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갔다. 순간 '앗, 추워'하는 생각과 동시에 팔다리에 소름이 올라왔다. 그리고 미드 '왕좌의 게임' 속 대사가 생각난다.
"윈터 이즈 커밍"
며칠 후 길에서 내 눈앞으로 허연 연기가 지나갔다. 누가 개념 없이 길에서 담배를 피우나 하고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그것이 나의 따뜻한 숨이 외부의 찬 공기와 만나 온도차에 의한 물리적 현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입김이 익숙해질 겨울의 어느 날, 목이 따끔거려 병원을 찾았다. 별거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안심하며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들렀다. 약국에서 약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와 머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물 밖을 어슬렁 거렸다. 그때 내가 내뿜는 입김의 몇 천배나 되는 수증기가 1층의 한 상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매장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증기였다. 찐빵 가게다. 겨울만 되면 시장가에서 허연 수증기를 가득 내뿜던 찐빵 가게가 생각이 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이미 수증기 뒤로 형태만 간신히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카드를 건네고 있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내 찐빵을 데우고 날아가는 수증기를 쳐다봤다. 그 장면이 질량보존의 법칙과 등가교환을 떠올리게 했다. 내 돈과 맞바꾼 찐빵, 그리고 그 찐빵을 데우는 열과 기화해서 날아가는 수증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엔트로피 이론까지 떠오른 순간, 수증기 뒤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주문한 게 나왔나 보다. 수증기가 너무 심해 찐빵이 대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다가 다른 손님이 자기가 주문한 것과 양이 달라서 가게 주인과 얘기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알고 보니 그게 내 찐빵이었다. 그분도 수증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나 보다.
엔트로피고 뭐고 찐빵을 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티브이를 켜고 소파에 앉아 빵을 양손에 잡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먹고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침을 너무 흘렸나 보다. 베어문 빵 끄트머리로 침 한줄기가 찌익 하고 늘어진다. 찐빵 깊은 곳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는지 김이 새어 나왔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빵이 먼저 혀끝에 폭신하게 닿았다. 이내 검고 달달한 앙꼬가 혀 끝에 붙어 춤을 춘다. 씹을수록 단맛이 차오른다. 온몸에 당이 퍼지는 듯한 이 계절만의 느낌이 행복하다. 찐빵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