 넘도록 쏘아붙이는 여자나, 그런 여자에게 입을 맞추고 상황을 평정시킨 남자나……. 둘은 천생연분인 듯했다.
그에게는 진지하게 만났던 세 명의 여자가 있었다.
“넌 예전 여자 친구들이랑 왜 헤어졌어?’
“첫 번째는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고, 두 번째는 내가 살면서 가장 힘들 때였는데 둘 다 어렸을 때라 서로 뭘 잘 몰랐던 거 같아. 여자 친구도 나를 위로해줄 수 없었고, 나도 그런 여자 친구의 존재가 힘들었어. 세 번째때는 나는 꽤 진지했는데, 여자 친구가 아직 진지한 관계를 이어나갈 만큼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거 같아.”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네가 상대방에게 가장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바람피우지 않고 상대에게 충실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귀는 사이에서 상대에게 충실한 것은 바램이 아니라 연애가 성립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고 단호히 말하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던 게 떠올랐다.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어?”
“응. 내 첫 여자 친구였는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애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어. 항상 불안해하고 내가 잠시라도 옆에 없으면 다른 데 기웃거리고. 늘 나를 떠보려고 하고, 삐지면 다른 남자랑 보란 듯이 노닥거리고 그랬어.”
“몇 살이었는데?”
“열일곱”
“네 관심이 끌고 싶었나 보네. 열일곱이면 애잖아.”
“알지. 근데 그땐 나도 그 또래였고, 첫 연애라 많이 부족했어.”
“그럼 바람피운 걸 알고서 바로 헤어진 거야?”
“그랬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지. 자존심이 너무 상했는데, 그래도 사랑하니까 다시 받아줬어. 다시 한번 잘해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 애를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한번 깨진 믿음은 회복하기 어렵더라. 바람은 연인 사이에 가장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걸 그때 배웠어.”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나도 헤어졌다가 만난 적 있는데 결과는 똑같더라. 그럼 넌 바람피운 적 없어?”
“없어. 난 바람 안 피워.”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 없다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운명 같은 상대를 언제, 어디서 만날 줄 알고. 모르는 거잖아, 사람 일은.”
“물론 그렇지만, 바람을 피우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잖아. 서로 눈빛이 오고 가고, 틈을 보이고, 그 후에도 수많은 단계를 거쳐서 침대까지 가는 거지. 그렇게 되기까지 그만둘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이 있었겠어. 난 그런 일이 생기면 그 자리를 벗어나.
남자, 여자를 떠나서 정서적인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상대를 두고, 다른 사람을 쳐다본다는 건 내적으로 뭔가 빈약하다는 뜻이야.
굳이 바람피우는 걸로 증명하지 않아도 난 나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스스로 알고 있고. 여자를 안 만나면 몰라도 사귀는 사이라면 난 언제나 상대에게 충실해.”
“와, 나도 무척 공감해. 그건 그렇고, 너는 정말 연애관이 특별하다. 너처럼 자신만만한 남자도 드물지만, 그렇게 단호하게 이성에게 충실한 모습도 신선해. 내 말은 멋지다는 뜻이야. 두 번째는?”
“그때는 내가 좀 많이 힘든 일이 있었어. 나는 하루하루 사는 게 버거운데, 여자 친구는 나랑 나가서 놀고 싶고, 파티에 가고 싶어 하고 그랬으니까. 도저히 같이 같이 뭘 할 수가 없는 상태였어, 난 그때. 그래서 헤어졌어.”
그가 왜 힘들었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세 번째 여자 친구는 진지한 관계를 이어갈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왜 3년씩이나 만난 거야?”
“많이 사랑했으니까. 내가 곁에서 참고 이해해주면 언젠가 나아질 줄 알았지.”
“알고도 만난 거야, 아님 만나다 보니 알게 된 거야?”
“처음엔 그런 거 다 모르고 만나잖아. 눈에 콩깍지가 씌기도 하고, 자기 안 좋은 모습은 안 보여 주기도 하니까. 한 반년 정도 만나니까 슬슬 힘들어지더라.”
“반년 지나고부터 힘들어졌는데 그 뒤로 2년 반을 더 만났던 거야, 그럼?”
“응.”
“정확히 뭐가 문제였는데?”
그는 나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줬지만,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이 글에서는 자세한 내용을 생략하도록 하겠다.
“너도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혼자인 것보다 더 힘드니까.”
“물론 그랬지. 그렇지만 나도 잘한 건 없었어. 나중에는 나도 지칠 대로 지쳐서 그녀를 뒤로 한 채 그냥 나가서 친구들 만나고 놀 거 놀았거든.”
그때 그녀의 나이는 20대 초중반, 그는 그녀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을 뿐이다.
“그럼 네가 그때 그녀를 위해 뭘 더 해줄 수 있었을까? 2년 넘게 그 곁을 지켰다는 거 자체가, 난 너로서는 최선을 다 했다고 보이는데.”
“좀 더 일찍 헤어졌어야 해, 그녀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나에게 매달리는 대신 자신의 길을 좀 더 빨리 찾았을 거야.”
“너랑 헤어지고 나서 괜찮았을까?”
“나도 그게 걱정돼서 헤어지고 난 뒤 한동안 몰래 지켜봤는데 잘 지내는 거 같더라. 어느 날 엄청 즐겁게 운전하고 가는 모습 보고는 나도 훌훌 털어버렸지.”
“그랬구나…. 너도 정말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 뒤로 5년 동안 연애를 안 한 걸 보면.”
“마지막에는 나도 거의 탈진 상태였어. 긴 휴식이 필요했지. 그렇게 몇 년 정도 지나니까 차츰 다시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연애 말고 이제는 진짜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그런 여자가 아니라면 그냥 애당초 시작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렇게 기다리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5년이 된 거야.
지금은 아주 좋아. 혼자 지내면서 내가 그 당시에 어떤 점이 부족해서 헤어지게 됐는지 충분히 생각했고, 많이 배웠거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해.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됐고.
앞으로 내 여자가 될 사람한테는 최고로 좋은 것만 해줄 거야. 내 옆자리에 설 여자는 나한테 가장 좋은 것만 받게 될 거라는 뜻이지, 그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그는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과거의 연애사를 풀어놓는 데 있어 숨기는 것 없이 솔직했고, 관계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줄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파트너를 원하고, 그녀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바람에 관한 그의 확고한 신념과는 반대로 그의 여자 친구들은 언제나 그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까 봐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그의 외모나, 성격을 보면 매력적이면서도 자신감이 넘쳐서 일견 이해가 갔다. 게다가 그가 만났던 여자들은 많아봐야 20대 중반이었으니, 그 나이 때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나이 때에는 연애를 하면서도 늘 불안해했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으니까.
그때의 나는 아직 나를 사랑하기 전이었다. 아니 사랑은커녕,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원하는지 조차 까마득히 모를 때였다. 내가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과연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문득 그가 나의 남자 친구라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전 여자 친구들처럼 불안해할까, 아니면 그를 마음 편하게 신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자 친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여자를 불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서 들은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가 내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파트너와의 관계를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그는 파트너와 성숙한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이혼을 하면 모든 연애경험이 리셋된다. 내가 이전에 어떤 연애를 했든, 모든 연애사는 결국 이혼 하나로 수렴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야.”
“그래?”
“응. 물론 남편이 마지막에 다른 여자를 만났고, 우리를 매정하게 내팽개쳤고, 아이와의 연락마저도 끊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의 결혼이 그렇게까지 흘러가게 된 데에는 당연히 나의 책임도 있었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한 사람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결혼 생활이 파탄이 나겠어. 항상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해.”
“물론 그렇지.”
“우리는 결혼 생활 중에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고, 내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헤어진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남편의 심경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알 수 없어.
다만 정황상 추측해보자면 그런 거야. 첫눈에 반했고, 장거리 연애 2년 끝에 결혼을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우린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지.
그 사람도 나도 부모님 밑에서 공부나 하며 편히 살다가 독일어도 못하고, 경제력도 없는 외국인 아내 때문에 하루아침에 혼자 가장이 된 그 사람은 그게 많이 버거웠던 거 같아.
신혼 1년 뒤에 아이가 생겼고, 1년 임신 기간 보내고, 아이가 돌 될 때까지 또 1년.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지.”
“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입장이 이해가 돼. 크고 화려한 도시에서 살다가 갑자기 촌구석 같은 곳으로 이사를 왔지, 아기는 어려서 맨날 울지,
모든 걸 자기한테 의지하고 있는 아내는 자기 생활이라고는 전혀 없이 집에 갇혀서 남편이 오기만 기다리지, 양가 가족, 친구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니 도움받을 곳은 전혀 없지….
게다가 내가 독일어를 거의 못 했기 때문에 그 사람 혼자서 모든 관공서 일처리를 다 해야 했어. 아기 병원 예약조차 나 혼자 할 줄 몰랐으니까.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은 막 이직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가장 노릇 하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내 뒤치다꺼리하랴, 주말이면 좀 쉬고 싶어도 아이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
내가 그 사람이었어도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그가 바람을 피운 사실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어.
그 여자를 사랑해서 모든 걸 버렸다기보다는 뭐랄까, 우리를 떠나고 싶은데 차마 스스로는 못 열고 있던 문을 그 여자가 열어주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간 것 같이 보였거든.”
“그렇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가족도, 친구도 뒤로 하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로 넘어와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아기랑 둘이 1년을 보내는 건 너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는 남편한테 의지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가장이 돼서 아기를 데리고 혼자 살아보니, 경제력 없는 아내와 아기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 사람은 심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러웠까 싶어.
그때는 내가 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어서 그가 무척 커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할 때 그 사람이나 나나 스물여섯이었으니까. 너무 어렸지….
게다가 독일은 더더욱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그런 문화가 아니잖아. 복지도 잘 되어있고,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개인의 부담이 적다 보니 같은 상황에 놓여도 정신적 피로도가 나보다 컸을 거야.
한국에서 살다가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 사람들은 멘탈이 좀… 유리 같은 게 있어. 스트레스 상황을 견디는 능력도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고….
내가 지금처럼 독일 사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성숙했더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았을 거고, 그랬더라면 남편의 짐도 좀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나도 철이 없었어.
그 사람이 돌봐주는데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모든 걸 놓아버렸던 거 같아.”
“네가 그때 남편에게 좀 더 잘해줬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는 않아. 나도 그 당시에는 나름 최선을 다한 거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어. 그런 사람과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래서 언제가 됐든 헤어지기는 했을 거 같아.
그래도 그런 식은 아니라고 생각해. 결혼이라는 게 소꿉장난은 아니잖아. 적어도 헤어지기 전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은 다 해봐야지.
그 사람은 나와 문제를 상의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혼자만의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풀려고 했고, 나는 그 사람에게 인생의 짐을 나눠질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라는 신뢰감을 주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어.
남편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우리와 헤어지기까지 본인도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때까지 아내로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많이 안타깝지. 아이한테도 미안하고.”
“아이한테 미안해하지 마. 너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죄책감 가져서 너와 아이에게 도움될 건 하나도 없으니까.
결혼생활을 그렇게까지 돌아볼 수 있다니, 너는 이미 과거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 더 이상 그 상황에 갇혀서 고통받고 있는 게 아니라 냉철하게 너와 그 사람의 관계를 돌아볼 줄 아는 거잖아.”
“처음에는 힘들었어. 욕도 많이 했고. 오죽하면 블로그를 열어서 온 동네방네 다 떠벌리고 다녔겠어, 그 사람이 우리를 이렇게 버렸다고. 부끄러운 줄도 몰랐지,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네가 특별한 게 뭔 줄 알아? 너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수치심’을 버릴 만큼 용감했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엄마를 따라 그룹상담에 3년 동안 참여했었다고 했지? 수많은 사람들을 보다 보면, 개중에는 문제를 빨리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늘 그 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어.
그 차이가 뭔 줄 알아? 바로 그 ‘수치심’을 버릴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수치심이라는 바위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놓지 못하고 정체해있거든.
그런데 너는 그 중요한 순간에 수치심을 가장 먼저 버린 거잖아. 네 앞을 가로막을 가장 큰 장애물을 치워버렸으니 네가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남보다 월등한 건 당연했겠지.
수치심을 버린 순간, 넌 이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야. 그리고 그런 능력은 아무나 갖고 있는 게 아니야. 아주 드물지.”
“아, 난 그런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이렇게 들으니, 내가 굉장히 멋진 일을 한 것 같다. 하하. 뭐 아무튼, 난 만족해. 그로 인해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고, 글을 쓰면서 나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나로 인해 용기를 얻은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상담도 그래서 시작한 거야.”
“훌륭해.”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저 멀리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까도 말했듯이 남편의 바람이 가정이 깨지게 된 본질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문제로 아파하지는 않았어. 다만, 아이와 연락을 끊었다는 게 여전히 좀 마음이 아프지.
한 3년 정도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 그런데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과연 그를 용서하고 말고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그런….
나는 개인적으로 남편이 더 이상 밉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혼으로 나는 얻은 게 더 많기도 하고. 아이도 얻었고, 독일에서 대학도 다니고, 남편의 외가 쪽 친척들과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무엇보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면서 자존감이 점점 올라가는 걸 느꼈거든.
신기하더라. 홀로 선다는 게 정말 힘들기는 한데, 그런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해나갈 때마다 꼭 게임할 때 레벨업 하는 것처럼 재미있기도 하더라고. 나에 대한 믿음이 커졌지.”
“정말 소중한 걸 배웠구나.”
“그렇지. 남편이 그렇게 가정을 깨지 않았더라면 나 스스로는 절대 시도할 수 없었을 거야, 이혼이라는 그런 용감한 결정을…. 불행해도 그냥 살았겠지. 그게 불행인 줄도 모르고.
그래서 그와 나의 관계는 빚 청산이 다 끝났다고 생각해. 그도 나도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를 얻었으니까.
다만 아이와의 문제는, 이제 그 사람과 아이 사이의 일인 거지. 내가 용서하고 말고 할게 아니라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자기 아빠와 직접 해결할 일인 거 같아.”
“맞아. 언젠가 그 사람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될 날이 올 거야. 묶인 매듭을 풀지 않고서는 절대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거든.
만나러 오지는 않더라도 어쨌거나 양육비를 꼬박꼬박 내는 방식으로 아이 삶의 한 부분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 걸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해. 아이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야.
그런 쪽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 엄마를 소개해줄게. 나쁘지 않을 거야.”
“그러게. 안 그래도 너희 엄마가 하시는 일에 나도 여러모로 관심이 많아서 물어보고 싶었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언제든지 기꺼이. 넌 정말 특별한 여자야. 진짜 강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
“하하. 말했듯이 내가 그 사람이랑 살 때도 이랬던 건 아냐. 자존감도 낮고, 불안하고, 의존적이었어. 요리도 할 줄 몰랐고, 책임감도 없었고. 그런 나를 그 사람이 많이 사랑해줬지.
마지막 마무리가 최악이었을 뿐, 함께 한 5년 동안 나한테 참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결혼했겠지?”
그 뒤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좀 더 사적이고, 쉽게 나누기 어려운 은밀한 이야기들까지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그가 사랑에 관해 말을 하면 할수록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마치 내가 친구들에게 늘 하던 말을 그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처럼. 우리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놀라우리만치 일치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그가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대학 동기라는 선이 있었고, 우리 사이에 그 선이 존재하는 한 그 유혹의 눈빛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나를 친구 이상으로 대한다는 걸 느낀 이상, 언제까지나 이런 애매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아주 분명하게 그의 마음을 전달했으니까.
나 역시 시간 끌지 않고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준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향한 탐색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그와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이 좋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지속할만한 여력이 더 이상 없다.
싱글맘인 내가 그동안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투자한 저녁 세 시간은 단순한 세 시간이 아니라 내가 쉴 시간, 잠잘 시간, 공부할 시간을 쪼개 만든 것이었으니까.
이제 무도회는 끝이 났고, 나는 다시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그동안 어떤 생각으로 나를 만나왔던 걸까.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 직접 물어보자.
“내일 오전에 내 친구가 아이를 봐주기로 했어. 자전거 타러 간다고 했으니까 3시간 정도 비는데 그때 함께 장 보지 않을래?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같이 산책이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