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내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할애한다.
나를 돋보이게 해 줄 옷을 사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거나 오랜 시간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진다.
내가 가진 본래 기질보다 더 상냥해지기도 하고, 더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하며, 더욱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결점을 숨기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그러다가 보이기 싫은 모습을 들키기라도 할라치면 심장이 조마조마하다.
이런 내 모습을 그 사람도 정말 사랑해줄까?
지금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나를 아주 근사하고 특별한 존재로 보아줄 테지만, 그 콩깍지가 벗겨진다고 해도 그럴 수 있을까?
사실은 내가 아주 하찮은 인간이라는 것을,
그대가 짐작했던 것보다 사실 나는 훨씬 더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때가 온다면 과연 그때도 그대는 나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하다 보면 저마다 문득 작아지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생김새, 나의 체형, 나의 건강상태, 나의 나이….
나의 가정환경, 나의 교육 수준, 나의 현재 주거상태, 나의 재정상황….
내가 가진 능력들과 그에 따라올 미래….
나의 꿈과 내 현실의 괴리, 어른이 된 지 한참인데도 아직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득함….
그리고 무엇보다, 외적으로 무엇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으면 내면이라도 좀 그럴듯하게 여물어줘야 하건만,
여전히 나는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에 노여워하고, 슬퍼한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며 갈팡질팡한다.
소심하고, 불안해하며, 원망하고, 회피한다.
때로는 너무나 찌질하고, 너무나 치사하다.
이때쯤이면 의문이 든다.
너는 왜 나를 사랑하는가?
도대체, 왜 이런, 나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이것은 굉장히 두렵고 무시무시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받는 경험은 오직, 내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냈을 때에만 발생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더 자주, 더 많이 상대에게 보여줄수록 상대방 역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내 모습이 나에게 거슬리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굳이 가리지 않아도, 굳이 숨기지 않아도,
얼마나 찌질하게 느껴지든, 얼마나 부족하고 보잘것 없이 느껴지든,
그냥 있는 내 모습 그대로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생각.
그래서 나 자신을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오픈해도 스스로 크게 불편하거나 거슬리지 않는 것.
결국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으려면 먼저 내가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를 덜 거슬려하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상대가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보는지, 나를 어떤 이유로 사랑하는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진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
그가 갖거나 또는 가지지 못한 외적인 것들, 그가 가진 넘치는 것들이나 부족한 것들을 벗어나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역시 나처럼 미성숙하고 결점이 많은 그의 내면을, 때로는 무례하고 때로는 못되게 구는, 다투고 화해하지만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는 결코 완벽하지 않은 나의 연인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깨닫는다.
그가 나에게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나에게도 역시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내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그 기회를 내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나처럼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못마땅해하며 받아들여온 자기 자신을 나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의 내면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상대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아, 그렇다면 나는 상대에게 좀 더 너그러워져도 되는구나.
그는 이미 자신을 믿고 있고, 또 나를 굳게 믿고 있으니.
그는 그 자체로 이미 사랑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 역시 그러하리라.
사랑을 나누려면 우리는 옷을 벗어야 한다.
피부가 어떻든, 몸매가 어떻든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발가벗어야 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서로의 알몸을 바라보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의 신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여쁘게 보아주고 어루만지는 것.
그리고 몸과 몸이 맞닿아 절정에 이르면 환희를 느끼듯.
어쩌면 섹스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철학적인 물음에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메커니즘이 고안된 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감싸고 있던 내면의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어가다 결국 서로의 내면의 민낯에 닿는 것.
결코 완벽하지도 않고, 아름답기만 하지도 않은 그 내면의 민낯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어여쁘게 보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
그렇게 서로의 진심에 맞닿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