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늘이 보이는 풍경, 발코니가 있는 삶

너와 나의 낙원, 호아제!

by 뿌리와 날개

이번 주부터 빈이가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3월에 격일로 두 번, 잠시 등교한 적이 있지만 이내 록다운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작년 12월 15일 이후로 처음 시행되는 정상 등교라고 볼 수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5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의 등교와 함께 반년 넘도록 우중충하던 독일 북부지역 날씨도 드디어 개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추웠다. 4-5월 내내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해가 안 떠서 지난주까지 난방을 했을 정도였다. 다들 이 맑은 날씨에 황홀해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발콘(Balkon/발코니)을 좀 꾸며보기로 했다.




이 집에 산지 6년이 다 돼가지만 발콘은 작년에서야 처음 지어졌다. 세를 준 회사가 2019년부터 낡은 건물들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이 회사 건물 중에서 얼마 안 남은 낡은 건물이라고 한다.

독일에 살다 보면 발콘 없는 집을 보기 힘들다. 특히 최근 30년 사이에 지어진 집들은 발콘이 거의 기본적으로 달려있다. 독일식 발콘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야외형이 많다.



건축하는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한국에서 이런 독일의 발코니는 무엇보다 사생활 침해 문제로 기피한다고 했다. 인구가 특정 도시에 밀집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여기는 비교적 한적하고, 또 남의 사생활에 거의 간섭을 안 하는 문화이다 보니 개방적인 발코니의 장점을 누리기에 편안한 게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뒤숭숭한 2020년이었지만 1년에 걸친 대대적인 공사가 눈 앞에서 펼쳐진 덕에 록다운으로 집에 있게 된 빈이에게는 볼거리 풍부한 한 해였다. 이미 지어진 낡은 집에 어떻게 새 발콘을 달지 내심 궁금했었다.


아래는 작년 리모델링이 시작되었을 때 사진들이다.



먼저 창문 아랫쪽 벽을 깨부숴서 창문을 문으로 만들고 문틀을 끼운다.
일단 문을 먼저 달아놓은 뒤 발콘이 달릴 때까지 폐쇄시킨다.
바닥에서 반만 조립한 각각의 발콘들을 기중기로 들어 올린다.
3층인 우리집까지 들어올린 발콘을 벽에 고정시키고 남은 조립을 마저 한다.



작년 10월 완성된 발콘은 흐리고 추운 날씨 때문에 지지난주까지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봄이 되고 가끔 해가 나면 빨래를 말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가구를 들여놓아야 했지만, 비싸기도 하거니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주문만 가능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대충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빈이는 햇살이 즐기고 싶으면 피크닉 덱케 (Picknick Decke/ 천 돗자리)를 깔거나 식탁 의자를 끌고 나와 앉아 있기도 했다.



아직 가구가 없던 지난주까지 발콘의 모습.





그러던 지난 주말, 22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시는 베아테 시이모님께서 본인이 쓰시던 발콘 가구들을 직접 승용차에 싣고 우리를 방문하셨다! 올해 새 가구를 들일 계획이시라 우리가 원하면 쓰던 가구를 넘겨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직접 가져다 주실 줄은 몰랐다.



곧 날씨가 풀릴 거라는 소식에 서둘러 테트리스처럼 가구들을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 남편과 함께 그 먼 거리를 달려오신 것이다. 화창한 날이 얼마 없는 독일이니 하루라도 놓치지 말고 편안히 즐기라고. 그리고는 내가 차려드린 점심식사만 하시고는 커피 마시고 두 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아무리 두 분이서 교대로 운전을 하신다고 해도, 왕복 7시간의 거리를 하루 만에....



첫 만남으로부터 11년, 그리고 6년 전부터는 더 이상 전남편의 이모가 아닌 나의 이모이자, 독일에서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언니이자, 남편이자, 제2의 엄마인 나의 베아테.



우리를 향한 그 깊은 사랑과 그런 사랑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희생과 배려에 나는 자주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가 독일에서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이모님 부부가 220 킬로미터를 달려 옮겨다 주신 가구로 드디어 꾸며 본 우리의 발콘이다.



발콘 난간에 꽃 대신 심은 딸기.



6년 전 보호소에 살면서 주말에 비프케 집에 머물던 적이 있다. 비프케네 집 발콘에 열린 딸기를 따먹으며 빈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 나도 발콘 있는 집에 살게 되면 꼭 딸기 모종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사도 안 가고 발콘이 생겼고, 올해 비프케가 빈이의 일곱 번째 생일선물로 딸기 모종 10개를 선물해줬다. 세상에, 내가 6년 전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프케는! 무뚝뚝하고 직설적이라 나를 진땀 빼게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깜짝 놀랄만한 섬세함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좋은 독일 친구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독일에서 살고 있다.






독일의 창문에는 쇠창살이 없다. 쇠창살은 물론이고 방충망도 없다. 시내 한복판이나 역사 근처는 조금 다르지만, 보통의 주택가 집들은 그렇다. 처음에는 이런 독일의 창문이 아주 불안하고 불편했다. 특히 갑작스러운 이혼과 이사로 심적인 충격도 컸기 때문에 벽 한 면이 뻥 뚫린 듯한 커다란 창문이 좋기보다는 늘 나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었다. 언제든 창 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풍경에, 푸르른 하늘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그 일이 있고부터 2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재작년에 내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 왔었다. 그땐 아직 발콘이 없을 때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함께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마음껏 보고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더니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생각난다! 너 중학교 때 그랬었잖아. 파란 하늘을 보는 게 너무 좋은데 니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건물이 딱 버티고 있어서 벽 밖에 보이는 게 없다고. 그때 네가 항상 그랬어.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맞다. 그 말을 듣자 기억이 났다.

내 세대는 아파트촌에서 자란 아이들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여름 장마기간이면 침수가 되는 반지하 집에서 컸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방을 가지게 되었지만 내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창문을 열면 1미터 앞에 벽이 있어서 하늘은커녕 환기조차 제대로 안 되는 다세대주택의 집이었다. 그래서 늘 벽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는 고층의 집을 상상하곤 했었다. 시야에 거슬리는 것이 없이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런 집.



가끔 원 없이 하늘이 보고 싶으면 한 밤 중 아무도 없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몰래 들어가 모래운동장 한가운데 철퍼덕 누웠다. 누워서 오래도록 방해받지 않고 별 박힌 까만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낮에 해가 뜨면 집안에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하게 살 수 있는 집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주거환경과 삶의 질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특히 반지하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 반지하라는 개념이 없는 유럽의 거주환경은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일조권을 침해받지 않고, 개인마당이나 발코니가 없으면 잔디 깔린 공동 마당이라도 있는 나라, 시원하게 트인 창으로 10분이면 완벽한 환기가 되는 집,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한 집, 어느 층에 살아도 방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집...



발코니라는 공간으로 내 삶의 질이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보면서 발코니가 없을 때에도 이 곳의 주거환경에 상당히 만족했지만, 발코니가 생기고 난 뒤부터는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지저귀는 새소리, 초록빛 가득한 잔디와 나무들, 누군가 꼭 그려놓은 듯이 아름다운 하늘...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삶이 럭셔리한 삶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럭셔리한 삶일까.



우리집 발코니에서 올려다 본 5월 하늘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할 때면 나는 꼭 낙원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우리 집 발코니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Hoase



Oase는 독일어로 오아시스, 낙원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나와 아이 이름의 시작 알파벳인 H를 붙여 호아제라고 지었다.

“너와 나의 낙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짓고 보니 호아제가 호아재로 들리기도 해서 한자 뜻을 붙여줘도 그럴듯할 것 같았다. 좋을 “호”자에 나”아” 또는 아름다울 “아”. 건축물에 붙는 “재”자는 경건하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뜻의 “재” 자를 쓴다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경건하고 싶지 않다. 가끔 음악 틀어놓고 흔들흔들 춤도 추고, 친구랑 맥주도 한 잔 하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 원 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있을 “재”를 쓰면 나“아”와 붙어 너무 나르시시즘 같다. 아무래도 한자 뜻은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예쁘게 정리한 발코니에 이름을 붙여 주며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이 건축물에 이름을 지어줬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랑했던 것이다, 그 공간을.



나의 호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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