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이렇게 아픈 거야!

낡은 상처와 새로운 남자 3/4

by 뿌리와 날개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맨 처음 느꼈던 감정은 속 시원함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나와 아이를 한국으로 보내 놓고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거였구나!


남편과 연락이 끊긴 두 달 동안, 온몸의 피가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살다가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남편과 연락이 끊어져버린 당시의 내 심정은 지금도 뭐라 형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침내 남편을 만나 그간 남편 행적의 원인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속이 시원했다.








그 뒤로는 앞으로 먹고 살 생계가 막막해서 두려웠고, 남편과의 이 위태로운 관계가 얼마나 갈지 몰라 불안했다.


정신없는 보호소 생활이 지나가고, 집을 구해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냥 피곤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3년 정도를 보냈다.


두려움과 불안함은 늘 나에게 붙어다니는, 한 몸 같은 감정이었다.








남편이 바람 나 헤어지게 된 다른 여자들과 나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응당 느껴야 할 감정인 “남편의 배신에 대한 분노”였다. 남편이 바람 나 헤어진 여자들 치고 그 감정이 없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나는 당시에 전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현실이 너무 고되서 그런 거라고만 짐작했었다.


한 서너 달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감정들도 차차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이 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가끔 사는 게 너무 고단하면, ‘그 두 사람은 지금쯤 편안히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애랑 이렇게 고생 중이라 억울하다.’라는 생각 정도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사는 게 바빠 금세 잊어버렸다.


‘어떻게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가 있지?’라는 감정, 질투와 그에 따른 분노가 나는 전혀 없었다.


가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를 안 보는 남편의 행태를 기막혀하는 엄마로서의 감정이 너무 커, 여자로서의 감정이 거기에 묻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화가 안나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남편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많은 여자들이 자괴감을 느낀다.


특히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바람이 나면, 왠지 그게 출산으로 인한 성적 만족도의 저하 때문인 것 같아 스스로 비참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젊어서 아이를 낳은 덕에 몸매에 큰 변화가 없었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한 엄마들이 으레 하는 그런 문제나 걱정도 없었다.


그가 사랑에 빠졌다는 여자는, 그가 평소에 싫다고 말해왔던 3요소를 고루 갖춘 여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가 그녀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에 매료되었다고 추측했고, 그의 바람과 여자로서 나의 매력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사 내가 살이 찌고 외모가 망가졌다한들, 그의 바람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모나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지 않았어도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행복한 아내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는 그의 바람을 나의 외모나 여자로서의 매력에서 찾지 않았고, 그보다는 우리 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6년 간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나는 단순히,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자존감이 썩 괜찮은 사람이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이미 6년이나 지난 일이고, 나는 다시 싱글로 돌아온 덕에 그동안 괜찮은 남자들과 데이트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젠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안정적으로 연애 중인.


그런 내가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잠옷을 갈아입네, 마네 하는 하찮은 일을 전 남편과 연결 지어 눈물을 쏟고 있단 말인가.



“네가 하는 말들이 전 남편을 상기시켜서 괴로워. 너무너무 슬퍼어어어…….”



그리고는 나는 다시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다시 한번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때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나더러 흥미가 사라졌대. Keine Lust mehr auf dich. 그게 사람한테 할 소리야? 독일어로는 어떤 지 몰라도 한국어로는 아주 거지 같다고. 내가 물건도 아니고, 흥미가 사라지다니. 그게 남편이 아내에게 할 소리는 아니잖아아아아…….”


“그렇게 표현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이 있지. 그건 네가 들을 필요 없는 말이었어. 너는 그 따위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니까.”



그는 나를 더욱 꼭 안아주며 말했다.



“마음이 아파. 갑자기 막 욱신거려.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이미 6년이나 지난 일인데 왜 갑자기 그게 지금 이러는 거야. 내가 왜 이제 와서 그 자식 때문에 울고 있냐고오오오오오…….”



나는 눈물을 쏟아내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나를 식탁 의자에 다시 앉혔다. 그리고는 다시 내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앉아서 가만히 울고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알겠다는 듯, 빙긋 웃으며.



“잘하고 있어. 계속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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