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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r 28. 2023

독일 면접관에게 존경한단 말 들어본 사람?

8탄ㅣ면접태도

안녕하세요,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2월에 독일 시할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슬픈 와중에 장례식 참석 여부를 두고 전 시어머니의 충격 발언으로 한동안 또 속이 시끌시끌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어영부영 2월이 지나고 있는 사이에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받아보니까 웬 중년 남자 목소리인데, 어디 어디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제가 4개월쯤 전에 이력서를 보냈던 어떤 이민자 관련 계열 단체인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이시냐고 했더니, 지난번에 보내준 이력서는 잘 받았는데 우리 팀에서는 자리가 없다면서 다른 추천할 만한 자리가 있는데 혹시 생각이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마음은 물론 무슨 일인지 듣지도 않고 오케이를 하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무슨 자리냐고 일단 물었죠. 그랬더니 정식 자리는 아니고 시에서 일시적으로 하는 어떤 프로젝트인데 Zielgruppe(대상)이 노인 분들이라는 거예요.


주 30시간 근무라는 것까지 대략적인 몇 마디만 듣고서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죠. 그러고 나서 이메일을 받아보니 채용요강을 보내줬더라고요.


근무기간은 올 연말까지고, 이민 와서 독일땅에 뿌리를 내린 외국인 노인분들이 노년에 적적하지 않게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일인 거예요.


주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요양 같은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상담도 해드리고, 그분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재미있어할 만한 프로그램도 짜고, 다른 도시들이랑 연합해서 워크숍도 하고, 그 밖에도 어린이, 가족, 난민이나 다문화 같이 하여간 이런 계열 쪽이랑 합동해서 뭔가를 막 하는 그런 일이었어요.


그런데 채용공고를 읽는 순간, 어? 이거 내 일인데? 싶은 거예요. 특히 거기에 자기들이 원하는 인재상과 요구하는 능력이 있을 거 아니에요.


일단 Interkulturelle Kommunikationskompetenz und Teamfähigkeit래요. 이게 뭐냐면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소통능력이 있는지, 또 팀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하고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거죠. 이건 당연히 오케이.


Mehrsprachigkeit (Deutsch und weitere Sprachen). 이건 뭐 독일에서 저는 4개 국어 하는 사람이니까.


Kreative und flexible Arbeitsweise mit hoher Umsetzungsstärke bei der Entwicklung praxisorientierter Lösungen. 이게 뭐냐면 일하는 방식이 창조적이고 유연해야 되는데 그게 실현가능한, 그러니까 현실적인 방안을 가지고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거죠.


한마디로 ‘현실적이면서도 창의력이 있어라’ 하는 거예요.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라는 뭐 그런, 상반된 두 가지 능력을 원하는 거죠. 이것도 뭐 딱 저 아닙니까? 애 키우는 사람은 유연하지 않으면 하루에도 수없이 벌어지는 많은 예측불가한 상황을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전철이 파업을 해서 애가 2학년까지만 탈 수 있었던 스쿨버스를 하루만 끼여 타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8시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7시 50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험 문제 때문에 2학년이 넘어가는 아이들은 원칙적으로 스쿨버스에 탑승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탔다가 사고라도 나게 되면 보험처리가 안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독일은 책임소재에 엄청 민감한 나라예요. 그래서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벌써 이번 달에만 파업이 세 번째라 근처 애엄마한테 더 부탁하기도 미안하고, 그 집 차를 얻어 타려면 적어도 7시 40분에 그 집 앞에 가 있었어야 했기 때문에 이미 시간적으로 늦은 거예요.


그래서 그 촉박한 시간 속에서 차선책으로 학부모 주소록을 찾아서 제일 가까운 데 사는 집에 갑자기 연락을 하고, 원래 안면도 없는 사이인데. 차악으로 제 볼 일을 미루고 자전거로 아이를 데려다주거나 아니면 늦더라도 걸어서 데려다주는 플랜 B, 또는 하루 아이를 결석을 시키는 긴급책을 염두에 두면서 아이한테는 등교준비를 시키고요.


그것도 중간중간 봐가면서 도시락을 싸고, 스쿨버스를 타는 일이 정말로 원칙적으로 금지인지, 아니면 예외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보는 일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이 모든 일은 다 10분 안에 벌어진 거예요. 아침에 갑자기!


창의적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낼 방법을 강구하되 현실적으로 아이가 진짜 학교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하는 이런 상황들! 이것이 엄마의 일상적인 역할이기 때문에 저는 그 누구보다도 이 능력을 어필할 자신이 있습니다. 매일 검증받고 살고 있잖아요.


그다음이 Hohe Schreibkompetenz (Veranstaltungs- und Projektdokumentation). 이건 이제 행사나 프로젝트가 있을 때 프로토콜을 쓴다거나 공문서를 잘 작성할 수 있냐는 거예요. 공문은 어차피 형식이 있기 때문에 그 양식을 배우면 기본적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기본 독일어가 되면.


게다가 주변에 깔린 게 독일 사람들이잖아요? 초반에는 잘 모르면 검토해 달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다 그렇게 배우는 거죠.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그 김에 독일어 실력도 느는 거고.


그 밖에도 뭐 워크숍 참여나 관련 분야 인사들과 인맥을 만드는데 경험이 있어야 하고, 일하는 게 정확하고 명확해야 된대요. 또 이런 시에서 주최하는 프로젝트에 이미 참여한 경험도 있으면 좋고, 다문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봤다면 더 좋고, 관련 분야에서 공부를 했거나 상담을 해본 경험도 우대한다고 하고, 면허가 있는지도 보더라고요.


아니 겨우 연말까지 부릴 거면서 요구하는 게 정말 많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원래 채용공고는 이렇게 거창합니다. 제가 지원을 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나가서 자꾸 부딪혀봐야지 채용공고 한번 딱 읽고 ‘나는 이것도 해당 안되네, 저것도 해당 안되네’ 하면 계속 그냥 집에 있어야 돼요.


무엇보다, 이 채용공고 담당자 이름이 제가 방금 통화한 그분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분이 결정권자라는 거죠, 이 프로젝트에. 제가 이 분 전화를 안 받았더라면 지원을 안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채용공고에 기본 지원자격을 보니까 사회복지나 보건복지계열, 또는 요양 관련 전공을 해야 되는데 저는 중문과니까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런데 지금 결정권자가 직접 전화를 해서 저한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서류는 통화를 했다고 보기로 하고 그냥 가는 거죠. 그래서 얼떨결에 다음날 바로 면접을 보러 갑니다.








저는 지금 면접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너무 갑자기 면접을 보게 되어서 당황스럽기는 해요. 지금 제일 큰 문제가, 제가 면접을 볼 줄 모르고 어제, 그제 마늘이랑 파를 많이 먹었거든요.


아니, 한동안 안 먹었는데. 삼겹살도 1킬로에 너무 저렴하게 Angebot(좋은 가격)으로 나왔길래 한 팩 사다가 맛있게, 그 백종원의 불맛 제육 레시피 있잖아요. 그거 딱 해가지고 정말 맛있게 어제, 그제 먹었는데 삼겹살이 1킬로니까 얼마나 많이 남았겠어요.


아직도 해 먹을 게 많아서 기쁜 마음으로 그러고 있었는데 세상에! 면접을 보러 오라네요. 그래서 지금 보러 가는데 모르겠어요. 독일은 이제 마스크 안 써도 되거든요. 마스크를 쓸까 지금, 입냄새 때문에!!!


양치도 열심히 하고… 아!!! 껌을 안 샀다!! 아이고! (당황해서 혹시 어디 껌 없나 몸을 뒤지느라 흔들리는 앵글) 면접 보러 가는 길에 지금 우체국에 잠깐 들렸거든요. 거기서 껌을 하나 사서 씹는다는 게 깜빡 잊어버렸네요.


모르겠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입냄새가 별로 안 나는데, 안나는 거 같은데 또 모르죠. 아니 뭐 근데 코 앞에서 면접 볼 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뭐 한 이렇게 1,2미터 떨어져서 볼 텐데… 날까, 냄새가 거기까지?


마늘, 파 안 먹고 진짜 오래, 몇 달을 안 먹었는데. 올해 들어서 거의 처음 먹은 거 같거든요, 마늘을 그렇게 많이? 그런데 참 공교롭죠? 딱 그렇게 먹고 나니까 그냥 면접을 보러 오라고.


사실 정신이 없기도 해요, 지금. 가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취직이 안 돼도 걱정이지만 돼도 걱정입니다, 저는. 제가 면접을 잘 보고 올까요? 여러분들은 어떨 거 같으세요?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는 말은 사실,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돼도 좋고, 안 돼도 좋다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가려고 합니다.








면접 보러 가는 길의 영상을 한 번 붙여봤어요. 새로운 시도죠? 면접에 도착하니까 저를 추천했던 그분이 급하게 베를린 출장을 가셨대요. 그래서 왠 60-70대 독일 여성분이 저를 맞아주시는데, 곧 면접 볼 담당자가 한 명 더 올 거라면서 말씀을 시작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먼저 오신 그 독일분이 제 이력서를 그제야 천천히 읽어보시는 걸 보고 아차 싶은 거예요. ‘내 이력서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이 그분의 대타로 갑자기 내 면접을 보는구나’ 싶으니까 자신감이 확 떨어지더라고요.


다행스러웠던 게 그 두 번째 면접관도 갑자기 대타로 면접을 보게 되는 바람에 스케줄이 꼬여서 한 20분 지각을 하게 됐고, 이 낯선 상황에서 저 역시도 예기치 못하게 적응할 시간을 벌게 된 거죠. 그러면서 그 독일 분하고 면접 이전에 대화를 길게 나누게 된 거예요.


그분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시니까 제가 지원한 자리에 대한 설명을 예정에 없이 막 길게 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면접 보기 전에. 이게 독일 전역에서 수많은 시들이 이 프로젝트 예산을 따려고 포트폴리오를 내 가지고 공모전처럼 서로 경쟁을 한 거고, 그중에서 한 프로젝트를 우리 시가 따낸 거래요.


그래서 그 예산으로 진행을 하는 거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다른 도시들이랑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또 다음 예산을 위해서 그 결과를 보고하고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좀 깜짝 놀랐죠. 아니, 이런 막중한 자리에 나를 왜?


그 와중에 두 번째 면접관이 도착을 했고, 제 또래 30대 러시아 여성분이시더라고요. 물론 국적은 독일이겠죠. 그런데 러시아 악센트가 있었고, 이름도 러시아 이름이었어요. 제가 통화했던 채용담당자는 튀르키예 분이셨거든요.


제가 일을 할 만한 곳이라고 판단하고 지원했던 당시의 기관들이 전부 다문화나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이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겠죠.


독일은 이미 이민자들의 역사가 긴 나라예요. 한국에서도 60-70년대에 파독 광부나 파독 간호사들이 많이 넘어갔듯이 러시아나 튀르키예, 동유럽 같은 쪽 이민자들은 이미 독일땅에 자리를 잡은 역사가 길어서 3세대를 넘어 4세대까지도 가고 막 이렇거든요.


사회복지 대상 안에도 성소수자, 이민자, 아동, 여성, 범죄피해자, 난민, 장애인, 노인, 중독자, 노숙자, 실직자 등등 엄청나게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를 하고 그들을 돕는 기관들 역시도 다양한데, 제가 소개를 받은 이 자리는 그런 이민자 및 다문화 가정 안에서도 특히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된 거죠.


면접을 보면서, 내가 왜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미리 읽어간 채용공고 키워드들을 하나씩 들면서 얘기를 했어요. 저는 현재 상태로는 가진 게 자신감이랑 개인적 경험밖에 없잖아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런데 이미 면접장에 앉아있고 질문을 받은 거예요.


그 자리에서 제가 ‘나는 관련 계열 자격증도 없고, 경험도 없고, 그 분야에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하고, 독어도 부족하고, 쓰잘데기 없는 한국어 글쓰기나 하고 앉아있고, 쓸모도 없는 한국어랑 중국어나 할 줄 알고 뭐 이렇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쪼그라들어야 됩니까? 아니죠!


그런데 그전에 가을까지 이력서를 쓰고 다닐 때는 항상 내적으로 위축되어 있었거든요.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동안 해 놓은 것도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직업에 대한 귀천, 집착이나 열망을 내려놓고 난 뒤로 제가 가진 재주들을 좀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딱 그거만 생각을 하고 대답했어요. 제가 가진 무기, 자신감과 개인적인 경험을 그 면접에 다 쏟아붓습니다.


취직을 한 적은 없지만, 관련 분야 인턴쉽을 세 번이나 했고, 평가서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팀 안에서도 일을 잘했고, 자원봉사로 한독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 글을 쓰고 상담을 해온 내용을 말했어요. 또 얼마 전부터 관련 분야로 유튜브까지 영역을 확장했다고도 했고. 그랬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는 거예요.


독일에서는 유튜버라는 게 특별하다고 했잖아요. 유튜브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면접에서 제가 유튜브 얘기를 그렇게 자세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질문을 받으니까 영상제작 기획부터 업로드까지 제가 하는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관련 장비도 보여주고 했죠. 삼각대!


다행히 수익창출도 하고 있으니까 자신감도 더 생기고, 뭘 하든 몇 푼이라도 돈을 번다는 게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데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거 같더라고요, 눈치가. 진지하게 봐주는 거죠, 여기 사람들도. 관심이 엄청 많은 거예요.


아까 봤잖아요. 요구사항에 창의력이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제가 비록 직장생활은 안 해봤지만, 그 대신 아주 독립적으로 일을 하면서 창의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했죠. 이게 또 어필을 하면 강점이란 말이에요.


설명을 들어보니까 어차피 채용이 되면 제 역할이 여기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짜는 일이기 때문에 유튜버로서의 역할과 상당히 흡사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자기들도 워크숍 같은 거를 위해서 영상제작을 자체적으로 하는데 제가 오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래서 제 유튜브에 관심이 컸던가봐요. 그래서 냅다 맡겨만 달라고 했죠.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독일에는 어쩌다 정착하게 됐냐고 하더라고요? 이게 참 고비입니다. 이거는 이런 상황에서 사실 모 아니면 도 거든요. 제가 솔직하게 저의 복잡한 이혼사를 깠을 때 이것이 나에게 득이 될 것이냐, 실이 될 것이냐는 순전히 제가 판단을 해야 되는 몫입니다.


독일에서는 이게 업무랑 상관없이 상당히 사적인 일이기도 한 데다 사람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분명 처참하게 피를 보는 순간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항상 상당히 조심하면서 눈치껏 대응을 하는 편인데, 면접에서 이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걸 그냥 얼버무리고 쿨하게 갈 것이냐, 아니면 구질구질하게 풀더라도 임팩트를 남길 것이냐, 짧은 순간 고민했죠.


앞에서 제 브런치나 유튜브 활동을 설명할 때에도 왜 제가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앞선 개인사는 언급을 전혀 안 했거든요. 원래 이야기할 계획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말하자면 긴 이야기인데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랬더니 담당자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심호흡 한 번 하고 얘기를 시작했죠. 내가 왜 독일에 왔고, 어떻게 남게 됐고, 지금까지 경력을 못 쌓은 대신에 해온 일이 뭔지. 제가 노느라 백수로 지낸 게 아니잖아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모두는 숨만 쉬고 침대에 누워있던 게 아닌 이상 나이를 먹은 만큼 각자 쌓아온 업적이 다들 있어요. 아니, 침대에 누워서 숨만 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 사람에게는 그거 자체가 업적이었을 걸요? 안 죽고 살아낸 업적 같은 거? 뭐 그렇게 산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슨 일론 머스크같이 전기차를 만들고 화성에 가거나 스티브 잡스같이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뒤집어야만 업적이 업적인 건 아니라는 거죠. 집에서 애 코 닦아주고, 사랑한다고 안아주고, 남편 뒤치다꺼리 해주고, 가정이 굴러가게 집안일을 하고 이런 것도 다 업적이에요.


애가 뭐 혼자 큽니까? 남편이 지 손으로 밥 차려 먹고 살림하고 애 유치원 데려다주고 출근합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여러분 다 그거 하느라 직장 못 다닌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부터 먼저 그걸 업적으로 대우해 줘야 돼요. 그래야 남들도 그렇게 봐주기 시작한단 말이죠.


적어도 여기 독일사회에서는 그래요.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과정을 담담하게, 하지만 제 삶에 대한 애정과 저만의 철학을 담아서 얘기를 차분하게 했더니 대화 말미에 그러대요. 우리 엄마도 싱글맘으로 우리를 키웠대요. 러시아에서 독일 넘어와서 정말 힘들었는데, 잘 키줘주셨다면서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이제 득실을 알 수 있는 거죠. 이 면접관은 그때까지 인상이, 상당히 프로페셔녈하고 비판적인 자세로 질문들이 굉장히 날카로웠고 또 업무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듣고 그런 사적인 자기 이야기를 했을 때 좀 놀랐어요. 어쨌든 마이너스는 아니겠다 싶더라고요.


면접을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나는 이 일이 정말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잘 해낼 자신도 있다. 그런데 이 일이 안 되더라도 오늘 너무 즐거운 대화였고, 나에게 이런 면접의 기회 자체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진짜 솔직하게 말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 분도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같은 엄마로서 그리고 같은 이민자로서 살아오신 삶에 굉장한 존경을 표한다고, 오늘 대화로 많은 걸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나에게 질문을 하면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토론하고 하던 사람의 눈빛과 표정에서 나를 정말로 존경하는 얼굴이 보이는데, 진심이 느껴지니까 저도 이렇게 마음이 찡한 거예요.


끝나고 보니까 시간이, 세상에 1시간 반이 지나 있는 거예요. 업무에 대한 설명도 물론 엄청 자세하게 들었지만, 질문도 많이 오고 갔고. 게다가 여기 독일은, 면접 보러 왔다고 해서 내가 비굴하게, 그 사람 입 안의 사탕같이 굴 필요도 없고, 그 사람도 내 면접을 본다고 해서 뭐 나를 압박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거나 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물론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동양 문화권 식의 그런 자기를 낮추는 태도는 겸손보다는 자존감이 낮거나 무능하게 해석이 될 확률이 높고요. 동양에서는 좀 건방져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 넘치고 여유 있고 그런 태도가 여기서는 능력 있고, 당당하고, 또 매력적으로 비치기 때문에, 그래서 면접을 진짜 즐기셔도 되거든요?


면접뿐만이 아니라 학부형으로 학교를 가도, 손님으로 식당에 가도, 환자로 병원에 가도, 심지어 이성을 만나서 데이트를 할 때도 그래요. 그래서 면접을 보실 때에는 나와 일할 생각이 있는 좋은 사람이랑 나의 능력이나 가능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한다고 생각을 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면접이 정말 즐거웠고, 그 한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간 느낌이었어요. 남은 이야기는 또 9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ZYWD2SSR9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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