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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Dec 12. 2024

나의 연약함은 심인성 운전부전

운전 네 달 차

그렇게 운전 시작  달 만에 7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처음으로 혼자 운전하고 돌아와 지쳐 쓰러져 4시간을 내리 잔 이후로 나는 혼자서 운전하겠다는 꿈을 다시금 살포시 내려놓았다.


죽어도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혼자 운전하기”를 해내고야 말았건만, 성공의 기쁨보다 심장이 오그라 붙을 것만 같았던 압박의 여운이 더욱 길었던 45분이었다. 아마도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힌 듯했다.


20대의 나이에 출산과 육아, 이혼을 겪고 외국 땅에서 혼자 싱글맘으로 10년을 버텨낸 사람이 고작 7킬로미터 운전으로 정신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가진 고유의 연약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나의 아주 오래된 연약함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보듬어주기로 했다. 괜찮다고, 언제나 두려운 것에 맞서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다시는 운전대에 앉고 싶지 않을 만큼 작아진 나의 마음을 살살 달래며 스스로에게 작은 대피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되새겼다.


이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야!








방석 위를 뱅글뱅글 돌다 궁둥이부터 들이밀며 조금씩 누울 자리를 만들다 이내 푹 퍼지고 마는 강아지처럼 은근슬쩍 조수석에 앉아 심신의 안락에 다시 길들여져 갈 무렵, 고질병인 엄마의 허리통증이 심해지게 된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허리를 못 쓰게 된 엄마를 조수석에 태우고 강남 어디에 위치해 있다는 병원으로 냅다 차를 몰았다.


세상사 바라보기 나름이라고 운전 젬병에게도 장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초행길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에게는 지난 넉 달을 매일같이 왕복한 아이 등하굣길이나 난생처음 가보는 강남의 병원이나 식은땀이 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진료를 받고 당연히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엄마는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곧바로 입원해서 적어도 3주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내일부터 입원은 안되냐니 오늘부터 입원을 해야 오늘 받은 검사들의 보험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아뿔싸!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픈 엄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혼자서 차를 끌고 집에 갈 일이 암담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내일 3주 치 입원 준비물을 챙겨 오려면 자가운전은 또다시 필수다.


엄마가 없는 3주 동안 아이 등하교도 매일 나 혼자 시켜야 한다. 그거야 말로 정말 문제 중의 문제였다. 혼자 운전을 할 줄 모르니 차가 있으되 무용지물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당장 오늘 하루 급하게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사 엄마에게 전했다. 아이가 하교를 하고도 한참이 지난 뒤라 마음이 급했다.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킨 뒤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사님을 운전석에 태우기로….








당장 다음 날부터 아이 등하교는 물론,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서포트 없이 차를 혼자 몰아야 상황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몸 안의 전투모드 스위치가 켜짐과 동시에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그래, 해보자!
까짓 거!


도착한 기사님은 내 또래의 남자분이었다. 내가 운전을 하기는 하는데 누가 조수석에 있어야만 운전을 할 수 있어서 그러니 같이 가 주실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기사님은 잠깐 당황하다가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부탁을 하면서도 과연 들어줄까, 혹시 운전을 못한다고 화를 내면 어쩌지 별의별 걱정을 다했지만, 기사님은 굉장히 친절하고 또 차분했다. 강남의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복잡한 시내를 지나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운전을 도와주셨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외국인 아내와 아이 둘의 가장으로 살며 외벌이로 생계유지를 위해 퇴근 후에 부업으로 대리기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님.


어쩜 이렇게 운전을 잘 가르쳐주시냐고 묻자 아내가 한국에서 면허를 딸 때 운전연수를 시켜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어쩐지, 초보인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마다 알아서 척척 가르쳐 주시더라니…


운전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부터 문득 두려워질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초보인 나에게 운전대를 맡긴 그네들이 아닌가!


나는 절대 나 같은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옆에 타지 않을 텐데 이 기사님은 도대체 나를 뭘 믿고 덜컥 조수석에 앉아 고속도로를 함께 달린단 말인가! 갑자기 네 식구의 가장인 그분의 생명줄을 잡고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재미있는 차다. 하필 나 혼자 차를 다뤄야 하는 이때에 기름도 바닥이 났다. 최대한 혼자 차를 몰고 해야 할 것들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참에 기사님께 기름도 같이 넣으러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친절한 기사님은 주유소까지 동행해 이런저런 팁도 전수해 줬다.


여전히 주차가 어려웠고, 혼자서 차를 몰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남아 있었다. 그래서 기사님과 집까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1킬로미터도 넘게 걸어 나가야만 하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내 안의 그런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기사님이 매우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아니 운전을 이렇게 잘하시는데 왜 혼자 안 하세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제 도움 필요 없으셨어요. 혼자 잘하셔서. 보통 초보들처럼 망설이거나 쭈뼛거리는 것도 없이 시원시원하게 잘하시던데…. 그냥 지금처럼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용기를 내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을 때의 기분이란! 생각해 보면 내 운전에 대한 총평은 늘 비슷비슷했다. 수동면허를 딸 때에도, 엄마나 아빠가 운전을 봐줄 때에도, 지금 이 기사님도 그렇게 평가한다.


시원시원하게 잘한다!

과감하게 잘한다!



그런데 왜 나는 혼자서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국 답은 하나다. 이건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는 것! 심인성! 그래, 나는 심인성 운전부전인가 보다.








용기를 내 기사님을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드리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집까지 혼자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고 주차도 무사히 마쳤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는 허리를 못 쓰고, 나는 강남까지 초행길을 왕복했다. 하루가 길어도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가니 아이가 뛰어나와 와락 안겼다. 학교가 끝나면 늘 데리러 와주던 엄마와 할머니 없이 혼자 집에 있어보니 낯설었나 보다. 할머니의 입원 소식에 놀라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무사히 도착했노라 알렸다.


그렇게 안부 전화까지 마치고 나니 아침부터 참아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아니고, 나는 왜 운전만 하면 허구한 날 잠이 쏟아질까! 저녁 시간에 엄마 한 명 빠졌을 뿐인데 문득 엄마의 빈자리가 그 존재감을 상기시켰다.


이제는 정말 혼자서 운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내일모레면 사십인데, 아픈 엄마 모시고 언제든 마음 편하게 병원 정도는 다녀오고 싶었다. 입원하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엄마가 필요하다는 짐도 마음껏 싸서 트렁크에 채워 넣고, 매일같이 병문안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아빠가 벌써 60대를 훌쩍 넘었다. 현실적으로 두 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운전대를 잡으실 수 있을까? 계속해서 늙어가실 부모님을 위해 이제는 정말 바통터치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정말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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