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사귄다, 연애 중이다라는 말은 Ich habe eine Beziehung mit ihm/ihr 또는 Wir sind in einer Beziehung이라고 표현한다. 관계, 교제, 연관이라는 뜻의 Beziehung(베찌훙)이라는 명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직역하면 “나는 그와 관계를 갖고 있어”, “우리는 관계에 놓여 있어” 등으로 아주 어색하다. 베찌훙 자체는 중립적인 뜻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대부분 누군가와 사귀는 사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한국에서는 사귄 지 3개월 됐다, 9개월 정도 만나고 헤어졌다, 2주 만에 차였다 같은 말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독일에서 주변 커플들에게 만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면 일단 3,4년 정도는 기본으로 나온다. 5-6년 내지는 7-8년도 흔하다. 만난 지 2주나 3개월 만에 헤어졌다는 것은 여기 독일에서 사귄 게 아니라 썸 타다 끝난 사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왜 그럴까?
세상을 보는 시각이 “우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나”라는 사람에서 시작하는 독일인에게 사귄다, Beziehung을 갖는다는 의미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타인들 중에서 “너”라는 한 사람이 “나”에게 매우 특별하기에 “내”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 들겠다는 선언이자, 앞으로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나”의 희생 또한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언을 일년에도 서너번씩 하지는 않을테니까.
또한 10대 시절부터 섹스를 포함한 이성교제가 허용되는 분위기인 데다, 굳이 사귀지 않아도 연인에 버금가는 관계 및 자유로운 성을 즐길 수 있는 문화이다 보니 오히려 단 한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의 “사귐”에 더욱 부담을 느끼는 한편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잘 비교해놓은 글이 있다. 참고하시길.
https://brunch.co.kr/@frechdachs/144
그래서 일단 독일 사람들이 베찌훙을 갖게 되면, 그 연애는 다음 단계인 6단계 진입의 갈등을 겪기 전까지는 비교적 순탄하게 간다고 보면 된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찼다는 가정 하에 한 2년 정도 만나면 한국에서는 슬슬 결혼을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2년 정도 만나면 동거를 고려한다. 그런데 동거의 의미가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서의 동거는 부자연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며, 쾌락은 탐닉하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을 때 선택하는 어리석은 결정이자 특히 여성에게 타격이 크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설사 동거를 하더라도 결혼을 전제로 같이 사는 거라는 말을 꼭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에서 동거는 매우 자연스럽고,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일이며, 알콩달콩 연애의 단맛만 즐기던 “두 사람”이 드디어 소중한 개인의 영역을 서로에게 오픈하고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기로 결정했을 때 선택하는 무게감 있는 결정이다. 동거가 여성에게 타격을 주지도 않는다. 듣다 보니 어떤가? 마치 한국의 “결혼”에 관한 묘사를 듣는 것 같지 않는가?
그렇다. 독일에서의 동거문화는 한국에서 말하는 모텔비 절약 차원의 가성비 연애보다는 개인의 감정이 우선시 되는 자유연애의 영역에서 법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사실혼으로 넘어가는 것에 가깝다. 동거하는 사이에서는 서로의 생계를 서로가 1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법적인 의무도 발생하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도 아무런 사회적, 법적 차별 없이 혼인관계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교제가 깊어지면 보통 관계의 진전을 원하는 쪽에서 조금씩 동거를 희망한다. 둘 다 원하면 좋으련만, 둘 중 하나라도 탐탁지 않아하면 이때 의견 충돌이 생기기 쉽다. 왜냐하면, 같이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거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데 굳이 나의 자유를 내어주고 대신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비교적 비가역적인 선택을 하고 싶지 않은 쪽에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거를 하게 되면 보통 여성 쪽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아이도 원하고, 결혼도 원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 첫 발판이 되는 동거에 있어서 여성은 원하면서도 남성에게 대놓고 요구할 수 없는 입장이고, 남성 쪽에서는 조심스러워하며 미루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독일인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개인적인 공간을 갖게 되며, 아르바이트 정도 만으로도 월세 충당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인과 섹스를 즐기는데 돈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개입이 거의 없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원하면 언제든 여행도 함께 갈 수 있고, 각자의 집에서 이틀, 삼일도 머무르며 밥도 해 먹고, 양치도 같이 하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뜨는 행복한 연애를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연인이 다시 집에 돌아가면, 다시 나만의 공간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굳이 같이 살며 찌그락빠그락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 이유로는, 동거로 인한 사회적인 타격이 남녀 모두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동거의 경험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거나, 나중에 다른 이성을 만나거나 하는데 있어서 하등 걸림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이렇다 보니 독일에서는 남성이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내게 되면, 여성이 연인으로부터 깊은 애정과 감동을 느낀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독일의 남성들은 연애를 할 때 여자 친구로 인해 자신의 자유에 제약이 생기거나 억압당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수많은 독일의 데이트 코칭 매뉴얼을 봐도 여성에게 하는 조언들은 하나같이 그렇다. 남자를 구속하려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달아나버린다! 그렇기에 독일 남성이 동거를 원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자유를 반납하고 제약을 허용할 만큼 연인을 사랑하고, 더 깊은 관계로의 발전을 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 같으며 독일 여성은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남성이 알아서 그런 제안을 할 때까지 침착하게 인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동거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상호 간 이해관계의 충돌도 상당하기 때문에 조율 과정도 꽤나 까다롭다. 누가 본인 집을 처분하고 누구의 집으로 들어갈지, 새로 얻으면 누구네 동네에 새로 얻을지를 두고도 “나”라는 자아가 강한 독일의 두 남녀는 서로 양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25km 떨어진 거리에 살면서 이 문제로 사귄 지 5년이 넘었는데도 동거를 유보 중인 커플도 있다.
어쨌든 동거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 두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정말 부부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다. 두 사람은 서명만 하지 않았을 뿐 가족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세금 문제만 빼면 결혼한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것을 비슷하게 누릴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아기도 여러 명 낳고, 집도 함께 구입하고, 가족끼리 휴가도 가고 행복하게 잘 산다. 결혼만 안 했을 뿐이다.
독일인들에게 결혼은 그래서, 삶의 이벤트가 아닌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전문가의 화장을 받아 스튜디오에서 모델 뺨치는 사진을 찍으며 일생에 한번뿐인 아름다운 행사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그동안 뿌린 각종 경조사비도 회수하는, 그런 것이 결혼이 아니다. 이들에게 결혼은 함께 하는 생활이자 함께 하는 삶이고, 결혼보다 중요한 것이 두 사람의 마음이며,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한다면 그들의 굳건한 사랑은 혼인계약서를 통해 강제되는 법적인 의무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지속하는데 더 큰 힘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법이 도덕의 최소한의 영역이며 가장 이상적인 도덕의 구현이란 법의 강제 없이도 모든 이가 선을 실천하는 것이듯,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사랑의 최소한의 영역이며 결혼이라는 강제성을 띤 계약 없이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로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더 사랑의 본질에 가깝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방식인 결혼을 통해 다시 한번 관계의 결속을 다지는 독일인들도 여전히 많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남성이 여성 몰래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여성은 감동하여 목이 메고, 예스라고 승낙을 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환호성을 지른다. 서양의 문화를 접하기 전에는 이게 왜 이렇게까지 감동적이고 큰 일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허락이나 상견례 없이, 당사자끼리 청혼과 승낙을 해놓고 부모님에게 통보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일단 결혼 날짜를 다잡아 놓은 뒤에 형식적인 프로포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전혀 아니다. 프로포즈란, 그녀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감동할 만한 방식으로, 그녀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평생동안 가장 소원해왔을 가장 아름다운 상상, 한 남자의 신부가 되는 그 상상을 실현시켜줄 남자가 감히 내가 되어도 되겠냐는 남자의 로맨틱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여성인권이 높은 독일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바라는 것이 없다 보니 스스로도 아쉬울 것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연애를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당연히 더 깊은 관계, 더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가임기에 제한이 있는 여성 쪽에서 그 갈망이 더 커진다. 보통 서로 사랑한다면 비슷한 시기에 남자 역시 두 사람의 관계에 만족을 넘어 결혼까지 이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남자는 여자를 잘 지켜보면서 그녀도 나와의 결혼을 원하는지, 그렇다면 언제가 가장 완벽한 프로포즈의 순간일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허락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가장 완벽한 프로포즈의 형식이 과연 어떤 것인지 등을 고민하며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내면, 그녀가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반지를 꺼내고 묻는다.
Willst du mich heiraten?
나랑 결혼해 줄래?
이 순간만큼은 그 여성 인권이 높다는 독일에서도 페미니즘이니 남성성 과시니 하는 따위의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남자는 멋진 기사가 되어 평생토록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여자는 살포시 오른손을 내밀어 남자가 끼워주는 반지를 받는 수줍은 공주님이 된다.
평소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분위기 등등 모든 것이 그녀 하나만을 위해 준비된다. 여행을 좋아하는 커플은 가장 즐거웠던 여행지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커플은 그들과 함께, 강아지를 사랑하는 커플은 강아지와 함께 소풍을 갔다가, 그리고 자연스럽고 사적인 것을 좋아하는 커플이라면 어느 일요일 아침 눈부신 햇살에 그녀가 잠에서 깰 때 남자는 가만히 반지를 끼워주며 다정한 키스를 할 것이다.
커플마다 사연이 다르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프로포즈를 하느냐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의미가 담겨있고,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성사된다는 것은 남자가 그만큼 자신의 연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프로포즈는 더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