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모든 것의 상태를 바꾸어놓는다.
몇 번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사이에 어느덧 부풀었던 것은 숨이 죽었고, 뜨거웠던 것은 한 김 식었으며, 뾰족했던 것은 무뎌져 있었다.
그와의 헤어짐이 타당한 이유를 나열하며 이별의 당위성을 모아가던 나는 마침내 중대한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흉측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왜 이렇게 유해한 사람과의 만남을 아이와 함께 지속해왔던 것일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어딘가 오류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 오류란, 대부분의 시간을 좋은 사람으로, 나와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라는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왕창 쏟아 희석시켜 버린 것이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여겼던 내 사고패턴에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언제 또 나를 상처 줄지 모르니 차라리 지금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파괴적 결론의 도출.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모든 사고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것이다.
사랑.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랬다.
나는 어느새 그와 나 사이의 본질, 사랑이라는 요소를 완전히 배재한 채 기계공학적 알고리즘을 짜듯 옳고 그름에 맞춰 Yes, No로 그를 도식화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그에게 끝없이 하고 있던 그 반문이, 이제는 나에게로 돌아왔다.
사랑한다면서 나는 지금, 그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사랑하는 나의 연인은 지금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먼저 말을 꺼낸 건 그였고, 나는 동의했다.
그가 나와 다시 대화를 하고 싶어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에게만 집중해 빠져 있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그의 연락을 기다리기 시작하니 하루가 가는 게 더뎠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어쩌면 그야말로 나와 헤어지고 싶어서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혹시 나와 아이에게 미안해서 말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네가 할 만큼 했다는 거 나도 아니, 미안해하지 말고 떠나가도 된다고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다른 쪽 방향을 향해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그에 대한 배려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어찌 그 뒤에 숨은 못난 나를 내가 모르겠는가.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나는 그 불안과 피로, 수고스러움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올지도 모를 슬픈 결말을 견뎌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유를 빌어 다시금 헤어짐의 당위성을 찾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나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내 사랑은 참으로 나약했다.
그런데, 만약 그도 나와 같다면…?
서로의 마음이 어떤 지 모른 채로 하루하루 더디 가는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나지 않고 있는 시간만큼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그 균열을 넓혀가고 있을 불안,
그리고 종국에는 모든 것을 잠식해 불신만 남기게 될, 이 불안을 그는 어떻게 견디고 있는 것일까?
그는 언제나 말했다.
Ich liebe dich sehr.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해)
나는 운율도 맞출 겸, 농담 반 진심 반 이렇게 대답했다.
Ich liebe dich mehr.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해)
누가 누구를 더 많이 사랑하고 말고 가 어딨냐며 어이없이 웃던 그에게, 이제 그 말이 빈 말이 아니었음을 보여 줄 때가 왔다.
현관문 앞에서, 전화를 끊을 때, 함께 요리를 하며, 사랑을 나누며 그에게 건네 왔던 그 쇠털같이 많았던 작고 하찮은 사랑고백의 순간들이, 별 거 아닌 줄 알았던 사랑한다는 그 말들이,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약해졌던 나의 사랑이 다시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할퀴어놓고 나보다 더 많이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실망한 것보다 그는 나를 상처 준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일 년 넘게 만나오며 감각으로 익힌 그에 관한 모든 데이터가 나에게 알람을 울렸다.
그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을 넘어 이미 오랜 시간 찬비를 맞고 서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그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만약 그가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는 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목적은 단 하나.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한다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 너에게 보여주리라.
혹시라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에 의문이 들거든 의심할 필요 없다는 말을 전하고자 편지를 쓴다.
답장하지 않아도 좋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하든 기다리겠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져라.
나는 언제나 여기 있으니, 나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진다면 언제든 나는 너를 기쁘게 맞으리라.
사랑한다.
내가 보낸 편지가 그의 비 내리는 마음속 작은 우산이 되길 바랬다.
편지를 보내고 사흘 뒤 그에게 연락이 왔다.
당연히 내 편지를 읽고 동굴 속에서 나온 줄 알았건만, 그는 내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통화를 끊고 우편함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내 편지를 읽었다.
그와 나 사이에 통하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결국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는 나의 편지에 깊은 감동을 했고, 나는 나의 개입 없이 그가 스스로 동굴 속에서 나와 나에게 다가와줬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몇 주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다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고, 이 싸움의 불씨가 된 사건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가 나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모두와의 연락과 만남을 단절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추스르고,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용서라….
그렇구나.
그는 나를 용서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용서라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그가 내뱉은 말들로 인해 그에게 상처받고 실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거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져 단단했던 신뢰에 간 금을 회복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날부터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던 그때처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천천히….
이 일로 인해 그는 지켜야 할 선을 배웠다.
나는 용서를 배웠다.
우리는 우리의 연인이 얼마나 비겁하고, 치사하고, 옹졸하고, 나약한 지 또한 동시에 얼마나 용감하고, 관대하고, 너그럽고 그리고 강인한 지를 배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애틋하고, 그립고,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인지를 배웠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애는,
그간 두둥실 공중에 떠 우아하게 유영하던 우리의 연애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갈등을 통해 드디어 살포시 현실 세상의 땅 위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무게감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