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과 함께 만나보는 "The Wellbeing Project"의 이야기
우리는 설렘을 안고 또는 그저 떠밀리듯 커리어의 시작점에 서게 됩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좀 더 넓은 길로, 혹은 다른 길로 시선을 옮겨 걷고 싶기도 하죠. 때로는 그 여정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희열을 맛보기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루트임팩트가 준비한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일하고 싶은 자, 일하고 있는 자, 일하기 싫은 자>에서는 다양한 일의 모습과 의미,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제 3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의 기록을 여기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세션별 영상을 루트임팩트 Youtube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
웰빙프로젝트(The Wellbeing Project)는 모든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해 내면의 웰빙 문화를 형성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자 체계적으로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본 프로젝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랑, 배려, 공감(compassion)에서 시작했습니다. 체인지메이커가 일을 하는 여러 이유와 행동/실천을 지지합니다. 웰빙프로젝트에는 변화를 지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보다 큰 미션에 기여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4개의 전략적인 단계/중추(pillar)가 있습니다. 웰빙프로젝트는 아쇼카, 이살렌연구소, 임팩트허브, 포티쿠스, 스콜파운데이션 그리고 시너고스 연구소와 함께 합니다.
아래, 웰빙프로젝트의 <Inner Development Program>을 경험한 Bedriye Hülya, Cecilia Flores, Kabir Vajpeyi 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그 과정 속에서 웰빙프로젝트를 만나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진솔하고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사례는 다를지라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함께 들어보고 나의 경험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우리는 가끔, 겪는 일의 꽤 많은 부분을 깨닫지 못한 채 살죠. 전 항상, 저 같은 사람이 창업을 할 수 있다면 모두가 창업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전 내성적이고, 제 방식대로이고, 시작할 때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일해요. 그런 게 좋아요. 하지만 자리가 잡히면 괴로워지더라고요. 경영이 특히 끔찍해요. 경영을 원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데 하고 있으니까요. 그저 제가 경영을 하는 자리에 자신을 몰아넣은 거죠.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비슷해요. 저 빼고는 (그게 제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다 알잖아요.
네, 전 항상 화를 내고 있었더라고요. 한 번은 공황장애가 왔는데 그것조차 화가 나는 거죠. 제 인생은 일, 일, 일의 연속일 뿐이지,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없었거든요. 번아웃도 많이 왔는데 스스로 그 이유를 찾지 않고 무시했었나봐요. 제가 불행한 이유는 일이나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어요.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제 안엔 무언가 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무수한 상실과 트라우마, 슬픔이 있었으니까요.
그 땐 몰랐는데 지금은 말할 수 있어요. 당시엔 쳇바퀴 도는 햄스터처럼 “그래 가자, 가자, 가자, 가자”하고 외치기만 했어요. 그 때가 바로, 제가 웰빙프로젝트라는 것에 대해 듣고, 아쇼카 분들이 제안을 해 주었을 때였죠. 저는 작은 변화를 만들지만 이 변화는 저희 조직에 조금 더 크게 반영되죠. 조직의 변화는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에 더 큰 변화를 가져다주고요. 이제는 개인에게 미치는 변화가 그런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즉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전부라는 거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고요. 웰빙의 과정은 끝이 없습니다. 그 사실이 좋아요. 그것이 좋은 느낌을 주죠. 저는 이 (웰빙) 프로젝트를 끝내지 않으려고요.
*B-FIT에서 Bedriye가 하는 일은 터키 내 200개 이상 센터, 80만명의 여성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실리아와 비사얀 포럼은 현재 ‘자유로운 사람들의 목소리’로 불린다. 인신매매에 반대하며 그간 1000명이 넘는 협력자 (콜라보레이터)들을 교육하고 6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도왔다. 현재 필리핀 내 인신매매 종결을 위해 소외층들의 개발, 복지, 권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 아직도 저희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나요. “조금만 버티시라고, 우리가 곧 이 혁명에서 승리할 것”이라고요. 어머니는 “그래, 잘 지내거라.”고 하셨죠. 그게 마지막 순간이 될 줄 몰랐어요. 다시 못 만났거든요. 제가 15살 때였을 거예요. 당시 필리핀은 폭군 같은 대통령에 시달렸고, 정치적 상황은 불안했습니다. 전 청년층을 모아 해방신학을 토론하도록 돕는 청년리더가 됐어요. 그 때가 어머니와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 저는 지하 조직 세 명의 여성지휘자 중 한 명이었어요. 임신한 채로 게릴라 투쟁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첫째를 가졌을 때는 산에서 싸우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제게 아들을 포기하라고 했어요.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그 사건들은 절 많이 바꿔놨어요. 더 힘들어졌고, 세상이 싫어졌죠. 결국 전 길을 잃었고, 진짜 제 자신을 잃었었죠.총격전은 계속됐어요. 임신 8개월이었고, 전 꼼짝할 수 없었죠.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요. 저와 항상 함께 했던, 비서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함께 참호를 만들었어요. 제 배를 땅에 묻었어요, 아이를 숨기기 위해서요. 그 친구가 통나무로 저를 덮어주었어요. 그렇게 저를 숨겨주려고 애쓰고 있을 때 그 친구가 그만 수류탄에 폭격을 당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숨을 거두면서도 제 이름을 불렀다는 걸 기억해요. 그리고 우리 (게릴라 투쟁자들)는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감옥에서 전 둘째 아이를 낳았고요.
우리 가족의 시작은 감옥이었던 거죠. 저희는 4년 후에 풀려났고, 또 아이를 원했어요. 모든 아이들을 함께 모으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의 한 챕터가 마무리됐고 전 마닐라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매주 토요일 한 대학에 모여서 우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함께 일할지 고민했습니다. 특히 저희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마닐라 지역에 실종아동이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아동 매춘, 소녀매춘부 등이 그 이유였죠. 아무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아동문제에 집중해 보기로 했어요. 비사얀 포럼 (The Visayan Forum)은 그런 배경에서 시작되었어요. 비사얀 포럼은 진실한 제 인생이 됐죠. 또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되었고요. 제가 겪어온 일들, 희생들, 제 스스로 관점의 의미에 대해서요. 그리고 그 때가 곧 제 안의 무수한 트라우마와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죠. 제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곱씹을 시간조차 없었던 거죠. 난리법석을 부리며 계속해서 달리기만 했습니다.
저는 웰빙프로젝트에서 원래의 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 모든 죄책감과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던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전 다시 밝아졌어요. 저는 선택을 한 거죠. 살면서 추구할 진정한 목적을 위해서요. 일도 더 잘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혐오나 미움에 기반해서 일하지 않으니까요. 제 꿈은 웰빙프로젝트에서 배운 기쁨과 지식 그리고 선물을 나누는 거예요. 제게는 정말 선물이었으니까요. 기쁘고 행복한 것은 언제나 자신의 선택이예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죠. 오직 당신만이 당신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인생에서 기쁨을 찾는 것도요.
*건축을 연구하는 디자인 센터인 VINYAS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책임감있고 풍부한 혁신으로 채우기 위한 연구, 디자인, 역량개발, 권익옹호 및 정책 활동을 펼친다.
언젠가 제가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법을 모른다고 느꼈어요. 진짜 문제는,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거였죠. 사람들이 ‘오늘 몸이 안 좋아요’라고 말하면 저는 이 사람의 병이나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누가 이 일을 끝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했어요. 즉 걱정해야 하는 건 제 행동이었던 것이죠. 저는 상대방이 가진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해서만 얘기한 거예요. 저는 해왔던 일에 대해 절대로 만족한 적이 없었어요.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지만 내면으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 프로페셔널로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었어요. 제 모든 시간을 그렇게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죠. 전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놓쳤어요.
저의 아들, 아내, 부모님께 전혀 시간을 쓰지 못했어요. 항상 늦게까지 일했죠. 드로잉을 확인했고, 항상 그 전보다 더 어려워졌죠. 왜냐하면 일이 많아지고 비즈니스가 커지는 데에는 그 만큼의 통행료가 있으니까요. 전 패닉이 왔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 아내가 대신 이야기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5월에 처음으로 웰빙프로젝트 모임에 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이해하지 못 했어요. 모임에서 전 누구와도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도 제게 그들의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문제될 것 없더라고요. 그게 최고의 요소였습니다. 내면적으로 사람들에 대해 전보다 더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제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저에게 아프다고, 혹은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도와줄지 물어볼 거예요. 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
제 인간관계의 핵심이 중요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제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나누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대요. 다양한 종류의 대화를 나눌 줄 알게 된 것 같고요. 제 아내도,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웰빙의 과정을 겪는 완벽한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완벽한 타이밍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오죠. 굳이 번아웃이 온 후에서야 웰빙을 접할 필요가 없죠. 그 소중함을 깨달은 그 시점이 언제이든 그 때가 바로 적절한 타이밍이예요.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당신 안에 무엇이 있고 당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자신을 깨닫는 과정을 경험할 타이밍이예요.
작성/정리 : 루트임팩트 권용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