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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Jun 03. 2023

흔적

문득 올려본 어딘가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땅만 보고 걷던 성격이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렌즈는 주로 만만한 하늘을 향했다. 그게 20년 전이다.

소심한 나에게 하늘은 너무나 훌륭한 피사체였다.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지도,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취미가 직업이 된 지 15년이 되었다. 지금은 인물을 포함한 다양한 피사체를 찍는다. 촬영은 에디터의 사전 섭외 이후에 진행이 되고, 거의 항상 함께 동행을 하기 때문에 나의 소심함이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된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은 정면을 바라보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처음 카메라 잡던 날처럼 밖으로 나와서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봤다. 그때와 달라진 건 '초심'과 좋아진 장비들이다. 다행히 초심은 금방 찾았고, 장비는 초심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맑았던 하늘은 드라마틱하게 날 반겼다. 구름은 변화무쌍했고 태양이 조명을 비추는 것 같았다. 조명을 받은 달 옆으로 인사하듯 비행기가 지나갔고, 그 뒤에 생긴 꼬리구름이 흔적을 남겼다. 비행운이라고도 하는 저 꼬리구름의 생성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제쳐두자. 그저 여기에 흔적을 남긴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오랜만에 올려본 하늘은 20년 전과 같지만 달랐다. 죽기 전에 나의 흔적 같은 사진 한 장 정도는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꼬리구름은 곧 사라지겠지만 사진은 계속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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