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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Jan 26. 2017

[오늘의사람]올레길에서 배우는 지역재생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서슬퍼런 부조리와 불합리의 독재정권 시절을 지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한 순간에 '제주에 길을 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사단법인 제주올레(이하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그녀가 삶의 여정을 걸어오는 데 있어 선택과 결정을 내렸던 수 많은 에피소드들과, 제주올레를 설립하게 된 계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녀는 여타 사진에서 보던 바와 마찬가지로 수수한 분위기의 패딩, 걷기에 최적화된 바지와 신발을 신고는 어림잡아 한 손으로는 들기 힘들어 보이는 백팩을 거뜬히 메고 나타났다. 추위를 뚫고 선뜻 함께해준 서명숙 이사장을 성수동의 오늘살롱에서 만났다. 






사진제공 : 조선일보


서명숙

출생 : 1957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소속 : 사단법인 제주 올레 이사장

학력 : 고려대학교 교육학 학사

경력 - 제주 올레 이사장

        - 시사IN 편집위원 

        - ~2005 오마이뉴스 편집국 국장







 




유년시절부터 이사장님은 어떤아이, 혹은 학생이었나요?

  린 시절, 저희 어머니는 서귀포시에서 '서명숙 상회'라는 마트를 운영하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마치 마을에 있는 '이*트'와 같은 곳이었죠. 하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서명숙 상회의 딸 서명숙'이라고 불리는 게 어린 마음에 참 싫었고, 제주를 떠나 대학 진학을 하면서 '와! 해방이다!'하는 생각도 가졌어요.

 성격적으로, 어릴 때에는 욕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책과 영화를 엄청 좋아했는데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것 말고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별명이 '간새다리(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였어요(웃음). 취미나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참 동작이 굼뜨고, 집에서 소설책에만 빠져서 학교 숙제는 뒷전이었죠. 그렇게 일상적으로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학교 성적은 이상하리만치 좋았어요. 한참 지난 이야기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여자아이가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에 진학했으니, 동네에서의 기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좋아하는 일은 한 없이 파고들고, 싫어하는 일은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였던 것으로 정리가 되네요.
그러면,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건가요?!

   우여곡절이 많았죠.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이신 분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대학 시절은 정말 정치적인 암흑기였어요. 저는 입학 당시에는 소위 말하는 '학생운동'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학교의 신문사(고대신문)에서 활동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물론 중학생 시절에 읽게 된 '기자세계를 담은 책'을 접하고 나서 막연히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바로 언론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당시에는 제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 없을 정도로 탄압이 심했고, 그래서 직업적으로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압제와 부조리에 그대로 편승하겠다는 말로 치환되어 이해되는 분위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대학 재학 시절 4학년 때에 투옥을 경험하게 되었고 고향에서는 다들 저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어요. 돌아보면, 어머니 마음은 어땠겠어요. 요즘 어머니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딸자식 잘 키워서 서울로 대학 보내놨더니 이 지경이 되어서 돌아왔구나' 하는 실망감도 물론 크셨을 거라 생각해요. 저에겐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가 상처를 받으시게 된 것이 정말 마음에 걸렸어요.


제주는 4.3 사건으로 인해
사회부조리와 불합리함에
저항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컸어요.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대학시절을 보냈으니,
어머니는 정말 걱정이 많으셨죠.



  (이어서)

  조금씩 제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도 눈에 띄기 시작했고, 저는 어린 시절 생각해왔던 '기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실행에 옮겨도 될 만 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월간마당에서 언론인의 길에 발을 들였고, 시사저널, 오마이뉴스를 거치게 된 것이죠. 정말 미친듯이 일했어요. 오죽하면 제 기자시절 별명이 마녀(마감을 재촉하는 여자), 왕뚜껑(뚜껑이 잘 열린다는, 즉 화를 잘 낸다며 얻게 됨)이었겠어요. 


  사실 특종이라는 게 매일 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무진 애를 써서 운과 함께 얻게 되는 것인데, 저는 용납이 잘 안 되었어요. 정말 다른 언론사에서 특종 기사가 나오면 질투심에 배가 아파서 소화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웃음). 다 지나고 나서 깨달은 바인데, 저는 유능한 선배였을지는 몰라도 좋은 선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니 그럼, 그렇게나 열정을 다 바쳤던 언론인의 길을 접고
왜 한 순간에 제주에서 길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신 거죠?

  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살았으니 제 몸과 마음이 어땠겠어요?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가 사랑해서 시작한 기자라는 직업이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웬만한 사건에는 리액션도 잘 안 될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채찍질을 하며 살았던 탓인지 약 1개월 간 우울증에, 컨디션 난조에... 아무튼 온갖 안 좋은 생각은 다 하게 되더라구요. 

  병원에 가니까 병명은 없대요. 정말 미칠 노릇이었죠. 뭔가 원인이라도 있으면 고치겠는데 그것도 아니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운동이라도 좀 해 보는 거였는데, 어릴때 제 별명이 뭐라고 했어요? '간새다리'라고 했잖아요. 운동을 좋아할 리가 없었죠. 저한텐 가장 품을 안 들이고 시작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걷기'였어요. 준비물도 필요 없고, 내 몸뚱이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심지어 밖에 나가기가 귀찮으면 집에서도 걸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저도 모르게 이 '걷기'에 중독이 되었어요. 중독이라는 게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는 지 혹시 아세요? 딱 세 가지예요. 안 하면 스트레스 받고, 하고 있으면 너무 좋고, 더 많이, 강도 높게 하고 싶어지는거죠. 




맞아요. 저도 자전거 타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한창 좋을 때는 자전거 타려고 밖에 나갈 정도라 이해가 잘 되네요.
아, 그렇다면 '더 강한걸 원해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신 건가요?

  ~답! 바로 그거에요(눈을 빛내며). 아니, 걷는 게 너무 좋아서 더 빡센 걷기를 찾다보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게 있는 거예요! 그 때는 지금처럼 산티아고가 한국 사람들한테 유명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정보만으로도 별천지였죠. 몇십 일을 계속 걸을 수 있다니, 걷기에 중독된 저에게는 얼마나 설레는 소식이었겠어요.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3년을 키워오다가, 더 늦기전에(그리고, 사랑해왔던 기자라는 직업이 싫어지기 전에) 빨리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죠.

  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이야기한 바이지만, 순례길 여행 중에 만난 영국인 친구가 저의 '길내기 커리어'에 큰 역할을 했어요(그녀는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친구가 '한국에야말로 이런 길이 필요하다, 당신이 길을 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일화도 참 큰 역할을 했지만, 더불어 저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특색이 있지만 '어?! 이런 길이 제주에 있으면 훨씬 더 아름답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죠. 이미 한국에 충분히 걷기 좋은 지역이 있는데, 왜 우리는 걷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단순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럼 길을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에요.




처음에 반대에도 많이 부딪혔고, 지역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어떻게 극복하신거예요?

  의 사랑하는 친동생, 동철이(서동철 氏)와 그 후배들의 힘이 컸어요. 제주에서 나고 쭉 자랐던 제 동생은 여기 저기 지역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게다가 지역 관련 역사를 모조리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진 '막연히 길을 내겠다'는 아이디어에 인문학적인 토대를 덧씌워준 것이죠.  

  어쩌면 초기 제주올레가 꼬닥꼬닥 발전할 수 있게 해 준 일등공신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지역주민들과 상인들, 정치인들의 반대여론도 있었지만 꾸준히 지치지 않고 발로 뛰고 길을 내는 모습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또 올레길을 통해 제주의 곳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지게 되니까, 결국에는 '왜 올레길이 우리 동네는 안 지나가느냐'는 서운함을 표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죠.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은
아직까지도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제주에 이런 길이 있다면
훨씬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길을 내는 데에는
제 친동생의 역할이 굉장히 컸죠.





길을 내는 것에 있어서 이사장님의 철학이자, 제주올레의 철학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엇인지궁금해요.

  칙은 딱 세 가지에요. 

  하나, 원래 있던 길을 찾아낸다
  둘, 길이었으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막힌 길은 다시 불러낸다.
  셋, 그래도 길이 없으면 밑으로 내려가서 바닷가를 통해 걷게 하거나, 산길로 우회하게 한다.

  자 이 세 가지 원칙의 공통점은 바로 '인위적으로 길을 깔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제주는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요. 그렇기 때문에 제주인 것이고 사실 이와 같은 철학은 그 어느 지역이든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개발과 발전을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투입해야 하고 그게 곧 성과라고 이해하는 거예요. 그리고 투입 대비 산출을 높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죠. 저는 그런것들이 오히려 비효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지역재생과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려고 제주올레를 만든 건 절대 아니에요.





사실 제주올레는 걷기 문화의 혁신과 더불어 이상적인 모델의 지역재생 및 커뮤니티 활성화 모델인데,
오히려 후자를 강하게 의도하신 것은 아니군요?

  저, 저처럼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눈코 뜰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내 나라의 사람들이 제주에 올 때 만큼이라도 여유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 목표를 정하고 쉼 없이 달리는 '힘든여행'은 이제 좀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산을 사랑한다면서 휘리릭 정상에 올라갔다가 휘리릭 내려오는 사람들, 여행을 좋아한다면서 스마트폰 지도만 쳐다보고 걷는 사람들이 저는 안타까웠어요. 여행은 휴식이잖아요. 즐기는 거고요. 걷다가 힘들면 올레길에서 벗어나서 쉬기도 하고, 좀 지루하면 앉아서 풍경도 감상하고. 그게 여행이죠.
 
  제주올레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고, 그게 목적의 전부였어요. 물론 예상치 못하게 부수적인 효과가 크다고 평가해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항상 좋은 면만 있겠어요? 길을 내고 만들었으니, 책임질 부분도 분명히 보여요.




책임질 부분이라면, 어떤 것들을 의미하시는 건가요?

  는 그대로 말하자면, 사실 제주올레가 제주의 땅값을 올리려고 만들어진건 아닌데도 불구하고 본래의 목적과 달리 돈을 좇아 어떻게든 수입을 올리는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에요. 물론 아무 의도도 하지 않았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라 길을 낸 장본인으로써 책임을 보일 부분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미모'라는 걸 만들어서 모임을 가지고 있어요. 미모가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구요(웃음) '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뜻이에요.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는 두고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외부적인 요인들에 대해 미리 예방하고 대응하자는 취지에요. 거대 리조트단지가 들어서서 제주의 본 모습을 해치는 사례들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요.




'자연스러움'이 선물한 커뮤니티, 그리고 걷기 문화의 혁신- 
제주올레로 인해 변화한 것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미 올레길은 모두 완성되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실 그 모습들은 이미 실행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주올레가 지점과 지점을 선으로 엮어내는 '올레길'로 표현되었다면 이제는 마을과 마을을 '면'으로 엮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해요. 지역 부녀회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축제 기간에는 지역의 특산물을 그대로 활용한 먹거리축제를 여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죠.  제주올레는 '제주를 찾아오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제주를 만들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중요하니까요. '우리 마을도 특색있는 컨텐츠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는 것'에 날개를 달아주고, 이를 마음껏 뽐내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두 번째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우수한 환경·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에 제주올레를 도입하는 거예요. 이미 규슈올레가 성공리에 벤치마킹되었고, 지금은 몽골올레도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특정 관광지에만 집중되어 홍보되는 것을 지양하고 지역에 숨겨진 여러 곳들로 사람들의 걸음이 닿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제주올레에 처음 길을 낼 때의 철학과 항상 맞닿아 있어요.







사진제공 : 사단법인 제주올레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 '가슴이 뛰는 것'을 좇아왔다는 서명숙 이사장의 말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그녀는 본인이 '하고 싶다고 믿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치열하게 실질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그녀가 좋아하고 사랑한 것이 '걷기'라는 점,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한국의 '제주'라는 점, 그녀가 지역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게 참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길 위에 있으면 결코 앞만 볼 수가 없게 되는 그런 자연스러움을 2시간 내내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획·진행 ㅣ권용직 오늘살롱 프로그램 매니저

일시 ㅣ 2017.01.10(화) 19:30~

장소 ㅣ 오늘살롱(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29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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