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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Dec 05. 2024

우려하던 상황은 늘 현실이 된다

운전 세 달 차

엄마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세 달. 엄마는 이미 진작부터 혼자서 다니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무릎이 아프거나 손발이 덜덜 떨리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운전대를 잡는 것만큼은 정말이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엄마랑 같이 운전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점차 머릿속을 채워가던 7월의 어느 날, 불현듯 오늘은 혼자서 운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오늘이라면 어쩐지 운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 하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면밀히 시간을 계산했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하교 시간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초보인 내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시간을 벌기 위해 차를 융통성 있게 굴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가 딱 나와 있으면 바로 태워서 집으로 오면 되지만 아이가 아직 나오지 않았을 경우, 나는 차를 가지고 어디서, 어떻게 아이를 기다려야 할지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지난 세 달간 아이를 픽업하며 아이가 늦게 나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가는 날이 장날이지 않던가!








수십 번을 오고 간 길이지만 혼자서 운전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출근 차량이 가득한 등굣길보다는 한낮의 하교 시간이 혼자 운전 연습을 하기에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차선을 두 번이나 바꿔야 하는 난코스를 무사히 지나 학교 앞에 다다랐을 때의 안심도 잠깐, 나는 이내 1차 패닉이 왔다.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아이가 그곳에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서둘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럴 때 엄마는 맞은편 아파트 단지 입구에 비스듬히 차를 대고 기다렸건만, 오늘따라 그 자리에는 이미 다른 학원차량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아….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차분히 아이의 학교를 지나 근방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거기도 아파트 단지이니 그 입구에 차를 대고 기다리면 되겠거니, 애써 태연한 척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코너를 돌아 입구를 보고서는, 아뿔싸!


이 아파트 입구는 조금 전 그 아파트와는 다르게 도로와의 거리가 짧았다. 그래서 내가 입구를 막고 서 있으면 다른 차들이 아파트를 드나들 수 없는 구조였다. 아무리 봐도 차를 대면 안될 것 같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나는 어디선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이 도로를 벗어나면 모르는 길이었기 때문에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에서 땀이 나며 손바닥과 손끝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울상으로 차를 비스듬히 대고 비상깜박이를 켰다.


도대체 왜 아이는 하필이면 나 혼자 데리러 오는 이런 날 나오지 않는 걸까! 그래도 아직 아파트를 드나드는 차량이 없으니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시계를 보니 아이가 나오기로 한 시간보다 이미 10분이 더 지나 있었다. 차도 차지만, 이제는 슬슬 아이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상깜박이를 켜놓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양쪽 아파트 단지에서 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아무 차도 없었던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차가 서너 대씩 줄을 지었다. 초 단위로 순식간에 바뀌는 도로 상황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땀이 나기 시작했다. 곧 나도 자리를 비켜줘야 할 텐데 아이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결국 참고 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빠르게 위치를 설명하고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엄마는 듣자마자 나에게 학교 후문 쪽 카페 주차장이나 근처 지인의 집 주차장으로 가라고 했다. 아,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지! 두 곳 모두 내가 운전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있었고, 주차할 자리가 넉넉한 곳이었다. 왜 나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뒤차가 경적을 울리기 전에 서둘러 차를 출발했다. 그리고 사거리 신호를 받아 천천히 학교 후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제발 무사히 나오기만을 바라면서…








카페를 지나 엄마의 지인이 사는 집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냐는 물음에 어디 어디로 나오라 대답을 하고 조심조심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코스였다.


다행히 아이는 야무지게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고, 무사히 아이를 태울 수 있었다. 엄마가 혼자 왔다고 하니 아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엄마가 드디어 해냈구나! 하며 무척 기뻐했다. 시간을 보니 이미 25분이 지나 있었다.


왜 늦었냐고 물어보니 학교 활동 때문에 제비 뽑기를 할 게 있었다고 한다.


아니,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생전 안 하던
제비 뽑기를 한담!



이럴 때 보면 정말 인생이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오늘 심장 떨어지는 고비를 얼마나 많이 넘겼는지 알 턱이 없는 아이는 엄마랑 둘이 집에 간다며 마냥 신나 했다.








집에 도착하니 기운이 쪽 빠졌다. 왕복 6.2킬로미터, 뱅글뱅글 돌았다고 해도 겨우 7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다녀왔을 뿐인데 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다. 그대로 침대에 뻗어 자고 일어나니 4시간이 지나있었다.


45분 동안 고작 7킬로미터를 주행하고 4시간을 뻗어버린 나란 여자… 하, 우째야 쓰까!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다. 무사히 다녀오기는 했으니까. 그래, 이렇게 실력이 느는 거다! 하지만 그날의 성공과는 다르게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혼자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무사히 돌아온 모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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