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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Feb 08. 2017

[오늘의사람]지역의 역사가 숨쉬는 건축재생

건축재생공방 이의중 대표의 "시간을 존중하는 건축"

 개항 후 생긴 동네로써 바다로 통하는 냇물이 있어 터진개 또는 탁포라고도 불리웠던 곳. 일제강점기 때 은행과 일반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던 번화가였으나 1970년대 이후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곳. 인천 답동성당과 인천 일본제일은행지점, 인천 우체국, 인천문화원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차이나타운에 인접해 있는 그런 동네. 그리고,


"조금은 시간이 더디게 가도 괜찮아서, 변화에 숨을 헐떡이지 않아도 되는 동네."


 건축재생은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골목과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 장소성과 역사성, 그리고 역사적인 생활감을 갖추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한 남자가 본인의 꿈을 시작한 동인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의 건축재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긴 호흡으로 건축재생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의중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의중, 건축가/디자이너


 어린 시절, 건축을 전공하게 될 줄은 몰랐던 그는 건축학과에 진학한 후 4학년이 되었을 무렵, 재개발로 인해 유년시절의 전부를 보냈던 잠실이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을 보고 고쳐쓰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일했으나, 당시 '인테리어 리모델링'이라는 트렌드에 맞추어 'Before & After'가 명확한 건축을 해야 하는 상황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고민 끝에 후배의 추천에 따라 건축재생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교토로 떠난다. 대표적인 고도시(古都市)였던 교토, 그는 스승 문하에서 도제식으로 건축재생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된다. 3년 후,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잠시동안 국토교통부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되고, 이 기간에 다양한 국내의 도시재생 현황과 가능성을 갖춘 장소들을 둘러보는 경험을 한다. 이후, 현재 그가 근거지로 삼고 있는 동인천 지역에 마음을 얹고 건축재생공방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제 1호 재생프로젝트로서 얼음창고를 재생해 <cafe 氷庫(빙고)>를 완성한다. 현재는, 일본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한 아내와 함께 이 공간을 운영하며, 건축재생공방의 대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상투적이지만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한데,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전 노는 거 되게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으레 말하는 나쁜 짓 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냥 공부하는 건 별로 관심이 없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와리가리(공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거리의 게임 중 하나)를 하고 노는게 어린 시절의 낙이었죠. 물론 지금은 대학에 진학하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당시 저는 '꼭 대학 진학을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뭘 하고 살지에 대한 생각도 많지는 않았을 때니까요. 

 그러던 중에, 재미있게도 아버지께서 각각 전기과, 건축과 교수님이신 친구 두 분에게 자문을 구했고 '의중이는 건축과를 보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그래서 시험 보고, 성적에 맞추어 건축과에 가게 됐어요. 

 대학에서도 노는 게 좋았어요. 동기들과 같이 밤새 작업하면서 놀고 학교에서 노는 걸 좋아했죠. 제가 건축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거나- 뭇 사람들이 말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공부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적어도 4학년이 되기 전 까지는요.



4학년 때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잠실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노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고 했으니, 잠실에서 제가 살던 동네가 곧 저의 놀이터였고 떠올리기만 하면 눈에 선한 그런 공간들이 아주 많았어요. 그런데 대학 4학년 때, 그렇게 손때가 묻고 익숙했던 잠실의 곳곳들이 모두 재개발로 일순간 사라져버렸어요. 뭔지 모를 상실감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그 때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게 '내가 이 동네를 정말 사랑했구나. 이 곳은 그야말로 내 역사가 있던 동네였구나'라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그 때부터 고쳐쓰는 것과 보존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졌고 이 관심이 '건축재생'에 대한 공부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건축재생을 지속하지 않고 교토로 건너간 것이죠?

 사실 졸업 이후에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에 있는 사무소에서 일을 했었어요.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당시에 '인테리어 리모델링'이라는 트렌드가 확산되다 보니 제가 생각한 재생의 의미보다는 그저 'Before & After'가 확실히 드러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오히려 고민이 더 깊어졌어요. 그래서, '건축재생'에 집중해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고, 후배의 추천을 받아 대표적인 고도시(古都市)인 교토로 떠나게 된 거에요.



구체적으로 교토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그리고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요?

 기본적으로, 교토는 오래된 고도시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젊은 친구들이 건축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굉장히 잘 어우러져 있다는 감상을 받게 되는 곳이죠. 일단 그럴 수 있는 건 법규/제도를 비롯한 인프라 탓이 클 텐데, 일본은 건축문화재에 대한 보존법들이 한국보다 30년 이상 앞서요. 물론 이와 같은 시스템들이 이제는 한국에도 퍼지고 있는 상태이지만요. 

 어쨌거나 이러한 전통마을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제가 자연스럽게 역사와 시간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서는 건축사를 전공하게 되었죠. 감사하게도 교수님의 지원이 적극적이어서, 교토의 전통마을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었고 유학을 마칠 때 쯤 계산해보니 대략 80여 개의 마을을 돌아다녔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공존이 잘 되는 교토 안에서도 한계를 가진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아예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너무 '보존'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마을 자체가 '박제'가 되어버린 경우이죠. 이러한 공부와 경험을 통해 '내가 해야 할 건축재생은 어떤 방향을 갖춰야 하는지' 그래도 정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건축재생공방을 시작한 것은 아니시죠?

  맞아요.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서, 국토교통부의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도시재생법이라는 게 생겼고, 이를 운영하는 기관에 있었다고 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에요. 자금운용을 LH공사에서 하다가 그 일이 국토연구원으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1년에 꽤 많은 예산이 부서에 주어졌고, 이것들을 어디에 지원하는가 심사하는 게 곧 저의 일이었어요. 이런 일을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도시재생과 관련된 이슈가 있는 동네들을 수 없이 돌아다니게 되었어요. 이 기간에 저는 한국의 지역 곳곳과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갖춘 동네들에 대한 고민을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그 경험을 통해서 발견한 동네가 곧 동인천이었던 건가요? 그 이유도 궁금해요.

 사실, 처음에는 군산이나 대구, 부산 등의 도시도 옵션으로 생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물론 북촌도 생각했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자본이 빠른 속도로 침투하고 동네가 손댈 수 없이 다급히 변하는 것을 보며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죠. 

 동인천을 선택한 건,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제가 어떤 건축을 하고싶은지에 대한 생각과 결합된 결과였어요. 당시 서울의 지대를 부담할 만큼의 자금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동인천은 제가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변화가 느린 동네'였기 때문이었죠. 조금 호흡이 느려도 괜찮을 만한, 긴 시간을 두고 조금씩 고쳐가도 마음이 급하지 않을 만한 그런 동네요.



지금의 카페 氷庫(빙고)를 알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의중아, 이번에 찾은 물건이 굉장히 저렴한데 위치가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어!" 라는 연락을 지인으로부터 받았어요. 일단 찾아갔죠. 보편적인 생각에서는 '굳이 왜 이 건물을 골라?'라고 할 정도로 골목 안으로 들어와야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저는 바로 그 '골목'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좋았고- 결국 선택하게 되었죠. 저는 건축에 있어 건축물 외부의 골목과 거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氷庫(빙고) 역시 골목길까지도 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골목은 사람들의 생활감이 묻어 있는 곳이고, 옆을 바라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장소성을 가지고 남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이죠. 


 이러한 선호(選好)는 재생을 하는 과정에서도 경험하게 되었어요.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제가 이 건물을 100년이 된 '얼음창고'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재생을 시작한 거거든요. 그 사실을 알게된 건, 다름이 아니라 재생을 진행하는 동안 골목길을 오가며 '내가 어릴 때 말이야~' 하며 무용담을 늘어놓으시는 어르신들로부터였어요. 그러던 중에 아직도 이 동네에 사시는 한 할아버지께서 그 옛날 마포나루에서부터 얼음을 썰어 이 공간에 실어 날랐었다며 찾아오셨죠. 그래서 그냥 이름도 그대로 카페 氷庫(빙고)로 정한 거구요. 물론 제 아내는 세련미가 떨어진다고 다른 이름을 권했지만요(웃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국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나 재생사례가 있는지요?

 제가 모든 마을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가능성 있는 곳들은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 하나 꼽아보자면 대구 중구의 북성로가 있겠네요. 직접 가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수 많은 철공소가 있는데 관 차원에서 재개발로 풀어내기보다는 마을 투어나 코스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물론 아직까지도 철공소에서 생업을 유지하며 일하시는 분들도 고스란히 남아계시구요. '시간이 멈춰있다기보다는 지속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 동네라서 인상깊게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서울은 이와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도시재생을 지속할 수 없을까요?

 음... 저는 서울은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재생'이라는 개념은 낙후된 지역에 적용되는 것인데 서울은 이미 개발이 많이 되어있거든요. 혹여 그렇지 않은 지역이 분명 남아있지만 너무 에너지가 막강한 곳이 서울이라서 트렌드에 과하게 민감하고 자본의 흐름이 빨라요. 어떤 획기적인 구조적 변동이 생기지 않는 이상 서울은 당분간 꽤 오랫동안 그런 흐름으로 지속될 거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서울에 필요한 것은, 과도한 자본의 침투와 유입으로 인해 기존에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동네를 떠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안전벨트와 같은 보조적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근거지이신 동인천의 호흡이 좀 느리다고 해도, 언젠가 동네가 주목받게 되면 서울의 지역들과 비슷한 이슈들이 생기기 마련일텐데, 이에 대해 대비하고 계신 게 있나요?

 물론 철옹성 같은 방패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생각들과 고민들을 실질적으로 나누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인천 마을의 여러 주체들이 모여 지금의 걱정과 고민을 나누고 앞으로 찾아올 위기들에 대비하여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여 힘을 합칠 수 있을지 모임을 가지고 있어요. 물질적으로는 정기적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우리가 위기상황에 닥쳤을 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힘을 낼 수 있을지'꾸준히 이야기해보는 것이죠. 이따금 적잖은 케이스가 '도시재생'을 빙자하여 관에서 건물을 먼저 지어놓고는 주민들에게 알아서 활용해보라는 식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사실 이와 같은 접근은 분란을 키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지금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이야기를 아카이빙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여 소소한 모임을 가지고 있어요.



한 인터뷰를 보면, '도시는 매력적이어야지 곧 경쟁력이 있고,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매력적인 도시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역사와 문화를 배제하고, 장소성을 배제한 채 지금처럼 획일화된 부가가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어떻게 이야기거리들을 유지할 수 있게 발굴하고 연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트렌드를 타고 '소비'에만 초점이 맞춰진 상업적인 '정크 아키텍처(Junk Architecture)'처럼 그저 물질적으로 건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결부하여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느냐가 그 기준이 될 거에요. 상업적인 이용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 공간과 저 건물이 후대에 이르러서도 충분한 기능을 해낼 수 있는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담긴 장소들이 많은 도시가 곧 매력있는 도시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것을 정리해서 '역사적인 생활감'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건물도 건물이지만, 우리 모두 사회의 한 개체로써 흘려보내는 시간은 모두 역사이고, 이 역사들을 담아내느 것이 곧 도시이니까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에 매력적인 도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철학을 가진 이의중 대표님과 건축재생공방의 활동을 통해 기대하고 계신 변화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도시재생과 건축에 대한 저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삶에 있어서 '제가 일구어나가고자 하는 건축작업'에 상대적인 변화의 초점이 더 맞춰져 있어요. 한국에는 메이저 건설사들이 주도권을 크게 잡고 있고, 중소 혹은 영세 건축사무소들은 굉장히 소외받는 상황이죠. 하지만, 소규모의 설계사무실이나 조금 마이너한 씬이더라도 고민이 깊은 건축가/디자이너들이 설 자리가 생기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났으면 해요. 저는 작게나마 건축재생공방이 그 다양성 중의 하나로 위치했으면 좋겠고, 다양헌 철학을 가진 능력있는 주체들이 많아지는 데 일조하는 게 곧 저와, 건축재생공방의 역할이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20년- 30년이 지나도 저는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건축디자인이라는 일은 나이를 먹으면 지속하기 힘든 분야이지만, 저의 스승님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건물을 고쳐 쓰거나 마을을 재생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행 제시하는 일을 할 수도 있겠고, 저와 같이 작은 고민들을 하는 후배들을 양성해서 본인의 철학에 따라 spin-off하여 작업을 지속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겠죠.


이의중 대표님과 건축재생공방은, 현재 시점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계신가요?

 동인천에서 출발한 '루비레코드'라는 음반사가 있어요. 몽키즈, 피터팬컴플렉스, 김반장과 윈디시티 등의 팀이 소속되었거나, 소속되어 있는 곳이죠. 인천에서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지역 내 소규모 주체들이 '사운드바운드(SOUND-BOUND)'라는 이벤트를 갖는데, 이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는 곳이에요. 더불어, 물질적으로 신포동은 인천항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래 전에 성업하던 작은 여인숙/여관이 남아있기도 해요. 현재 건축재생공방X루비레코드XAnd so on. 형태의 프로젝트로서 재생작업을 시작한 상태에요. 재생이 완료되면 놀러오셔도 즐거울 것 같네요(웃음).


 더불어, 인천대학교와 함께 차이나타운 내에 있는 회의청을 재생할 계획에 있어요. 사실 굉장히 오래 전부터 차이나타운에는 화교 문화가 자리잡아오고 있는데, 본인들도 본인들의 역사를 잘 모르게 될 만큼 차이나타운은 외부와 단절된 채 하나의 독립된 지역처럼 여겨져 왔죠. 그래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차이나타운 내의 회의청 건물을 재생하여 지역 내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고쳐내보려 해요. 한국에서 차이나타운이 그저 '자장면'이나 '중국음식'으로만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를 영위해 온 시간이 담긴 공간임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도시'의 정의, 혹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말 어렵고도 계속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네요. 음, 막연히 이야기를 하면 너무 중언부언일 것 같고, 제가 생각하는 '도시'의 개념부터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도시라는 것은 곧,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행위와 사고를 효율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 일정 지역 내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안에는 역사와 문화, 다양한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며 살아가죠. 문제는, 이 '도시'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남아 영위된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처럼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도시를 망가뜨리고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지양하는 게 좋겠죠. 어떻게 하면 시간을 담아온 도시가 잘 유지될 수 있을지, 잘 쓰고 남겨둘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요. 전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고민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큰 태양이 몇 개 있는 것 보다는, 작은 이야기를 담은 별빛들이 은하수처럼 시간을 밝힐 수 있는 게 훨씬 더 밝고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만남을 마치며


 그는 종종 '아직 이렇다할 게 없는데', '다른 훌륭한 일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건축과 마을, 그리고 도시에 대한 그의 때묻지 않은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졌고,  세간에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겉치레 뿐인 겸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했다. 어쩌면 으레 화려하고 '새 것 냄새가 충만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경탄을 느끼는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대단치 않아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을 오래 두고 보기 힘들어하듯 건축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옷은 오래 입을 수 있고 시간에 따른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 무릇, 그가 생각하는 '역사적 생활감이 있는 공간, 그리고 도시'는 어쩌면 그 자리에서 사람과 역사의 희로애락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받아 안을 줄 아는 오랜 친구같은 곳이 아닐까.   - fin -





기획 · 진행ㅣ권용직 오늘살롱 프로그램 매니저

일시ㅣ2017.02.07 (화) 19:30 ~

장소ㅣ오늘살롱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2길 29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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