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Sep 01. 2024

자식

이혼하고 고생하면서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으셨나요?

안녕하세요, 뿌리와 날개의 인생수필 첫 번째 페이지에 놀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가워요! 첫 번째 이야기로 어떤 주제를 먼저 풀어볼까 하다가 앞으로 펼쳐질 이 새로운 여정을 기왕이면 여러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면 좋겠다 싶어서 여러분이 던져주신 주제를 한번 받아봤습니다.



즐겨보고 있는 구독자라고 하시니까 아무리 질문하셔도 제가 개인적인 답변은 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익히 아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당하게 질문 남겨주신 점, 당돌하니 아주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수필의 첫 페이지를 그대와 함께 장식하기로 했어요.


아이도 낳고 싶지 않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죠. 내 인생이니까 내 맘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뿌독자 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신 데에는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가 또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20대 때 오로지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듯이. 그래서 어련히 알아서 잘 살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 것도, 아이를 낳은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예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부모님의 불화가 본격적으로 심화된 중학교 때부터 이 현실을 도피하고자 찾은 돌파구가 나 스스로 가정을 꾸려서 나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대리만족 하는 거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는 정말 본격적으로 결혼이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 결혼할 때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비록 그 시스템 안에서 튕겨져 나오기는 했지만  결혼 생활에 딱히 큰 불만이 없었단 말이죠.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는 지금도 긍정적이고요, 아이를 낳고 키운 일은 정말 제가 제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일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가정과 육아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 중에 그런 게 있어요. 자식 낳고 기른 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면, 살아오면서 도대체 얼마나 이룬 게 없길래 자식 낳고 기른 일이 가장 큰 업적이 될 수 있냐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좀 되묻고 싶습니다. 백 년도 못 사는 이런 보잘것없는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과 나의 DNA를 반반 가진 한 생명체를 잉태해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하고, 또 그 생명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온전한 하나의 존재로 자랄 수 있도록 18년에 걸쳐 양육을 하는 일보다 위대한 업적이 이 세상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저는 진심으로 궁금해요.








그리고 출산과 양육을 꼭 그렇게 거창한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대단한 일처럼 부풀리지 않아도, 그냥 내 자식을 본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아무 이유가 없이 정말 귀여워요.


저는 먹는 걸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 어릴 때도 제 동생이 맛있는 새우를 혼자 다 골라 먹거나 치킨 다리를 두 개 다 내가 먹고 싶은데 동생하고 나눠 먹어야 되면 정말 짜증이 났어요.


그런데 자식을 낳아보니까요, 아니 요 콩만 한 게 뺀질뺀질 말을 안 들을 때도 있고 살살 긁으면서 약 올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얘 입에 맛있는 게 들어가는 걸 보면 오물오물 먹는 그 입이 너무너무 이쁘고 기분이 좋습니다. 심지어 치킨 다리 세 개를 자기 다 달라고 해도 전부 다 얘 입에 넣어주고 싶을 만큼 이쁩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치킨 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엄마랑 저랑 둘이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치킨 무를 많이 먹으면 좀 거슬릴 때가 있어요. 치킨 양에 맞게 무를 좀 조절해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엄마는 치킨 한 입에 무를 막 세 개씩 먹으니까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치킨 한 마리에 무를 막 세네 개씩 추가주문하는데…. 근데 우리 아들 입에는 그 치킨 무를 다 쏟아 넣어주고 싶단 말이죠.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그럴 때 정말 자식이라는 존재가 대단하다는 걸 느껴요.


이렇게 원초적인 욕구 먹는 거 앞에서, 근데 내 입에 들어갈 것까지 빼앗아 먹어도 더 먹으라고, 더 맛있는 거 먹으라고 오히려 내가 그 입에 넣어주고 싶은 이 마음, 그게 이제 이타심이잖아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본능적인 욕구를 거스르면서까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과정이 자식을 키우는 일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이 성인이 되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그런데 거기서 나 하나만 건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렇게 조금씩 의존하는 방법(저는 이걸 의존보다는 의지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을 배우고, 그러다가 또다시 나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의존적이고 나약한 존재를 만들어서 그 존재가 다시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하는 이런 자연의 시스템이 참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제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또 상호작용을 통해서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감탄스러워요. 어메이징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결같이 결혼과 출산을 원했던 저 역시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식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까 봐 무섭다는 그 마음을 가져 봤기 때문에 뿌독자 님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고요. 또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이게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20대 여성으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저에게는 자식이 걸림돌이 아니었어요. 제 채널명 뿌리와 날개는 괴테의 “부모는 자식에게 날개와 뿌리가 되어줘야 한다”는 말에서 따온 건데요. 거기에 제가 두 가지를 덧붙여서 삼중 의미로 쓴 거 거든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빈이의 존재입니다.


괴테는 부모가 자식에게 날개와 뿌리가 되어줘야 된다고 했지만, 제가 자식을 낳아보니 부모만 아이에게 날개와 뿌리가 되어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국 땅에서 나고 자란 제가 어느 날 뿌리째 뽑혀서 낯선 타지에 내팽개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빈이의 존재로 인해서 저는 비로소 독일 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느낌을 받았고요.


또 제 과거사에서 보신 것처럼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소심해서 밥도 혼자 못 먹고, 결혼 말고는 아무런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시도하고 싶은 것도 없던 제가 빈이랑 함께 하면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데 거침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저의 날개가 되어준 느낌이 강하고요. 싱글일 때보다 저의 내면이, 영혼이 훨씬 더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 안에서 사랑받고 자랄 수 있다면,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모두 다 튼튼하고 커다란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태어나는 걸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죠.


그런데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인생의 초기 세팅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뭐 노력하고 자실 것도 없이 태어날 때 이미 끝나버려 있어요. 하지만 설사 나의 부모가, 나의 원가정이 나에게 건강하고 튼튼한 날개를 주지 못했을지라도 살면서 그 날개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들이 수시로 다시 찾아옵니다.


저는 그중에 하나가 배우자 또는 자녀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또 그들에게 사랑받고 돌봄을 받으면서 그 상처받은 날개, 다친 날개가 회복이 되고 더 클 수 있었는데 크지 못했던 부분은 또 추가적으로 자라기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가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아이로 인해서 고생을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 덕분에 인생에서 손에 꼽게 힘들었던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낯선 독일 땅, 찬바람 쌩쌩부는 독일 사람들이 너무 무서웠을 때에도 제 등에 업힌 빈이가 그런 세상으로부터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갑옷 같았고요, 남편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피가 철철 흐를 때에도 빈이의 따뜻한 포옹은 지혈제가 되어줬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그 두려움과 불안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던 밤에도 옆에 잠든 빈이의 손바닥만 한 등짝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이렇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다가도 마음이 갑자기 몽글몽글해지면서 어느새 빙그레 웃음이 났고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마다, 그래서 화가 나다나다 못해 나 자신을 정말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리고 싶을 때에도 천진난만하게 저를 보면서 까르르 웃고 하루가 다르게 크는 빈이를 보면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리고 했습니다.


자식은 그런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도 부모님에게 다 그런 존재입니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자식은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님에게 보물과도 같고요.


그게 보물이라는 걸 몰라보는 미성숙한 부모만 있을 뿐이지, 여러분이 어떤 가정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자라셨더라도 절대 여러분이 모자란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그렇게 보물 같은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귀한 건 원래 비쌉니다. 자식을 키우는데 품이 많이 드는 건 자식이 그만큼 값어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요. 비싼 걸 갖고 싶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죠.


요즘 금 시세가 한 돈에 40만 6천 원 정도 합니다. 어디 무인도에 갇히면 제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타는 목마름조차 축일 수 없는 그런 누런 돌덩어리도 3.75그램에 가격이 그 정돈데, 아기가 보통 2.8에서 3.2킬로 정도로 태어나죠?


우리 아들은 3.8킬로로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계산하기 좋게 3,75킬로짜리 아기를 금이라 치면 벌써 4억 4천7백만 원이 넘습니다. 그런 아기를 37킬로로 키우는 데까지 또 한 10년 걸리거든요! 그러면 금 시세로 거의 45억이죠.


아니 금덩이도 그 정도인데 이 한 생명의 가치는 오죽 크겠습니까? 한 사람의 탄생은 한 우주가 태어나는 일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귀한 걸 갖기 위해서 큰 대가와 희생이 따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빈이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후회도 당연히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까 점점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아휴, 내가 남편은 없어도
멋모를 때 일찍 시집가서 하나 낳아 놓은 덕에
그래도 지금 이렇게 든든한 아들이 있네!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뿌듯하고 이쁜 걸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그런 안도감이 듭니다.


이렇게 영상을 찍으니까 꼭 여러분이랑 수다 떠는 것 같고 좋네요. 내친김에 다음 영상도 한번 이렇게 가볼까요? 저번에 또 어떤 뿌독자 한 분이 전남편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냐고 물어봤던 거 같은데 다음에는 그 얘기를 한번 해보죠.


그럼 오늘도 여러분이랑 너무 즐거웠고요, 다음 영상에서 또 뵙겠습니다. 안녕!



https://youtu.be/olUDXtEGb1A?si=lR0Ec9YhaHgiGVYe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