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이혼으로 황망하고 두려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년 전 일이 되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낫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흐르고 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슬플 때에도, 기쁠 때에도, 아파서 누워있을 때에도, 무기력해 쳐져있을 때에도 시간만은 째깍째깍 부지런히 흘러 나를 오늘로 데려다 놓았다.
세 권 분량의 브런치 북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숨 가빴던 첫 세 달을 발판 삼아 시작된 나의 독일에서의 홀로서기는 이제 어디쯤 왔을까? 기저귀와 공갈젖꼭지가 필수품이던 내 아기는 이제 혼자서 등하교를 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포켓몬 카드나 쥐라기 월드 카드를 부지런히 모아 친구들과 교환하는 것이 요즘 가장 큰 낙인 녀석이다.
어떻게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혼자 아기를 키우며 살 수 있을까? 싶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나는, 이제 곧 잘 말이 통하는 독일에서 좋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덕에 큰 무리 없이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피가 철철 흘러 고통스럽던 당시의 상처는 이제 새 살이 돋아 상흔만 남아있다. 가끔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욱신 거리는 때가 없지 않아 있지만, 언젠가 그마저도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어쩐지 조금은 서운할 것 같다.
이혼을 결정했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앞으로 겪어야 할 그 모든 일들에 언젠가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는 시간차가 있었다. 머리가 아는 것에 마음이 함께 발을 맞추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나에게는 7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짧을 수도, 또는 더 길 수도 있다. 저마다 가진 마음의 꼴이 다르고 가진 사연이 다르니. 그러니 다른 이들이 얼마 만에 나아졌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의 시간”이 흘러 “나의 마음”이 나아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상당히 효과적인 약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 피는 멎게 되어있고, 상처 또한 아물게 되어있다. 잔인한 시간일지라도 버티다 보면 흐르고 결국은 나를 지나간다.
이별, 그리고 성장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그 고통을 겪지 않을 방법은 없다. 고통의 양을 줄일 수도 없다. 다만, 고통을 감당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일시불은 일시적인 고통의 강도가 크지만, 대신 깔끔하고 빨리 끝낼 수 있다. 할부는 고통을 나누어 천천히 겪는 대신 이자가 붙어 결국 감당해야 할 고통의 시간과 양이 늘어난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나는 이 고통을 일시불로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견뎠다.
내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을 때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으며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네었던 한국 여성분들이 많았다. 그분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인 남편과 이혼을 하고, 외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안정을 찾기까지 적어도 평균 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슬슬 직업에 안정이 찾아오고, 스스로 번 돈으로 아이들과 휴가도 갈 수 있고,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할 수도 있고, 베필을 만나 재혼을 하기도 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워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면, 그들이 견뎌낸 시간들을 떠올리며 나도 7년 뒤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었겠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7년이 지난 지금 내가 얻은 것은 독일어, 자신감, 성취감, 책임감, 자유, 자기 확신과 안정감, 감사하는 마음과 만족스러운 삶,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즐거운 친구들, 큰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는 아이와 이제는 나의 소중한 독일 가족이 된 전 시댁 어른들이라는 커다란 종합 선물세트이다. 7년 전 악몽 같았던 그 시절에는 예상은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안정과 행복이다.
이혼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두려움과 고통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렇게 그저 쏟아지는 비를 피하지 않고 묵묵히 맞으며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지난 시간, 내가 겪어낸 것은 이혼의 고통이 아니라 부쩍 자라기 위한 삶의 성장통이었다는 것을.
미로 vs 터널
살다 보면 때때로 터널 속을 지날 때가 있다. 터널이 내가 예상한 정도에서 적당히 끝나 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어둠 속을 계속해서 걷다 보면 여기가 터널 속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우리 삶의 터널은 그 순간 그렇게 출구 없는 미로가 된다.
터널이 미로가 되어버리는 듯한 경험을 하면 우리는 두렵다. 터널일 때는 보이지 않더라도 가던 길을 향해 계속 걸으면 된다는 믿음이 있지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미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터널은 끝이 있지만, 미로에는 방향이라는 것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벽과 벽 사이를 더듬다 보면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지쳐 주저앉고, 종국에는 영원히 갇혀버릴 수도 있다.
여러 번 삶의 어려움을 겪어내며 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암흑 같은 시기는 삶의 미로가 아니라 터널이라는 것.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 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터널이며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걷든, 때로는 설사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든 결국 끝나게 마련이니까. 중요한 것은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지만,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 삶의 터널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환한 빛이 아닐까. 진실로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스스로가 미로에 갇힌 것이 아니라 어두운 터널에서 걸어 나오는 중임을 자각하고, 삶의 방향성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태양은 있다
두렵고 불안한 삶을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성을 쌓아온 시간들이었다. 그 성을 크고 단단하게 지으면 그 어떤 파도가 와도 나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엉성하게 지었더니 스스로 무너졌고, 열심히 짓기 시작하니 완성될만하면 수시로 파도가 와서 쓸어가 버렸다. 성을 잘 짓게 생긴 남자를 만나 함께 지으면 좀 나을까 했더니 그 남자가 도리어 함께 만들던 성을 허물었고,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단단하게 지어 이번에는 정말 다르겠지 했더니 완성되기 직전 코로나라는 해일이 몰려와 남김없이 쓸어갔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훌륭한 자격증도, 결혼과 자녀의 출산도, 재산과 번듯한 직장도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견고한 성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운 파도를 피하기 위해 성을 짓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내가 해변가에 있다는 뜻이며, 그런 해변가에서 지을 수 있는 성은 아무리 크고 훌륭해도 결국 모래성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 파도를 타는 것이다!
35년 만에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삶의 방향을 바꿨다. 더 이상 견고한 모래성을 짓기 위해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물속에 뛰어들기로! 서핑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서핑 실력을 쌓은 뒤, 파도를 타겠다는 것이 신입이 경력을 쌓고 취직하겠다는 말과 뭐가 다르겠는가. 서핑보드 하나면 충분하다. 일단 뛰어드는 것이다!
파도가 치는 내 인생의 바다에서 서핑을 하려면, 해가 내리쫴야 한다.
내 머리 위로 뜬 태양.
나는 이제 그 태양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을 겪어내며 스스로 잘 극복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이것이 절대 오롯이 나의 능력과 행운만이 아니었음을, 도리어 모든 것이 그분의 가호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무지한 시간들 속에서도 비 내리는 나의 마음속에 찾아와 때때로 따스한 햇살을 비춰주었던 그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서핑을 무사히 마치는 그날까지 맑은 기상을 책임져 줄 나의 절대자, 이제 조금씩 그분을 알아가고자 한다.
끝으로
이혼은 열쇠와 같다. 이혼뿐만이 아니라 내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잘 들여다보면 열쇠인 경우가 많다. "참된 나"라는 내면의 방문을 여는 열쇠. 그리고 그 열쇠로 따고 들어가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어둡고 갇힌 방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이고 끝없이 흥미로운 우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길고도 힘든 성장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혼 뒤에 내가 얻은 모든 것은, 그렇게 고생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을 만큼 값진 것들이었다. 결혼이 사랑의 결승선이 아니라 둘이 함께 하는 삶의 시작이었듯 이혼도 사랑의 끝이 아니라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내면은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이혼을 앞두고 막연히 두려운 사람들, 현재 이혼을 겪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금씩 그 아픔을 치유해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용기, 또는치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나의 글을 읽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그대들에게 감사하며, 그대들 역시 나름의 어려운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그로부터 눈부신 성장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