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 첫 드라이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다음 날 바로 퇴원을 하셨다. 허리와 목 전문 병원답게 모든 것이 디스크 환자의 편의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병원이었지만, 엄마는 도리어 그것이 암환자에게는 치명적이었다며 차라리 통원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6년 간의 암투병을 끝내고 올해로 관해판정을 받았으니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암환자가 아니었지만, 한번 암이 지나간 몸은 늘 조심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그런 섬세함과 성실한 몸관리 덕분에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렇게 엄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비록 엄마가 없는 단 하루였지만 나는 아이를 데려오고, 데려다주는 일을 스스로 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큰 무리 없이 아이의 등하굣길 정도는 혼자서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여기저기 낯선 길을 많이 다녀봐야 실력이 느는 줄 알았다. 직접 해보니 이미 아는 길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훨씬 실력이 느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익숙한 길을 반복하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으면 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차선 정중앙으로 잘 가고 있는지, 내가 신호를 잘 지키고 있는지, 내가 지금 끼어들기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오로지 “나”밖에 없다.
그런데 익숙한 길을 왕래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길이 외워지고, 신호가 외워졌다. 그래서 여유가 생기자 조금씩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차들의 움직임, 드디어 “나”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낯선 도로에서는 도로 자체에 집중하며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길과 신호체계가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 비로소 교통의 흐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길이 익숙하니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대처가 한결 여유로웠다.
어느 하루, 길이 너무 막힌 날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직진해서 가다가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길이다 보니 한 번에 좌회전 신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빤히 보였다.
잠깐의 고민 후 나는 주저 없이 핸들을 틀어 우회로를 택했다. 4개월 동안 한 번도 이용한 적 없고, 내비게이션도 없었지만 엄마가 운전할 때는 종종 다니던 길이라 이미 알고 있던 길이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알만 한 간덩이의 소유자인 나에게는 큰 결정이었지만, 예정에 없던 새로운 길에 진입해 오로지 나만의 판단으로 아이의 등교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혼자 하는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2024년 9월 9일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등하굣길 운전에는 자신감이 붙었지만, 여전히 혼자서 낯선 길을 가거나 마트같이 번잡한 공간에서 주차를 하는 것에는 엄두를 낼 수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집 앞 골목을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신호를 받는 곳에 다다를 때쯤 아이가 마트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데 반드시 지난번에 마트에서 사 먹었던 그 핫도그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트는 지금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 중인 이곳에서 우회전해 6분만 더 가면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상상만 해도 등에서 진땀이 나기에 엄마는 아직 혼자 운전해서 마트를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 엄마 지금도 이렇게 운전 잘하잖아!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 간다고 하는 거야! 가자! 가자! 핫도그 먹고 싶어!
그날따라 신호는 길고, 아이는 코너만 돌면 마트에 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까 사정없이 핫도그를 외쳐댔다. 결국 나는 마지막 순간에 핸들을 꺾어 마트로 향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손에서 땀이 났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었다.
나 혼자서는 처음이지만 이미 지난 5개월 동안 조수석에 앉아, 또는 엄마를 옆에 앉히고 수십 번을 왕복한 길이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아이는 신이 나하면서도 긴장한 내 표정을 살피며 계속해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 거봐! 엄마는 할 수 있다고 했지? 잘했어! 이제 이렇게만 가면 돼. 잘하고 있어, 엄마! 엄마 진짜 대단하다!
고작 10살짜리 아이의 응원이었지만, 그의 말이 주문이 되어 그 어떤 마법보다도 더 강력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자식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겁쟁이 엄마가 자식의 말 한마디에 천군만마를 얻는단 말인가!
어찌어찌 마트는 일단 도착했건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나는 정말이지 주차에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까도 일단 주차장을 돌아보고 정 주차하기가 어려우면 그냥 다시 집으로 가자는 마음이 있었기에 마트로 핸들을 돌릴 수 있었다.
배테랑 운전자인 엄마는 아무리 차가 많아도 늘 입구 바로 앞에 주차 공간을 찾아냈지만, 내 주제에 그런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주차장 입구에 만차라는 표시등까지 떴다.
결국 엄마랑은 생전 와본 적도 없는 위층으로 올라가 조급한 마음으로 주차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양 옆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세 대씩 댈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들 양쪽으로 한 대씩 주차를 해놨는지 내가 들어갈 공간은 아무리 찾아도 차와 차 사이밖에 없었다.
그냥 갈까, 시도해 볼까 한참을 고민하다 여기까지 온 거, 결국 해보기로 했다. 양 옆에 닿지 않으려 낑낑거리며 넣었다 빼기를 수 차례, 결국 차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차하는데 오래 걸린다고 빵빵거리는 차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아이와 둘이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이 어려운 마트 주차를 해내다니 꿈만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산 넘어 산이라더니 주차를 하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옆 차와 운전석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내가 내릴 수가 없는 게 아닌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다음부터는 내릴 것도 감안해 적당히 붙여서 주차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결국 옆 차 문을 찍을까 봐 조수석을 통해 내리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다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 마트 주차를 해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입구 근처는커녕 입구에서 가장 먼 자리였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양 쪽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에 늠름하게 주차된 우리 차를 보며 마음이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핫도그도 두 팩이나 넣고, 그 밖의 다른 필요한 것들도 사 무사히 장을 보고, 주차 정산도 끝내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한결 수월했다.
집이 비교적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은 불편했지만 대신 장점이라면 마트 가는 길이 꼭 여행길 드라이브 같다는 점이었다. 봄이면 길 양 옆으로 벚꽃나무가 즐비해 꽃비가 내리던 그 길이 늦여름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운전 중에 다른 짓을 하는 게 여전히 불편한 나였지만, 조심스럽게 창문을 내렸다. 기분 좋은 9월의 바람과 함께 흙냄새, 나무 냄새, 달콤한 자연의 향기가 코 속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
차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맑고 아름다운 9월의 하늘 아래 푸르른 산등성이가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을 수없이 왕복했지만, 혼자 운전해 가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도로 뒤에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을 보았다.
운전을 못하던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의존해 이런 풍경들을 보아야만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또는 아이와 둘이서만 누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순간”이라는 것이 그동안 나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 낭만 넘치는 길을 나와 아이, 단둘이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조수석에 앉아 나와 함께 이 모든 것을 만끽하는 아이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새삼 울컥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완벽했다. 완벽한 순간이었다.
그저 상상만 하며 좋겠거니, 미루어 짐작해 오던 그 순간을 현실로 마주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날의 풍경, 그날의 내음, 그날의 멜로디, 그리고 나와 아이의 평화롭던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