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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r 14. 2023

독일인남편과 내연녀를 위해 아기랑 집을 비워준 사연

독일인과 절친되는 가장 빠른 길

외국에 산지 오래인데 아직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현지인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고민이신가요? 오늘은 독일인 전남편의 내연녀가 온다고 해서 비 오는 밤에 아기를 안고 맨 몸으로 집 나온 이야기, 그래서 독일친구와의 진짜 우정을 나누게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인 남편이 어느 날 우리를 한국으로 보내놓고 두 달 동안 연락을 모두 끊어버린 채 잠수를 탔다고 했었죠. 간간히 시어머니를 통해서 연락이 되면 우리더러 독일로 돌아오지 말라고 종용하는 한편, 그 사이에 자기는 혼자서 이사를 가고 아기와 저의 짐을 다 팔고 버리고 해서 싹 다 정리를 해버렸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남편이 혼자 이사 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우리 물건에 관한 내용은 4개월이 지나서 남편과 헤어진 뒤에야 차차 알게 됩니다. 그래서 독일 공항에 내렸을 때 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때까지 두 번인가 만나서 밥 먹은 게 다였던 한국인 분에게 연락을 해서 사정을 말하고 공짜로 숙소를 제공받습니다.


일단 독일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이메일로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을 하려고 했죠. 제가 싱글맘이 된 사연은 너무나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인 만큼 앞뒤로 에피소드가 정말 스펙터클 합니다. 때문에 여기서 자세한 말은 안 할게요. 언제 한 번 날을 잡고 시리즈로 하던지 해야겠어요. 아직까지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데.


그렇게 독일 땅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분의 도움을 받아서 3일을 얹혀 지내면서 매일 같이 남편에게 이사 간 새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이메일로 애원을 합니다. 그러다가 나흘 째 되는 날 남편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거기서 열흘을 지내면서 모든 상황을 다 알게 되고, 아기랑 집을 나와서 보호소로 들어가게 되죠. 그러면서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 열흘 사이에 매일 같이 일이 있었고, 오늘의 이야기도 그중에 하나예요.








그 열흘 중에 하루는 저녁에 아기랑 잘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내연녀랑 통화를 하더니 저더러 아기랑 나가달라는 거예요. 뜬금없이 한 밤 중에.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이 밤에 내가 아기랑 갈 데가 어딨 냐고 그랬더니, 그 여자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여자한테 아직 제가 아기랑 독일에 들어왔다는 말을 안 했다면서, 네가 여기 있으면 그 여자가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빨리 자리를 비켜달라는 거예요. 제가 남편한테 말을 안 하고 독일에 들어왔다고 했잖아요. 독일 간다 그러면 맨날 못 오게 하니까.


그런데 제가 그 밤에 갈 데가 어딨 습니까. 호텔에 가서 자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가라는데. 그래서 또다시 별로 친하지도 않던 제 첫 독일친구 미햐한테 연락을 합니다. 이미 3일이나 얹혀 지낸 그 한국분 집에 또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진짜 독일어도 잘 못하는데 그 친구한테 연락을 해서 다른 전후 사정은 일체 말할 정신이 없으니까, 우리가 갈 곳이 없다고 우리를 좀 재워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기저귀 가방만 싸서 14개월 된 우리 아들을 안고 그 집을 나옵니다. 나오면서도 혹시라도 그 여자가 우리를 볼까 봐 엘리베이터도 안 타고 계단으로 내려와서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겨가면서 집 아래 공용 주차장 차들 사이에 숨었어요. 하필 그런 날은 또 비가 오겠죠?


6월이면 한국은 후덥지근 하지만 독일은 밤낮으로 아직 냉기가 있어요. 거기다 비까지 오면 더 싸늘하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비가 오는데도 공기가 따뜻하대요. 다행이었죠. 안 그랬으면 아기가 감기 들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아기를 안고 주차장 안으로 차가 들어올 때마다 나를 데리러 온 미햐인지, 아니면 남편이랑 바람난 그 여자 차인지 몰래몰래 살펴보면서… 참… 그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이렇게 들으시면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싶으시겠지만, 왜 저래, 왜 그렇게까지 얌전하게 굴었냐 싶으시겠지만, 그 당시에 저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죠. 이것도 또 언젠가 때가 되면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여기서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남편과 바람난 상대가 남편의 직장 상사였고 5살이 많았어요. 남편은 신입사원, 그 여자는 팀장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주도권이 그 여자에게 있는 상황이었고, 저 역시도 독일에 들어와서 이 모든 걸 알게 된 지 며칠이 안 됐잖아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비참한 심정과는 별개로 그런 상황적인 수모는 좀 견딜만했어요. 토사구팽 고사로 유명한 중국의 한신도 훗날의 대의를 위해서 불량배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갔잖아요? 저도 그렇게 대의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 거죠.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한국에 계시니까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 분노하고 피가 거꾸로 솟으실 수 있겠지만, 저는 어린 아기랑 돈도 없었고, 독일어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독일 땅에 갑자기 야밤에 쫓겨난 거잖아요. 이건 생존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뭐 내 남편이 지금 여자랑 같이 있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네 하는 그런 생각까지 도달할 럭셔리한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나마 연락할 미햐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나를 데리러 와준 미햐가 너무나 고마웠고요. 아기랑 안전한 곳에서 비를 피하게 된 것도 너무다 다행스러웠고요.


그때까지 독일에서 번호를 교환했던 독일 아기엄마들이 세 명이 있었어요. 미햐엘라, 비프케 그리고 야니나. 이 셋은 지금도 여전히 저의 가장 오래된, 또 좋은 친구들이죠. 그런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미햐 말고 다른 친구들하고는 정말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미햐가 그나마 집도 왕래하면서 한 반년 안면을 튼 사이기 때문에 감히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한국에 사시는 여러분 입장이라면 한 반년 조금 알고 지낸 동네 필리핀 여자가 갑자기 애랑 사라져서 두 달 동안 연락이 딱 끊어졌다가 갑자기 다시 전화가 와서는 비가 오는 한밤중에 밖에서 떨고 있으니 하루 재워달라고 한다면… 어떠실 거 같으세요?


이 친구는 그런 상황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바로 차를 끌고 온 거예요. 차에서 내리더니 바로 저랑 아기한테 담요를 덮어주는 거예요. 세상에, 잊고 있었는데 말하다 보니까 생각이 났어요. 맞아… 차에 있던 담요를 꺼내서 부드럽게 저한테 덮어줬어요.


날이 따뜻해도 비를 그래도 10여분 맞았으니까 춥더라고요. 그런데 따뜻했어… 그러고 나서 차를 차고 그 친구 집으로 가는데 어쩜 한 마디를 안 묻더라고요.


이게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일이냐, 남편이랑 어떻게 된 거냐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도 하나도 없이 그냥 조용히, 차분하게 운전을 하고 가는데… 여러분, 때로는 침묵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다정할 수 있다는 거 아세요?


그 차 안에서 제가 느꼈던 안도감. 이 무섭고 낯선, 칠흑같이 새까만 독일 땅에서 차를 끌고 와준 미햐 옆에 앉아있는데… 엄마아빠 옆에 있는 것 같았어요. 전남편이랑 차 없이 살았거든요. 저도 한국에서 차가 없었고. 그니까 언제나 저를 차로 데리러 와준 사람은 엄마나 아빠였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순간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미햐는 또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 많거든요. 그때까지 저는 한국사람의 마인드가 강했기 때문에 언니라고 생각을 했고, 독일에 돌아와 남편이랑 한 집에서 지내면서 며칠 동안 쌓여있던, 그 어마어마했던 긴장감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쭉 내려가면서 그렇게 포근하고 안정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독일 사람들의 속 깊은 면을 경험했어요. 그 이전에 제가 머물렀던 한국분과는 너무나 다른 태도였죠. 한국 사람들은 일단 말이 통하니까 구구절절 다 물어보잖아요. 나름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막 같이 찾아주고, 조언도 해주고,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말하면 제가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 전남편 개새끼 이런 욕을 막 쏟아내주고.


그러면서 저도 같이 막 맺힌 말 풀어내고. 그때까지 계속 한국 사람들과 늘 알아오던 그런 방식으로만 소통을 하다가 독일 사람의 그런 반응을 보니까 너무 낯설었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너무 편안한 거예요. 그 이후에도 저는 그런 식으로 다양한 독일 사람들의 보석 같은 면들을 많이 경험하게 돼요.


그렇게 그 집에 도착했더니 그 집 아이는 잠이 들었고, 그 집 남편이 저한테 따뜻한 차를 끌여다 주더라고요. 이 집은 남편이 더 발랄한데 이 남자도 저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차 갖다 주면서 눈 한 번 마주치더니 제 어깨를 한번 다독여주고는 가는 거예요. 식탁에 앉아서 마당 쪽으로 난 통창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는데…


밖은 새까만 밤이라 아무것도 안 보이죠. 그런데 그 유리로 아기를 안고 있는 제 모습이 비치는 거예요. 안전하고 따뜻한 집 안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서글픔이 밀려오는데… 너무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말도 없이. 그런데 미햐는 정말 아무것도 안 묻더라고요. 그냥 옆에 앉아서 제 등을 쓸어주는 거예요.


그때까지 두 달 동안 제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 일처럼 흥분해서, 아니 자기 일보다 심지어 더 흥분해서 욕을 쏟아내고,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고 그랬는데 아무런 감정 표현을 안 하는 미햐가 너무 어색하고 얼핏 냉정한 듯도 하면서 그런데 군말 없이 나를 데리러 와줬고, 나한테 담요를 덮어줬고, 지금도 내 옆에서 내 등을 쓸어주고 있잖아요.


와…. 그 기분이 진짜 묘했어요. 그렇게 그때부터 저는 진짜 독일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진짜 독일문화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 남편이 자기 필터를 통해서 걸러 보여준 독일 세상이 아니라 도수가 좀 낮기는 해도 온전히 저만의 안경을 통해서 제가 직접 들어가 경험한 독일과 독일 사람들을 말이죠.


괜찮은 독일 사람들의 진면목, 아주 괜찮아요. 차차 소개해드릴게요. 여러분은 벌써 저의 시이모님과 미햐, 두 사람을 아시는 거예요.








그렇게 저는 남편과 남편의 내연녀를 위해서 아기와 야밤에 집 밖으로 쫓겨나는 한 편, 그때까지 데면데면하게만 알고 지냈던 독일인 친구와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진한 우정을 쌓게 됩니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이렇게 서른 넘어서 나이 먹고 가정까지 심지어 꾸린 상태로 외국에 나와 살게 되면 진짜 가깝게 지낼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입장을 바꿔보면 간단하죠. 한국 사시는 여러분이 지금 동네 오가면서 안면만 튼 한국말도 잘 못하는 베트남 여자랑 굳이 절친이 되시겠어요?


그 말도 어설픈 베트남 여자 만나서 남편얘기, 친정이나 시댁얘기, 애 키우며 힘든 얘기, 돈 얘기, 직장 다니는 애환, 잠자리 얘기까지 속속들이 나누면서 또 그 베트남 여자가 하는 속얘기도 똑같이 들어주고, 그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한 우정을 만들어가시겠어요?


그거랑 똑같은 거예요. 외국에서 싱글로 지내면서, 싱글이라는 건 현지인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싱글로 지내면서 학교든, 직장이든 현지인과 어울리면서 만들어간 자기만의 개인생활이 있고, 현지어가 유창한 상태에서도 몇 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쌓아야만 어느 정도의 우정이 지속이 돼요. 우리는 언어도, 생김새도, 문화도 모든 것이 이질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시간의 세례예요.


그런데 둘 다 머리가 굵어져서 가정이 있는 상태로 만나게 되면, 나 돈도 벌어야지, 애도 키워야지, 남편도 챙겨야지, 살림해야지, 내 친정, 시댁 챙겨야지, 그 와중에 나랑 20년 넘게 친하게 지낸 내 친구들도 만나야지,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어요, 동네 사는 베트남 여자한테 모르는 한국어 단어 가르쳐줘 가면서 챙길 여유가.


그러니까 외국 남자랑 결혼해서 그 나라에 정착한 지 10년, 15년이 돼도 그냥 물 위에 기름 뜨듯이 현지인 사람들 틈에 동동 떠서 남편이랑 애만 보고 살 게 되는 거예요. 현지인들과 내가 한국에서 친구를 만나 사귀었었던 그런 수준의 깊은 우정을 나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저는 독일인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깨져서 독일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한 덕에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데 있던 모든 장애물과 벽을 한 번에 뛰어넘고 치트키처럼 독일인 친구들과 흉금 없이 속을 나누는 진짜 찐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언제나 예의와 격식을 차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벽이 있던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뛰어넘어서 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거죠. 그게 제가 독일을, 아니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이유입니다.


돈 주고도 못 살 내 소중한 친구들,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준 내 이웃들. 지금까지 만들어 온 이 모든 관계들은 저였기 때문에, 제가 그런 특수한 상황에 처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남편이 바람나서 만리타국에서 아기랑 버려졌는데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으셨죠? 있어요. 심지어 많아요. 제가 잃어버린 거 이상으로 저는 이혼을 통해서, 그 아팠던 경험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 더 값진 것들을 얻게 됩니다.


그 내용을 담은 게 바로 <움켜쥔 결혼, 그 끈을 놓았을 때>라는 제 책이에요. 댓글창에 링크로 달아놓을 테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바라고요.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의 독일인 친구소개 1탄에 등장했던 미햐와의 우정이 깊어지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영상에서 또 만나요! 안녕!



아래 링크에서 생생한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shoOA4B5i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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