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들

by 뿌리와 날개

어느 날, 발코니에 앉아 오늘 저녁에는 무슨 맛있는 걸 해 먹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장 볼 때 깜박한 재료가 떠올랐다.


서둘러 마트에 다녀오려고 일어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꾸무럭꾸무럭 거리는 게 곧 비가 올 것 같이 생긴 게 아닌가.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가 아직 발코니에 그대로 있었다.


걷어 놓고 갈까, 일단 널어둔 채로 다녀와서 상황을 볼까, 잠깐 고민하다가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부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일방적으로 말하고 가면 놀다가 잊어버릴 것 같아 비가 오면 빨래를 걷을 생각을 할 수 있는 녀석인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봤다.



“엄마가 지금 잠깐 장 보러 갔다 올 건 데 따라갈래, 집에 있을래?”


“집에 있을래.”


“그럼 만약에 엄마가 밖에 나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


“음…….”



아이는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엄마가 집에 올 때 비를 맞을까 봐 걱정이 될 것 같아.”



엄마가 하는 일에 항상 불만이 많은 녀석이라 내 걱정을 한다고 해서 뜻밖이었다.

빨리 장을 보고 저녁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득했던 나는, 한편으로는 ‘빨래를 걷어야 돼.’ 라거나 최소한 ‘창문을 닫아야 돼.’ 정도는 되는 대답을 기대했다가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다.


빨래를 맡기기에는 아직 어린가? 싶었다. 그래도 아이가 두 번째로는 스스로 빨래를 걷어야겠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엄마가 없을 때 비가 오면 집에 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이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더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 우산을 가지고 엄마를 마중 가야지. 엄마가 비 안 맞게.”



그때까지 빨래를 어떻게 하지, 비가 오기 전에 장을 볼 수 있을까, 장 보고 밥 해 먹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늦어질까 등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빨래가 젖을까 봐, 시간이 늦어질까 봐 따위의 걱정으로 급급해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내가 비를 맞을까 봐 걱정이 되어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첫 번째도 엄마, 두 번째도 엄마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날 아이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서야 깨달았다.


비가 오는데 빨래 걷을 생각을 못하는 아들이 어린것일까, 비가 온다고 빨래 걷을 생각밖에 못하는 엄마가 어린것일까.


키우기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 한창 바람 잘 날 없는 시기였다. 곰살맞기보다 통나무같이 뻣뻣한 녀석이라 보드랍게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는 일도 없는 녀석이다. 눈물 닦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휴지를 가져다주는 아이를 끌어안고 모처럼 엄마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엄마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내가 엄마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


머릿속이 언제나 살아갈 궁리로 바빠 함부로 낭만을 찾을 수 없는 엄마의 가슴에 아이가 터뜨린 사랑은 어느 날 그렇게 메마른 엄마의 가슴을 흠뻑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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