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묘한 눈빛, 불편한 관심 (1/2)

by 뿌리와 날개

여느 때처럼 집 근처 마트 dm에 들어갔다. 누군가 나에게 아주 크고 분명한 소리로 “Hallo!” 하고 인사를 했다. 반사적으로 나도 친절하게 “Hallo”하며 쳐다보니 처음 보는 남자다. 그런데 마트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새로 온 직원인 듯했다.


계산할 때 그 남자와 계산대에서 다시 마주쳤다. 눈빛에 호기심인지, 호감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관심”이 가득해 웃음 띤 얼굴로 경쾌하게 계산을 해줬다.


그러려니 했다. 좀 튀기는 하지만, 성격이 유독 친절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얼마 뒤 다시 그 마트를 찾았다. 한창 필요한 물건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큰 소리로 “Hallo”하고 인사했다. 돌아보니 그때 그 남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나도 “Hallo”하고 인사를 했다.


그 남자는 지난번처럼 굉장히 상냥했지만 나는 뭔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이 나에게만 유독 그러는 건지 원래 저렇게 친절한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가 예민한가 싶기도 했다.


샴푸, 칫솔 같은 생필품을 비롯해 기저귀, 휴지, 각종 세정제, 화장용품 및 건강보조제, 자잘한 데코레이션 용품 등을 파는 dm. 주로 위생과 관련한 생필품을 파는 마트의 특성상 자주 가지는 않아도 2주에 한번 정도는 반드시 들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지극히 사적인 용품들을 산다. 나이대나 건강상태와 관련한 건강보조제, 기저귀, 임신테스트기, 콘돔, 생리대, 데오도란트 등등…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그 경쾌한 Hallo를 시작으로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관심을 느낀 순간부터 그 마트에 들어가는 일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들어가려다 그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 남자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나 딱히 이렇다 할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분명 그 남자가 안 보여서 들어갔고, 그 남자가 없는 곳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그 남자가 나를 일부러 찾아 아는 척을 한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친절하고 상냥하며, 어떤 불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런 관심들이 나는 불편했다. 혹시, 내가 싱글인 줄 알고 나에게 플러팅을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나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 관심이 덜해질까 싶어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그곳에 들려 장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개의치 않고 나에게 친절했으며 아이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상냥할 뿐인데 내가 정말 예민한 걸까? 그런데 나는 왜 그 남자가 자꾸 크리피하게 느껴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그런 날이었다.


등굣길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로 갔는데 그가 있었다. 우산이 없어 바지며 머리카락은 비에 젖었고, 아침이라 대충 머리 질끈 묶고 안경에, 잠바만 걸치고 나온 상태였다.


거지 꼴인 게 차라리 잘됐다 싶어 계산을 하는 찰나, 그가 거스름돈을 건네며 감탄해 마지못하는 얼굴로, 정말 그런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Sie sind wunderschön! sehr hübsch!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너무 예쁘세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반사적으로 “Danke!”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는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지며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 남자는 친절하게 웃었다.


마트를 나오고 나서 나는 방금 전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남자는 친절한 칭찬을 한 것인데 왜 나는 생각할수록 그 남자가 소름끼치는 것일까?


그 뒤로 나는 한동안 그 마트에 가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동네 아이 엄마에게 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아, 그 플러티 한 남자? 나도 알아. 이상하더라.”



내가 dm에서 일하는 남자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단박에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역시 평범의 범주를 지나친 것은 분명했다.


그 남자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자 내 느낌에 확신이 들었다.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그 남자가 마트에 오는 여자 손님들에게 추접스러운 것이다.


그 남자는 내가 그 마트에 들어가지 않아도 입구 근처 계산대에 앉아 있다가 내가 지나가면 아는 척을 했다. 나는 그 마트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더 이상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나는 남자 친구에게 그 남자와 있었던 일련의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 친구는 함께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남자 친구와 함께 장을 보고 계산을 하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음부터 나에게 치근덕거리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장을 봤고, 계산대에 선 그 남자는 남자 친구와 허리를 감싸고 서 있는 나에게 여전히 친절하면서도 그러나 딱 거기까지인 아이 콘탁을 하며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


나더러 그렇게 예쁘다더니 내 남자 친구에게 ‘여자 친구가 참 예쁘시네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분명해졌다. 그 남자는 선을 몰라서 못 지킨 것이라거나 원래 지나치게 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만했던 것이다.


그 눈빛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치근덕거리는 사심이 들어간 눈빛과 사심 없는 남자의 친절한 눈빛.


나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친절한 눈빛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반면, 누군가 나를 사심이 들어간 눈빛으로 쳐다보면 마주치는 그 순간 내 오감이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내 머릿 털을 쭈뼛 서게 만들 뿐이다.








어쩌면 그 남자는 그냥 별 뜻 없이 마트에서 예쁘장한 여자들에게 실없이 웃음이나 흘리고 다니는 머저리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남자 친구 앞에서 바로 얌전해지는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과민했던 걸까 싶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그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인데 나는 어느새 그 남자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뭘까, 이건.


그 뒤로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본 일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는 나도 모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남자 친구가 생긴 뒤로 그 남자는 더 이상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 편하게 그 마트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남자가 일을 관둔 지.


아니, 일을 관뒀다고 생각한 지.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남자가 다시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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