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생의 역경, 사람을 걸러주는 두 번의 필터

가치 있는 인간관계

by 뿌리와 날개

Giver, Matcher, Taker


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사람들만 모일 수 있는지 놀랍다고. 나 역시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막힌 이론을 발견해 소개해볼까 한다. 바로 펜실 페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 교수인 애덤 그랜트 교수의 Give and Take 이론이다. 사람들은 크게 Giver, Matcher, Taker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의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




애덤 그랜트 교수는 이러한 분류를 토대로 그룹 안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받는 사람(Taker) 일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 모든 그룹 안에서 최고의 성과를 차지한 집단은 모두 더 많이 주는 사람(Giver)이었으며, 더 재미있는 것은 최악의 성과를 거둔 집단 역시 더 많이 주는 사람(Giver)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요구 사이의 균형에 있었다.


쉽게 말해 한없이 베풀기만 하는 기버들은 자주 이용당하거나 지쳐서 결국 실패하지만 (selfless giver)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요구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기버들(otherish giver)은 공통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도 관심이 많아 결국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어로 “호구”라 부르는 이들이 바로 Selfless giver에 해당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성공한 기버는 테이커를 끊어내고 매쳐 또는 기버와 교류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매쳐 역시 테이커를 제외한 기버 및 매쳐와 교류한다. 그렇다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야 하는 테이커들은 결국 누구를 찾을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자신을 내어주는 호구, 바로 자신을 잃어버린 기버들(selfless giver)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왜 허구한 날 저런 불한당 같은 놈들만 만나 고생하는 걸까 싶다면, 이 이론을 생각해보면 된다. 자신이 호구로 머무는 이상, 갈 곳 없는 테이커들이 주변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절대 다른 기버나 매쳐가 발을 들일 틈이 없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이론을 처음부터 알고 실생활에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이 고마워 과하게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에게 상처 주거나 결국 해를 끼치는데도 감사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려고 해도 돈, 시간,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를 많이 도와준 사람들의 순서를 매겨 도움의 크기에 걸맞은 보답을 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적어놓고 보니 내가 과하게 감사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사실은 초라한 내 현실 때문에 더 크게 보였을 뿐이며, 진짜 내 곁에서 온갖 시련과 역경을 함께 이겨내 준 사람들의 노고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이 10이라면, 열 사람에게 똑같이 1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에게 5를 주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3, 그다음은 1,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0.xxxxx로 나눴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내 주변에는 어느새 자연스레 기버들만 남아있었다. 얻어먹을 것 없는 테이커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는 매쳐와의 관계보다 나와 같은 기버들의 인간관계에 더 힘을 썼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정말 괜찮은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적극 다가가고 그런 사람들과 맺은 인간관계는 더욱 소중하게 가꿔나간 것이다.


외국인 싱글맘이라는 열악한 상황과 상승한 자존감, 다른 사람을 돕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심성의 조합이 나를 자연스럽게 “나를 지킬 줄 아는 기버”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배우며 사람 보는 안목을 어느 정도 기르게 되었다.




자료 출처 : 위키 피디아 애덤 그랜트


https://blog.naver.com/jnh1955/222412179831








전남편의 외가, 나의 새로운 가족


전남편과 이뤘던 나의 가정은 깨졌지만, 그로 인해 나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바로 시이모님과의 관계를 통해 남편의 외가 쪽 가족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언젠가 자기 뿌리를 알고 싶어 할 아이를 위해 적어도 시댁과의 교류를 원했지만, 내 시부모는 그것마저 거절했다. 그러나 남편의 이모였던 베아테와 그의 남편은 아이와 나를 친자식처럼 받아들였다. 그들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고, 나에게 애정과 존중, 그리고 인내심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 역시 그들에게 단계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친절한 줄만 알았던 남편의 외가 쪽 사람들은 사실 그동안, 남편의 입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나에 대한 말을 듣고 오랫동안 머릿속에 나름의 이미지를 그려왔던 것이다. 남편과 헤어진 뒤에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알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더 이상 수줍어하거나 어른을 공경한답시고 얌전히 있지 말고 나의 생각과 의사를 당당하게 피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아시아에서 남편이 가져온 작은 인형이 아니라 논리적 견해를 당당하게 펼칠 줄 아는, 게다가 사리분별이 확실한 보통의 성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특히 남편의 외할머니가 그러했다.


내가 우리의 가정사를 나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내가 과거에 그러했던 것이 문화적인 배려였으며, 당신의 손주가 우리에게 어떻게 했고, 그래서 나와 당신의 증손주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피력할 때마다 할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너무 한가 싶어 그만할까 싶다가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결국은 은근슬쩍 전남편의 편을 드는 것을 보며 시댁 식구들과 잘 지내려면 이제라도 잃어버린 내 자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편 등골이나 빼먹는 게으르고 멍청한 동양 여자라는 몇 년에 걸친 나의 이미지를 바꿔놓고, 무너진 힘의 균형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이 미워 시댁과 교류하지 않는 독일 여자들도 많기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이상 남편의 가족들은 아이 엄마의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본다. 한국 여성들이 그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식 정서로 시부모에게 군말 없이 아이를 보여주며 시댁의 폭언과 정신적 학대를 견디지 말고, 당신에게 못되게 굴고 아이를 데려가 부모 자식 간에 이간질을 시키며, 부당하게 굴면 가차 없이 잘라내도 된다는 말이다. 또한 힘의 균형이 무너져 헤어진 케이스라면 이혼 후라도 가족관계에서 무너진 자신의 위치를 재건하기 바란다.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때로는 존중받을 위치를 스스로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호구로서 시외가 쪽과 교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내 위치를 몇 년간에 걸친 투쟁으로 다시 세우고, 나와 아이의 가치를 인정받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괴롭혔더라면 교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아이는 시외가 쪽의 유일한 손으로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휴가 때마다 사랑과 선물을 듬뿍 받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며, 나 역시 그들에게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다. 생일 같은 특별한 날 소소한 용돈이나 애정 어린 카드와 선물도 받는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의 경조사를 꼭꼭 챙긴다.


베아테는 나에게 또 다른 어머니이며, 아이의 할머니이고, 그들은 더 이상 남편의 외가 쪽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아이의 독일 가족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독일에서 홀로 아기를 키워야 하는 한국인 싱글맘들에게 아주 든든한 비빌 언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원가족


새로운 것을 얻었다기보다는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면서 그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바로 한국에 있는 내 원가족,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의 사랑과 지지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게 살아온 우리 식구들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보아온 나의 엄마 아빠는 누군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내 가정이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런 막장을 차마 상상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외면한다는 것, 남편이 아내를 비정하게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가장 아프고 나약했을 때, 누구 하나 나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았다. 이 세상 어디에 그런 인간관계가 있단 말인가. 작고 초라한 사람, 완전하게 망가진 사람, 보잘것없고 구질구질해진 사람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며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사람들이…. 이것은 나를 뱃속에서부터 품고 낳아 길러준 내 부모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한없는 사랑을 느꼈을 때 나는, 다시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 때 늘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가족에게 받은 상처도 있었고, 도리어 가족에게 준 상처 역시 많았다. 나의 엄마와 아빠를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도 길었다. 그런데 살면서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나니, 그래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곁에서 나를 지켜준 것은 결국 나의 가족이었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을 엄마 아빠라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한 여성과 한 남성이라는, 나와 같은 동등한 인간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한 여자이고 주체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 아빠도 한 남자이고 주체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나의 동생 또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나가며 살고 있는 나와 같은 한 인간이라는 것. 이 단순한 깨달음이 주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엄마를, 아빠를, 그리고 나의 동생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가족으로 가졌다는 사실에 가슴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시련, 사람을 거르는 필터


인생의 역경은 우리에게 인간관계가 걸러지는 두 번의 필터를 제공한다. 한 번은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이다. 많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내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시에 등 돌리는 것을 보며 충격과 상실감에 말을 잃게 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은 시기적인 차이만 있을 뿐 언제든 우리 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떠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보다는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기 바란다. 그들은 나에게 뭔가를 얻고자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밑 빠진 독 같은 나에게 물을 길어다 채워주는 사람들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밑 빠진 독이 아니라 조금만 채워주면 언젠가 스스로 찰랑거리게 채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의 가능성을, 나의 내면을 봐주는 것이다.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을 수없이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이것은 내가 처절히 망가졌을 때에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기회이며, 시련의 순기능인 것이다.


두 번째 필터는 내가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섰을 때다. 어려울 때 손 내미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데 내가 사는 것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자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다시 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특히 시기와 질투를 하는 편이 아니라 인간의 이러한 단면을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깨닫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왔던 사람이 이제는 나를 시기, 질투하기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상 시기와 질투를 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아닌 척하면서 사람을 아주 집요하고, 교묘하게 괴롭히고 끊임없이 상처 주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힘든 이혼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정말 귀중한 두 가지, 자존감가치 있는 인간관계를 얻었다. 그러니 이혼이 두렵거나 이혼 이후의 삶이 막막한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세상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잘 견뎌내고 지나간다면 분명 얻을 수 있는 값진 것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힘내시라고 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odtherapy.org/blog/its-for-you-not-them-forgive-to-help-yourself-heal-071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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