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코로나로 망가진 삶과 싱글맘의 비애

일곱 번째 만남

by 뿌리와 날개

포옹을 하고 헤어진 그날 이후 우리의 메시지는 학사일정이나 안부 외에도 좀 더 사적인 내용이 첨가되었다.



우리 집 근처 공원을 지나가다 봤다며 그가 오리가족의 사진을 찍어 보낸다던가, 별일 없냐는 그의 물음에 잘 지낸다는 대답 대신 고된 하루 끝의 지친 마음을 슬쩍 내비치고는 했다. 그와 나의 심적인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를 혼자 키우고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의 삶이 돈, 시간, 에너지의 소모로 유지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싱글맘인 나는 언제나 그 세 가지가 모자라는 악순환 속에서 두 사람을 건사해야 한다는 것을.



돈이 없으면 시간과 에너지가 배로 든다. 차가 없으니 어린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피곤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날에도 배달시켜 먹는 대신 장을 봐다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하니까. 베이비시터를 구할 돈이 없으니 인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디폴트 값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고도 나는 언제나 아이를 위한 몫을 위해 나를 다시 쥐어짜야 했다.



시간이 없으면 돈과 에너지가 배로 든다. 시간 안에 빨리 도착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던가, 거리가 먼 할인마트에 갈 시간이 없으니 집 근처 비싼 마트에서 장을 봐야 했다. 덜 자고 오래 깨어 있으면서 많은 일을 해야 했고, 시간 절약을 위해 한번에 최대한 많은 장을 봐서 낑낑 거리며 이고, 지고 와야 했다.



혼자서 두 몫, 세 몫을 해내느라 늘 분주하면서도 시간은 모자랐고, 돈이 없는 나는 부족한 시간을 대부분 에너지를 쏟아 메꿔야 했으며, 그래서 늘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에너지가 없으면 돈과 시간이 배로 들었다. 무거운 가구를 스스로 옮겨 올 수 없으니 인건비를 내고 배달을 시키거나, 한 학기 안에 모든 것을 해낼 여력이 없으니 등록금을 더 내고 학기를 자꾸 늘려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정말 싱글맘의 악순환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카드를 돌려 막아 급한 불부터 끄듯이 돈과 시간, 에너지를 번갈아 쥐어짜가며 밑 빠진 독 같은 내 인생에 물을 채우려고 아등바등했지만, 그러고도 돌아오는 것은 원금 지불 완료 영수증이 아니라 여전히 체납된 삶의 고단함이라는 원금에, 아이의 정서불안이라는 이자였다.








록다운과 온라인 대학 강의, 그리고 가정 보육은 최악의 콤비네이션이었다. 게다가 이번 학기는 6학기 통틀어 가장 힘들다는 사회복지법과 소셜 매니지먼트 수업이었다.



수업 하나에 보조강의가 두 개씩 딸려 있어, 강의 한 과목이 결국 세 과목인 셈인 데다 과목마다 과제도 넘쳤다.



활동량 끝내주는 6살짜리 사내아이를 아침부터 밤까지 옆에 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주 5일 하루 평균 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아이는 5분에 한 번씩 방문을 열고 들락날락하며 엄마를 찾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비디오카메라를 끄고 아이를 다시 방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 30분 쉬는 시간에는 서둘러 주방에 들어가 아이 끼니와 내 끼니를 번갈아 챙겼다.



밥만 차려주고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와 수업을 듣고 있으면, 아이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밥그릇을 들고 멋대로 방을 돌아다니며 침대, 소파, 카펫 할 것 없이 흘리고, 쏟았다.



그렇게 뭘 배웠는지도 모를 오전,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집구석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집안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세 시간을 혼자 놀게 뒀더니, 새 A4용지를 멋대로 꺼내다가 방에 종이비행기를 73개나 접어 놓은 것은 방금 빤 빨래를 더럽혀 다시 빨아야 하는 수고에 비하면 차라리 칭찬할만했다.



6살 배기 아이가 엄마의 감독 없이 9시간 가까운 하루를 혼자서 얌전히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5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그제야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혼자서 장을 보러 나갔다. 요리해 저녁을 먹고, 하루 종일 그릇을 쌓아놓아 엉망이 된 주방을 치우고, 아이가 혼자 놀며 어마 무시하게 어질러놓은 방을 치우고, 밀린 빨래를 해야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있었던 아이는 수업이 끝나면 놀아달라고 난리였지만, 내일을 살기 위해서 나는 오늘 최소한의 집안일이라도 마쳐야 했다.



잠들기 전 하루에 한 번 아이와 밖에 나가 짧은 산책을 했다. 개도 서너 시간에 한 번씩 산책을 하는 나라에서 내 아이는 하루에 한 번 산책도 겨우 할 수 있었다.



아직 혼자 나가 놀게 둘 수 없는 나이라 내가 수업을 듣는 동안 아이는 하루 종일 집 안에 처박혀 혼자 놀아야만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아이는 어느 날부터 다시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별거를 시작한 뒤부터 두 돌이 될 때까지 반년 넘도록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다니던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발코니를 달고,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드릴 소리, 망치소리로 하루 종일 귀가 멍한 날도 있었다.



이런 전쟁 같은 일과를 마치고 책상에 앉으면 밤 9시가 넘었다.








아이와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다음은 공부와의 전쟁이었다.



법 수업은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다른 수업들과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언어적 한계도 한계였지만, 방대한 수업량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강의 내용은 어렵고, 수업량은 많은데, 예습은 커녕 복습 시간 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는데 나는 밤 9시에 다시 책상에 앉아 그 엄청난 양의 수업을 복습해야 했다. 12시 가까이 앉아있어도 PPT 서너 장 이해하고 넘기기도 힘들었다.



복습을 충분히 하고, 철저히 예습을 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판에, 당일 배운 수업 내용도 거의 소화를 못하니 악순환은 끝이 없었다. 2주 정도가 지나니 나는 더 이상 강의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교수들은 매 수업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3-4명씩 소그룹으로 나눠 브레이크 세션이라는 5-10분가량의 시간을 주며, 실 사례를 예문으로 주고 적용할 수 있는 법률조항을 찾아 법적 논리에 맞게 풀이를 하라고 했다.



학생들은 다들 법전을 넘겨 어렵지 않게 법률 조항을 찾아내고 저마다 풀이를 내놓았다. 소그룹이다 보니 누가 참여를 하고, 누가 안 하는지 도드라지는데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 혼자 헤매고 있으면, 독일 학생들은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진도를 나갔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조항을 찾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으면서도 카메라로 공부하는 모습이 비치니 뭐라도 끄적이는 척하며 90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카메라를 끄면 그냥 울고만 싶었다. 아이가 잠들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해서 내일은 따라가리라 다짐했지만, 밤이 되면 나는 지쳐 만신창이가 되었다.



만약 학기 말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 학기가 또 늘어난다. 정해진 학기수 내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면 나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지, 공부를 중단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 돈까지 벌어야 한다니…. 어떻게 해서든 학기가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는 끔찍한 알레르기로 일상생활이 처참해진지 5년째였다. 눈은 미친 듯이 가렵고, 재채기는 끊임없이 나오고, 콧물이 줄줄이라 코가 헐도록 코를 풀어야 했다.



별거의 충격으로 갑자기 시작된 내 알레르기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유일하게 증세가 나아질 때는 내가 아무런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없이 온전히 쉴 때뿐이었다.



변변한 직업 없이 독일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게는, 그렇게 증세를 호전시키라는 말은 손가락 빨다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루는 정말 중요한 소셜 매니지먼트 수업이 있었다. 한국에서 배운 적 없는 분야라 써먹을 배경지식도 전혀 없었고, 복지 예산 계산법을 배우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 수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참여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가 나가자고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린애같이 징징거리는 아이가 아닌데, 이 모든 상황은 그냥 우리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한 시간이나 남은 수업을 뒤로하고 카메라를 껐다.



아이에게 끌려 공원으로 나가니 아이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즐거워라 엄마 이것 좀 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냥 울고만 싶었다.



오늘 그 수업을 못 들었으니, 다음 주까지 해야 되는 과제는 어찌할 것이며,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에게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앞일이 막막했다.



아이와 쉬는 시간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알레르기 때문에 누우면 코가 막히고 가렵고 아파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집에 돌아와 엉망진창인 집안 꼴을 보니 가관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 재워야 했다. 저녁을 먹으래도, 양치를 하래도, 옷을 갈아입으래도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 휘익-. 있잖아, 휘익- 내가 휘익-”



아이가 단어 사이사이마다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새로운 틱이었다.








“그만해! 휘파람 불지 말고 말하란 말이야!”



며칠 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독일어 강의 폭탄에, 공사현장 소음에, 아이 소리까지 연일 귀가 혹사당하고 있는데 아이의 끊임없는 휘파람 소리에 순간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틱이 생겼다. 학기가 시작되면 서서히 심해지다가 학기말 시험 기간에 정도가 극에 달했고,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의 틱도 나아졌다.



하지만 목에 가래가 낀 것처럼 컥컥거린다거나, 눈을 깜빡인다거나,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하며 종류만 바뀔 뿐 아이는 언제나 틱이 있었다.



휘파람은 처음 보는 틱이었다. 아이는 이제 고정적인 틱이었던 컥컥 거리는 것뿐만 아니라 휘파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아이의 틱에 대해서 따로 아는 척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 노력을 해왔지만, 그 휘파람을 듣는 순간, 지난 2년 간 했던 그 모든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한계였다.



나는 이미 마지막 힘까지 다 짜내어 살고 있었고, 더 이상 쥐어짤 힘이라고는 없었다.








울다 잠들었을 게 분명했지만, 아이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때 잘 지내냐는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와 노닥거릴 힘도 없었다. 대답을 하면 만나자고 할 게 뻔한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만나자는 말을 할 필요 없도록, 오늘은 조금 힘든 하루였고 그래서 지쳐서 그냥 쉬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서 꽤 긴 답장이 왔지만, 슬쩍 훑어보고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독일어 폭탄은 이미 충분했다. 조금만 더 독일어를 읽고 해석했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공부가 힘들었다.

아이가 버거웠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지쳤다.



코로나로 인한 삶의 제약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겠고, 안전 상의 문제로 베아테도 방문을 못하게 된 지 오래다.



아이와 나 둘 중에 하나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격리되어야 하는데 누가 우리를 보살펴준단 말인가. 이런 상황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이 십시일반 도와준다고 해도,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도 모르는 이 낯선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격리조치에 따른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더 이상은 해낼 수 없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서러웠다.



이런 삶을 얼마나 더 오래 지속해야만 하는 걸까. 좋은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분명 안간힘을 다해 살고 있는데도, 결국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질게도 아이를 혼자 울다 잠들게 한 나는,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꼬박 하루가 지난 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천천히 다시 읽어봤다.



“오…. 그래, 분명 힘들 거야. 이번 학기가 가장 힘든 학기잖아. 기꺼이 너를 위로하고 싶은데, 괜찮다면 꼭 안아주고 싶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어쩌면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안녕.”



여태껏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하고, 굉장히 적극적인 내용의 메시지였다.



내가 깜깜한 방에 웅크리고 누워 서럽게 울고 있을 때, 그는 다른 곳에서 이미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었다.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한다면 그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나를 위로해 주고 싶어 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혹시 오늘 저녁에 잠깐 나를 위해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잠깐 들릴까?”


“응. 아이는 이미 잠들었어. 아무 때나 와도 돼.”



잠시 후 도착한 그는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감싸 안고 무릎 위에 얼굴을 댄 채 웅크린 내 옆에 조용히 따라 앉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조용했다.

고요했다.

드디어 귀가 편안해지며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고요함이 너무 좋았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그의 왼쪽 어깨에 기댔다.



그는 마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살포시 내 왼쪽 어깨를 감싸고 내 머리 위에 그의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는 내 왼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를 몇 번이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오른쪽 귀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은 천천히,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안정적인 그의 심박수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폭풍이 일고, 성난 짐승처럼 날뛰던 내 마음도 서서히 진정이 되었다.



몸을 왼쪽으로 돌려 그의 왼쪽 옆구리에 내 등을 대고 돌아 앉았다. 그의 왼쪽 팔에 내 왼쪽 얼굴을 기댄 뒤 그의 팔을 가만히 끌어안고 태아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앉은 나를 오른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알맞은 속도와 알맞은 세기로 내 머리를, 내 팔을, 그리고 내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그 고요함을, 안락함을 천천히 음미했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그는 나에게 괜찮다며 그런 나의 고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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