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상처와 새로운 남자 1/4
푹 자고 일어난 기분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민소매 윗도리에 짧은 반바지. 어젯밤 잠들 때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어기적 어기적 집안을 걸어 다녔다.
물도 마시도, 글도 쓰면서 아이와 남자 친구도 어서 깨기를 기다렸다.
글을 두 편이나 쓰도록 깨지 않더니만 아이가 먼저 일어나고, 곧이어 남자 친구가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침실로 들어가 보니 어느새 침대가 다 정리되어 있다.
양치를 하고 나오는 남자 친구와 잘 잤냐고 인사를 나눴고, 그는 곧바로 주방에 들어가 커피를 내렸다.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침실로 들어간 그는 잠옷으로 입었던 바지를 벗고, 청바지를 입고 벨트를 채웠다.
양말을 신더니, 잠들기 전 벗어 놓았던 팔찌들도 팔목에 다시 끼워 넣었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장난스레 물었다.
“어디 가?”
“아무 데도.”
“근데 옷은 왜 갈아입어?”
“일어났으니까.”
가끔 남자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인 와중에 양치도 하고, 양말도 신고, 옷까지 갈아입다니.
게다가 딱히 갈 곳이 없는데도 잠옷을 벗다니.
물론 1년을 넘게 만나면서 그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그런 습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집안에서도 양말을 신는 것은 백이면 백, 독일 사람들의 습관이다.
바닥이 절절 끓는 보일러 난방이 일반적인 곳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집이란, 양말을 벗고 뽀득뽀득 방바닥을 맨발로 밟고 다녀야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라디에이터에서 나오는 건조하고 뜨거운 열기로 겨우겨우 집 공기만 데워 사는 독일인들이라 그런지, 그들은 어째 따뜻한 양말을 신고 있어야만 포근한 집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유럽에 10년을 살았어도 집 안에서 양말을 신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곤욕이다.
그런 내 눈에 양말을 신고, 벨트까지 채운 그의 모습은 편안한 주말 아침에 어울리지 않게 정말 불편해 보였다.
커피를 내리고 컵을 찾는 그의 옆에 붙어 생글생글 종알거렸다.
“불편해 보여.”
“뭐가.”
“옷 그렇게 갖춰 입은 거. 꼭 어디 갈 사람 같잖아.”
“일어났으면 당연히 갈아입어야지. 난 일어났으면서도 자다 깬 차림 그대로 돌아다니는 거 너무 싫어.”
그 말에 갑자기 자다 깬 차림 고대로 양치도 안 하고 서 있는 내 꼴이 떠올랐다.
너무… 싫다니….
그때까지 장난처럼 서로 웃으며 주고받다가, 순간 속에서 발끈하는 뭔가가 느껴졌다.
“뭐야. 지금 나더러 잠옷 안 갈아입었다고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나는 내가 자다 깬 차림 그대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고 했지. 너더러 뭐라고 한 거 아니야.”
“아니기는. 자다 깬 차림 그대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그 꼴이면 내가 싫다는 말이잖아.”
“그게 어떻게 같은 말이야. 네가 잠옷 차림인 게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잠옷 차림인 게 싫어서 내가 갈아입었다는데.”
“3단 논법이잖아. 사람은 죽는데, 소크라테스도 사람이면, 소크라테스도 죽는 거!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싫은데, 내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면, 내가 싫다는 말이지!”
대화가 여기까지 번지자 슬슬 감정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고! 도대체, 왜 내가 옷 갈아입는 걸 너한테 허락받아야 되는데!”
“내가 언제 허락받으라고 그랬어! 그냥 어디 가냐고 물었지! 그리고 네가 주말 아침에 편하게 있기를 바랐어. 네 옷차림이 불편해 보여서!”
“나는 이게 편해. 노숙자도 아니고, 밤에 잘 때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거 난 정말 싫어. 그렇지만 네가 네 옷을 어떻게 입든 그건 네 맘이야. 너는 네가 좋은 대로 입고 있는 거고, 나는 내가 좋은 대로 입고 있는 거고.”
노숙자라니…. 지금 나더러 노숙자라고 한 거야?
열이 받기 시작했다.
“노숙자? 그동안 나를 보고 그럼 노숙자라고 생각했던 거야?”
“아니, 내가 언제 너더러 노숙자라고 그랬어. 왜 자꾸 없는 말을 갖다 붙여?”
“없는 말이라니. 네가 분명 노숙자라고 했잖아!”
“노숙자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내가 싫다고 했지, 언제 네가 노숙자라고 했어. 네가 뭘 입든 난 상관 안 해. 너랑 아무 상관없어. 나는 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논리로는 당할 수가 없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데 나는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노숙자나, 노숙자 같은 거나 뭐가 달라!”
“다르지. 완전히 다르지. 노숙자랑 노숙자 같은 게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설명해봐, 그럼.”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독일어는 내 모국어가 아니라 모든 단어를 원어민처럼 그렇게 예민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걸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언쟁이 붙으면 늘 그 단어의 정의 (Definition/ 데피니찌온)를 끄집어낸다.
보통은 나도 언어로부터 발생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참을성 있게 설명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그가 짜증 나기 시작했다.
“싫어. 매번 설명하는 거 지겨워. 이제 그만 말할래.”
식탁으로 돌아와 앉아서 휴대폰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옷을 왜 갈아입느냐고 장난 반, 진심 반 물었을 뿐이고, 우리는 분명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처럼 농담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왜 즐거운 주말 아침부터 언성을 높이게 된 걸까?
온갖 감정이 뒤엉켜 갑자기 서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