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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Nov 30. 2023

가장 많이 받은 질문 BEST 3

1주년 기념 Q&A 제1탄

안녕하세요, 여러분!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한 주 동안 1주년 기념 Q&A를 위한 여러분의 질문들을 받아봤는대요! 10월 21일까지 총 일흔두 개의 댓글이 달렸고, 대댓글과 중복 질문자 포함 총 쉰세 분께서 질문을 주셨습니다. 또 대댓글 및 중복 질문까지 포함해서 총 103개의 질문이 모였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사실 질문들을 모아놓고 초벌 답변을 해놓은 상태에서 써놓은 멘트입니다. 그런데 이 직후에 차 사고가 났죠. 그러면서 Q&A 질문을 마감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나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몇 가지 변동사항이 생겼습니다.


질문을 삭제하신 분들도 계시는 바람에 질문 리스트도 수정을 해야 됐고, 또 사고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면서 고심 끝에 Q&A를 12월 한 달 동안 시리즈로 만들기로 계획을 변경하게 됐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질문에 좀 더 꼼꼼하게 답변을 해드리려고 요.


그러니까 그 점을 감안해 주시기 바라고, 가장 많이 주신 질문 Best 3를 시작으로 해서 Q&A 시리즈를 시작하겠습니다. Q&A가 여러분께 즐거운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늦었지만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긍정적인 관심, 또 성의 있는 질문들에 감사드리면서 그럼 답변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 JK 님 : 집에서 아기랑 나오시고 한참 힘들었을 때 한국에 돌아가거나 아님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독일에 그대로 머무르고자 한 이유가 궁금해요.

- Anna suh 님 : 한국에 돌아오실 마음은 없으셨나요?

- Sujin 님 : 많이 힘들고 버티기 힘든 순간에도 부모님이 계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꾸준히 질문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간간히 답변을 드린다고 드렸는데도 조금 부족한 가 봅니다. 그래서 이참에 확실히 말씀을 드릴게요.


한국에 돌아갈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혼자된 뒤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저는 결혼할 때도 독일에서 정착할 마음으로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가방 하나 들고 옷 몇 가지만 챙겨서 왔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남편 따라 도시와 나라를 바꾸는 이사만 4번을 하면서 동시에 임신 9개월, 육아 1년 지나고 나니까 결혼 3년이 후딱 갔고, 그렇게 이혼 통보를 받았죠.


<국제커플 연대기>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싱글맘 9년 차인 지금까지 힘들었던 걸 다 합쳐도 첫 1년 고생한 것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도 역시 첫 해인 2015,16년도였습니다.


힘든데 왜 남았냐 물으시면, 제 입장에서는 그럼 이혼소송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갔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럼 여러분이라면 이혼 과정이 힘들다고 서류 정리 없이 바로 한국으로 가실 겁니까?


똥을 쌌으면 밑을 닦고 바지를 입어도 입어야죠. 한국에서도 이혼하면 법원 가서 이혼 소송 마무리 하고 호적 정리하듯이 국제결혼도 절차가 똑같습니다. 오히려 서류가 복잡하니까 시간이 더 걸리죠.


한국에서 소송하면 안 되냐? 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한국에서도 현지인 변호사 사서 원격으로 독일인을 상대로 소송을 감당할 만큼 독일어와 재력이 되신 다면 하면 되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서 호적 정리 안 하고 그냥 몸만 빠져나온다 쳐도 자녀가 있으면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위배가 됩니다. 현지인 양육권자의 동의 없이 아이랑 비행기를 타면 납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현실은 이혼 소송이 끝나도 한국으로 못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한국으로 영구 귀국은 고사하고 한국행 휴가나 유럽 내 이동마저도 전남편이 서류상 사인을 안 해주면 못 가는데, 양육비 안 받아도 되니까 제발 놓아만 달라고 해도 안 보내주는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당연하죠. 내 자식임과 동시에 그의 자녀이기도 하니까!


지난 8년 동안 파경 맞은 국제 커플들을 여럿 봤어도 저처럼 아기랑 자유로운 케이스를, 저는 저 말고 딱 한 케이스 봤습니다. 그 집도 애 아빠가 양육권을 포기했어요. 아예 아이를 안 보고요.


그래서 아이를 버리고(포기하고) 혼자 한국행을 택하지 않는 한 대부분 아이 성인될 때까지 남편이랑 살던 마지막 정착지를 못 떠나고 발목에 쇠사슬 묶여 있듯이 묶여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땅을 떠나시는 분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꼭 인지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저는 이혼소송이 완료될 때까지 적어도 1년을 버텨야 했기 때문에 집을 얻어서 보호소를 나왔던 거고,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소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죠. 그런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상대 쪽에서 시작을 안 하는 거예요.


그 잇속 빠른 사람이 먼저 소송을 걸지 않는다는 건 그게 자기한테 유리하다는 뜻일 텐데, 당최 속을 모르겠는 거죠. 그래서 그 의중을 파악하고 나에게도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내가 먼저 소송을 걸게 되면 판이 어떻게 바뀌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는 그때까지도 아이 아빠가 아이와 완전히 절연하게 될 거라는  걸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호사를 통해 아빠와 아이의 면접교섭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대방이 공동양육권을 포기한 건 헤어지고도 2년이 지난 후였고, 제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 아이에게 납득시키기까지는 다시 2년이 더 걸려서 2019년에서야 저는 독일을 떠날 수 있는 법적, 심리적 바탕이 마련됐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대학진학에 따른 부양비 청구 소송에 이겨서 전남편에게 2022년까지 생계유지비가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대학 공부도 이미 시작을 했고. 그래서 일단 2022년까지 대학을 마치고 뒷일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 한 거죠.


그런데 반년 뒤에 코로나가 왔고, 작년에 대학 공부를 마치지 못한 상태로 생계전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유튜브를 시작하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때 독일에서 대학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도, 남편이 2년이 넘도록 소송을 걸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소송이 시작되고 완료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데 그냥 한국 갈 생각만으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고 혹시라도 독일에 살기로 결정하게 됐을 때 차질이 없도록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대학을 가기로 결정한 겁니다. 혹시나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독일 대학의 학위가 있다면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고요.


현실적으로도 경력도, 경제력도 없는 서른 넘은 싱글맘이 15개월짜리 아기를 혼자 키우기에는 단언컨대 독일이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차별적인 시선이 없죠, 전남편이 돈 안 줘도 정부에서 생활비와 집세가 이미 따박따박 나오고 있었죠, 왜 일 안 하냐고 시비 걸거나 차별, 모욕하는 사람은커녕 어딜 가도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받고 존중받죠.


첫 1년 동안 힘들기도 정말 힘들었지만, 제가 독일에서 받았던 혜택과 배려들도 정말 따뜻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보호받으면서 나이나 가정사로 인한 차별 없이 제대로 된 독립을 위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생계를 의지할 이유가 당시에는 없었죠.








두 번째 질문

- JK 님 : 그리고 앞으로도 쭉 독일에 정착하실 건지도요.

- Anna suh 님 : 힘들게 독일에서 정착하시려고 하시는 이유가 있나 궁금해서요.

- 오늘은 톳끼 님 :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독일에 정착할 거냐, 이 질문도 정말 자주 받거든요! 어떠세요? 제가 독일에 남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돌아갈 것 같습니까?


한국은 제 나라이기 때문에 언제든 돌아갈 생각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살 남편 없고, 관두기 아쉬운 직장 없고, 정리할 재산 따로 없는 게 문제로 보면 문제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원하면 언제든 아이랑 한국으로 훌쩍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선녀의 날개옷이기도 해요.


해외 생활 관두고 싶어도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게 많아서 못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제가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경제적 거점이 자유로워진 것도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저는 독일에 정착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에 힘들게 정착하려는 이유도 당연히 없습니다. 독일에 정착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독일에 정착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독일이든 한국이든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말씀드렸다시피 2019년에 이혼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고, 소송 마무리 되고 반년 뒤부터는 대역병이 돌기 시작했죠. 그래서 2년 반 동안 모든 게 올스톱되면서 미래를 더 이상 계획할 수가 없었고, 결국 학업도 중단을 하게 됐잖아요.


그러면서 작년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세월이 벌써 8년이나 흘렀더라고요. 빈이가 9살이니까 18살까지 딱 절반 왔죠. 이제 반환점을 돈 느낌이에요.


또 올해 주변에서 유난히 부고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저도 친구들을 통해서 부모님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나이가 됐죠. 게다가 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지난 1년 동안 유튜브 채널 키우고 취직한다고 정신없이 사느라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행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기서 사는 것도 물론 장점이 많지만, 외국 사는 입장에서 가장 마음이 약해질 때는 아무래도 한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질 때 거든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힘들 때마다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 게 컸다면 언젠가부터는 부모님에게 제가 의지가 되어드리고 싶고, 부모님이 더 늙고 병드시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돌아가고 싶어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안 그러십니까? 저는 그렇거든요.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아직 우리가 건강하고 좋은 시절에는 내내 못 보고 살다가 부고 소식받고 부랴부랴 들어가서 영정 사진 붙들고 울면 뭐 합니까!


살아 계실 때 자주자주 찾아뵙고, 저녁 식탁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맛있는 거 나눠 먹고, 봄에는 꽃구경, 가을에 단풍 구경하면서 이렇게 쇠털같이 많은 날들 흔하디 흔한 일상으로 같이 채워나가는 게, 그게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래서 빈이가 더 크기 전에 한국에서 한국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고 싶은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근데 한국에 가고 싶어도 다른 건 차치하고, 살 집이 없어서 가기가 어렵겠더라고요. 독일은 보통 보증금이 세 달치 월세 정도라고 해요. 그래서 월세 100만 원 낸다 치면 한 4백만 원이면 당장 살 곳을 구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월세 내고 생활비 쓰는 거 대비 소득이 적으면 최저생계비에서 미달되는 만큼 나라가 또 메꿔줍니다. 그니까 대학생들도 주거독립을 하는 거겠죠? 그래서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독일이 진짜 좋아요.


근데 한국은 서울이면 6평 원룸에도 보증금이 1억이 넘는다면 서요. 제가 목돈이 없기도 하지만, 설사 있다손 쳐도 현실적으로 융자가 전혀 없이 서울에 집을 얻기는 힘들겠던데, 부모님 두고 굳이 지방에 집을 얻을 거면 여기 독일에서 애랑 둘이 떨어져 사는 거랑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또 엄마아빠랑 합가를 하기는 그렇잖아요. 부모님께 집 얻게 돈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성인이면 형편에 맞게 살면서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은 그게 전혀 불가능해 보입니다.


제가 형편에 맞게 살고 싶어도 형편에 맞게 산다는 기본전제가 아예 성립이 안 돼요. 그렇다고 곧 있음 중학교 갈 아이랑 진짜 다달이 달세 내가면서 고시원에서 시작할 수도 없고. 그래서 지금 현재로서는 가고 싶어도 살 집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리저는 독일에 사는 동안은 빈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직업적 욕심도 내려놓고, 성인이 될 때까지 도시도 옮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살던 곳에서 살면서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저희에게 좋아요. 여러분께서 모르시는 속사정들이 또 있거든요.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한 뒤로 감사한 제안도 받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제가 경제적으로 독립도 하고, 빈이도 훌쩍 크고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독일 내 도시 간 이사는 어려워도, 한국에서 직업적으로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면 영구귀국도 적극 검토해 볼 생각이에요.


뭐 당장 들어가겠다거나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고, 또 아이 연령에 따라서 환경을 바꾸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게 있잖아요. 여기서의 10년 생활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 2-3년 정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한국 사시는 여러분 중에서 혹시 주변에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을 아시거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한부모 가정 및 다문화 가정 관련해서 어떤 것들로 제 스펙을 보완하면 될 수 있을지 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학점은행제나 사이버 대학 이런 것도 생각을 해보고 있거든요. 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유튜브 일과 관련해서 이쪽 분야로 나아갔으면 좋겠는데 제가 중문과를 나왔다 보니까 이쪽 계열 사람이 아닌 거잖아요, 어쨌거나. 그래서 과연 한국에서 발을 디딜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뭐든 괜찮으니까 도움 될 만한 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거 관련해서 영상 한번 찍어볼까요? 제가 여러분께 진로 상담하는 그런 콘텐츠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잖아요. 또 압니까? 여러분 중 누군가가 저를 미래의 제가 있을 곳으로 끌어다 줄 멘토가 되어주실지!


하여간 뭐든 좋으니까 긍정적인 의견이나 구체적인 길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댓글로 또 남겨주세요!








세 번째 질문

- jj 님 : 독일은 유럽 중에 그나마 인종차별이 제일 덜하다는데 맞나요?

- 오늘은 톳끼 님 : 처음 주변 지인들을 사귀기 전 인종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극복하시고 대처하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 bk 님 : 인종차별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인종차별, 이것도 정말 질문을 많이 받죠! 생각해보니까 채널 반년 기념 Q&A때도 제가 나중에 답변 영상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일 년이 될 때까지도 안 만들었네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할 말이 이렇게 많은데, 참 일 년이나 했는데도 아직도 하고 싶은 말 10%도 못 풀어놨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종차별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게요. 저는 일단 진짜 생각이 없이 넘어왔기 때문에 그 보통의 이민자들이 갖고 시작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라는 피해의식도 없었어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러운데 진짜예요.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가 동양인이라서 차별받는다는 그런 연결고리도 없었습니다. 그냥 저 사람 이상하다, 무섭다 이러고 말았죠. 게다가 남편이 옆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거의 안전했어요. 다른 나라에 안 살아봐서 비교는 어렵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내가 동양인이라서 움추러들고 이런 느낌 없이 잘 살고 있고요.


물론 초반에 아기랑 둘이서 덩그러니 남았을 때는 한동안 두렵기도 했죠. 그런데 먼저 그런 피해의식을 버리고 세상을 대하면 한국에서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과 비교를 했을 때 여기는 정말 편안합니다.


지금은 한국사회가 어떤지 몰라도 제가 있던 2010년 정도까지도 전철에 외국인 타면 양 옆에 자리가 비고 그랬거든요. 인간극장 같은 데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막 피부 만져보고, 이미 귀화한 사람한테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하고 그랬죠. 독일에서는 이런 거 전부 인종차별입니다.


제가 봤을 때 인종차별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육체적인 위협, 하나는 정신적인 모욕, 그리고 마지막은 사회적인 유리천장이죠. 능력이 있어도 외국인이라서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 같은 거.


그런데 마지막은 어느 사회, 어느 분야나 다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 유리천장이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비주류가 주류 사회에 진입하려면 그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건 어디서나 다 똑같은 것 같고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공격적인 인종차별은 보통 교육 수준이 낮거나 같은 이민자 출신들 아니면 미성년자 어린애들이 합니다. 현지 독일인들은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엄청 점잖아요. 일단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교육이 워낙 철저해서 인종차별이 아주 몰상식한 짓이라는 인식이 잘 박혀있고, 그래서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고요.


나치 시절을 겪으면서 이 독일인들만이 갖고 있는 그런 암묵적인 규율 같은 게 있습니다. 그런 말 내뱉었다가 괜히 나치로 찍힐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죠. 요즘도 과거 행적 파헤쳐서 90이 넘었는데도 나치에 부역했던 사람들 처벌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설사 그런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감히 입 밖으로 못 내뱉습니다.


때로는 좀 오버스러울 정도예요. 얼마나? 어디 모임에 갔는데 그 그룹에 동양인이 빈이랑 저 밖에 없는데도 저를 코 앞에 두고 빈이 엄마가 누구냐고 두리번거릴 정도로 조심스럽습니다.


이게 속으로 애비 없는 새끼가! 하고 생각하는 거랑 아빠도 없는 게! 하고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천지차이거든요. 근데 여기는 필터링이 되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다고 봐요. 만약 그런 인간들이 있다면 두 번 마주치실 일 없는 사람일 거고, 계속 봐야 된다면 신고하시면 됩니다.


근데 그런 일은 아마 거의 없으실 거예요. 독일에서는 인종으로 인한 무시보다는, 보통 감정 절제를 못하는 사람들이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인종차별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외모나 나이, 학력, 직업, 사회적 신분, 재력 같은 다양한 이유들로 급을 나눠서 차별대우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국 사시면서 그런 차별 항상 느끼고 사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현상의 일환으로 보는 거지, 내가 외국인이니까 피해의식을 가지고 먼저 두리번두리번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적어도 독일에서는.


제가 2015년부터 독일에 살면서 자잘한 거 빼고 지금까지 정말 무섭다고 느낀 인종차별은 총 두 번 당해봤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내 나라를 떠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의 나라에서 사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신체적으로 지나친 타격이 있지 않는 한, 어차피 그 사회에서 살아갈 거라면 이방인으로서 어느 정도의 차별과 불이익은 감수를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 정도 강단은 적어도 있으셔야 외국 생활이 감당이 되지, 모든 걸 인종차별과 연관 지어버리면 모든 게 다 서러움이고 상처라 어느 순간부터 이 피해의식에 갇혀서 사람이 피폐해집니다.


또 인종차별하는 인간들을 다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망치로 내리쳐도 내리쳐도 그런 인간들은 두더지같이 계속해서 튀어 올라올 텐데 사실 이 사안의 본질은 사실 “인종”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급을 나눠서 “비교”하고 “차별”하는 것에 있는 거거든요.


그 차별의 근거가 인종, 성별, 외모, 재산, 가족관계, 건강 등등 다양할 뿐이지 결국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똑같이 귀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지 않으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따로 없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지 서로를 향한 차별이 튀어나오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외국 생활 10년이 넘은 저는 그런 인종차별을 상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본질을 캐치하고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또는 나 스스로에게 그런 면이 없는지를 더 돌아보는 편입니다. 또 역으로 내가 한국에서 주류의 위치가 되었을 때 좀 더 외국인을 배려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직접적인 인종차별에 대해서 대처를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시간과 장소, 모욕의 정도와 상대방의 수준에 따라서 대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는 따로 영상을 만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여기서 제 기본 대응원칙만 말씀드리자면, 빈이랑 같이 다닐 때는 백번이면 백번 다 대응합니다. 저의 모든 것을 아이가 보고 배우기 때문이죠. 근데 아이랑 다니면 거의 그런 일이 없습니다. 특히 유모차 끌고 다닐 때는 정말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고요.


왜냐하면 여기는 기본적으로 모성에 대한 보호, 가족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에 아기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봉변당할 일이, 저는 진짜 한 번도 그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모차가 되게 방패 같은 그런 느낌이었고.


인종차별은 주로 저 혼자일 때 당해요. 그래서 제가 했던 대응으로는 단계 별로 무시를 한다거나,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쳐다보거나, 쫓아가서 지금 뭐라고 했냐고 되묻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펴거나 영상을 찍죠.


마지막 두 단계는 앞서 말씀드린 그 두 번의 위협적인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했던 대응인데, 그동안은 뭐 경찰을 부르겠다고 할 정도로 심한 일들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혼자 대응하고 말았는데, 경찰 얘기 나오자마자 바로 꼬리를 내리는 걸 보고 ‘아, 처음부터 경찰을 부른다고 하면 됐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니까 굳이 꾹꾹 참지 마시고 기분 나쁘면 바로 신고하세요! 물론 경찰이 왔을 때 걔네들은 도망가고 없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신변의 위협이 느껴지시는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마시고 바로 110으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이야기였고, 요즘 빈이가 학교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겪고 있어요. 이게 제가 당할 때랑 아이가 당할 때는 감정이 또 다르더라고요. 여러분도 고민이 많으시겠죠? 일단 일이 진행되는 걸 봄 지켜봐야 될 거 같고, 해결되는 거 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Q&A Best 3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요. 다음 영상에서는 Best 4위부터 10위까지 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자유,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https://youtu.be/iaSqd2uDczs?si=4K-BkL2O30NDoS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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