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연애도 처음부터
어느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솔로 생활은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다가오는 이성도 있어 마침내 용기를 냈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분명 상대방은 멋졌고, 데이트를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 뭔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돌싱이라서 위축이 되는 건지, 아이가 있는 엄마라는 사실에 쑥스러워서 그런 건지 생각도 했다. 도대체 이런 이질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한창 연애를 하던 때는 20대 초중반이었고, 결혼을 끝으로 이미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잠들었던 나의 연애세포는 여전히 그 당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20대 초반의 풋풋한 여자아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삶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30대의 싱글맘이었다. 게다가 나는 나이만 먹은 것이 아니라 정신연령도 높아졌고, 삶의 경험도 훨씬 풍부해져 있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10년 전 연애하던 것처럼 남자를 만나니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동양인에 비해 나이 들어 보이는 서양인의 외모도 연애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내 본래 나이보다 7-8살은 족히 어리게 보는 독일 남자들은 나를 대략 20대 중반이라 생각하고 대시했고, 그때까지 독일 남자들의 외모와 나이를 매칭 할 상황도, 이유도 없었던 나는 데이트를 시작하며 그들의 헉소리나는 액면가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쉽게 말해 내가 내 또래라 인식하고 호감을 느끼는 남자들은 터무니없이 어렸고, 내 나잇대와 맞는 남자들은 내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나이가 들어 보였다는 뜻이다.
한창 결혼 적령기인 내 또래 싱글 남자들을 연애 시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있었다. 20대 중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남자들 중에 여자를 진지하게 만날 생각이 있으며, 괜찮다 싶은 남자들은 이미 연인이 있거나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독일인들의 사랑과 연애가 한국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인들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그들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평생 혼자 살 작정도 아니고, 그들과의 연애를 피할 수도 없다면 이제는 그들의 연애와 사랑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싱글맘, 연애 시장에 뛰어들다
탑에 갇힌 라푼젤 같은 우리 싱글맘들은 해외에서 어떻게 연애를 배울 수 있을까?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는 유튜브라는 것이 있다. 비슷한 상황을 놓고도 한국과 독일의 유튜버들은 비슷한 듯 다른 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당최 독일 남자랑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독일인들의 연애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데이트 코칭 채널을 보면서 그들의 연애와 사랑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귀에도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어서 연애뿐만 아니라 실제 독일어 회화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데이트의 기회가 있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독일 남자들과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독일 남자에 대한 실전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흔히 독일 남자와 결혼해서 독일에 산다고 하면 독일 사람들을 잘 알 것 같지만 생애 첫 국제 연애로 결혼에 골인한 경우,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처음부터 임자 있는 몸으로 넘어와 남편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남편 외의 이성과는 경험이 전무해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외국인과의 연애 생리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한번 엉뚱한 사람과 결혼한 적이 있는 만큼 더더욱 많이 만나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남자 보는 눈, 나에게 맞는 남자를 고르는 눈이 그렇게 탁월했다면 이혼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며 다양한 연령대의 독일 남자들과 친해져 보고, 대화도 나누고, 때로는 데이트도 하면서 그제야 비로소 전남편이라는 사람을,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이 독일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었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주변의 친한 독일 사람들에게 그들의 연애사를 물어보고 궁금한 것들도 되물으며 틈 나는 대로 독일인들의 사랑을 익혀나갔다.
나 같은 사람과의 연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인연이려나 싶어 마음을 열고 힘껏 노력했는데도 잘 되지 않을 때면 노력했던 만큼 실망 또한 컸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재고 따지며 쭈뼛거리는 대신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주고 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어려웠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없었다. 철이 들었는가 싶으면 마음 다칠까 몸 사리기 바빴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싶으면 관계에 대한 진지함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보고 싶은 나에게 어느 쪽이든 비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슬프고 좌절스러웠던 어느 날,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고민하던 나는 마침내 강한 열망을 느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이 엉뚱한 발상은 놀랍게도 두 가지 면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나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안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나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싱글맘이라는 처지로 인해 알게 모르게 위축된 내 마음에 자신감을 돌려주었다. 사람은 때로 남보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객관화를 통해 그 가치와 신뢰를 깨달으면서 내가 불리한 입장이라는 피해자 모드나 상대방에 대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나”를 알기 위해 스스로를 더 많이 탐구하게 되었다. 나를 더 잘 알게 될수록 이성을 만났을 때 나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 쉬워졌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 적중률은 높아졌고, 쓸데없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일 또한 줄어들었다.
싱글맘의 연애 자세
다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까지 또다시 상처받고 이혼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만남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그 사랑이 다시 연애로 이어져 결국 결혼까지 가게 될 일은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다시 결혼하라고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 머릿속으로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만난다고 다 사랑할 필요도 없고, 연애했다고 다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가벼워질 필요가 있었다.
싱글맘의 연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휴식과 자유라고 생각한다. 휴식이란, 다시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지친 마음을 충분히 쉬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게 몇 년이 되든,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일단 푹 쉬어야 한다. 언제까지? 내가 다시 사랑이 하고 싶어질 때까지, 그리고 다쳤던 내 마음이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잘 아물었을 때까지. 자유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있어 나를 옭아매는 것들에 갇혀있지 않는 것이다. 다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알게 모르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결국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과 나를 향한 나의 시선, 두 가지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감정과 행동을 제약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연애한다고 손가락질할만한 사람들 중에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 곁을 지켜준다거나 아이와 고생하고 있을 때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나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는 타인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 때문에, 싱글맘이니까, 결혼에 한번 실패했으니까와 같은 올가미 역시 만들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과연 내가 누군가와 다시 참다운 사랑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라고 자문했을 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본질은 모든 제약과 시선, 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라는 사람과 ‘너’라는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나부터 내가 이혼했다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또다시 이혼하지 않으려고 쭈뼛거릴 게 아니라 이혼한 적 없는 사람처럼 두려움 없이 상대를 사랑하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내 연애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현재의 사랑에 만족하고 그 어떤 연애 때보다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니 싱글맘이여, 마음이 원하는 때가 온다면 사랑하라, 한 번도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인생은 찰나이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살기에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