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어떻게 길이 되는가ㅣ이베이코리아 홍윤희 이사
우리는 설렘을 안고 또는 그저 떠밀리듯 커리어의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좀 더 넓은 길로, 혹은 다른 길로 시선을 옮겨 걷고 싶기도 하죠. 때로는 그 여정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희열을 맛보기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루트임팩트가 준비한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일하고 싶은 자, 일하고 있는 자, 일하기 싫은 자>에서는 다양한 일의 모습과 의미,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의 기록을 여기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세션별 영상을 루트임팩트 Youtube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
저는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에서 홍보 이사를 맡고있는 홍윤희입니다. 협동조합 무의의 이사장도 맡고 있습니다. 항상 이 두 개의 명함을 들고 다니는데 오늘은 제가 어떻게 두 개 명함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1996, 2001
1996과 2001이라는 숫자 두 개를 가져와봤어요. 여기 1996년 이후에 태어나신 분도 계시지 않으신가요? 제가 나이 자랑을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1996년에 저는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갔어요. 1996년에 어떤 중요한 일들이 있었나 찾아봤더니 강다니엘씨가 태어났더라고요.
2001년에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이베이코리아, 그러니까 (구)옥션에 입사를 하게 됩니다. 2001년에 또 어떤 중요한 일이 있나 봤더니 911 테러가 있었고, 빌리 아일리시 라는, 저의 딸이 제일 좋아하는 외국 가수가 태어났더라고요. 이 말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18년이나 이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제가 팀을 한 번밖에 안 옮겼거든요. ‘똑같은 일을 18년 동안이나 하면 지겹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곳에서 제가 어떻게 커리어를 만들어왔는지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두 가지의 숫자를 가져왔습니다.
첫 번째 명함, PR인으로 18년
저는 일을 받아서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초창기에 PR 일들을 했는데,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아시겠지만 PR은 기자분들을 만나서 우리 회사 홍보 하는 일이었거든요. 즉 기사를 만들어 내는 일인데, 2002년에 제 기억에 많이 남았던 일이 있어요. (화면에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김치 파시는 분이에요. 무주에서 이 분이 ‘김치팅’ 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본인의 고객들을 무주로 초대해서 분기에 한 번씩 미팅을 해요. 이 분의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제가 그때 저희 회사에서 팬클럽을 만든 다음에 다같이 내려갔었어요. 그 때 동아일보 기자님을 함께 모시고 가서 소개를 부탁드렸어요. 옥션에서 특이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하고 계신 분들을 그런 식으로 많이 소개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판매자 분들이 인터뷰를 하실 때 ‘어디서 물건 파세요’라고 물으면 ‘옥션이랑 지마켓에 팔아요’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당시 지마켓은 저희 경쟁사였거든요. 그래서 ‘에이, 소개해봤자 보람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빨리 태세 전환을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슈 및 트렌드 PR을 했어요. 예를 들면 2004년에는 ‘경제 불황이어서 사람들이 DIY 상품들을 많이 쓴다’ 등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이제 재봉틀 판매가 폭등한다는 전망을 내놓는 거죠. 미니재봉틀 한 2, 3만 원이면 사잖아요. 그런데 세탁소에 맡기면 바지단 하나 줄이는데 3,000원, 5,000원 하죠. 그러니까 다섯 번만 줄이면 본전을 뽑는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서 언론 기사를 냈는데, 이게 방송 3사에 다 소개가 되고, 나중에는 그 카테고리가 옥션 안에 개설됐어요. 이러한 방식으로 마케팅을 부스트하는 역할도 했었죠. 전반적으로 이런 업무를 하는 게 원래 저의 커리어였어요.
두 번째 명함, 장애를 무의미하게
그러다가, 굉장히 큰 개인적인 변화와 동시에 업무 환경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먼저 개인적인 변화는 2006년에 저희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가왔어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소아암을 앓게 되어 14번의 항암치료와 10번의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난 다음에 하반신 마비를 겪게 되었어요. 암은 치유가 됐지만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된 것이죠. 그렇게 아이가 휠체어를 타게 되니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휠체어 눈높이에 맞는 눈이 생기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집 주변 지하철역에는 도대체 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야’, ‘우리 애랑 다니기 너무 힘든데’ 라는 생각이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채널을 통해 관계자 분들을 자꾸 못 살게 굴었어요. 이렇게 프로불편러로 이야기를 전하다가 제가 아는 기자분들이 많다 보니까 기사로 크게 다뤄지기도 했었죠. 그러다 2015년에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지민이의 그 곳에 쉽게 가고 싶다> 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와 같이 휠체어로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이렇게 어려워요’ 라는 이야기를 유튜브 비디오로도 제작해 릴리즈하면서 펀딩을 하게 되었죠. 2016년에 그 펀딩을 보고 휠체어를 타는 한 하버드대 학생이 연락을 주어서 같이 협동조합 무의를 만들게 됐어요. 원래 그 학생이 대표직을 맡으려고 했는데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제가 대표 이사장을 하게 되었죠.
또 하나의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는데요, 저희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사실은 이 아이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잘 모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생활에 사소한 편리를 주는 제품들이 굉장히 큰 가치를 줄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 너무 모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저희 집 같은 경우는 화장실과 마루 사이에 턱이 있는데 거기에 실내 경사로를 두면 5만원 정도 밖에 안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있음으로 엄청나게 편해지는 거예요. 저희 아이가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세수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제가 이거 꼭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회사내 모바일 비즈니스 아이디어 대회 같은 데에 장애용품 코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 냈다가 당연히 떨어졌죠. 모바일 비즈니스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거를 들고 다니면서 좀 높으신 분들한테 가서 이거 만들 수 없나요? 이렇게 쑤시고 다니다가 여기 (사진에) 계시는 착한 두 머천다이저 분들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코너도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이제 제가 거의 운영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두 번째 변화는 PR 업무 환경의 변화에요. PR이라고 하면, 제가 입사 할 때만 하더라도 기자분들과 술 먹고 골프 치고, 기사 잘 내고 기사 빼고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기사만 보는 게 아니잖아요. 페이스북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요. 이걸 2015년부터 굉장히 크게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언드(earned) 미디어, 기사가 나오는 것들 말고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온드(owned) 미디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진에 보이는) 저희 직원들 끌고 가서 분장한 다음에 이런 것들도 만들고, 여기는 원종건 님이라는 저희 팀원인데 부천시장에 가서 홍어무침도 만들고 그랬습니다. 이런 식의 것들을 저희가 만들어서 이제는 저희 채널로 내보내는 업무를 제가 해보겠다고 해서 지금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이베이코리아는 유통업체잖아요. 그래서 유통 기자님들과 많이 만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IT와 융합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IT 또는 테크 쪽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아지면서 회사 내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아마존의 모든 것을 팝니다 라든가 에브리띵 스토어와 같은 책들을 읽는거죠. 트레바리에서는 인플루언서 분들이 굉장히 많이 클럽장을 하시잖아요. 그 분들이랑 얘기해보고 싶어 트레바리 독서모임도 들어갔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2015,16년도에 스스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업무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희 대표님이 저에게 사회공헌기금 운영이라는 미션을 주셨어요. 사회공헌기금을 운영하려면 뭐부터 할 지 정해야 하는데, 혼자 결정할 자신이 없어 직원들에게 물어볼 계획으로 직원 워크샵 퍼실리테이팅 하는 곳에 문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기업 이념이 무엇인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런데 이베이 기업 이념은 있는데 이베이코리아 기업이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기업 이념부터 만들기로 하고 ‘거래혁신가’라는 기업 이념을 만들고 슬로건을 만드는 일들을 그때 했습니다.
저희 사회공헌 프로그램 중에서 대표적으로 소방관들을 지원하는 히어히어로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런 프로그램들을 시작을 했고 아까 말씀드렸던 케어플러스, 장애용품 코너를 운영하면서 유니버설디자인 의류 즉,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입을 수 있는 그런 의류를 입점한 업체와 함께 기획을 해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업무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주로 PR 업무였는데 이 후로는 마케팅, 프로모션, 사이트 기획 등 전혀 모르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왔죠.
변화의 시너지
이 세 가지의 변화들이 서로 융합을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독서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다가 제가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휠체어 길은 그냥 걸어가는 길이랑 다른데 안내판이 잘 안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지도를 만드려고 하는데 저는 코딩도 모르고 디자인도 몰라요. 어떻게 하죠?라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 계시던 계원예대 교수님께서 ‘그러면 저희 학생들과 만들어 봅시다!’라고 해서 2016년에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금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 제가 처했던 상황들의 변화가 서로 영향을 주는 또 한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사진에) 저희 꼬마가 타고 있는 휠체어가 전동휠체어인데요, 수동 휠체어에 키트를 붙인 상품이에요. 토도웍스라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에서 만든 토도드라이브라는 거예요. 저희 스토리펀딩을 보고 대표님께서 연락을 줘서 우리 아이가 테스터가 되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이 토도드라이브를 달고 난 다음에 그 환경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자기가 이제 길 건너고 슈퍼라든지 이런 곳들을 갈 수가 있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혼자서 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상품이 너무 좋고 응원을 하고 싶어서 저희 케어플러스 코너에 처음으로 10대를 구매해서 푸르메재단을 통해 10명의 아이들에게 기부를 했습니다. 저희가 이걸 기부하고 난 다음에 정말 많은 업체들이 후원해서 지금은 거의 2000명의 아이들이 토도드라이브를 탈 수 있게 되었어요. 이와 같이 제 개인적인 변화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했던 프로젝트가 회사 업무에도 영향을 주는 변화를 굉장히 많이 겪었습니다.
오전에 이 분 (사진 속) 태용님 보셨죠. 태용님도 무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났어요. 무의가 2016년에 부산 이동권에 대한 비디오를 제작을 했습니다. 그때 태용님이 휠체어를 가지고 내려가서 비디오를 만들었고 이 비디오 시리즈가 장애인 국제영화제에서 상도 탔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어 저희 회사에서 비디오를 만들 때 제가 태용 님께 네이티브(native) 광고를 의뢰 드리기도 했습니다. 태용님이 처음에 혼자서 가방 메고 실리콘밸리 갔다 오고 그랬잖아요. 여기 (사진에) 있는 장애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분이 이베이의 엔지니어거든요. 한인 엔지니어이신데 휠체어를 타지만 경비행기 운전도 할 줄 아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이 분을 태용님께 소개를 드려서 태용님이 비디오로 만들었고 작년에는 저희 회사에서 파견간 엔지니어 분들의 인터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하고 있는 일과, 회사 일들이 서로 융합이 되면서 좀 애매모호하지만 또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케이스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트레바리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같이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보이스 AI에 대한 책인데요, 아마존 알렉사라든지 이런 보이스 AI가 커머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굉장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책을 쓰게 된거죠. 저는 홍보담당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로서 IT 기자님들한테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침 유통 말고 IT 기자님들도 많이 만나야 했기 때문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계기가 되었죠.
제가 꼰대 같을까봐 조언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4년 동안 이렇게 질풍노도처럼 달려왔던 과정 안에서 느꼈던 점들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은데 일단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회사 안에서 이직을 하거나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고 같은 팀에서 똑같은 업무를 주어진 대로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그래서 시간을 일부러 내야 돼요. 예를 들면, 저도 아까 말씀드린 트레바리 모임을 하기 위해 저녁 때 책도 읽고 독후감도 써야 해요. 일부러 낸 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 아기 엄마들도 있으신가요? 아기 보면 시간이 정말 없어요라고 하는데 만들면 조금은 있어요. 5분, 10분이라도. 꼭 엄청 큰 일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자기효능감을 그 높일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을 하셔도 돼요. 하다못해 나는 1분짜리 플랭크를 오늘 다섯 세트 할 거야. 그리고 이걸 한 달 정도 해 보겠다라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하셔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쌓인 자신감, 자기효능감이 모여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야 되겠죠. 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실행을 하셔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을 하려면 무언가는 포기를 해야 됩니다. 저 같은 경우, 골프 치는 것을 포기했어요. PR 에 있으면 골프 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같은 사람이 골프 치러 나가면 접대는 고사하고 민폐되기 딱 좋겠죠. 그래서 골프를 아예 포기를 했습니다. 술 먹는 것도 상당 부분 많이 포기를 했고요. 여기 아마 주니어 직급에 계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지금 떨어지는 일만 하더라도 너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엑스트라타임이라도 내서 자기가 꽂혀 있고 자기가 꼭 해야 되겠는 일, 회사에서 엑스트라밸류를 낼 수 있는 뭔가를 시작하시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실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고 내가 하기 싫었던 일 또는 덜 중요한 일들은 조금 덜 할 수 있는 그런 환경들이 마련이 됩니다.
주제 파악을 빨리 해야 돼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내가 뭘 못 하는 지 알고 빨리 인정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도를 만들고 싶었지만 디자인도, 코딩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제가 이런 것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랜덤하게 물어봤어요. 콜드 콜도 하고 콜드 메일도 보냈는데, 어떤 분들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을 정말 많이 해주셨고 그 제안에 따라서 일이 실제로 만들어지면서 성과를 내게 됐어요. 그래서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느슨하고 다양한 관계가 일을 이루는데 정말 중요해요. 저는 요즘은 1인 미디어, 1인 브랜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꼭 유튜브로 태용님 같이 엄청 큰 채널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브랜드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가까운 지인들도 도움을 많이 주지만 나를 잘 모르지만 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거나 혹은 나의 어떤 가치에 같은 라인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도움을 주기도 해요. 그리고 잡오퍼도 느슨한 관계에서 오는 경우들이 더 많아요. 나를 진짜 잘 아는 사람보다는 다양한 관계를 가진 분들을 많이 알게 되면 그 분들이 이런 기회, 이런 일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친구 즉, 디스커션 파트너를 가지는 것이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만약 그런 친구 혹은 가족이 없으시다면 정신과 의사도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타로를 보러 가셔도 좋고요. 자기의 장점과 강점과 약점, 부족한 점 이런 것들을 스스로 입으로 터놓고 얘기를 해야만 내가 어디서부터 그리고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자기만의 가치가 있어야 돼요. 제가 인턴이나 신입 면접을 볼 일이 많은데, 저는 이 질문을 꼭 해요. “10년 뒤에 뭐 하고 있으실 거 같으세요?” 그럼 대부분 “이사님처럼 훌륭한 PR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요. 근데 제가 원하는 답은 그런게 아니에요. 물론 그렇게 대답하셔도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10년, 15년 후에 내가 그때까지도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가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조금 전에 제가 1인 미디어, 1인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자기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이 매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 매력이 확실해야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직장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이든 ‘나’라는 브랜드를 쓰도록 내 자신을 만들어 가야 도움이 되는 거거든요.
또, 가치관이 뚜렷하면 여러가지 일들을 저글링을 할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요.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저의 꿈이자 저의 가치는 저희 아이가 제가 죽더라도 혼자서 밖에 나가 호기심 있게 세상을 탐구하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저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입니다. 꼭 저같이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실 일은 없었으면 좋겠고,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내가 꽂혀 있고, 내가 하고 싶고, 그리고 내가 추구하고 싶은 한 가지는 꼭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걸 통해서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든 회사와 연계를 하는 어떤 프로젝트든 꾸준히 하면 언젠가 임팩트가 만들어지고 그 임팩트가 자기의 브랜드 빌드업하고, 그것이 더 큰 임팩트를 만들고 주변에 더 좋은 사람들, 자기 가치에 호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런 긍정적인 눈덩이 효과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fin.
작성/정리 : 루트임팩트 황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