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Back to the Backpacker

Morocco Diay / Ifrane

by 이인

오늘은 이프란으로 온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간만의 편안함에 긴장이 풀려서 인지 지난 밤엔 여행 중 처음으로 심한 복통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제외하면 지난 잠시간은 매일 세탁기도 돌리고 보송보송한 집 침대에서 사각거리는 이불과 함께 푹 쉴 수 있었던 여행이 아닌 생활인 시간이었다. 이러다가는 이곳에 계속 있고 싶어질 것만 같아서 지난 밤엔 Tomas와 Fazia에게 다음 동선에 대해 얘기했다. 아마 내일 정도엔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앙상한 풍경과 멀리 보이는 뾰족한 지붕들

저녁에는 돌아보지 못한 이프란의 구석구석을 좀 더 둘러보려고 시내로 나갔다. 시내로 나간 김에 약속했던 닭볶음탕 재료도 구입을 했다. 돈을 찾을만한 곳이 없어서 주머니 속 동전들을 죄다 동원했다. 다행히 흥정이 잘 되어 필요한만큼의 재료는 다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간장도 함께.


집으로 돌아 가기 전 마지막으로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한 노부부와 말을 섞게 되었고, 자기네들이 살테니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자며 나를 초대해 주어 작은 바에서 이프란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나눴다.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이 부부는 John과 Claire. 왠지 철수와 영희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천생연분처럼 느껴지던 이 노년의 부부는 단 둘이 모로코를 여행 중이라 했다. 아이들은 몇 살이냐는 철없는 나의 질문에 John은 껄껄껄 웃으며 두 아들은 이미 서른이 훌쩍 넘은 성인들이라 출가시키고 아일랜드에서 Claire와 단둘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해 주었다. 얘기를 나누다 밤이 늦어져 그들은 집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길이 익숙치 않아 다른 길로 들어서자 John은 미안해하는 내게 '여행에선 늘 있는 일이지' 하며 또 인심좋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무사히 Tomas와 Fazia의 집 앞에 내려다 주고는 또 인연이 되면 만나게 될거라며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은빛 머리카락이 닮아있던 그 모습이 나도 언젠간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해질녘 이프란 외곽의 풍경

집으로 돌아와 재료를 꺼내고 뚝딱뚝딱 특제 요리인 간장 닭볶음탕을 해주자 이번에도 역시 호의인지 진심인지 모를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Fazia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며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긴 했다. 음. 식탁을 물린 뒤 커피를 내리고 셋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간 생각해오던 루트를 Tomas와 Fazia에게 설명했다.


“내일은 사막으로 갈까 해”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어서 모로코에 대해 빠삭한 Tomas와 Fazia는 내 얘기를 들으며 격려해주었다.


“믿기지 않는 걸, 모로코에 올 땐 어떤 정보도 없이 왔다고는 하지만 네가 가는 동선이 일반적인 루트거든.”


Tomas가 가져온 지도를 펼쳐놓고 보자니 미리 계획한 동선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내게 유리한 동선을 그리며 모로코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지도가 되어주고 인연과 우연이 목적지가 되어 준 지난 몇 개월간의 동선이 놀랍게도 그랬다. 하지만 사막에서는 가이드 없이 혼자 다니긴 힘들 거라며 Tomas와 Fazia는 '따따 압둘'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름의 가이드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바가지를 씌우거나 할 일은 없으니 에라시디아(Errachidia)에서 그를 만나 메르쥬가(Merzouga)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를 위해 따따 압둘에게 말을 해둘테니, 가는 길에 혹시 여유가 된다면 예술 마을인 메스키(Meski)에도 들러 그곳의 유명한 음악인도 만나 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어제처럼 오늘이, 오늘처럼 내일이 늘 이렇게 내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메르쥬가. 다음의 목적지는 메르쥬가 사막으로 정했다. 이프란에서 에라시디아를 거쳐야 하는 긴 루트. 아마 또 지옥 같은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며 가야겠지만 다행히 이곳에서의 휴식 같은 며칠이 충전의 시간이 되어주었으므로. 그리고 그 지옥 같던 복통에서 몇 시간 만에 날 구해준 숯 100%라는 마법의 비상약도 챙겼으므로. 고마운 이들 덕분에 떠날 때 즈음 나는 체력도 정신력도 100퍼센트로 완충된 상태로 떠날 수 있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기운찬 backpacker로!

집에서 각자 일을 하던 Fazia(좌)&Tomas(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