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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Feb 17. 2017

[오늘의솔루션]도시재생도 가지가지다. - 2

도시재생 혁신사례 : (2)공공참여 - Beamish Museum



[오늘의솔루션]도시재생도 가지가지다. - 1 

https://brunch.co.kr/@rootimpact/16










Solution 2. 공공참여를 통한 혁신사례

"Beamish Museum"(in Durham)

: 버려진 도시, 시민참여를 통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다.










- 영국 더럼, 무엇이 문제였길래 -


 

 역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국가로써 석탄산업의 근간인 광업이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주요 도시지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영국의 더럼과 이에 소속된 더럼 역시 1990년 12월까지 광산시설이 운영되었던 곳으로써 영국 내의 대표적인 광업도시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석탄산업의 자연스러운 쇠퇴로 폐광에 이르게 되었고, 이 지역은 산업기반의 약화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더럼은 런던과는 지리적으로 꽤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산업혁명이 마중물로 여겨지던 지방도시였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동은 그만큼 큰 리스크를 안겨줄 수 밖에 없었다.





- 혜성처럼 나타난 더럼의 인재, 프랭크 앳킨슨(Frank Atkinson) -



 이번 편에서 상세히 이야기해보려 하는 더럼의 비미쉬 뮤지엄(Beamish Museum) 재생사례는 얼마 전 2014년에 운명을 달리한 더럼의 프랭크 앳킨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도 역시 코크스 공장의 노동자였으나, 지역 역사와 박물관에 관심이 워낙 컸던 터라 주말과 휴일을 모두 웨이크필드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보냈었다고 한다. 결국 그 결과 박물관 보조원으로 취업하게 되면서, 결국 25세에 웨이크필드뮤지엄의 디렉터가 되는 성과를 이뤄낸다(당시, 영국 최연소 박물관 디렉터였다고 하니- 좋아하는 일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프랭크는 1958년, 더럼의 버나드 성에 위치한 보위 뮤지엄의 관장으로 지원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일상성을 담는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구상 단계였겠지만, 프랭크는 새로운 박물관은 곧 '일상적인 물건과 자료를 수집하는 정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1966년, 지역 기관을 통해 박물관을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기관에서는 실질적으로 프랭크의 주도하에 운영할 수 있는 조직을 신설해주었다. 프랭크는 자연스럽게 비미쉬 뮤지엄을 기획하기 위한 고문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지역의 산업과 농촌에 관련된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을 비전으로 설정한다. 


 결국 1971년, 비미쉬 홀에서 열리는 "Making in Museum"을 공개하는 입문 전시회가 열리면서 첫 해에 이어 1972년 비미쉬 뮤지엄에는 무려 5만 명 이상의 유료 방문자가 몰려드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렇게 비미쉬 뮤지엄은 A부터 Z까지 프랭크 앳킨슨이라는 지역의 인재가 아이디에이션과 기획, 운영을 총괄했으며 1987년 그가 은퇴한 후 <올해의 유럽 박물관>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는다.





-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비미쉬 뮤지엄만의 아이디어 -


 영어로 된 문장이 나열된 그림을 보여주겠다(프랭크 앳킨슨은 영국 사람이라 영어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먼저, "You offer it, We'll collect it(당신이 내어만 주면, 우리가 수집할게요)"은 곧 비미쉬 뮤지엄의 슬로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역의 역사성과 생활감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수집대상에 대한 가치판단 대신에, 상대적으로 훨씬 더 확장된 시각에서 자료를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곧, 바꿔 말하면 "Non-Collective Gathering(비선택적 수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너무 무분별한 수집 아니야 그러면?!


 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 프랭크는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비미쉬는 원래 그렇게 수집하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박물관' 하면 한정된 공간 안에 특정 테마를 공유하는 각종 자료들이 전시된 형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나, 비미쉬 뮤지엄은 위에서 간략히 언급했듯 지역 전체(Local Area)를 박물관화하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에 아무리 잡다한 생활소품이라도 더럼, 그리고 비미쉬 지역의 역사적 생활감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모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건물, 기계, 물건 및 산업 발전과 영국 북부지역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정보를 연구, 수집, 보존하게 되었고, 결국 약 40여만 평의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비미쉬 박물관은 마침내 "과거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목표를 이루어내고 만다. 


 이 길고 지난한, 쉬워 보이지만 끈기와 근성이 없다면 하기 힘들었을 수집을 지속하면서도 잃지 않았던 철학은 곧 '무언가를 새로 건축하거나 없애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활용한다', '가능한 한 신속하고 큰 규모로 수집 가능한 모든 것들을 모아낸다' 였다. 






- 그래서, 비미쉬 뮤지엄은 -


 프랭크 앳킨슨의 당차고도 근성있는 이 프로젝트는, 당초 그가 예상했던 만큼의 양을 훨씬 뛰어넘는 물품을 수집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물론이고, 평생을 더럼에서 산 노인들조차 신기해 할 정도로 창고에 처박아두었거나 사라졌던 자료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것이다. 본인도 무엇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창고를 열어 수백 점을 기증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프랭크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고, 한결같은 그의 열정과 박물관의 가치를 인정한 지역 기업 및 개인들의 자금 후원도 이어졌다. 더불어, 영국의 공공기관인 생활기록협회가 영국 탄광지역을 대표하는 더럼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프랭크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물심양면으로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고무적인 성과였다.


 비미쉬 뮤지엄은 1820년부터 1950년까지의 생활상을 10년 단위로 꾸며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다음의 두 시기가 가장 대표적인 컨셉으로 운영되고 잇다.



컨셉 1. 1820년대 고지대 농장 

더럼 지역의 고지대 농장 구역 역시 여러 가지 건물과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Georgian Coachin' Inn은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비미쉬 박물관의 모든 장소와 공간이 그러하듯이 여행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이름 그대로 '숙박'의 기능을 담당한다. 다만 이 곳에서 묵는 여행자들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자연스레 느끼게 될 만큼 모든 소품과 방의 구조, 운영방식이 1950년대에 머물러있다. 당연히, 비미쉬 뮤지엄 홈페이지에서 방문 및 숙박 예약도 진행할 수 있다. 




컨셉 2. 1950년대 도시의 생활상 재현

 이 구역은 주택과 상점, 카페, 영화관, 경찰서 및 레크리에이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덜랜드 Ryhope의 전기 그랜드 시네마가 기증되어 과거 영화관의 영광을 회복한 장소, 광부들의 자금 지원을 통해 더럼 카운티의 Leeholme에서 문을 열어 1950년대 광부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 치매노인과 그 가족 및 간병인들을 위한 센터로서 만들어진 공간, 미들스브로의 Bowe Street으로부터 재구성된 상점 등.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가장 상징적인 것은 1950년대에 운영되었던 트롤리 버스 시스템인데, 당시에 더럼 지역을 오갔던 버스를 그대로 보수/수리하여 방문자들과 지역 주민들을 실제로 운송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 그렇다고, 프랭크가 혼자서 한 일은 아니다 -


 

 비미쉬 뮤지엄으로 더럼 지역이 재생에 성공하게 된 요인을 따져볼 때, 프랭크 앳킨슨은 찬양에 찬양을 거듭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40만 평에 이르는 지역을 박물관으로 바꿔낼 수는 없었을 터. 어쩌면 아이디어는 프랭크가 냈지만 이를 가능케 했던 건 그의 진심을 알아본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때문이었을 거다. 


 박물관 운영 구조 상, 비미쉬 지역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박물관은 비미쉬 재단을 통해 운영되는데, 중앙 및 지방정부는 재단의 운영위원회 내의 위원을 통해서만 의견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관의 참여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Bottom-Up 방식으로, 자원봉사자로서의 지역주민이 대거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게는 약 300명의 지역 자원봉사자가 비미쉬 박물관에서 노동을 통해 종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미쉬 박물관은 곧 '주민이 직접 만들어가는 지역 대표 브랜드'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독특한 브랜드로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처럼 주민이 마을 공동의 재산인 박물관을 운영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시설을  통한 수익은 다시 박물관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 콘텐츠 개발에 쓰이게 된다. 곧, 지속적 투자를 통해 더욱 발전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수 많은 관광객 유치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마치며 : 체인지메이커, 공공기관, 주민참여의 삼박자를 꿈꾸며 -




  도시재생에 대한 혁신사례 공유의 3연속 시리즈 중에서 가장 주민들의 참여가 도드라지는 사례이기에 제목을 "공공참여를 통한 도시재생 사례"로 붙였지만, 사실 이 사례가 가장 부러움을 사게 되는 이유는 현재를 살고 있는 수많은 주체들이 정말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협력이 성공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장소와 지역 그리고 도시(나아가 지구까지도)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시간과 역사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점유한 공간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지역'을 재생해나간다는 것은 과히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고, 공동의 아이디어 및 자발적 참여와 더불어 시스템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이 없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프랭크 앳킨슨은 이와 같은 성과가 가능하도록 불을 당긴 체인지메이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결국 "함께 살아가는 모두의 아이디어"로 현실화될 수 있도록 인정하고 노력한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의 가치에 대한 보존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한 영국의 생활기록협회, 비미쉬 재단 내 지역 홍보팀의 노력은 어쩌면 '실행'의 단계에서 초기의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던 것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이상적인 상황을 표현할 만한 가장 적절한 단어로 2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트리니티(Trinity, 삼위일체)."






리서치ㅣ정리 : 권용직 오늘살롱 프로그램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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