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과 Z세대, 다양한 일의 의미ㅣ크리에이터 김태용
우리는 설렘을 안고 또는 그저 떠밀리듯 커리어의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좀 더 넓은 길로, 혹은 다른 길로 시선을 옮겨 걷고 싶기도 하죠. 때로는 그 여정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희열을 맛보기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루트임팩트가 준비한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일하고 싶은 자, 일하고 있는 자, 일하기 싫은 자>에서는 다양한 일의 모습과 의미,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의 기록을 여기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세션별 영상을 루트임팩트 Youtube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타트업에 관한 영상을 만들고 있는 크리에이터 태용이라고 합니다. 스페셜 스피치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러 주셨는데 사실 별 것 없는 사람이고요. (웃음) 처음에는 1인 미디어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사장님이고, 어제는 팀원 중에 한 명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오늘 강연이 있는데 어제 술을 왕창 마셨어요. (웃음) 그래서 술 냄새를 빼야겠다고 하며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따가 저랑 이야기하실 분들 술 냄새가 좀 나도 너무 낯설어하지 말아주세요.
제 채널에 가 보시면 소셜벤처와 스타트업 영상이 많고, 여러분들이 관심있어 하시는 에어비앤비, 구글 등에 다니시는 분들의 영상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크리에이터 채널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업을 여러 번 했었는데요. 지금 크리에이터를 하고 있는 건 사업이 잘 안 됐다는 뜻이겠죠. (웃음) 사업하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어서 채널을 시작하게 됐는데, 크리에이터 일이 재미있고, 또 우연치 않게 커리어가 계속해서 이어져서 현재도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잘 된 이야기보다 제가 20대 때부터 겪어왔던, 인생의 시행착오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예술가의 꿈을 꾸던 나, 창업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다.
저는 고등학생 때,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실 미술대학을 가고 싶었어요. 저 지금도 그림 되게 잘 그려요. (웃음) 그런데 미대에 진학하는 거를 실패하고 성적 맞춰서 대학교에 갔는데 공부도 재미없고 그래서 군대에 갔어요. 제가 군대에서 상병일 때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때 저는 잡스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제 동기 중에 엄청난 ‘잡스빠’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당시 보급병이었는데요.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더니 취사장에 가서 사과를 하나 훔쳐와서 제사를 지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 진짜 정신 나간 애구나’ 했죠. 그때 엉겁결에 저도 잡스 제사를 지내면서 잡스와 관련된 책도 읽고 동영상도 보면서 이전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데 ‘사업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잡스 전기를 다룬 굉장히 두꺼운, 한 천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어떻게 보면 위인전 같은 책인데요. 그 전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70%가 잡스 욕이에요. 그런데 그 책을 다 읽고나면 잡스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게 되죠. 그 책에 ‘잡스가 만든 아이폰이나 매킨토시가 최고의 미술관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뉴욕현대미술관에 예술품으로서 전시가 됐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걸 보고 미술대학을 나와야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기업가가 1억명이 쓰는 제품을 만들면서도 예술가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구나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충격을 받고 ‘내가 미대를 못 갔지만 예술가로서 삶을 살려면 기업가라는 것을 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사업은 사업이고 예술은 예술이고 잡스는 잡스고 나는 나고. (웃음) 그래서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기업가 사업하는 사람들 많이 만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메일들(슬라이드를 가리킴)을 기업가들에게 많이 보냈어요. 그런데 기업가를 꿈꾸는 갓 전역한 청년이 한 번만 만나달라는 메일을 보낸다고 해서 저를 만나주지를 않았죠. 정말 한 40통 정도 보냈는데 아무도 답장이 없었어요. 다들 바쁘잖아요. 그래서 안 만나 주니까 제가 열이 뻗쳐서 그 다음부터는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어요. ‘내가 마케팅 컨설턴트인데, 너네 최근에 나온 신제품이나 광고들이 심히 우려스럽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 이러니까 저를 만나주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네 회사 망한다’ 이러니까 사장님들이 저를 만나주신 거죠.
창업, 그 실패의 반복을 경험하다.
그래서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작은 프로젝트들 받아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실 마케팅 컨설턴트라고 하면 양복쟁이일 줄 알고 만났는데 아직 까까머리인 갓 전역한 애가 오니까 어이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상한(?) 샴푸 브랜드도 만들어 보고, 어떤 사장님은 캡슐커피로 자판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캡슐커피 브랜딩도 해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 회사도 망하고, 이 회사는 제품을 런칭할 때 코파운더들이 잘 될 거 같으니까 싸우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도 망했죠.
어쨌든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사장님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어요. 망하는 회사들도 많이 봤고, 멋있는 대표님들도 많이 봤고요. 돌이켜보면 제가 예의 없는 행동도 대표님들께 되게 많이 했는데, 대표라는 사람들이 자기 주관을 갖고 인생을 살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좀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업가라는 커리어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회사를 세우기는 좀 그렇고 대학교에 창업동아리가 있다고 하길래 문을 두드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그 중에 한 팀이 예술분야를 혁신해보겠다면서 창업동아리 모집 공고를 올려 놨더라고요. 제가 당시에 23살이었고 이렇게 둘이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제가 그 동아리에 찾아간 거죠. 둘이서 밤새 일을 한 퀭한 눈으로 저를 보더니 ‘누구세요’ 하더라고요. 사람도 좋아보여서 처음에는 동아리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본격적으로 창업을 해보자는 얘기를 나눴고 셋이서 ‘아트쉐어’ 라는 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과는 다른 형태지만 아직도 남아 있어요.
처음에는 다음과 같은 모델이었어요.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 올리고 전시하고 공유할 수 있는 SNS 플랫폼이 있고, 거기에서 버튼을 많이 받은 작품들을 이렇게 폰 케이스나 가방으로 만들어서 판매를 한 뒤에 수익을 쉐어하는 모델이었죠. 잘 될 거 같아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그때 당시의 웹사이트이고, 실제로 앱도 나왔어요. 그런데 여기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게 좋아요를 많이 받은 그런 작품이 실제 제품화했을 때는 잘 팔리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는 이렇게 예술성이 짙은 이런 것들 만들다가 점점 자체디자인 같은 거를 해서 판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 바꿨어요. SNS 플랫폼이 망했고, 판매가 잘 될 거 같은 작가에게 저희가 컨택을 해서 작품을 제품화한 다음에 그걸 유통해서 수익을 쉐어하는 모델로 바뀌었어요. 그때 당시에 재미난 경험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수도권에 직영매장을 네 개 정도 내고, 전국적으로는 한 200개 정도의 매장에 샵앤샵 개념으로 매장들도 냈죠. 건대와 신촌에 직영매장을 냈어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제 트렌드도 알게 되고 돈 버는 법을 좀 알겠더라고요.
당시 저랑 코파운더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코파운더가 이제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거 보다 직접 디자인을 해서 브랜드 만들어서 팔면 더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예술 분야를 혁신하려고 들어왔는데 팀의 방향이 점차 바뀌니까 돈은 벌지만 좀 기운 빠지는 일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결국에 회사는 자체 브랜드 쪽으로 피보팅을 했고 저는 ‘위글 위글’이라는 폰 케이스와 파우치 브랜드-여성분들이 많이 아실 것 같아요-를 만들고 성공시킨 다음에 팀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저는 대표 형하고 누나한테 ‘나는 예술분야 하려고 들어왔고, 나는 아직 젊고 형은 좀 나이가 있으니까 형은 돈 버는 일을 하고, 나는 더 내 꿈을 쫓아 볼래’라고 말하고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좀 큰 비즈니스를 좀 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침 저랑 친분이 있던 제조 업체에서 제가 소비자의 상품을 잘 아는 거 같으니까 같이 가구 사업을 해보자고 해서 투자를 조금 받고 신소재로 만드는 친환경 가구 사업을 하게 됐어요. 이런 가구들을 만들었는데요. 시간이 많으면 망한 이야기 해드리고 싶지만, 어쨌든 결론은 망했어요. 가구 사업 망하고 나서 이제는 정신 차리고 학교 잘 다녀야지, 졸업할 때까지 이제 사업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사업이 병이에요. 갑자기 막 O2O 이런 게 뜨더라고요. 그래서 도도포인트 같은 쿠폰 앱들 나올 때 저도 쿠폰 적립 앱 만들었다가 망하고, 그리고 컨텐츠가 뜨는 거 같아서 ‘알트’라는 사회적인 이야기하는 채널을 대학교 4학년 때 친구들하고 만들었는데 결국 이것도 돈을 못 벌어서 망했어요. 사실 망한 이유는 돈 말고도 여러 가지 있긴 해요.
'일 잘 하는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어쨌든 스물여덟 살의 저의 커리어는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처음에 좋은 창업 멤버들 만나서 고생을 덜 했고, 한 1년 정도 라면 먹고 지내다가 매장도 많이 낼 정도로 고점을 찍었죠. 그리고 어린 나이에 소비재 쪽 비즈니스를 잘 한다라는 걸 인정을 받아서 투자도 받고 했는데 그 이후로부터 내리막길을 갔던 그런 케이스에요. 28살에 주변의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창업을 또 할 자신은 없었죠. 이러고 있을 때 ‘내가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웠으니까 있는 돈 다 털어 가지고 잡스의 고향에 가서 뛰어난 사람을 좀 만나 보고 내가 좀 왜 망했는지 알아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너네가 얼마나 잘하길래 맨날 새로운 거 만들고, 나는 내가 이제 못나서 망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잘못된 건지 확인을 해 보고 싶어서 결국 미국 실리콘밸리에 갔습니다.
가서 좀 고생을 좀 많이 했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듣는 이야기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난 콘텐츠 만들 줄 아니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리기 시작을 했는데 잘 되더라고요. 갑자기 너무 건너뛴 느낌인데, 크리에이터를 제가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또 고생을 많이 하다가 갑자기 콘텐츠도 잘 되고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의미 있게 봐 주고 그러니까 너무 신나 가지고 그냥 계속하게 됐어요. 그래서 한 1년 정도는 혼자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이제 다섯 명의 팀원들과 함께 스타트업과 혁신에 관한 영상을 만드는, 1인 미디어에서 스타트업으로 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실패로 배운 것 하나 : 나에 대한 이해
갑자기 훅 건너 뛰었는데 오늘 제가 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몇 가지가 있어요.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다 자기주도적으로 커리어나 일의 의미에 대해서 좀 생각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이게 찜질방 토굴방이에요. 티몬이나 위메프에서 찜질방 쿠폰 프로모션으로 700원에 팔거든요. 제가 사업 망했을 때 아무도 보기 싫어서 여기서 보름 동안 지냈어요. 3일은 영등포 찜질방, 쿠폰 다 쓰고나면 그 다음에는 이태원 찜질방. 도전하는 거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도전하라는 이야기 하는 건 너무 흔한 얘기 같고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확실히 ‘나’라는 사람을 좀 이해하는 과정이 되는 거 같아요. 성공, 실패가 아니라, 자기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거에 대한 결과를 직접 마주하고 이런 과정들이 자기 자신을 좀 이해하고 바라보는 데 크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저는 이런 실패를 경험하면서 크리에이터를 이전에 진로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항상 사업을 할 때 내가 만드는 브랜드나 제품에 항상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고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영향을 주는 걸 좋아했더라고요. 제 친구들도 제가 크리에이터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막상 크리에이터가 되고 나니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전을 했을 때 힘든 부분이 있지만 자기만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부분은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자기를 아는 과정에서의 힘든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스스로 결정하고 마주해야 되니까요. 그때 찜질방 토굴방에서 15일 동안 생각을 하는데, 그래도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부분은 못 하는구나’ 이런 깨달음이 있더라고요.
그 동안의 실패로 배운 것 둘 : 나만의 전문성
그리고 제가 지금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로 유니크한 일이에요. 비슷한 컨텐츠들을 비슷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는데 다 못 만들어요. 예산투입해도 잘 못 만들어요. 이게 어떤 의미나면, 확률적으로 저는 앞으로 몇 년 동안 경쟁자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냐면, 제가 스타트업이라는 거를 7년 정도 경험을 하고, 또 항상 마케팅, 브랜딩, 기획 관련 일을 해왔어요.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도 젊은 감각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사실 확률적으로 있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서 스타트업이라는 거 자체가 남들이 걸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거 다 보니까 되게 유니크한 능력이나 관점 같은 게 생기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이런 것들이 뭉쳐져서 결국에 유니크한 스타트업 크리에이터라는 저만의 어떤 직업 같은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뛰어든 것의 장점이 있다면, 결국 자기만의 전문분야와 장르가 생기는 부분인 거 같아요.
‘일하는 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드는) 체인지메이커
그리고 오늘 이 자리가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루트임팩트한테 좀 죄송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전 사실은 체인지메이커 이런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이 단어가 정말 좋은 뜻을 갖고 있는데, 저는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를 하는 분들 중에 ‘내가 세상을 바꾸고’, 뭐라고 해야 될까요, 자기 중심적인 분들이 되게 많은 거 같아요. 사실 모든 사람들이 체인지메이커에요. 청소부 아저씨도 그렇고, 경비 아저씨도 그렇고, 다들 작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이고, 모든 직업인들이 세상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체인지메이커-내가 세상을 바꿀 거야- 이런 생각보다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과 연결이 되고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추구하고, 또 세상을 바꾸는 거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대단한 거라기보다는 여러분들이 저마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살아 갈 텐데 ‘내가 체인지메이커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일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 그 자체를 체인지메이커로서 존중하고 그런 시각으로 좀 인식을 하는 관점을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더라고요. 꿈이 부푼 분들한테 뭔가 찬물을 끼얹는 그런 느낌인 것 같지만 (웃음) 진짜로 그런 인식을 가졌을 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요. ‘너도 체인지메이커야, 또 너도 체인지메이커야, 경비 아저씨도 체인지메이커야’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야 더 나은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식들을 좀 생각해 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에 혁신, 인공지능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다 없어진다고 난리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것과 없어져야 될, reserve 이런 방식이 아니라 모두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이 좋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려면 서로 직업이나 하는 일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체인지메이커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체인지메이커다 라는 인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자리가 오늘 이 컨퍼런스가 됐으면 좋겠고요. 감사합니다.
- fin.
작성/정리 : 루트임팩트 이수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