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태어나 자기의 똥꼬를 스스로 닦을 수 있을 때까지 7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만 3세를 기점으로 아이는 유모차와 낮 기저귀를 떼며 나에게 작은 자유를 안겨주었다.
기저귀를 차지 않으니 기저귀 가방이 필요 없어졌고, 유모차가 필요 없으니 타야 하는 전철이 들어오고 있어도 뛰지 못하고 멍하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하는 일 따위도 없어졌다.
가족의 도움 없이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다 여러 번 삶의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기 때문에 나의 육아 피로도는 보통의 엄마들보다 심했다.
나에게는 주말마다 아이를 데려가는 전남편도, 주중에 수시로 아이를 대신 픽업해주고 필요할 때마다 아이를 재워줄 친정부모님도 안 계셨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쉼표를 찍지 않는 한 엄마 노릇에 휴식이란 없었다.
그렇게 3년이 넘어가니 육아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아 틈만 나면 아이를 맡기고 좀 쉬고 싶어 혈안이 된 나와는 달리, 너의 휴식을 위해 가끔 네 자식을 맡아줄 수는 있지만, 굳이 어린 내 자식을 너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다는 럭셔리한 엄마들 틈에서 나는 모진 엄마, 이기적인 엄마라는 내면의 죄책감과 싸워내며 기어코 아이를 맡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 이틀 키우고 말 자식도 아닌데, 페이스 조절은 필수이거늘, 그게 왜 그렇게도 마음에 걸렸는지….
덕분에 나와 아이는 일찍부터 기회만 되면 서로 떨어져 각자의 휴식을 취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렇게 만 3세부터 시작된 아이의 친구네 집 외박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을 지탱해주고 있는 큰 활력소이자 힘이다.
만 5세가 되자 아이는 엄마 없이 이모할머니 댁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장기간의 이별도 해낼 수 있었다. 아니, 혼자 육아를 하는 엄마를 위해 해내야만 했다.
2019년 여름,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아이를 일주일이나 떼어놓고 혼자서 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시작하던 날이 떠오른다. 이모님이 계신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도시 중에 여행하고 싶은 곳을 골라 들리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된 도시는 코블렌츠(Koblenz), 본(Bonn) 그리고 쾰른(Köln)이었다.
코블렌츠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혼자서 케이블카도 타보고,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서 거리를 걷기도 했으며, 야외에서 맥주와 함께 식사도 해봤다.
코블렌츠 다음은 본이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아기곰 젤리 하리보의 도시로 유명한 본답게 하리보 제1호점에 들려봤다.
마지막 여행지가 쾰른이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밴드 “Muse”의 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처음 뮤즈를 알게 되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영국에 가서 꼭 그들의 공연 실황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독일에 살게 되니 굳이 영국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독일로 찾아오는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경험해 본 콘서트,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밴드의 공연이라니…. 난생처음 만난 독일 사람들과 함께 뮤즈의 음악을 떼창 하며 위아더원이 된 그날 저녁의 감동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나는 혼자서 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왁자지껄하게 사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몰랐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원해서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임신기간이었다. 남편 없이 한국에서 두 달간 시간을 보내며 자주 혼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처음으로 살짝 부른 배를 안고 종로의 한 식당에 들어가 먹었던 것은 오징어덮밥이었다. 혼자이면서도 뱃속의 아이가 함께 있으니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어색함이 훨씬 덜했다.
그렇게 혼자서 처음으로 밥을 시켜 먹으며, 삼삼오오 함께 앉아 밥 먹는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을 구경했고, 새롭고 낯선 시도에 긴장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은 내가 다시는 혼자가 될 수 없는 몸이 되고나서부터 였다.
인간은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이 무엇인지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여행할 때 최대한 많이 찾아가 보고, 많이 체험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여행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자주 할 수도 없는 데다 타고난 여행가 체질도 아니라 멋들어진 여행수기를 쓸 줄도 모른다.
여행기는 다른 여행작가들이 훨씬 멋지게 찍고 재미있게 쓸 테니, 나까지 굳이 뛰어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아이가 없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즐기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은 방구석 탈출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할 때, 평소에 아이를 뒤치다꺼리하느라 입을 수 없는 옷들을 입는다. 그리고 아이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곳을 가고, 아이 때문에 쉽게 할 수 없었던 일을 한다.
나에게 금지된 것, 그리하여 내가 욕망하는 것이라 함은,
시간의 압박 없이
먹고 싶을 때 먹고,
걷고 싶은 만큼 걷고,
끝없이 사색하는 것.
그리고 아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것.
틈만 나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도 내가 여행기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오로지 나의 "방구석 탈출"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틈이 있을 때 필사적으로 떠날 뿐.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아이 없이 허락된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