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나락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안정감
사람이 살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만 느끼게 될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박살 났을 때 오는 기묘한 쾌감이 있었다. 특히 바로 직전에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움켜쥐었던 만큼 가정이 땅에 떨어진 도자기처럼 산산조각 나버릴 때의 카타르시스 또한 컸고, 그 뒤에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 속을 뻥 뚫어주었다.
물론 곤두박질치던 당시에는 비참했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밑바닥에 드러누웠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이라는 게 또 있었다. 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지금 이곳이 바닥인데 더 떨어질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오묘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내던지고 이혼을 선언한 뒤, 보호소 낯선 곳에서 아기 등짝을 어루만지며 웃음이 났던 것도 그런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아기가 내 옆에 있고 내 사지육신은 멀쩡하니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여기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썩 괜찮았다.
독일어와 무대공포증
독일어를 거의 할 수 없었던 나는 3개월 만에 웬만큼 기본적은 의사소통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눈만 뜨면 매일 같이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독일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언어가 늘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독일어는 그 후로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늘었으며, 독일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어낸 것들은 내 안의 자산으로 조금씩 축적되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과 독일 사회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골치였던 ‘무대공포증’이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 때 나름 많은 노력을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조별과제나 발표수업은 언제나 고문과 같았다. 남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독일로 넘어와 대학이나 직장생활을 알아보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더 이상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아기나 키우며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매일 같이 비참한 현실을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브리핑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했다. 그것도 독일어로.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초반에 관공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은 슬픈 마음보다 무대공포증이 더 컸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며 목소리가 떨려도, 안면근육에 경련이 와도, 말을 더듬어도 독일어를 잘 못해서 또는 슬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말을 한다는 부담감에 눈물이 터져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슬픈 상황에 처한 사람이니까.
남 앞에서 말을 한다는 두려움이 점점 적어지는 나를 보며 무대공포증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 독일어를 연습하면서 그렇게 무대공포증도 함께 극복해나갔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마다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던 무대공포증이 나아지자 나는 사는 것이 한결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그 무대공포증을 이겨낸 경험이 꾸준히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자존감과 외모의 변화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지만, 나의 경우에는 뭔가를 얻기 위해 고통을 감내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버티다가 끝내 얻게 된 것들이 많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마주친 삶의 크고 작은 문턱에서 나름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결국 더 크고 험난한 산을, 그것도 아기와 함께 넘게 되었다. 삶이 참 얄궂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크고 작은 성공, 선택과 책임, 고생과 시행착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한창 힘들었던 당시에는 아무것도 돌아볼 겨를이 없어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나의 자존감을 쌓아 올리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에서 도망 다니며 부모 탓을 하던 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자존감이었다. 삶의 역경을 조금씩 극복해나간다는 것은 스스로 자존감을 쌓아 올려간다는 말과 동일했다.
흥미로운 것은 내면의 자존감이 차오르자 이것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외면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24살 때 처음 만난 시이모님 베아테는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나의 눈빛이 깊어졌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을 찍으면 눈에서 빛이 났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자리에 가도 조금 친해지면 독일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Ausstrahlung(후광, 영향력)이라는 단어다. 너에게서 빛이 난다, 너의 주변이 환해진다는 뜻이다. Sonnenschein(햇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표현도 자주 듣는다. 밝은 기운,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조금씩 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남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사람들과 눈 맞춤을 피하고, 위축되어 땅만 보고 다니던 그전까지는 전혀 없던 일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얻을 수 있는 것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견디다 보면 얻을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존감이 낮았던 사람이라도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인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 일을 헤쳐나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고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다시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의 불안을 낮춰주고 자신감을 상승시킨다. 그렇다 보니 나는 다시 더 높은 확률로 성공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게 되면 그때부터는 인생의 2막이 열린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경험이 사람을 강하게 해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살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지금 눈앞의 현실이 아찔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숨을 한번 내쉬고, 더 떨어질 곳이 없다는 묘한 안정감을 느껴보라고.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쌓아 올린 성취는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의 자산으로 남아 앞으로 어떤 일을 겪더라도 헤쳐나갈 힘으로 발휘될 거라고.
다음 글에서는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