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 | 조소담 대표, 주성철 편집장, 황효진 칼럼니스트
루트임팩트는 여성의 날 주간을 맞이하여, 2018년 3월 10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제 2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사라진 여성들을 찾아서>를 열어 여러 체인지메이커와 함께 여성의 일과 삶, 배움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일상의 삶 속 성역할에 대한 무의식적인 학습이 일의 선택과 지속에 영향을 줍니다. 성별을 떠나, 보다 통합적 관점으로 여성의 일과 삶, 배움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미투, 경력단절, 성평등 격차 등의 이슈가 부각되고 다양한 의견이 모아지는 지금, 루트임팩트는 즉각적 혹은 단편적 대안의 제시보다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통해 모두에게 유의미한 질문이 만들어 지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체인지메이커의 지속가능한 여정에 힘을 싣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제 2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를 글로 담아 공유합니다.
진행자 : 루트임팩트 권용직 매니저
토론자 : 주성철 씨네21 편집장, 황효진 칼럼니스트, 조소담 닷스페이스 대표
우리의 삶이 투영되는 매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 안에 큰 영향을 주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위험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양날의 칼인 매체는 현재 여성을 어떻게 투영하고 있을까요? 다음 토론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패널 토론에서는 영화가 그리는 여성, 제작 과정 속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 주실 씨네21의 주성철 편집장님, 대중문화계에 여성 제작자가 없는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씀해주실 전 ize의 황효진 칼럼니스트님, 여성을 비롯한 여러 이슈를 기존 매체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닷페이스의 조소담 대표님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1시간 동안의 패널토론이 모두 궁금하시다면 (클릭/Youtube)
권용직 : 안녕하세요, 루트임팩트의 권용직입니다. 세 분의 패널들이 각각 영화, 대중매체, 뉴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실 텐데, 라이프 세션을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실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이, 여성의 일과 삶, 그리고 배움이라는 게 무 자르듯이 딱딱 끊어지지는 않더라구요. 하지만 문화/예술 콘텐츠들이나 미디어가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마지막 패널 토론에 세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권용직 : 그러면 지금까지 패널토론 진행하던 방식과 유사하게 주성철 편집장님부터 소개와 함께 각자 대표하고 계신 ‘카테고리’에서 여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아주 서서히 변화하는 단계
주성철 : 안녕하세요, 저는 씨네21편집장 주성철입니다. 블랙팬서 많이 보셨죠? 블랙팬서 촬영감독이 누군지 아시나요? 레이첼 모리슨이라는 감독이고, 여성 감독입니다. 이 감독은 최근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머드 바운드>라는 작품으로 촬영감독상 후보로 지명이 되었습니다. 수상은 못했지만요. 그게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촬영 감독이 노미네이트된 사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감독은 누굴까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인데요. 그것도 <허트 로커>라는 작품으로 2010년에 처음 받은 겁니다. 여성 스탭과 여성 감독이 무려 2010년 대 들어서야 이렇게 겨우 첫 번째로 감독상을 받고 후보로도 처음 지명된다는 사실을 접하고나서 저도 굉장히 놀랬습니다. 하지만 해외건 한국이건 이런 식으로라도 영화산업계 안에서 변화가 좀 시작됐다는 이야기로 제가 먼저 운을 띄워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주류 미디어에게 여성은 여전히 주변인
황효진 : 엔터테인먼트를 주로 다루는 웹진 ize에서 기자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황효진이라고 합니다. 영화에 대해 말씀 해주셨는데 제가 보기에 방송 쪽은 아직까지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이 예전에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무한걸스>, <여걸식스>, <영웅호걸>처럼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이 예전에는 좀 있긴 있었거든요.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 중에서는 기존에 있던 남성 위주 프로그램의 스핀오프 격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기는 했지만요.
최근에 온스타일 같은 채널에서 방영했던 <바디 액추얼리>나 <뜨거운 사이다>같은 여성 위주 프로그램도 잠깐 방영을 하다가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니까 굉장히 빨리 종영을 했어요. 지금 송은이씨를 중심으로 한 '셀럽파이브' 같은 여성 예능인들이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기 시작한 이유는 여성들이 티비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서사에 굉장히 목이 말라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송은이씨나 셀럽파이브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도 티비 안에서 여성 예능인이나 전문가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알쓸신잡> 같이 전문적인 지식을 말하는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전부 다 남성이거든요. 최근에 파일럿으로 방송했다가 이제 정규로 편성된 MBC의 <판결의 온도>라는 법 관련 전문 프로그램에서도 패널이 전부다 남성이더라구요. 예능이나 시사교양 할 것 없이 다 아직까지도 남성 출연자 위주인 상황입니다. 또 얼마 전에 KBS에서 방영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라는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시즌2까지 방송을 하기는 했지만, 시즌2 같은 경우에는 아예 걸그룹 만들기가 그 프로그램의 전체 미션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걸그룹이 한국 방송에서 어떤 식으로 소비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여성들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작용했고, 또 눈요깃거리로 소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여성이 TV에 등장 하려면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하는 어머님들처럼 남성의 가족으로 등장을 하거나 아니면 걸그룹처럼 굉장히 어리고 예뻐야 하죠.
그러면 다른 여성 방송인들도 송은이씨처럼 본인의 길을 개척하면 되는 거 아니냐, TV 프로그램 말고도 요새는 웹이나 SNS를 통해 얼마든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사실 기존 주류 미디어판을 전부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성에게 “다른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을 선택하면 되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소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들은 웹을 선택하든 방송을 선택하든 다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반면 여성들은 주류 미디어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다른 매체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내가 절망하는 그곳에 우리가 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네요
조소담 : '우리에겐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닷페이스라는 미디어를 만든 조소담이라고 합니다. 닷페이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상식들을 다루면서 그주장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까지 지향하는 미디어에요. 저희가 다루고 있는 카테고리 중에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인데요. 처음에 카테고리를 설정할 때, '10년 후에도 내가 굳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사회에 변화가 필요한 지점들이 어디가 있을까 고민을 해보다가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가 선정되었습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에 집회에 다녀왔고, 집회 현장에서 발언했던 것들을 영상으로 내보냈는데요. 아까 여기 세션을 올라오기 전에 그게 계속 생각이 났는데 딱 첫 마디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우리는 늘 이런 일을 겪고 있었다고. 그리고나서 다른 분들의 발언이 이어지는데, 집회하신 분들이 공통 구호로 삼은 것이 있어요. "우리가 여기있다. 너를 위해 여기 있다. 내가 너와 나를 위해 여기에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계속 말할것이다'라고 외치시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예전에 미성년자에게 성매수를 제안하는 남자들(가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펀딩 프로젝트에서 사용했던 태그가 '내가 절망하는 그곳에 우리가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라는 태그를 가지고 운동을 했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저희가 해왔던 이야기들이 함께 겹치면서 요즘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권용직 : 여성들이 혼란을 느낄만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 같은데요.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에 가로막혀야 할까요? 왜 그나마 있던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들마저도 사라지는 이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 걸까요? 미디어가 바라보는 여성들은 왜 태생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황효진 : 방송국 구조를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에 제작PD 위에 CP가 있고, 그 위에 예능국장이나 시사교양국장과 같은 국장들이이 있고, 또 그 위에 방송국 국장이나 사장 같은 직급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다 남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여성 제작PD와 여성 작가가 페미니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거나 아니면 여성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고 아이템을 꺼내면 CP급에서 그것을 거절한다고 해요.왜냐하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그다지 중요한 의제가 아니고, 그것을 방송으로 제작 했을 때 별로 반응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을 하기도 하며, 그저 본인이 그 주제를 굉장히 불편하기도 하니까요. 몇 달 전에 EBS의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거기에서 은하선씨라는 분이 바이섹슈얼이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목소리르 굉장히 많이 내시는 분이었는데, 그것이 웹상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니까 CP가 그냥 다른 이유를 들어서 은하선씨를 강제하차를 시키고 결국에는 이 프로그램 조차도 폐지가 됐어요.
이런 식으로 여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금새 사라지는 이유가 '윗분'들인 남성들이 이런 프로그램의 의미를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지금 시대적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까지 모르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보니까 방송국 역시도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이보기 불편한 프로그램이나 페미니즘적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들을 관성적으로 제작하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TV컨텐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여성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TV 앞을 떠나고 있죠. 아직까지 방송사들만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방송사에서는 여기에 굳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 것이 어쨌든 젊은 세대들은 보통 닷페이스 같은 웹 컨텐츠 쪽으로 많이 옮겨가거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많이 이용하고 있잖아요? TV 충성도가 높은 층은 중장년층이다보니까 오히려 시대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도 그분들이 좋아하는 컨텐츠를 옛날 방식대로 만들어가면 되는거에요. <나혼자산다> 같은 프로그램도 처음 출발은 1인 가구들이 어떻게 혼자서 잘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지금은 기안84씨와 박나래씨를 억지로 커플로 연결하려고 하는 것처럼 약간은 <우리 결혼했어요>나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는 <미운우리새끼>처럼 중장년층들이 조금 더 보고싶어하는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돌 산업 얘기도 잠깐 하자면, 작년부터 올해까지 올해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는데 작년 같은 경우에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가 아니라 애교에 가까운 춤들을 추고, 교복을 입고 청순한 이미지로 나오는 걸그룹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것들도 생각을 해보면 소위 3대 기획사라고 하는 SM, JYP, YG 모두 다 대표가 남성들이잖아요. 만드는 사람도 중장년층들이고 작은 중소 회사의 대표들도 예전에 90년 대의 큰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다가 회사를 만든 남성분들이에요. 그러다보니까 계속해서 남성이 받아들일 때 불편하지 않은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권용직 : 저번 주에 무한도전을 봤는데 아까 말씀하신 셀럽파이브가 나왔어요. 5명의 개그우먼들이 나왔는데, 이런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개그우먼들을 소개할 때 그 기준을 여성 아이돌로 두고, 그에 비해 외모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하는 방식으로 각 멤버들을 소개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무한도전이 다루는 소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었는데, 결국 종영을 한다고 하니 아쉬워하는 목소리들도 많았죠. 비판과 아쉬움 모두 젊은층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이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황효진 : 무한도전은 매주 빠지지 않고 챙겨볼 만큼 저도 예전에 굉장히 좋아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제가 페미니스트로서 각성을 하고난 뒤로는 셀럽파이브 편처럼 자기들 기준에서 어리고 예쁜 여성이 아닐 경우에는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들을 하고, 남성들끼리만 뭉쳐서 무언가를 하면서 그에 대해 엄청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제 입장에서는 불편하더라구요. 옛날에는 재미있게 봤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나니 재미있게 볼 수가 없게 되었죠. 이렇게 공고한 남성연대로 이끌어가는 예능프로그램에 젊은 남성들도 이입을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여성들에 비해 젊은 남성들의 경우 무한도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 오히려 반작용으로 자신들이 지켜야내야 하는 대단한 컨텐츠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권용직 : 저희가 대중문화, 예능,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미투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계, 연극계에 대한 미투가 이어지고 지금은 정치권에 대한 미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가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기성 언론, 케이블 언론, 종편 언론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사건들을 동시에 다 보도를 하고 있는데 그저 '전시'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을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입장이나 관점 없이 전달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뉴미디어인 닷페이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소담 대표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조소담 : 미성년자 성매수자를 만나는 프로젝트를 했을 때 제일 고민했던 게 기성언론에서 이것을 어떻게 다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10대여성인권센터와 함께 이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보도들을 보면 다 피해자의 그림자가 나오고 그사람들이 증언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댓글들이 달리죠. '그 나이에 성매매를 하러 갈 정도면 뭘 좀 아는 거 아니야?' 하는 식의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구요. 항상 기억하거나 증언해야 하는 사람은 그 그림자 속의 피해자인 거에요. 저는 그것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 방법은 정말 '쉬운' 방법이거든요. 기성언론들이 사건에 접근할 때 피해자들은 대부분 약자잖아요? 빨리 접근할 수 있고, 질문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어떤 일이 있었어요?"라고 했을 때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쉽게 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접근한 거에요. 10대인권센터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 나면 이 10대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자기들이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기사가 나가고, 그런 댓글을 볼 때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였어요.
그래서 오히려 질문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매매 왜했어?”라는 질문을 피해자한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가해자한테도 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해자가 했던 행동이나 그러한 행동의 맥락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일상에서 간접적으로라도 많이 보잖아요. 회식이나 단합대회가 끝나고 2차로 룸살롱을 간다거나,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같이 성매매를 하러 간다던가. 이런 일들이 너무 많고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에 왜 성매매했어 라는 질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게 더 핵심에 다가가는 질문인데도요. 그래서 가해자한테 질문을 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그것을 보고 기성언론의 기자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왜 이렇게 접근할 생각을 못했지? 가해자한테 가서 물어보면 됐는데 나는 왜 굳이 피해자를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그걸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했던거지?' 이것을 보면서 접근하는 관점을 다시 짚어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런 미투에 관련된 것들도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가해자에게 질문을 하는?
권용직 :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씨네21>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란 요약해서 이야기하면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실을 적시했다는 것이 결국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것 때문에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들이 꺼려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성철 : 저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때문에 굉장히 골치가 아픕니다. 사실 법적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죠. 많은 분들이 영화계에서 겪었던 여러 일들을 폭로해주셨고, 그것을 '미투 특집호'로 발간을 했습니다. 제보를 해주신 분들 중에서는 '실명도 밝히고 내가 얘기했던 피해사실들을 상세하게 폭로해서 가해자를 매장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녹취록 같은 정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 저희가 제보 사실만을 바탕으로 기사를 내게 되면 오히려 가해자가 법정에서 그 자료를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처럼 제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투와 관련된 모든 기사들은 철저히 따져서 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PD수첩 김기덕 감독 편 보셨나요? 그 방송의 첫 멘트가 무었이었냐면, '조근현 같은 사람이 아니라 김기덕을 잡아야 됩니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씨네21>에서 조근현 감독을 최초보도 했었는데, 조근현 감독은 너무 약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죄질의 경중을 따지는 것 같아 굉장히 씁쓸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본 제보자분이 뭐라고 이야기하셨냐면, '저보다 더 크게 피해를 보신 분들도 있는데 제가 괜히 기자님의 귀한 시간을 뺏는 것 같아요'라고 하셨어요. 더 큰 피해사례, 더 센 가해자들에게만 계속 눈길이 가있는게 안타까웠죠. 흔히 판사들이 성범죄 피해여성들에게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나?'라고 종종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피해자를 몰아붙인다는 관점에서 그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죄질의 경중을 따지다보면 오히려 가해자에게만 눈길이 가서 피해자분들을 오히려 가해자의 들러리로 만드는 경우를 많이봐서요. 피해 사실을 <씨네21>에만 제보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독립영화쪽에 계신 분들이나 영화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꾸준히 귀담아 들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권용직 : 결국 영화계에서도 여성이 주체로서 바로서지 못하고 조금 더 주목을 덜 받게 되는 이유들은 -아까 황효진 칼럼니스트님도 말씀해주셨지만- 만드는 사람이 여성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일견 듭니다. 영화계에서 여성이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 어떤 위치에 와있는지, 잠깐 이야기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성철 : 두 가지 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영화 속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여성배우,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벡델 테스트'라는 표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의 여성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이 제시한 기준인데요. 우리가 접하고 있는 문화 콘텐츠 안에서 여성의 비중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두 명 이상의 여성 캐릭터가 같이 등장해서 대화 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고, 그 대화는 남자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뭐 어지간한 영화는 다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걸 통과하는 영화들이 정말 별로 없어요. 한국 영화 같은 경우에 지금 박스오피스 흥행성적 10위안에 있는 작품 중에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작품이 딱 5개에요. <괴물>, <7번방의 선물>, <해운대>같은 작품들이 통과를 했구요. 2년 전에는 100만 관객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 중에서 딱 7~8편만이 이 테스트를 통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씽 : 사라진 여자>, <덕헤옹주> 같은 작품들이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를 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작년인데요. 작년에는 흥행을 거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이 <아이캔 스피크>와 <군함도>, 단 두 편밖에 없습니다. 이 벡델 테스트를 적용하자고 하는 목소리가 굉장히 높은데, 실제로 2013년부터 스웨덴 영화계에서는 이 벡델 테스트를 적용을 해서 기준을 통과하면 인증 마크를 주면서 다양한 지원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 결과 스웨덴 영화계에서 만들어지는 전체 작품의 80% 이상이 이 테스트를 통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구요.
지금 뭐 독립영화 같은 것들 다 포함해서 일년에 만들어지는 한국영화가 총 250편 안팎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중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극장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우리가 알고있는 쇼박스, CJ, 롯데, NEW, 리틀빅픽처스 등등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극장 개봉을 하는 영화는 100편 안팎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의 여성감독의 숫자는 약 10%정도 된다고 하는데, 방금 말씀드린 100편 안팎의 영화 중에서 여성 감독의 영화는 한 5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특종 : 량첸 살인기>라는 작품을 만든 노덕 감독이 그해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말에 노덕 감독이 디렉터스 컷, 감독 조합에서 주는 여성 감독상을 받았는데, 받을 수밖에 없었죠. 왜냐면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때 시상을 방은진 감독님이 시상을 해주셨는데, 상을 받고나서 노덕 감독님이 <씨네21>에 칼럼을 쓰시면서 이렇게 글을 시작하셨습니다. “때로는 여자라는 것만으로 축하받는다”라고요. 그만큼 영화 속 여성, 그리고 영화 업계의 여성 인력 모두 굉장히 심각한 현실에 놓여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소담 : 저는 영화 말고 미디어의 측면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황효진 칼럼니스트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누가 결정하는가', '무엇이 돈이 되는가'가 미디어 쪽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성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겠다고 투자자를 구하러 다니셨던 분이 얘기를 해주셨는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으면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이야기를 다뤄보라고, 그러면 돈이 될 테니 투자를 하겠다고 했대요. 다른 투자자는 '나랑 한 번 자주면 투자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더라구요. 한 남자PD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요즘 트렌드가 뭐야? 젠더야 젠더. 젠더가 트렌드야, 알아?" 그래놓고 막상 여성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드려고 하니까 생리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사소하다고, 여성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논쟁적이라고 거절하더래요. 젠더나 여성이 어떤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고 피상적인 수준까지는 알고있을지 몰라도 실제 제작과정에서 그 부분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만드느냐, 어디에서 돈이 들어오느냐 이런 것들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누가 콘텐츠를 만드는지는 겉에서 크게 티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양한 약자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피드백을 하고 컨텐츠를 완성해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닷페이스에서도 많은 실수나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그래도 어떤 수준까지는 감수성을 가지고 컨텐츠를 잘 다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저는 그 이유가 내부에서 여러 다양한 약자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컨텐츠 제작 과정에 참여해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불편한 부분들을 잡아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주짓수를 배워서 여성분들이 본인이 처하는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영상을 제작을 했었어요. 거기에서 마지막에 들어갔던 멘트가 "지금까지 영상에서 보여드렸던 이 모든 상황들에 닥쳤을 때, 당신이 그 상황에서 완벽하게 대응해내지 않아도 괜찬습니다. 당신이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당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였어요. 이것은 그 현장에서 주짓수를 가르쳐주신 분이 설명해주셨던건데, 그걸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넣었던 거죠.
그리고 드론으로 몰카를 찍는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제보를 받고 그걸 내보낼 때에도 마지막에 메시지를 하나 넣어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PD님이 엄청 고민을 하시는 거에요. 영상을 보시는 분들께 '아, 이래서 무서워서 살겠나'라는 느낌을 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메시지를 넣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계셨던 거죠. 그런데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여성이 무서워하는 입장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몰카를 설치하거나 찍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육해공에서 다 몰카를 찍는, 구조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몰카공화국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육해공 몰카공화국'이라는 멘트로 마무리를 했어요. 이렇게 메시지 하나하나를 선정하는 데에도 감수성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늘 오전에도 베스킨라빈스에서 냈던 포스팅이 있었어요. 끄덕끄덕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번에 미투에 관련해서 조민기씨가 카톡으로 주고 받았던 문구를 베스킨라빈스에서 재밌는 문구랍시고 홍보 콘텐츠에 넣은 거에요. 그것을 최종담당자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검토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아무도 못잡아 냇다면, 그건 검토를 하거나 결정하는 권한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것이거나 정말로 아무도 잘 안보고 넘겼거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용직 : 지금 세 분이 공통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말씀을 해주고 계신데요.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봐야할까요? 주류 미디어나 기성 미디어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혹은 그 가능성을 보여줄만한 괜찮은 롤모델이 있을런지요?
황효진 : 아까 제가 방송은 아직 많이 변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예능이나 교양, 그리고 아이돌 산업 얘기를 했었는데 의외로 드라마가 조금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아무래도 자본이 움직이는 쪽으로 움직이다보니까, 드라마 같은 경우는 예능이나 시사 교양보다 확실히 여성 시청자들이 더 많이 본다는 통계가 잡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 배두나씨랑 조승우씨가 출연하셨던 <비밀의 숲>이라던지 아니면 정려원씨가 성폭력 전담 검사로 나왔던 <마녀의 법정>, JTBC에서 김남주씨가 아나운서로 출연하는 <미스티>같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 예전에는 드라마 속 여성들도 직장이나 직업이 다 있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정말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인지 시청자가 알 수 없을 정도로 같은 직장 내에 더 위에 있는 이사님이나 실장님 같은 남성이랑 연애하는 이야기가 주로 나왔어요. 하지만 방금 말씀드린 작품들 속의 여성들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일을 합니다. 여성이 직장이나 사회에서 받는 불이익을 잘 보여주기도 하고, 여성으로써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 드라마들이 성차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거나 굉장히 평등한 드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만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아 이제 여성들도 자신의 일에 대해서, 그리고 현실에서 받는 불평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기는 해요. 그런 부분에서 좀 느릴지라도 어쨌든 그걸 눈치챈 사람들은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또 하나는 여성이 만드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거나 성공한 여자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남자들은 영화나 드라마, 예능에서도 굉장히 이상한 시도들을 많이하고, 그게 실패해도 또 다음 작품이 나오고 하잖아요? 근데 여성들은 '내가 여성으로써 작품을 내놓았을 때 시장에서 외면받으면 끝이야. 그러니까 나는 성공해야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야돼.' 이 강박에 굉장히 시달린단 말이에요. 지금은 어쨌든 웹이나 SNS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할 수는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만드는 캐릭터나 이야기에 대해서 너무 좋은 롤모델을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지 말고 조금 별로인 이야기도 천천히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여성의 생리가 사소한 것 아니냐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해요.
주성철 : 실제로 작년(2017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였는데요. <VIP>라는 영화 많이 보셨을 텐데 그 작품이 인터넷 상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면서 흥행에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사실 그 영화 전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문제가 됐던 장면만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이에 대해 제작자분이 우리가 언제까지 디즈니 같은 영화만 만들어야 하냐는 식으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사실 최근에 디즈니는 <겨울왕국>이나 <코코>처럼 젠더와 인종에 관한 아주 진보된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는 상태여서 디즈니랑 비교를 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죠.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매해 한국 관객수가 2억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겁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극장을 너무 많이 가요. 인구가 5천만명인데 2억명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이 1년에 4번 간다는 것이고, 또 적극 관람층인 2~30대는 한 달에 4번 정도 가는 꼴이 되거든요. 그래서 해외에 있는 비평가나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사람들은 왜 이렇게 극장을 많이가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곤 해요. 근데 그게 작년에 조금 꺾였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2억명을 돌파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위기감이 맴돌았는데 갑자기 12월에 <신과 함께>, <강철비>, <1987>이 나란히 개봉하면서 다시 또 2억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1,2,3월 극장 관객수는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제 관객들이 극장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구요. 결정적으로, 작년 CGV의 통계자료를 보면 20대 여성 관객이 확 줄었어요. <VIP>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영화에 정이 떨어진다, 이렇게 된거죠. 그런데 작년 말에 개봉한 세 편의 영화 덕분에 무난히 또 2억명을 돌파하면서 그 얘기가 사라졌는데, 올해 1,2,3월 결과를 보면 올해에는 정말 2억명을 돌파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에는 20대 여성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서 등을 돌린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이, 이제 많은 영화인들이 여성의 목소리, 여성 감독,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조금씩 인식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식이 조금 더 자리잡혀서 다시 20대 여성 관객이 한국 영화를 기분 좋게 볼 수 있게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소담 : 여기 계신 분들도 돌아가서 이런 것들을 일상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TV 같은거 보다가 예전에는 불편한지 몰랐는데 불현듯 그것을 인지하게 되는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피드백을 하면 컨텐츠 제작자들은 그것을 신경쓸 수밖에 없어요. 신경쓰고 게속 나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작년이나 재작년이랑 조금 다른 것 같은게 닷스페이스에 와서 영상 제작 의뢰를 하시는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젠더 감수성이나 페미니즘에 어긋나지 않는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구요. 문제가 터지면 본인들이 다 책임을 져야 하니까 걱정을 하는거죠. 그래서 TV를 보든 컨텐츠를 보든 광고를 보든 할 때 계속 부당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냥 개인SNS에서도 계속 이야기를 하시면 그게 다 검색어로 걸려서 다들 그 불편함을 산업적으로 인지를 하고 반영을 하잖아요. 저는 그런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고 그게 산업이 바뀌는 동력이 될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셔서 불편한 콘텐츠를 볼 때마다 내가 왜 불편한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걸 자꾸 얘기를 하면 일상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맏습니다.
아까 주성철 편집장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영화계에서 20대 여성 관객수가 줄었다라는 지표를 통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그려볼 수 있다면, TV는 어떨까요? 충성시청자들이 4,50대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불만이 있고 이것을 변화시켜달라는 목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황효진 : 말씀하신 것처럼 충성도가 높고 습관적으로 TV를 시청하는 것은 중장년층이고, 젊은 세대는 TV보다는 인터넷으로 방송을 접한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 이슈에 대해 잘못된 부분들이 있을 때 계속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방송사의 SNS나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칼럼을 쓰는 입장이니까 글로 비판을 하는 거구요. TV의 주 시청자층이 중장년층이기는 하지만 결국에 콘텐츠라는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고 유지가 되어야 그 콘텐츠의 수명도 늘어나는 거잖아요. 결국에는 젊은 사람들도 불편하게 보지 않을 수 있는 콘텐츠를 다시 만든다면 젊은 층이 다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중장년층 있으니까 우리는 젊은층 피드백을 굳이 안받아도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방송 관계자 분들이 계시다면은 좀 길게 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길게 봤을 때 페미니즘이나 다른 소수자들을 포용하고 똑바로 반영하는 시도들이 기존 매체의 수명을 늘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구요. 중장년층도 이제는 미투를 거치면서 중장년층 분들도 이 사회가 굉장히 잘못됐구나, 우리가 굉장히 기울어진 사회 속에 살고 있었구나, 이러한 것들이 잘못됐다고 말해도 되는거구나 하면서 조금씩 깨닫고 계신 것 같더라구요. 결국엔 페미니즘이 그 움직이지 않던 중장년층까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식으로 피드백을 계속 주다보면 영향을 끼칠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소담 : 사실 저희가 사전에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거든요. 비주류, 주류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써보자면, '비주류에서는 이런 새로운 흐름이나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걸 주류로 어떻게 반영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변화시킬수 있을까?'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굳이 여성이나 소수자가 주체가 되어서 변화를 시켜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애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낡은 건 낡도록 두고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가자는 생각을 해서 넷플릭스를 열렬하게 구독을 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 이유가 그거잖아요. 굉장히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서사에 갇히지도 않고요. '여기에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그 서사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재미있으니 난 이걸 선택하겠다. 당신들이 계속 주류의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우리의 피드백을 보고 당신들이 바꿔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성철 :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극장은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사실 영화는 티비보다 더 심한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대 여성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고 있는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 영화계가 조만간 망할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최근에 <궁합> 같은 작품에서 심은경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들을 보면 정말 눈쌀이 찌푸려지더라구요. 얼마 전에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제작자분을 만났는데 그 분이 그러더라구요. 최근에 여성시나리오 작가들 몇 명과 계약을 하면서 2, 3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웹툰을 각색해보려고 한다구요. 그게 본심에서 우러나왔건 혹은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건 어쨌건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라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fin.
작성ㅣ루트임팩트 장선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