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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03. 2023

Q. 독일인 전남편과 마주친다면? A. 이미…

“뿌리와 날개” 채널 반년 기념 Q&A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 채널 반년 기념, 첫 큐앤에이에 놀러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Herzlich Willkommem!


1) 독일 이름 또는 영어이름?

독일 이름이나 영어 이름 따로 없이 제 본명을 쓰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한테 별로 쉬운 이름 같지는 않아서 까먹으면 언제든지 부담 갖지 말고 다시 물어보라고 하면서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은 제 앞에서 바로 발음연습하고 교정받아서 외워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안 묻더라고요.

신기하죠? 다시 물어보는 사람이 백 명의 한 명 꼴 정도로 있긴 한데 그런 사람들은 결국 저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지나고 보면 거의 다시 볼 일이 없었습니다.

 

2)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질문은 간단하게 주셨지만 사실 영상 한 편으로 찍어도 될 만큼 복잡하고 할 말이 많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영상으로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여기서는 질문 주신 분의 의도에 맞게 사회 통념적인 관점에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독일에 살면서 저녁 6시 이후로는 밖에도 안 나갈 정도의 겁쟁이인 제가 외형적으로 튀는 외국인이자 싱글맘으로 혼자 살아가기에 한국보다 독일이 낫겠다고 판단했을 만큼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부담 없는 수준입니다.


3) 평생 한식만 먹고살기 vs 평생 한식 못 먹기

평생 한식 못 먹기보다 평생 한식 외의 음식은 전혀 못 먹기라고 했다면 조금 고민했을 거 같기도 한데, 이 질문이라면 무조건 한식만 먹고살기입니다. 한식 좋아요!


4) 어떤 휴가를 보내고 오셨나요?

방학 첫 주에는 휴가 끝난 첫 주에 올라갈 영상들을 미리 만들어서 업로드를 마쳤고요. 성금요일부터 부활절 월요일까지는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런저런 부활절 행사를 하고 놀았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지 반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독일에 살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부활절을 챙기거나 그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그런 것들을 즐겨봤습니다.


두 번째 주에는 빈이랑 운동도 하고, 수영장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고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였는데 어릴 때 슈퍼 마리오 게임 좋아하셨던 분들은 꼭 보세요. 진짜 잘 만들었고,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린 시절 추억이 뿜뿜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요한나 아주머니 내외분께서 빈이가 꿈에 그리던 레고기차를 선물해 주셔서 그거도 같이 가지고 놀았고요. 기차가 리모컨으로 작동합니다. 그래도 돈을 좀 더 벌게 되면 다음 부활절 방학 때에는 빈이랑 꼭 여행을 가고 싶네요!


5) 왜 독일대학 졸업은 안 하셨는지?

독일 대학은 총 6학기이고 이론적으로 모든 학기 학점도 제대로 이수하고, 시험도 다 통과했을 때 3년 만에 졸업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혼소송 당시에 그 3년에 맞춰서 전남편에게 생활비를 받도록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그 기한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한 건데요. 외국에서 대학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거 플러스 어린아이까지 혼자 키워가며, 풀타임으로 공부를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첫 한 학기는 막 상황이 안되면 억지로 4살짜리 애 데리고 강의실에 앉아서 90분짜리 강의를 두 개씩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풀타임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아이가 못 견딥니다. 그래서 그 뒤로 남들 한 학기 분량을 저는 두 학기로 나눠서 듣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졸업까지 채워야 될 학기가 이미 계획보다 늘어난 상황에서 코로나가 겹치면서 그나마 간간히 버텨오던 일상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정서발달이었고요. 더 이상 학업을 유지하게 되면 저와 아이의 삶에 득은 없고 실만 남겠다고 판단하면서 관두게 됐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공부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린아이가 건강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모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고요. 부모가 된다는 건 그런 거예요.


6) 언제부터 독일어를 듣고 말할 수 있었는지?

좀 자신 있게 독일어를 한다라… 저는 아기랑 단 둘이 갑자기 집도, 절도 없이 독일땅에서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독어를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매일 같이 할 말을 해야 됐고, 전혀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알아들어야 했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습니다. 관공서 가면 맨날 묻고 답하는 말이 똑같잖아요. “남편이 우리 버렸다, 우리 돈 없다, 돈 줘라.” 그래서 며칠에 걸쳐서 제가 항상 해야 하는 말들을 문법책 보면서 A4 용지에 적어가지고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말을 그때그때 골라서 읽었고요. 그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니까 저절로 외워지더라고요.


거기다 독일 사람들이 대답하면 키워드만 바로바로 핸드폰 사전 찾아서 대충 문맥으로 파악하고 그랬죠. 그런 상황을 딱 3개월 겪고 나니까 남편이랑 같이 사는 3년 동안 거의 독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제가 이제 어지간한 건 다 알아듣고 말하게 됐습니다. 독일 남자랑 사신 지 몇 년 째인데 아직도 독일어를 못해서 혹시 이혼하면 어떻게 살지, 불안하신 분들 지금 많으시죠? 걱정 마세요! 남편 없이 딱 3개월이면 입이고 귀고 다 트입니다.


7) 어떻게 독일어 공부 하셨는지?

독일어로 가장 중요하고 많은 일들을 해결해야 했던 초반 3개월에 저는 당연히 공부를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전에 5년 동안 살랑살랑 공부해 온 A2 수준 가지고 그냥 몸으로 부딪힌 거고요. 그 이후에 반년 정도 지나서 아기를 하루에 두세 시간이라도 어디 맡길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어학원 다녔고, B1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B2, C1 순서대로 시험 준비하고 합격해 가면서 문법과 실제 생존독일어 수준 간의 격차를 메꿨습니다. 그니까 생존을 위해서 입이 먼저 트이고, 그다음에 귀가 트인 뒤에 제대로 된 실력은 뒤따라온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외국어를 공부하시는 킨비님의 심정 잘 압니다. 꾸준히 공부해도 실력이 잘 늘지는 않는 거 같은데 안 하면 또 자꾸 잊어버리잖아요. 정말 억울하죠. 외국어는 보통 계단처럼 실력이 늘어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 늘어있고, 또 한동안 정체되어 있다가 확 늘고 그래요. 실력은 확실히 어학시험 공부할 때 많이 느는 거 같고, 그 뒤에 일상에서 공부한 걸 반복해서 쓰면서 내 것이 되고 유지가 되는 거죠. 독일어 공부하시는 분들, 다들 힘내세요!


8) 독일 사는 엄마 구독자들끼리 알고 지낼 수 있을까?

독일 사는 엄마들끼리 친목도모할 경로는 이미 네이버나 다음 카페 같은 곳에 충분히 있습니다. 저희 채널의 구독자 분들끼리 모일 수 있는 장을 원하신다면 그건 저희 채널의 성장 단계로 봤을 때 아직은 시기상조 같고요. 채널이 더 커지고 구독자분들의 수요가 충분하다면 그때는 만들어 볼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먼저 국제이혼 하신 분들을 위한 소통창구를 좀 열고 싶어요. 제가 8년 동안 여러 분들의 사연을 받고 또 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게 ‘국제이혼 하신 분들이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하는 거였는데, 어떤 식으로 만들 수 있을지 답은 못 찾았거든요. 그런데 유튜브 채널을 열게 되면서 멤버십 서비스라는 기능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유료이다 보니까 아무나 호기심에, 또는 악의를 갖고 들어와서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유료 서비스라는 진입장벽으로 먼저 불필요한 사람들을 걸러낸 뒤에 국제이혼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서로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이 서비스를 열게 되면 제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보다는 국제이혼 하신 분들의 사연을 라디오 디제이처럼 읽어드리는 정도로만 개입을 하고, 그 영상에 딸린 댓글창을 통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고, 그렇게 여러분들끼리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실 수 있도록 돗자리를 펴 드릴 생각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9) 아들과의 대화도 듣고 싶은데….

사실 인터뷰를 계획 중에 있습니다. 엄마랑 둘이 사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어떤지, 또 아빠에 대한 감정은 어떤 지 같이 우리 싱글맘들이 궁금해할 만한 우리 아이들의 속마음 이야기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울지 고민 중입니다. 얘가 카메라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보니까 카메라를 켜고 말하면 많이 의식해서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아이가 자기 내면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 의견을 무시하고 몰카처럼 찍어서 올리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아이와의 대화는 다각도로 연구 중입니다.


10)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다면, 한국 제외 어느 나라에서?

정치외교적인 문제나 뭐 환경문제 같은 걸림돌은 제외하고 실현가능성만 조금 첨가해 대답하자면, 남중국이나 대만,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일단 서양문화보다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고요. 중국어권은 제가 언어가 되기 때문에, 또 중국 남쪽은 날씨가 동남아랑 비슷하기 때문에 야자수도 있고, 코코넛도 있고, 되게 따뜻하거든요. 그래서 선호합니다.


일본은 또 음식이 끝내주잖아요. 제가 해산물 마니아이기도 하고 또 편의점 도시락이나 그 새해에 먹는다는 수십 가지 찬합 음식들 보셨습니까? 정말 탐납니다. 유우키라는 유튜버 아세요? 마츠다 부장이랑? 이 분들꺼 보면서 꼭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간 저는 해산물 풍부하고, 음식 맛있고, 날씨 따뜻한 나라에서 늙어가고 싶어요.


11) 독일어를 가르쳐주는 것에 관한 다양한 제안들

빈이는 이제 그림책이 아니라 어린이 소설을 읽는 수준이기 때문에 시기가 지났습니다. 독일 초등학교의 수업이나 교과서는 한국이랑은 많이 다르고요. 차라리 제 독일 친구들이랑 독일 사람들의 연애나 결혼에 관한 토론 같은 게 제 성격이나 채널의 정체성에도 더 잘 맞을 거 같아요. 슈퍼마켓 물품이름이나 안내 표지판을 한국어로 알려드리는 건 아이디어도 좋고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언제 날 잡아서 브이로그 용으로 한 번 해볼게요.


그런데 이런 독일어는 ‘에밀리 밋 윕실론’ 님이 더 꼼꼼하게 잘 알려주시지 않나요? 그분 독일어 정말 잘하시던데. 그래서 저는 그런 거 해볼까 하다가도 괜히 어설프게 이것저것 하느니, 차라리 남들은 잘 못하고 나만 잘하는 거에 집중하는 게 이 영상의 훨씬 퀄리티가 높을 거 같아서 국제이혼과 싱글맘 이야기에 주력을 하는 겁니다. 우리 채널에 와서는 국제연애, 국제결혼, 국제이혼 이런 이야기 많이 듣고 가세요. 아직 재미있는 주제가 많이 있습니다.


12) 라이브 계획 있으신지?

네. 언젠가는 꼭 할 거예요. 여러분 만나고 싶습니다!


13) 책 출판 계획도 있으신지?

그럼요. 너무너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출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실력을 더 갈고닦아야 할 것 같아서 글을 꾸준히 쓰려고 하는데, 유튜브 하랴, 직장 구하랴, 애 키우랴, 또 저 자신도 돌보느라 힘드네요. 그래도 책 정말 내고 싶습니다. 저는 글쟁이로 살다가 글쟁이로 죽고 싶어요. 이번 생은 아무래도 글 쓰는 거 말고는 제가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글 쓰는 일에 올인을 해보고 싶은데…


강사라서 계속 자기 계발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사생활 파는 에세이만 쓸 수도 없잖아요. 장기적으로 글을 쓰고 싶으면 소설 같은 걸 써야 한다고 보는데, 그래서 제가 습작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셨죠! 소설 첫 문장 댓글들 보니까 여러분도 다들 한 감성, 한 글재주 하시는 거 같던데 신기합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가지고 채널이 굴러간다는 게. 소설 쓴다고 이렇게 말을 뱉어놔야 스스로 더 분발할 거 같아서 일단 질러 놓은 거고요.


누구 출판사에 아시는 분 있으시면 연락 좀 해주세요! 꼭 출판하자는 말 아니어도, 에디터의 눈에 그동안 제가 쓴 글들이 어떤 점이 부족해서 책 내자는 말을 안 하시는 건지 조언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저의 가능성을 발굴해 주실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신 에디터 님을 찾습니다!


14) 같은 옷 입는 이유?

첫 번째는 제가 편해서이고요, 두 번째는 시간절약입니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제가 정말로 매주 영상을 하나씩 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가 싫어하는 요소는 다 빼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지고 시작을 한 겁니다. 그중에 하나가 패션이었고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전남편이 패션업계에서 일했기 때문에 주말마다 쇼핑 가면, 그 사람은 옷 입어보고, 벗어보고, 갈아입고 사진 찍고 하면서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막 눈이 반짝반짝하는 거예요. 저는 다른 집 남편들이랑 구석에,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 보고 하품하고 그랬거든요. 저는 입던 옷이 떨어져야 미루고 미루다 가서 필요한 것만 얼른 사서 나오는 스타일입니다.


예쁜 옷을 입으면 물론 좋긴 하죠. 그런데 매일 같이 거울 앞에서 입고, 벗고, 여러분 보여드리려고 이쁘게 막 차려입고 이러는 거 정말 제 취향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패션 블로거같이 멋져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차라리 국제결혼과 이혼에 대한 고찰을 한 번 더 하고 글이라도 한 자 더 쓰는 게 작가이자 국제이혼 전문 유튜버인 저의 정체성과 채널의 취지에 맞다고 생각해서 같은 옷을 입는 겁니다.


제가 큐엔에이 하면서 케이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저에 대한 애칭이 아니라 제가 구독자 분들을 부르는 애칭으로 천사를 추천해 주신 것 같더라고요. 맞나요? 안 그래도 저한테 다들 너무 따뜻하고 친절하셔서 항상 감동이거든요. 그래서 저보다는 여러분들의 애칭으로 더 맞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만약 이게 맞으시다면 다음 구독자 애칭 설문 때 천사도 넣을게요.


15) 어떻게 끊기지 않고 말을 조근조근 잘하시는지?

스크립트가 있어서 그래요. 읽고 하니까 술술 나오는 거고요. 원래도 말 보따리가 원체 크기는 합니다. 나불거리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도통 없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 방구석 토크로 가늘게나마 돈줄을 뚫었다는 거 자체가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16) 건강은?

보호소 이야기가 2015년 여름이에요. 벌써 8년이나 지났고요. 코로나 겪으면서 확 찐자도 됐다가 나잇살도 찌고 그래서 보시다시피 살은 충분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17) 만약 전남편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오, 이거 정확하게 답변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전남편을 2016년 여름, 그러니까 그렇게 헤어지고 1년 2개월 만에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거든요. 그 여자랑! 제가 전철역에서 친구랑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딱 그 앞에 전남편이 그 바람난 상사랑 같이 서 있는 걸 무슨 영화 프레임처럼 쫙 머리부터 훑게 된 거예요.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면 우리 시야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렇게 훑어지잖아요.


정말 신기했던 건, 그때가 진짜 제가 가장 개고생 하고 다니던 때였기 때문에 그 일 년 동안 변호사 만나고 잡센터 중요한 일정 외에는 항상 쌩얼에 운동화에 잠바 떼기, 그리고 유모차에 짐 주렁주렁 실고 밀면서 비쩍 곯아가지고 항상 지쳐서 거지꼴로 다녔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딱 제 친구 야니나가 생일선물로 밥을 쏜 날이었어요. 그것도 제 생일은 5월인데 둘 다 애 키우느라 바빠가지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8월에 만난 거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을 전부 그 집 남편한테 맡기고 정말 거의 처음으로 예뻐 보이기 위해서 화장하고, 힐 신고, 갖춰 입고, 하여간 실컷 꾸미고 나온 거예요. 지금이야 많이 단단해져서 뭐 언제, 어느 때, 어떤 꼴로 만나도 상관이 없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부들부들할 때라 혹시라도 한 동네 살면서 그 옷 잘 입는 남자랑 초라한 몰골로 마주칠까 봐 밖에 나갈 때마다 신경 쓰였었는데 정말 제가 가장 예쁘게 꾸민 날, 그것도 그 사람이랑 헤어질 때는 독일어도 거의 못 하고 친구도 없었는데 1년 만에 입이 트여가지고 독일인 친구랑 폭풍수다를 떨면서 기분이 업되어 있는 상황에서 마주친 거라 엑스와 마주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너무너무 통쾌했고요.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저는 심장은 떨렸지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그 사람과 그 여자를 주시했고요. 그 여자는 영수증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제 전남편은 저를 한번 보고는 흠칫 놀라서 바로 딴 데를 쳐다봤다가 다시 한번 저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더라고요.


서로 걸어가면서 스치는 시간 동안 저는 그 두 사람을 응시했고, 전남편도 그 여자랑 같이 저와는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제가 5년을 사랑한 사람이니까 알잖아요, 걸음걸이만 봐도 저 사람 기분이 어떤지. 좀 우울증이 있어 보였어요. 그 기운 없고, 조금은 비틀거리는 그런 느낌? 살도 많이 빠졌더라고요. 근데 그 여자 상사는 안 그래도 덩치가 컸는데 그 사이에 살이 더 쪄가지고, 둘이 같이 있으니까 전남편은 안 그래도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체형인데 더 말라 보이고, 그 여자는 더 살집이 있어 보이고 그랬어요. 동글이와 길쭉이처럼 대비되는 그 모습이 인상에 강하게 남아있고.


그때는 제가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던 때라 외형적인 비교에서 오는 얕은 자신감으로 우쭐했었죠. ‘봐라, 내가 더 젊고, 날씬하고, 이쁘다! 그리고 나 이제 독일어도 잘한다.’ 뭐 그런 감정. 하여간 그 당시에는 정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시원했습니다.


18) 전남편을 향한 용서의 편지를 전남편이 보고도 여전히 외면한다면?

그 사람의 반응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보라고 쓴 편지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특정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쓴 거 거든요. 그 편지를 쓸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그 사람을 용서하고 나서 제가 깨달은 건 사실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죄를 지었다면 감옥에 갔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나와 아기의 물건까지 팔고 버렸고, 심지어 자식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건 그 사람의 모든 행위들이 객관적으로 불법이 아니었다는 반증이잖아요.


그렇다면
왜 나는 그렇게까지
죽을 만큼
고통을 받았는가?



그건 그냥 저의 감정이었던 거죠.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 아기를 혼자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내 인생을 그 사람에게 의지했다가 외면당했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들. 그런데 사실 그 모든 건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의 선택이었잖아요. 내가 낳은 자식을 둘이 키울 여건이 안되니까 내 손으로 키우는 거고,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건사하는 건 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책임인 거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타인의 마음을 억지로 바꿀 수 있겠어요. 자기 마음도 마음대로 안되는데. 우리는 결혼으로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제도로 묶어놓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도가 사람의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 통제는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까지 꺾을 수는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난 7년간 그걸 깨닫는 과정을 거친 거고 최종적으로 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함으로써 사실은 내가 그를 용서할 만큼 잘한 것도 없고, 또 그 사람이 나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 만큼 죄를 지은 것도 없고 그저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인연이 닿아있는 동안 함께 하다가 인연이 다하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뿐이라는 걸 배우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라는 것도 없습니다. ‘결혼했으면 가정을 지켜야지! 어떻게 아빠가 자식을 안 봐!’ 하는 생각들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상식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 상식의 선이라는 것도 정말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리의 사연을 듣는다면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실 거예요.


<라쇼몽>이라는 영화 아세요? 누구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달되느냐에 따라서 하나의 팩트가 어떻게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지를 논할 때 항상 예시로 나오는 영환데, 이야기라는 것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걸 흑백으로 가르기가 참 어려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저라는 사람의 마음과 기대일 뿐이지 그 기대가 이뤄졌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또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른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저는 그 사람을 용서하는 걸 시작으로 제 인생에서 더 많은 사람들, 최종적으로는 저 자신까지도 용서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렇게 그 사람이 저에게 잘못한 것이 본질적으로 없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제가 마음 안에서 차마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결국 저 자신까지도 사실은 용서하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는 게 엄청 편안해졌죠. 마음의 돌을 내려놓게 됐으니까.


19) 혹시 언어천재?

전혀 아니고요, 외국어에 관해서는 어릴 때부터 항상 느껴왔던 거지만 남보다 두 배로 노력해야만 절반을 얻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어는 어릴 때부터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어릴 때 항상 글짓기 대회도 나갔었고요. 그런데 걸출하게 잘한다기보다는 고만고만한 사이에서 쪼끔 튀는 정도? 그런데 제가 스스로 좋아했습니다. 좋아하니까 잘하고, 잘하니까 또 더 좋아하게 되고 그런 거죠.


20) 독일 영양제가 유명한데 독일사람들도 많이 먹는지?

건강에 관한 관심이랑 소득 수준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라고 뭉뚱그려서 단정하기보다는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냐에 따라서 갈릴 것 같아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30-50대 사이에 평범하게 사는 독일인들이고 한국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비교를 해봤을 때 한국사람들보다는 영양제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게 유명하다고 막 지인들이 물어보고 그래서 제가 주변 독일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알아도 굳이 안 먹더라고요. 왜 안 먹냐고 물어보면 신선한 야채나 과일로 섭취하고, 운동하면 되지 뭐 굳이 그런 걸 사서 먹냐는 게 일반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돈이 엄청 많은 독일의 상류층들이나 아니면 건강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노인분들은 또 다를 수도 있겠죠?


21) 학창 시절은?

네. 언어영역은 별도의 공부 없이 항상 1등급이었습니다. 언어영역만. 그래서 선생님들이 항상 특이하다 그랬어요. 언어랑 외국어 영역은 성적이 보통 같이 가는데 너는 왜 반대냐고. 그리고 저의 1318 학창 시절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집은 전쟁터, 학교는 지옥과 감옥사이, 그리고 그 두 곳에서 빠져나오면 두 줄기 빛, 제 단짝친구와 저의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학교폭력이 이슈잖아요. 저는 육체적인 학교폭력을 당한 건 아니었지만, 거의 은따였습니다. 은근한 따돌림. 중고등학교 때는 항상 이름으로 출석번호를 매기잖아요. 저는 이름 첫 글자랑 두 번째 글자에 전부 ㅎ이 들어가서 항상 마지막 번호였거든요. 이게 정말 거지 같은 게, 체육 같은 거 하거나 음악실 가서 둘둘이 앉고 그럴 때면 애들이 짝수면 짝이 있는데 홀수면 항상 저만 혼자 남는 거예요. 1년 내내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리고 짝수인 해에도 누구 하나 아파서 결석하면 또 나만 혼자예요. 이름에 ㄱ 들어가는 애들이 맨날 1번으로 발표해야 되는 것과 비슷한 애환이죠.


이게 사회적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여자애들한테는 상당히 스트레습니다. 그래서 매년 반이 바뀌면서 애들이 리셋되고, 그런 환경에서 학기 초마다 짝을 찾아야만 외톨이가 되지 않는다는 그런 압박감이 저는 항상 너무 힘들었던 거 같고, 특히 여자애들은 이런 육체적인 폭력보다 말이나 분위기로 아닌 척하면서 여론몰이해서 사람 하나를 정말 잔인하게 짓밟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같이 무서운 야생이 없습니다. 애들도 순수해서 더 잔인해요. Pure Evil(순수악)이라 그러죠. 그래서 저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안 하고요. 저는 대학교라는 학교까지 졸업을 한 뒤에야 비로소 혼자여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됐고, 30세가 넘어서 저 자신을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부터 저랑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인연 맺는 법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입니다.


22) 처음 개인사를 오픈했을 때 누가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걱정은?

제 인생에 긍정적인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관해서는 별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한 번 그런 적은 있어요. 반을 탔는데 한국사람으로 보이길래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대뜸 본인이 들었다면서 이 동네 어디에 독일 남자한테 대차게 버림받고 애 데리고 혼자 사는 한국 여자가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듣다 보니까 제 얘기 더라고요. 그때 좀 놀랐죠. 저는 한인사회랑 한 번도 정식으로 교류한 적이 없는데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연령대와 성별의 처음 보는 사람 입에서 제 얘기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나왔다는 게. 아마 제가 아는 몇 안 되는 여기 한국 여자들 중에서 하나가 뭐 한인교회나 어디 가서 퍼뜨렸겠죠.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아직 브런치를 하기 전이었으니까. (초장기라 지금보다 훨씬 덜 알려졌을 때였어요.)


제가 개인사를 공개해서 밥벌이를 못하게 되거나, 목에 칼이 들어오거나 하는 구체적인 생명의 위협이 아니라면 남들이 저를 알아보건 말건 별생각 없습니다. 세상천지에 입이 몇 갠데 그 입을 일일이 다 틀어막겠어요. ‘독일 한인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를 가십으로 씹고 즐길까?’가 걱정됐다면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저의 존재와 제가 시련을 겪어낸 과정들을 보면서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용기를 얻고, 어려움을 헤쳐나가실 단 한 명의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8년째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 그런 분들이 저한테 감사메일을 길게 써서 보내주실 때가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행복합니다. 저로 인해서 힘을 얻으신 그분들, 지금도 보고 계시죠? 언제나 여러분들을 통해서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고 있어요. 항상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드리고요, 사랑합니다.


23) 가장 좋아하는 단어와 어감이 예쁜 단어?

눈으로 봤을 때는 아무래도 Liebe(리베), ‘사랑’이라는 단어고요. 들을 때는 Sterne(슈테아네), ‘별들’입니다. 이쁘지 않나요? 슈테아네. 어감이 예쁜 단어는, 제가 독일어를 거의 모를 때 Zwiebel(쯔뷔벨)이라는 단어를 듣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팅커벨 같잖아요. 근데 뜻은 양파입니다.


24) 발음하기 어려운 독일어?

R 들어가는 거는 어려워서 다 싫어하고요. 이게 영어로는 알이지만 독어로 들으면 기역에 가깝거든요. 가디오(Radio/ 라디오), 슈트가쎄(Straße/ 길) 이렇게. 이게 목구멍에서 그르르르 하는 발음인데 저는 이게 안되기 때문에 이 발음이 지금도 어렵고, 그래서 우리 아들 이름에도 R이 안 들어갑니다. 일부러 뺐어요. 초반에 발음연습했던 거는 심리학이라는 단어인데, Psychologie 거든요. Psy, 이건 한국어로 받아 적을 수도 없는 발음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듣고 한국말로 써보세요. 써지나. 그래서 사이코도 독일어로는 Psycho라고 해요.


25) 주로 한식 아니면 양식?

정체불명의 퓨전을 먹습니다.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굳이 한식 해서 먹었는데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하면서 좀 건강을 챙기게 됐고. 사실 건강하게 먹으려면 최대한 신선하게 얻을 수 있는 식재료나 살아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하는 게 제일 좋잖아요. 그런데 한식 먹으려면 고춧가루부터 참기름까지 전부 해외수출용 조미료를 사야 하고, 공장제품을 사야 하니까 비싸고 가공식품이라 몸에도 안 좋고 그렇죠. 그런데 현지식으로 먹으면 전부 마트 가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이제는 좀 그렇게 먹는 편이에요. 그래서 나온 게 퓨전입니다.


26) 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한국식 카레입니다.


27) 독일에서 잘 먹을 수 없는 한식 중 가장 먹고 싶은 거?

이거는 진짜 끝도 없는데… 게장, 젓갈, 양념치킨, 이마트에서 나온 불맛 돼지껍데기,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 되게 맛있더라고요. 곱창, 육회, 매운탕, 떡, 짜장면에 탕수육, 족발, 보쌈, 그리고 우리 엄마가 담근 모든 김치 종류. 그리고 우리 아빠가 만들어준 초밥. 그래서 나중에 멤버십을 하면 등급별로 이름을 붙일 수가 있거든요? 다들 자기만의 철학이 담기거나, 문학적이거나 내지는 감성적인 걸로 많이들 하시던데 저는 그걸 항상 제가 먹고 싶지만 독일에 살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음식들로 할 생각이에요. 이게 나의 철학인가?


28) 영상에서 항상 마시는 차는?

보통은 루이보스티를 마시고요. 색깔 없는 건 제가 직접 담근 레몬생강차입니다. 녹차나 홍차는 티인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안 마시는 편이에요.


29) 유튜브로 독일어를 가르쳐보는 건 어떨지?

저는 독일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국제결혼과 이혼에 관해서 할 말이 많아서 채널을 연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언어를 배운다면 저는 언어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 채널을 보고 싶지, 이것저것 잡다하게 끼워 넣는 사람은 신뢰가 안 갈 거 같거든요. 그래서 아예 손을 안대는 거고. 또 독일어는 아까 말씀드린 에밀리 님 같은 분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독일어 공부하고 싶은데 그분 채널 아직 구독 안 하신 분들은 <Emily mit Ypsilon>이라는 채널에 얼른 가서 구독하고 오세요.


제가 문과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길이 가장 흔한 선택지 중에 하나였는데 흥미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그렇게 뭐 하나에 완벽한 수준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을 가르치는 사람들 보면 너무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또 신기한 건, 저는 국제이혼이나 싱글맘으로서의 삶에 대한 강연은 해보고 싶습니다. 좀 떨리기는 해도 할 만하게 느껴지는 걸 넘어서 꽤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 무대공포증만 좀 극복을 하면 잘할 것 같아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김미경 강사님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 두고 강연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시나요? 제가 강연하면 들으러 오실래요?


30) 한국보다 독일이 더 나은 음식이나 안 맞는 음식?

요리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고 과일 중에 딸기가 독일은 정말 맛있어요. 딸기밭도 많아서 초여름에 딸기밭에 가면 집에 가져가는 양은 그람(g) 수대로 돈을 내야 되지만, 그 자리에서 따 먹는 건 무제한 공짜고요. 정말 향긋하고 달고 맛있습니다. 제가 오렌지를 좋아하는데 오렌지도 싸고 맛있고. 8월 말쯤 나오는 옥수수가 Zuckermais가 또 끝내줍니다. 주커가 설탕이잖아요. 이름처럼 아무것도 없이 그냥 물에다가만 삶아 먹어도 너무 달달하고 맛있어요. 그리고 당근도 달달합니다. 한국에서는 당근이 쌉소롬해서 안 먹었는데 여기 아기들은 당근을 스낵처럼 먹을 정도로 달고 맛있어요.


맛없는 건, 서양배랑 수박이 정말 맛이 없습니다. 싱겁거든요. 저는 음식은 국적 상관없이 맛있으면 다 좋아해서 굳이 뭐 큰 호불호는 없는데, 소시지의 나라다 보니까 이 뽀독뽀독한 수제 소시지가 한국의 공장식 소시지랑은 비교도 안되게 진짜 맛있고요. 여기도 피순대가 있습니다. 겨울에 사우어크라우트랑 같이 솥에 쪄서 먹는 건데, 이게 남쪽 지방 음식이라서 제가 사는 곳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전시어머니가 가끔 해줬었는데, 그래서 그게 좀 아쉽고요.


대신 제가 사는 동네에는 그 시래기 맛이 나는 Grünkohl이, 한국에서는 케일이라고 하죠. 이 케일로 만든 게 향토음식이라 겨울마다 이걸로 위로합니다. 진짜 시래기랑 맛이 똑같아서 빈이랑 저랑 비싸도 꼭꼭 크리스마스 마켓 가서 사 먹는 음식이에요. 한국 음식보다 나은 독일음식은 사실 찾기 어렵죠. 제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람인데… 한국 음식 안 먹고살아도 괜찮아지기까지 7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그 어떤 독일 음식을 갖다 놔도 제 입에는 한국 음식이 가장 맛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 정말 부럽습니다. 저 대신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31) 독일어 C1 수준으로 FH에서 공부하는 게 어떤지? 한국대학과 비교해서 어떤 수준인지?

C1을 땄다고 해서 바로 C1 수준의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더군다나 각 분야마다 Fachbegriffe라 그래서 전문용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현지 독일 아이들도 대학에 와서 그런 용어들은 다시 배워나가요. 게다가 일상용어들도 다 대학용어로 바뀌거든요. 우리도 대학 가면 숙제는 과제, 선생님은 교수님, 교실은 강의실이라고 부르잖아요. 여기도 그렇습니다. 친구는 Freunde나 klassenkamerade가 아니라 Kommilitone라 그러고요, 학기 등록도 Anmeldung이 아니라 Immatrikulieren, 뭐 이런 식으로 불러요. 그래서 첫 학기는 독일어가 들리기는 하는데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그 독일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첫 학기만 그렇게 힘들고요. 두 번째 학기부터는 들을만해요. 난이도는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게 이게 Uni(대학)인지, FH(전문대)인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또 과마다도 다를 거 아니에요. 의대나 법대, 심리학과 같은 경우에는 무용이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대보다 당연히 훨씬 어렵겠죠. 제가 공부했던 사회복지는 여기서도 개나 소나 공부하는 과라고 대놓고 무시를 받을 정도로 난이도가 쉽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내용은 그냥 수능 사탐 수준 정도였고, 한국에서 공부하던 양대로 공부하시면 과톱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 대학에서는 스스로 공부를 해야 됩니다. 수박 겉만 핥는 애들은 그냥 그렇게 쉽게 가는 거고요, 깊게 파고들려면 끝도 없습니다. 한국 대학에 비하면 굉장히 자율성에 기반한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본인이 공부하시기 나름입니다. 그러니까 시험 통과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얼마나 깊이 있게 공부하느냐 하는 건 개인차가 있다는 거죠. 독일에서 애 데리고 대학생활 하기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다면 이것도 언제 한 번 영상을 찍겠습니다.








이렇게 서른하나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드렸고요. 무슨 아이스크림가게 같네요, 서른 하나! 좀 길긴 하지만 질문 주신 분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한 분 한 분 최선을 다해서 답변드렸고요. 나중에 구독자가 많아지면 이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지금 여유 있을 때 해야 돼요. 그렇죠? 얼마나 클려고?


반년 전에 유튜브 시작 때 2,170명이었던 브런치 구독자가 지금은 3,80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구독자는 4,500명을 훌쩍 넘었고요. 시작할 때 ‘일단 벌려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무모하게 채널을 시작했는데, 반년이나 버틴 걸 넘어서 어느 순간 즐겁게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볼 때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새로운 영상이 넘쳐나는 이 큰 유튜브 세상에서 우리 채널을 찾아오신 여러분들도 너무나 신기합니다.


가끔 구독자가 더 팍팍 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날 때마다 그런 상상을 해봐요. 이 4,500명 구독자 중에 딱 1프로만 떼서 45분을 앞에 두고 실제로 강연하면 기분이 어떨까? 교실 하나를 가득 채울 사람들이겠죠? 떨려서 상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막 손에 땀이 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이 4,500명이라는 숫자의 위력을 실감해요.


엄청난 사람들이구나!



유튜브를 운영하다 보면 이 유튜브 세상에서는 한 달 수익이 몇 백이네, 몇 천이네, 구독자가 몇 십만이네, 백만이 넘는 게 목표네 하는 게 너무 흔한 이야기라 작은 채널의 주인장들은 자기 채널이 가진 가치를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 몇십, 몇 백 명이라도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을 가치 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감동적인 일이거든요. 그래서 뿌리와 날개에게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여러분들이 모여 계신 이 채널이 저만의 보물섬 같은 느낌이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이 보물섬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그런 느낌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보는 느낌이 와닿으시나요? 그게 제가 일당 1,500원, 시급 150원 꼴로 영상을 제작하면서도 여러분 덕에 싱글벙글하는 이유입니다.


참, 두 번에 걸친 투표 결과 제 이름의 줄임말은 “뿌날”이 됐어요! 그럼 앞으로 저를 부르는 호칭은 뿌날로 통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투표에 참여해 주신 분들, 그리고 질문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이번에 못 물어보신 분들은 1주년 기념 때 큐앤에이 한번 더 할 거니까 그때 또 많이 물어봐주세요!


그럼 앞으로도 우리 채널 많이 사랑해 주시고, 오래오래 만나기로 해요, 우리!

Ich hab euch lieb! Tschüss!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sEQJbcZyO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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