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았으면서도 여전히 미래를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계획하는 나는 바보인가!
요즘 한창 이력서를 쓰고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나는 나의 인생을 다시 돌아본다.
글을 써오며 수시로 돌아본 인생 이건만, 구직활동을 하며 돌아보는 내 인생은 또 다르다.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이혼을 하고, 혼자 아기를 키우며 낯선 외국 땅에서 언어를 익히고, 친구를 사귀고, 삶의 터전을 가꿔온 지난 시간들….
내 삶의 절반 가까이 되는 시간들을 학교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그 다채롭고 값진 경험을 아주 집중적으로 배운 시간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회사에 제출할 이력서에서는 맥없이 사라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차라리 경력의 공백으로 두는 것이 야무지게 그 공백을 메꾸는 것보다 낫다니!
슬그머니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때로는 가까스로, 때로는 악착같이, 때로는 정말 숨 가쁘게, 때로는 조금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그렇게 알차게 보낸다고 보내왔는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속의 나는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대학 졸업 이후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사람이 되어 일자리를 알아보고 지원을 하고 있는 나에게, 독일의 어떤 매체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어딘가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차라리 지워버리는 것이 나은 나의 인생이 또 다른 곳에서는 인터뷰를 할 만큼 값진 것이기도 하구나!
내 지난 삶이 문득 한심스러워져 잔뜩 풀이 죽은 나에게 그분이 주시는 작은 미소인가 보다.
기죽지 말라고,
어깨 펴라고.
몇 년 전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해 커다란 도화지에 샤프심으로 콕 찍어놓은 점처럼 보잘것없게 느껴진다고 서러워했을 때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세상 어떤 화려한 그림도 다 그 조그만 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다시 찾아온 초라한 시간들,
나는 그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그래도 그때 같은 백지 위에 보일락 말락 하는 점은 아니지 않으냐고.
적어도 이젠, 밑그림은 어느 정도 그렸으니까.
나이를 먹어 좋은 점은, 삶에는 다 적절한 때가 있기에 기다릴 줄 안다는 것.
그리고 고된 시간을 견뎌본 사람의 좋은 점은, 어지간한 고난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
- 적어도 구직활동을 할 수는 있지 않은가!
- 경력은 없지만 적어도 학력은 있지 않은가!
- 어쨌든 이 나이에 내가 한국에서도 안 해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 및 면접도 독일어로 보러 다니지 않는가!
- 기타 등등
비록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렇게 감사한 것이 많은 나의 삶에 오늘도 나는 감사한다.
나도 이젠,
정말,
밥벌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