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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Jul 31. 2019

3회_[패널토론] 커리어, 어떻게 길이 되는가

커리어 패스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들

 우리는 설렘을 안고 또는 그저 떠밀리듯 커리어의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좀 더 넓은 길로, 혹은 다른 길로 시선을 옮겨 걷고 싶기도 하죠. 때로는 그 여정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희열을 맛보기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루트임팩트가 준비한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일하고 싶은 자, 일하고 있는 자, 일하기 싫은 자>에서는 다양한 일의 모습과 의미,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의 기록을 여기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세션별 영상을 루트임팩트 Youtube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



Career Path

커리어 '패스'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커리어를 맺고 끊고 또 다시 연결하는 데에는 참 여러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삶의 비전 속에서 여러가지 커리어를 동시에 가져가거나,
다양한 커리어를 순차적으로 이어가거나,
10년 이상 긴 호흡으로 하나의 커리어를 지속하거나.
이들은 어떻게 각자의 길을 만들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패널(좌측부터)

엔씨문화재단 김경헌 팀장, 서울경제신문 박해욱 기자, 음주문화공간 기획자 원부연 대표


진행

루트임팩트 송예리 매니저



저는 소셜섹터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어 하시는 청년 분들, 아니면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커리어를 잠시 멈췄다가 이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하고 싶으신 여성분들을 위한 임팩트커리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오늘 오신 세 분은 그동안 제가 배워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색을 가지고 계신 분들인 것 같아요. 서로 굉장히 유사성이 없어 보이는 커리어를 도장깨기처럼 이어가며 이직을 하고 계시는 프로이직러 한 분(NC문화재단 김경헌 팀장), 13년 동안 한 조직에서 일을 하시면서 한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여러 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 사이드허슬러 한 분(서울경제 박해욱 기자), 10년간 한 조직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운 업에 뛰어들어서 창업을 하신 연쇄창업러 한 분(음주문화공간기획자 원부연 님). 이렇게 모셨습니다. 세 분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경헌

 엔씨문화재단 이라는 비영리재단 에서 사업팀을 맡고 있는 김경헌이라고 하고요, 저는 공대에 진학을 해서 제가 문과 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굉장히 힘든 대학생활을 보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심연의 우물을 탈출할까를 고민하면서 학교다니면서 딴짓도 많이 하고, 프로젝트도 많이 하면서 그 우물을 겨우 기어 나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첫 번째 직장은 컨설팅회사에서 시작을 했고요, 3년차 쯤에 사표를 쓰고 아프리카로 날아가서 봉사활동을 좀 하면서 아프리카의 정부기관에서 국가개발 일을 했었고, 그러다가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잠깐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몸을 담았다가 사회적 기업을 하나 창업한 경험이 있어요. 두번째는 돈 되는 창업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IT벤처를 하나 창업하여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회사를 만들었다가 조금 더 큰 회사에 매각을 했어요. 매각을 하고 저희를 매수한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을 하다가 2년 전에 그만두고 비영리 섹터에 대한 관심으로 지금은 엔씨소프트 라는 게임 회사에서 자금을 출연해 만든 재단에서 사업팀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박해욱

 사이드허슬러라고 소개로 받았는데 전 솔직히 사이드허슬러라는 말도 이번에 알았어요. 저는 딴짓을 많이 하고 있긴 한데 그런 것을 특정 용어로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몰랐고요. 저는 경제지에서 13년 동안 일하며 생활하고 있고, 한 4년 전 쯤인가 고용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직장 생활을 안정적으로 지키면서 실행할 수 있는 사이드프로젝트를 찾아 열심히 탐구하고 있어요. 저는 창업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직장인의 창업이요. 그래서 작년에 <달고나>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아무도 모르실거예요. 워낙 인기가 없어서요. 직장인의 공동창업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파트너로 하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온라인유통 그리고 요식업, 옆에 계신 원부연님과 비슷하게 술집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화장품 판매까지 하면서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일을 탐구하고 있어요.


원부연

 저는 음주문화공간 기획자 원부연이라고 하고요. 2006년 가을부터 2014년 여름까지 광고회사를 다녔어요. 첫 번째 회사는 웰콤이라는 광고회사였고 두 번째로 TBWA 라는 광고회사에 , 현대자동차그룹사 이노션에서 마지막으로 광고기획자 일을 하고 퇴사했습니다. 저는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3-4년이 걸렸어요. 왜냐면 여기 회사 다니시는 분들, 제가 아는 분들도 몇 분 오셔서 아시겠지만 조직에서의 나와 내가 아는 나는 좀 다르잖아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긴 한데 조직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고 하지만 조직에서도 나름 또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좋은 직장인이란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은 일도 똑같이 꾸준하게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냐면 저는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은 점점 노력을 안 하고 생각을 안 하고 고민을 안 하게 되었거든요. 

 예를 들면, 회사 행사 사회를 본다든가, 의전을 한다든가, 아니면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한다든가, 주간 업무 회의 자료를 쓴다든가 하는 것들을 점점 하고 싶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하기 싫어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직장을 더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조금씩 고민을 해보게 됐죠. 사실 제가 처음부터 ‘나는 사업을 많이 할 거야, 공간을 다양하게 오픈 할 거야’라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까 그런 힘이 있는 거예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좋아하고 이런 공간이 없으면 한번 만들어 보자 하는 마음에서 기획을 하게 됐고, 술로 시작을 했지만 사람, 컨텐츠, 공간 등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모이는 힘을 제가 기획하면서 많이 얻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라는 직업도 제 스스로 정의를 내리게 됐고요. 이렇게 되기까지 우연도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맥도 있었고, 또 제가 가진 아주 약간의 재능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을 계속 찾고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오늘 이 자리에까지 앉게 되었습니다. 

  


커리어에 미치는 기질의 영향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을 것을 아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생각하지 못 하셨을 거예요.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데 여러분이 가진 각자의 기질,특성,성향 같은 것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 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동아리를 하면서 재능을 발견했어요.'
'적당히 하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예요.'
'호기심과 실행력을 꼽고 싶어요.'

원부연

 저는 기획자라고 저의 직업을 소개하긴 했지만 다들 ‘기획자의 기획력 같은 것을 도대체 어떻게 발견할 수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근데 저는 매우 감사하게도 동아리를 하면서 재능을 발견했어요. 저는 대학교 때 연극동아리를 했거든요. 연극 동아리를 하면 연극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짧게는 세 달 많게는 다섯 달 동안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거나 연출하기도 하고, 배우를 하기도 하고, 기획을 하기도 하고, 스탭을 하기도 하죠. 그럴 때는 그냥 선배들이 시키니까 했는데 하다 보니까 제가 기획하는 일에 좀 재능이 있고 또 재밌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무언가 어렴풋하지만 내가 기획자로서 좀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 와중에, 운이 좋게도 광고 방송 영화 산업에 일하는 선배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래서 기회를 주시면 광고 촬영장에서 알바도 해보고, 인턴도 해보고 하면서 기획자라는 역할이 나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이 커졌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떤 조직일까 탐색하다가 광고라는 직업과 잘 맞겠다고 판단했어요. 사실은 다녀보면 ‘회사는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래도 막연히 ‘광고’ 하면은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생각해 내고, 결국에는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 편안하게 내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업계라는 점에서 광고기획자 역할을 시작하게 됐고요. 

 기획이라는 것은 늘 어떤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여행을 가더라도 ‘어, 죽을 수도 있어!’ 하는 여행지를 선택한다든지, 남들이 A라는 길을 대체로 가려고 할 때 B나 C에 대한 길로 한 번 가 본다던지요. 그럼 이제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들이 결국에는 기획자로서의 좋은 자질, 역량, 혹은 제가 가진 약간의 재능 등이 더해져서 조금 더 시너지가 났던 거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기획자란 역할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창출해야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저의 성격, 그리고 술자리에서 듣는 다양한 아이디어, 영감들,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보다 빨리 성장 하지 않았나(생각해요). 억지로 ‘내가 성공하겠다!’ 라고 해서 이룬 게 아니라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인풋과 아웃풋을 적절히 컨트롤 하면서 일했던 과정들이 지난 2014년 여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저의 재능을 찾았고, 그것들을 적용하면서 오늘도 성장을 하는 과정 중에 있어요.




김경헌

 기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커리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적당히 하는 것’을 싫어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시간을 보내고, 오늘 하루를 넘기자는 그 태도가 저에게는 너무 불편한 것이어서, 루틴이 생기고, 이렇게 하면 오늘 하루가 넘어가고, 일주일이 넘어가는 그런 상황을 자꾸 피하게 되더라고요. 

 첫 번째 직장이 컨설팅 회사였는데, 컨설팅 회사는 한 3개월 단위로 프로젝트가 계속 바뀌어요. 그러니 시시각각 정말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거든요. 제가 중공업을 전혀 모르는데 중공업 클라이언트를 대하려면 공부도 해야 되는 것처럼요. 근데 이것도 한 2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대충 요령이 생기는 거에요. 이렇게 공부해서 요렇게 컨설팅을 하면 요렇게 되겠구나 하는 루틴이 생기게 되니까 어느 순간 제가 매우 치열하지 못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바꿔 봐야 되겠다. 어떻게 바꿔야 되나?’ 고민을 하니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봐야 되겠구나. 누가 한번 다녀간 길은 대충 지도 가 나오고 루틴이 나오는데 안 가본 길은 내가 그 길을 개척해야 되니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은 것이어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며 도전 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 커리어 11년 차가 되었는데 이력서가 누더기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웃음). 


박해욱

 저는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거는 직장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계속 꿈꾸는 건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느냐.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탐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매우 평범하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래서 아까 사회자께서 말씀하시는 자질이라는 것이 만약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언가라고 한다면 딱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두가지 중 하나는 호기심이예요. 저는 세계 평화, 국가 재정, 이런 것들에는 큰 관심은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는 남들보다 좀 다방면에 걸쳐 있는 것 같긴 해요. 기자라는 직업 자체도 사실 질문을 하는 일이고 질문의 원동력은 호기심이거든요. 그래서 제 직업은 저한테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앞에서 홍윤희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스페셜스피치 세션) 중에 제가 기억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부분에 저는 120% 동의해요. 왜냐면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여기에서 저는 두번째, 남들과는 다른 자질이라고 한다면 부끄럽지만 실행력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그냥 합니다. 뭐가 됐든 해요. 그게 제가 관심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다른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드리면서 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고, 사실 솔직히 말해 이 자리가 저에게는 매우 힘들거든요. 이것도 제가 수락하고 나니까 엄청나게 스트레스더라고요. 자질이라는 것이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게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게 되게 선천적인 제가 타고난 것이라면, 지금처럼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자리가 곧 제가 일하는 것을 활용할 수도 있거니와 그 다음에 개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커리어를 맺고 끊으며 겪은 주변의 시선


세 분이 이렇게 여러 가지 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은 본인이 하고 싶으니까, 내가 하고 싶기 때문에 이것을 하겠다, 라는 생각이 가장 강했을 것 같은데요. 그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는 데 있어, 한국 사회에 살면서 주변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경헌님 같은 경우에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기자님 같은 경우에는 왜 멀쩡한 직업 놔두고 딴 짓하고 다니냐, 그리고 여자가 술집을 해서 어떡하려고 하느냐, 이런 시선들을 좀 받으셨을 것 같아요. 실제 경험이 어떠셨는지 한번 들어 보고 싶어요



'처음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30명이나 50명이나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이건 블루오션이다.'


김경헌

 처음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이게 관성이 생겨서 더 하게 되는거죠. 첫 직장 때 실은 잔소리 많이 들었어요. 회사 분들도,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석사 따고 다시 돌아오면 또 일할 수 있다며 설득하기도 했고요. 항상 마음이 어려우셨던 건 어머니셨죠. 왜 자꾸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하는지 걱정하셨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제가 진짜 행복한지가 중요했던 거 같아요. 남들의 시선이 매우 많이 신경쓰이고,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속된 말로 ‘관종’ 기질도 있어가지고 남들의 시선을 아주 많이 신경쓰는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스스로 지금 행복한 상태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어요. 단순하게 하루에 5분 정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내가 지금 행복한가?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지금 가슴 뛰게 일하고 있나?’ 일을 하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사치일 순 있겠지만 저는 이게 누적되면 어느 순간 이 곳이 더 이상 나에게 성장과 자극을 주지 못 하겠다는 메시지가 왔어요. 그때 좀 과감하게 뛰어나가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면 또 새로운 기회들이 열렸고요. 물론 그 기회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어서 사업을 대차게 망하고 돈 꽤나 날렸던 적도 있지만, 그 순간들이 쌓이면서 저라는 사람이 성장하고, 계속해서 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보다는 훨씬 영양가가 있다는 경험을 했죠.


박해욱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장점을 보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직장 생활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게 나았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아직까진 없는 거 같아요. 대신 저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딴짓은 회사 밖에서 하자고 생각을 해요. 국가에서 지금 주 52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52시간의 반대말은 116시간이거든요. 그 시간은 온전히 제 거라는 뜻이죠. 그 시간에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일을 했던 거 같아요. 저는 월급을 유지하면서 밖에 나와서 제가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고 생각해요. 제 소개를 드릴 때 말씀드렸지만 저는 공동창업에 관심이 많아요. 저 혼자 주인공이 되면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시선, 남들의 시선에 대해 용기를 내서 일해요. 회사에서 제가 딴 짓을 하면 할 수록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점점 늘더라구요. 그런데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30명이나 50명이나 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다 싫어해도 나는 내 갈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는 직장 이라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직장이지, 내가 직장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이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원부연

 저는 ‘여자가 술집한다’ 라는 말의 뉘앙스가 이상해질 수 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서 많이 느껴요. 왜냐하면 보통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나서 무슨 일 하는지 제게 물었을 때 ‘술집 해요’라고 대답하면 “아 죄송합니다.” 하고 대답을 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죄송하지? 내가 내 일 하고 있는데?’ 싶었던 경우도 있었고, 친한 선배가 선배 가족한테 저를 소개할 때 ‘부연이는 상암동에서 카페 해’ 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커피 안 파는데 말이죠. 그래서 아 이게 뭘까, 내 직업과  일 때문에 오는 이 어색함은 뭘까 했더니 그게 곧 사회적 통념과 시선인 것 같아요. 아니 뭐, 대학 나와서 대기업 다니다가 여자가 술집을 한다는 것에 대한 시선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어쨌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우고 살아왔는데 사회에서 편견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도 느꼈어요. 여성분들이 뭔가 일을 잘 하려면 남성보다 더 열심히 하거나 더 잘해야 한다는 콤플렉스 혹은 의식들이 없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저도 직장 다닐 때 그런 것을 약간씩은 느꼈던 거 같고, 이제 이 일을 밖에 나와서 하다 보니까 이제는 남자 여자를 떠나서 이제 생존의 문제라는 걸 겪고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그런 시선을 넘어 내가 잘하는 것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고, 진짜 열심히 노력해서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보니 사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잠 잘 때까지 하루 종일 일에 대한 생각만 해요.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요. 회사다닐 때는 하기 싫은 일도 생각해야만 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지금 선택한 저의 직업과 일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어도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거든요. 그런데 이 시간이 너무 귀중하고, 귀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이 시간을 잘 써야 하겠다 생각도 들었고요.  

 여기 있는 세 분의 경우에는 안면이 있었는데요. 예리님(모더레이터)도 알았고, 경헌 님(NC문화재단)도 알았고, 해욱 님(서울경제)과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적으로 그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서로 다른 셋이 모였는데 쓰는 단어들이 아주 비슷해서요. 여러분들도 아마 느끼셨을거예요. 호기심이라든지, 대충 하고 싶지 않다든지, 한다면 제대로 하고 싶다든지, 대충 하는 일은 나는 그만두겠다든지, 혹은 생각하면 바로 실행한다든지 하는 부분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장 속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남들이 생각만 하고 멈췄던 일이라도 잠깐만 고민하고, 해야겠다 싶으면 바로 실행해서 어떨 때는 말과 행동이 거의 동시에 나가요. 일이 너무 많을 정도로요. 그렇게 해야지만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가지 저도 몰랐던 일을 하다 보니 시선, 사회적 인식, 어려움 혹은 관계의 서먹함같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결국에는 노력하면 어느 순간 그 고비는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제가 음주문화공간기획자 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지만 (제가 강연에 간다거나 할 때) 좀 보수적인 기업에서는 ‘음주’라는 단어는 빼고 싶어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음주문화 공간기획자든, 문화공간 기획자든 (그런 수식을) 다 떼고 그냥 기획자든, 하다 못해 인간 원부연이든 상관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고요. 그런데 다만 제가 하나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내가 하는 일은 블루오션이라는 판단이예요.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열 평짜리 술집이 무슨 대단한 사업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제가 운영하는 여섯 개 공간들 하나하나가 모였을 때 분명히 이 시장에서 블루오션이 될 수 있고, 제가 지향하는 모델도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에 없는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저 혼자서 하나하나 조금은 다른 개념, 다른 시장으로 세팅하고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커리어패스 중장기 설계는 유효한 고민일까?


부연 님의 경우 중간에 말과 행동이 동시에 나가기도 한다고 하셨는데요, 많은 주니어 친구들이나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사실 첫 커리어에 대한 부담감이나 중압감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내 커리어가, 내 첫 발이,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만 다음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렇게 조금은 중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걱정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방향보다는 일하는 속도나 동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찾아올 관심사와 흥미에 충실하는 것'
'시작하는 단계의 사람이라면 조직을 경험하는 것은 좋다고 봐요.'


김경헌

 실은 인생이라는게 계획대로 되질 않아요. 그래서, 그 중장기계획이라는 게 저는 어디까지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족적을 남기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첫 직장을 가고, 두 번째 직장을 가고, 그 직장의 자리에서 내가 조금은 삐끗했다고 생각하고, 조금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최선을 다 하고 내 일 처럼 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 모습이 곧 사람의 평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내가 초반에 조금 삐끗해도 어딘가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때 ‘저 사람은 정말 믿고 다른 회사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레퍼런스 체크 를 하게 되거든요. 첫 직장은 그런 경우가 잘 없지만 이제 두 번째 세 번째로 넘어가면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해져요. 그래서 아예 대 놓고 물어 보는 경우도 있죠. 저도 누군가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를 아주 많이 받고요. ‘그 친구 어때?’ 라고 했을 때 저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좀 별로라고 생각해’ 라고 말하게 되면 그런 순간 (평판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 회사를 가기로 했어. 너무 잘됐다. 우리 회사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 회사로 가면 엄청난 일을 해낼 거야’ 라고 말하며 제가 이야기 해줬던 분들도 매우 많아요. 결국엔 나의 첫 단추를 어디서부터 끼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끼우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일명 ‘프로이직러’로 이직을 많이 해 봤지만 ‘여긴 아니다’ 싶은 곳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잘못 발 디딘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잘 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최선을 다 하고요. 그럴 때 저도 심하면 탈모도 겪고 스트레스 받은 적도 많았지만 그 시기를 견뎌내면 ‘어쨌든 저 친구는 여기서 무언가를 하고 간 사람이야’ 라는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순간의 선택에 있어 방향보다는 일하는 속도나 일을 해내는 동력 같은 것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해욱

 계획과 관련해서, 최근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 보면 주인공 기택이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 무계획이다.’고요. 여러 가지의 메타포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제가 듣기에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곧 비(非)기득권층의 삶은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메시지 같았거든요. 저는 무계획까지는 아니어도 계획에 치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경제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자신만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들을 더러 만나봤어요. 근데 그 분들 중에서는 본인이 생각한 삶의 단계마다 목표 같은 것도 있었거든요. 이 분들이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잡고 실행에 옮겨서 여기까지 왔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정작 저 같은 범인한테 대입을 하니까 안 되는 거에요. 당장 저는 책상을 치워도 며칠 있으면 또 똑같이 되거든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거라고 깨달아서 제 커리어를 설계할 때 계획에 별로 치이진 않아요. 다만 현재를 즐기다 보면 결과는 따라 올 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거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질이 없는 분이 중간 단계에 와서 낙오하고 우울해서 실망을 하는 것보다는, 그저 자기한테 찾아올 어떤 관심사나 흥미,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등에 충실하면 그 분이 가고자 하는 길에 결국은 도달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원부연 

 시작하는 단계에서, 조직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더라고요. 부모님들이 보통, ‘그래도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라는 말 많이 하시잖아요? 그럼 일단 그렇게 시작해 보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봐요. 회사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을 때 회사의 주간, 월간, 연간 리포트에 따라 세팅을 반복하잖아요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한 3년 정도 하면서 로테이션을 경험해 본 다음에 거기서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지 한 번 찾아보는 거죠. 요즘은 주 52시간 근무를 하면서 개인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면 외부 활동을 하면서 좀 찾아볼 수도 있겠죠. 저는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라는 책을 썼지만 무슨 자신감으로 ‘괜찮습니다.’라는 말에 마침표를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요즘엔 저도 ‘물음표로 바꿔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진짜 밖은 정글이기 때문에 회사는 매달 월급을 주는 고마운 존재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내가 좀 달라도 되지 않을지, 꼭 일이라는 게 나의 (관심사와) 동일하게 가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어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시작하는 단계에서 조직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고, 그 다음에는 이것 저것 시도해 보면서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한번 밟아보는 경험’을 하시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어요.  



나의 커리어 상황에 확신이 없다면?

지금까지 꿈을 좇아서 거래를 하는 것, 혹은 계획을 갖고 커리어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성과를 잘 내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이 조직이 나랑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혹은 다 이뤘다는 마음으로 다음 회사로 스텝을 옮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세 분은 굉장히 진취적이고 주도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아닐 면도 있을 것 같고요. 다음 스텝으로 갈 때 내가 도망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혹시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여쭤 보고 싶어요.


'Employee가 Employer의 눈치를 보는 건 잘못됐어요.'
'기업의 채용시스템이 문제예요.'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해보세요.'

김경헌

 저는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철저하게 고용주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수 따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실은 지금 이 자리에 저희 회사 직원이 나와 있거든요. 저한테 말도 안 했지만, 여기에 와서 커리어를 탐색하고 있을 수 있는거죠. 근데 저는 이게 너무나 건강하고 바람직한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내가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일을 너무 못 하고 있는 것만 같고, 요즘 말로 ‘월급 루팡’인 것 같고, 밥 값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철저히 면접자의 잘못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데려다가 키워서 활용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만 되는 거고, 그 사람이 그렇게 일하고 있지 못하다면 (면접자의)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되었음을 탓해야지요. 물론 이것은 다 일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전제 하입니다. 반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본인이 무기력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고용주의 잘못이라고 봐요. 그리고 고용주라면 본인이 그 사람을 봤을 때 ‘이 사람이 행복한가, 일은 재밌게 하고 있나’ 등에 대해 계속 민감하게 눈치를 봐야 되는 거예요. Employee가 Employer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고 보는 거죠. 저 사람이 여기서 성장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회사 입장에서는 그 사람과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하는거예요. ‘힘드니, 괜찮니, 그럼 회사 안에서 다른 거 해 볼까, 이런 걸 해 볼래, 끝까지 해서 안 되면 정말 미안해. 그러면 다른 곳을 알아보자. 내가 도와줄게.’ 저는 이런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못 하면서, 직원에게 ‘내가 너 월급 주니까 너 나한테 최선을 다해. 충성을 다 바쳐.’의 문화가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는) 여러분, 남 탓을 하세요. 회사 탓을 하시고요. 그런데 이렇게 조직문화가 바뀔 때 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그래도 저는 언젠가 그런 고용주들이 생기면 이러한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은 제 직장에서 최근에 직원들하고 면담을 한번 쭉 했어요. 그 때 제가 부탁했던 것은, ‘힘들면 얘기하고 나가고 싶으면 같이 고민하자. 네가 다른 곳을 가게 되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렇게 가족 같이 핑퐁이 되는, 그런 문화를 꿈꾸고 그려 나가고 있고, 그런 문화를 우리 다 같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박해욱

 저도 이런 분 밑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제가 늘 직장 생활하면서 무엇이 힘드냐면 ‘너 때문에 힘들다’ 라는 문화가 대부분이잖아요. 사실은 경헌님께서 아주 좋은 포인트를 말씀하셨는데 대한민국 기업에서의 채용시스템이 문제예요. 저는 신문사에 있다보니까, 회사에서 수습기자를 뽑을 때 세 단계의 채용시스템을 거쳐요. 첫 번째가 그 서류 심사, 두 번째가 필기, 세 번째가 면접이거든요. 필기까지는 보통 약 10배수를 뽑는데 면접에서 그 중 몇 명이 추려지죠. 그런데 면접시간이 딱 3시간 정도 돼요. 그 3시간을 보고서 30년을 같이 일 할 사람을 찾는 거예요. 제가 알기로 웬만한 신문사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아직까지 갖추고 있고, 비교적 올드한 조직이다 보니 이런 시스템의 오류를 개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걸 기대하다가 저희도 다 늙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아까 질문하신 게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때 그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거죠. 이제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거든요. 일본에서는 ‘더블 잡’ 을 법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은 주 52시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더블 잡’들도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거예요. 점점 고용시장이 그렇게 변해가거든요. 제가 첫 번째 직장을 선택한 후,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아직 저는 직장이 싫증도 안 나고 재밌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죠. 그런 분들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은, 결국 본인에게 가장 맞는 직업을 찾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 직장, 세 번째 직장 등을 선택하는 모습이 앞으로는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김경헌

 제가 경험했던 인상깊은 면접이 구글 면접인데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한창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가지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여러 분의 소개로 구글 본사와 화상면접을 했어요. 비디오 채팅으로 일곱 번 면접을 봤죠. 그 질문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네가 왜 ‘구글리(Googley)’ 한 사람인지를 설명해 보라’ 는 것이었어요. 일단 ‘구글리’가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저한테 네가 왜 구글리한지를 설명하라는 거예요. 그 질문의 함의는 곧 ‘네가 구글에 지원 할 때 어떤 생각에서 지원하는 것인지 똑똑히 생각하고 지원해. 우리는 ‘구글리’ 한 사람을 원해. 네가 생각하는 구글은 뭐야, 그게 우리랑 맞을 것 같은지 한 번 설명해 봐.’인 것이죠. 그런 대화를 일곱 번 인터뷰의 말미에 항상 하거든요. 일곱 명의 다른 ‘구글러’들과 함께 ‘구글리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순간에는 너무 짜증나더라구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정도의 과정을 거쳐서 누군가가 내 가족이 됐을 때에야 비로소 아까 말했던 그런 관계들이 생기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실은 저는 조금씩 더 작은 회사들, 또는 다른 중견기업들이 이런 방식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문화들이 좀 더 커지다 보면 아예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부연

 이 질문이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 저는 경헌님 말씀에 100%, 200% 동의를 해요. 이끌어 주는 사람에게 분명한 잘못이 있죠. 저도 햇수로 9년, 10년 회사생활을 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너무 어려워요. 현실에서는 하다 못해 일만 잘하는 선배, 일만 잘하는 팀장님도 만나기가 너무 어렵고, 일도 잘 하면서 인성도 좋고 팀원들에게 하나 하나 역량과 재능을 발견해 주면서 깊이 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조직이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에서는 조금 힘든 일이지 않나?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희의 커리어를 신경 써 주는 것만이 곧 조직이 아니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왜냐하면 조직에서 제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너지를 내는 것에는 한계가 많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는 제가 고용주잖아요. 제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직원을 뽑고, 그래서 매니저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려운 것이 뭐냐면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같이 일해 본 다음에 채용하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매니저에게 맞추어 오픈하기도 해요. 어차피 가게 운영을 매니저가 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컨셉으로 운영하고 싶은지, 하다못해 어떤 느낌으로 인테리어 디자인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봐요. 그렇게 얘기도 많이 하고 잘 준비하면 우리가 운영하는 것이 굉장히 이상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은 또 녹록치가 않거든요. 안 맞는 부분도 아주 많고요. 그리고 생각보다 나의 눈높이에 맞거나 혹은 그보다 높게 행동하는 직원은 없다는 것도 인정을 해야 하는 거고요. 그런 부분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저도 아직까지는 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 있고 고민을 많이 하는 단계예요. 일단 여러분들이 뭔가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생각하신다면 아까 홍윤희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스페셜스피치) 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너의 고민을 이야기해 보라’는 성격의 이야기를 하셨던 거 같은아요. 그게 저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제가 그 동안에 는 모더레이터인 송예리 매니저님을 잘 몰랐는데 올해 알고 지내게 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런 예상치 못한 만남들을 통해 그 때 그 때 좋은 팁을 얻을 수도 있고, 예전에 있던 회사 선배로부터 아주 좋은 조언이나 아이디어도 많이 얻죠. 그런 사람들과의 수많은 경험은 내가 가만히 있는데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자꾸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해야죠 그러면서 얻는 팁을 잘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들을 나의 다음 스텝에 적용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은 태도 혹은 실행력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먼저 알아주지 않잖아요. 먼저 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는데, 그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 보시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커리어 컨설턴트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솔직히 나에 대한 점수를 이야기 해 주시기도 해요. 나의 능력과 경험들을 종합해서 사실은 ‘이 정도가 현실적으로 맞는 것 같다’라는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요.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들을 좀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사실은 아직까지도 제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게 어렵거든요. 



커리어 성장의 목적


저는, ‘어차피 일을 할 건데, 내가 조금 더 즐겁게 성장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직을 하고 보니까 도대체 언제까지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인지(성장의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을 할 때도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세 분에게 있어서 커리어 성장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 보고 싶어요.


'저에게 성장이란 현실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만드는거예요.'
'커리어를 지나온 길에 남는 사람들이 곧 제게는 성장이예요.'
'성장이 종착지라면, 제게 그것은 조기은퇴와 안빈낙도죠.'

원부연

 성장에 대한 고민들을 누구나 다 하시겠지만 저도 굉장히 많이 하는데요. 제가 주기적으로 만나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벤처캐피탈 투자 자문 모임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고민이 있고 앞으로 내가 성장하려고 이런 걸 해야 될 거 같은데’, 라고 이야기하니까 어떤 스타트업 대표님께서 아니 ‘왜 성장을 해야 되냐’ 라는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성장은 어떻게 보면 동기부여를 위한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금, 2019년까지를 돌아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달려오면서 공간도 많이 만들었고, 책도 두 권을 쓰고 다양하게 강의도 많이 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가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가 아닐까 싶으면서 염려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하반기에는 일을 조금 줄이고 여러가지 일 중에서 내가 집중을 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해요.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래서 지금 저에게 성장이란 무언가를 하려고 끊임없이 색칠하기보다는 보다 객관적으로 저의 현실을 파악하고 직원들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지금 시점에서 저에게는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멈추는 것이죠.


김경헌

 저에게 성장은 곧 제가 커리어를 지나온 길에 남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제가 첫 직장을 다닐 때 그런 일이 있었어요. 계약을 힘들게 한 날이었는데 한 자정 쯤 지나도 제게 퇴근할 기미가 안 보였을 때, 저희 팀장님이 저에게 ‘퇴근해, 남은 건 내가 할게.’ 라고 하셨어요. ‘아,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아니야, 내가 월급을 더 받는 이유는 일을 더 해야 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지금은 그 회사의 파트너가 되셨고요. 내가 함께했던 그런 상사 분들이, 시간이 지났을 때 ‘너 같은 후배 직원이 여전히 그리워’라고 말해줄 수 있을 때. 그리고 시간이 지났을 때 제 부하 직원이 다시 저에게 찾아와서 ‘그 때가 되게 좋았어’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사람들이 쌓여 나가는 게 저에게는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프리카 얘기를 드렸었는데요,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일을 했고, 저희 팀에 에티오피아의 한 대학을 졸업한 직원이 입사를 했어요. (객관적으로)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직원이었고 제가 면접을 봐서 채용한 것도 아니었죠.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다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3시간이면 하는 일을  3일이 걸려 했죠. 사실 제가 그것 때문에 구글 면접을 봤던 거거든요(웃음), 그냥 너무 힘들어 가지고요. 그 때 합격을 하긴 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좌절이 되고, 어쩔 수 없이 당시 직장을 더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이 직원을 잘 키워보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정말 주말에 따로 붙어서 엄청나게 트레이닝을 함께 했거든요. 그러고 나서 6개월이 지났을 때, 제가 업무를 다 맡기고 휴가를 갔던 날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그 직장을 퇴사하고는 이제 그 직원이 팀장이 됐죠. 그리고 그 친구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요. 제가 창업을 했을 때도 저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지금은 벤처 대표로 창업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찾아와서 이야기를 구하는 그런 경험들, 그런 사람들이 남는 게 저한테는 아주 큰 성장인 것 같구요. 

 저는 이 커리어에서 제가 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더 좋은 커리어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커리어를 찾고 취업하는 것을 결혼에 비유하면 아주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첫 만남에 바로 결혼에 골인 해서 쭉 사시기도 하고, 계속 이상형을 골라 가면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요. 제 어머니는 가끔 하시는 말씀이, ‘그 남자가 그 남자고 그 여자가 그 여자다’ 라며 그냥 맞춰 살면 되는 거라고 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 할 수가 없거든요. 저와 맞는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직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성장을 하면서 가능해지는 거고요. 결국에는 저도 어느 순간 한 10년, 20년 길게 다닐 수 있는 직장을 만났으면 좋겠거든요.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제가 노력하면서 사람을 만나 가는 것처럼 일을 대하고, 그러기 위해서 제가 성장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해욱

 경헌님 이야기는 제가 듣다보면 자꾸 ‘정말 잘 자라서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바르고 바람직한 생각인 것 같아요. 정말 진심이고요. 저는 커리어의 성장이란 ‘내 삶의 종착지’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다면(이를 전제한다면) 저의 종착지는 조기은퇴고, 그 다음이 곧 안빈낙도입니다. 저도 주변에 있는 동년배에 비해서는 시간을 정말 잘게 나눠 쓰고있고 잠도 한 시간만 더 자자는 주의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곧 조기 은퇴와 안빈낙도의 삶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커리어에 있어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드려 볼게요. 제가 일하면서 만난 한 창업가가 있는데, 그 분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나요. 본인은 창업을 해서 3년 후에 벤츠를 탈 거고, 5년 후에 포르쉐를 탈 거고, 10년에 페라리를 타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런데 실제로 그 분이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서 ‘저 분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정답일 수 있겠구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커리어에 있어 성장이라는 것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미 멋진 일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모두가 각자의 커리어 성장의 정의(목표)를 갖고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작성/정리 : 루트임팩트 박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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