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독일의 연애를 알려주마! 제1편

by 뿌리와 날개

보통의 독일 사람들이 평범하게 연애를 시작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서 적어볼까 한다. 독일인들의 연애 순서는 보통 이러하다.


1. 마음에 드는 이성과 호감을 주고받는다.

2.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밖에서 데이트도 하고, 대화도 하고, 섹스도 한다.

3. 밀고 당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이지 않으며, 어느 순간 주 1-2회 정도 빈도의 만남이 규칙적으로 지속된다.

4. 보통 2-3개월 안에 자연스럽게 썸에서 연인으로 넘어가거나, 그렇지 않다면 공식적인 의사표현을 거쳐 연인이 되거나 헤어진다.

5. 사랑한다는 말은 보통 사귀고 난 뒤 굉장히 조심스럽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첫 물꼬를 튼다. 한번 시작된 연애는 적어도 1-3년, 길게는 7-8년도 흔하게 간다.

6. 사귄 지 2년 정도 되면 동거를 고려하고 실행하거나 헤어진다.

7. 그 상태로 서로 큰 불만이 없다면 지금까지 살던 대로 10년이고, 20년이고 자연스럽게 쭉 함께 산다.

8. 둘 중 적어도 하나가 관계의 변화를 원하면,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 결혼 없이 아기를 갖거나, 아기를 낳고 결혼을 하거나, 결혼은 하되 아기는 안 낳는 등 다양한 옵션을 갖는다.








먼저 1단계를 보자. 독일인들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느리다. 아직도 집에 들어갈 때 열쇠 꾸러미로 문을 따고, 우표 붙인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풍부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낯선 만남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사이, 적어도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지켜보고 서로 간의 인간성이 검증된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서 서서히 감정을 쌓기 때문에 좋아진 상대가 현재 연애 중인 경우 내색 안 하고 몇 년을 곁에서 지켜보다가 헤어지고 나면 그때 고백하고 만남을 갖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때로는 전 연인의 친구나, 친구의 전 연인, 각자 연인이 있던 직장 동료가 훗날 연인이 되기도 하는데, 도의적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성인 남녀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판단하에 살아가는 것은 여기 독일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한 사랑이란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 둘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면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낯선 사이인 경우 보통 여성이 눈빛과 웃음으로 남성에게 호감을 표시하면, 이를 알아챈 남성이 다가간다. 여성의 암묵적 동의 없는 대시는 희롱이나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시기, 여성들은 간접적이고도 적극적이며 반면 남성들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2단계는 소위 말하는 썸 타는 시기이다. 전편에서도 말했듯 독일에서 섹스는 썸의 중요한 요소이다. 공식적으로 싱글인 상태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누구와, 몇 명과 어떤 식으로 썸을 타든 누구도 터치하지 않고, 또 터치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상태를 정리하고 한 명에게 안착하는 데 있어서 섹스의 질은 자주 결정적인 요소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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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적인 정보나 공간을 오픈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 시기에는 상대의 집에 가는 것도, 상대를 내 집에 초대하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상대로부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이를 테면, 상대는 아직 진지해지고 싶지 않은데 내가 괜히 집으로 불러서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한다거나, 섹스를 유도하거나 또는 섹스에 응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조심한다는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데 호감을 갖고 탐색하는 사이에 서로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정서적 친밀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섹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도 하다. 섹스를 원하는 사람은 상대도 정말 그런 뜻으로 초대를 하거나 초대에 응한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아직 원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섹스가 썸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섹스에 유보적인 입장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두 사람 모두 마음이 맞다면 3단계 진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보통 이 정도의 만남이 규칙적으로 지속되면 두 사람 모두 슬슬 서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섣부르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보통 이 단계에서 더 욕심을 내 4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썸이 깨지기 가장 쉬우며, 또 그랬을 때 아쉬움도 많이 남기 때문이다. 3단계로의 진입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난이도가 높고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도대체 무슨 사이야?


둘 중 한 명이 조금씩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겠지만 상대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데이트하는 사람이 나뿐인지, 아니면 나 이외에 또 누군가와 썸을 타고 있는지,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과는 어디까지 진행 중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치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남녀 모두 내가 이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원했을 때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도망가지는 않을까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썸이 1대 1이라고 생각하거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보는 것 같은데 독일에서는 1대 1, 1대 다, 다대 1, 다대 다 등등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상대에게 그것을 고지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래서 사귀지 않는 사이에서는 특히나 성병 예방 차원에서 남녀 모두 콘돔을 꼭꼭 챙긴다.) 상대방이 점점 좋아지면 어느 순간 독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내 상대가 나 이외에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할 때, 또는 나 역시도 다른 누군가에게 흥미가 사라지고 이 사람과만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질 때, 이때 4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독일의 남녀 사이에 이러한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남자/여자와 섹스하는 사이라고 해서 이 남자/여자가 반드시 나 하나와만 섹스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남자/여자와 섹스했다고 해서, 내가 이 남자/여자와 앞으로도 당연히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인 개체이며, 이러한 개념이 뼛속까지 박힌 독일인들에게는 연애에 있어서도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귀는 사이가 아닌 이상, 나는 상대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없다. 이 룰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남녀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귀지 않는 사이에 섹스를 했다는 것이 남성에게는 이득이고, 여성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없다. 섹스의 유무를 빌미로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설 수 있다거나, 여성이 피해자 위치로 간다는 발상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독일인과 썸을 타고 있거나, 연애 중인 한국인들이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멋진 상대를 더 이상 공공재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다, 독점 계약을 맺고 싶다 싶어지면 4단계를 살포시 지나 5단계로 넘어간다. 가만히 보면 독일도, 많은 남자들이 이 단계까지 여유롭게 썸을 즐기다가 여자가 더 깊은 관계를 원하면 썸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 사귀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할 거 다 하는 나라이다 보니 굳이 한 여자에게 묶여 충성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거나, 멋진 여자가 아니라면 굳이 애쓰지 않고 이런 가벼운 만남만 지속, 반복하며 20-30대를 보내는 남자들도 많다.


여자들 역시 남자가 자진해서 깊은 관계로 넘어가기 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사이에 사귀자는 말을 섣불리 꺼내면 귀찮아진 남자는 썸을 끝내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리기 때문에 좀 아쉽고 불만이 있어도 애써 쿨한 척, 남자가 진지한 단계로 넘어가길 원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정 힘들면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다. 서로 아쉬울 게 없다.


두 사람이 썸을 끝내고 자연스럽게 연인의 관계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는 예로는,


- 상대방에게 가족이나 친구를 소개한다.

- 상대방이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나를 소개하고 싶어 할 때 동의하고 함께 참석한다.

-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매주 주말 저녁을 함께 보낸다.

- 우연히 누군가를 만났을 때 여자 친구,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다.

- 특별한 날을 함께 보낸다. (생일, 가족행사, 여행, 휴가 등등….)

-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대표적인 것은 이렇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데이트하며 꾸준히 잠자리도 갖는데, 길게 잡아 세 달 정도 지나도 이런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잘 맞는 섹스파트너로 남아 계속 재미만을 추구할지, 관계의 발전을 촉구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본인이 원하는 바와 현재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발전을 원하는 쪽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예를 들자면,


- 우리 상당히 잘 맞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이제는 너와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는데 너는 어때?

- 나는 너 외에 만나는 사람이 없는데 너는 어때?

- 이번 주말에 내 친한 친구 생일파티가 있는데 같이 갈래?

- 주말에 가족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갈래?


이 단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나와 남자 친구의 4단계 진입과정을 그린 아래의 글이 있다. 독일 남자와 어떻게 썸을 끝내고 연인이 되었는지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frechdachs/159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기 전이라면 사랑한다는 말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랑한다는 말로 사귀는 사이가 되고, 그 이후에 잠자리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보니 서로 잠자리도 한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여기 독일에서는, 처음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수 백 번의 섹스보다 훨씬 큰 무게를 지닌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다음부터는 숨 쉬듯 내뱉는 것이 사랑한다는 말이지만, 그 말을 처음 내뱉기까지는 두 사람 모두 정말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과 자기 확신의 검증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내지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서로의 감정의 깊이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함부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가는 관계를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고, 가벼운 사람,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왜 독일에서는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따위의 말 같잖은 이유로 이혼을 하는지와도 연결이 된다.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바로,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남녀 사이의 사랑은 한국에서 말하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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