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사하라로 히치하이킹 1

Morocco Diary / Errachidia•Meski

by 이인

Tomas와 Fazia의 추천대로 따따 압둘이라는 가이드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의 추천대로 에라시디아(Errachidia)에서 메스키(Meski)까지 들어가 유명한 음악인이라는 사람까지 만났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 가이드도, 메스키에서 만난 그 음악인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일정에 지쳐 메스키는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빠져나와 근처 호텔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딱히 정보가 없으니 이 덩치 큰 아저씨를 따라다녀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불만이 쌓여 그에게 계속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 있었다.


게다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계속 잔머리를 굴리는 이 남자를 따라 이프란에서 에라시디아로 그리고 메스키로 들어오는 동안 페즈에서 샀던 모로코 전통 의상인 질레바와 소중한 필름 몇 통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이제 정말 운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프란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엔 실망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프란에서 따듯한 잠자리를 제공해준 Tomas와 Fazia의 호의는 고마웠지만 그들이 소개해준 따따 압둘이 내 여행에 끼는 순간 언어와 돈에 휘둘리는 패키지여행 같은 일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으로의 일정을 더욱 서두르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메스키로 향하는 택시안 풍경

다음 날, 따따 압둘이 메르쥬가로 가기 전 자신의 집을 구경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십여분을 걸어 도착한 그의 집은 그 주변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정원과 집은 꽤나 넓었지만 관리가 잘 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한바퀴 휘 둘러보고 나오는데 따따 압둘이 물었다. 자기가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냐고 …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기에 나는 ‘남부럽지 않은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이렇게 큰 집이 있는데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지 않겠냐고’이라고 답해주었다. 하지만 자부심 가득하던 그는 이내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휴, 그렇지?

나는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는 매일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다고 하네."


사실, 집터야 넓긴 했지만 흙바닥에 앉아 불을 지펴야하고 또 동선이라고는 전혀 배려치 않은 구조라 집안일을 해야 하는 부인의 입장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가이드로서는 줄 정 따위 있지도 않았지만 내 주변의 남자들처럼 똑같이 가족을 걱정하는 가장으로서의 따따 압둘을 보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따따 압둘의 집을 나와, 택시를 타러 걸어가는 중에 동네 꼬맹이들 무리를 만났다. 메추리 알 크기만 한 작은 팽이 하나를 든 아이와 그 팽이 한번 갖고 놀아보겠다고 팽이 주인인 아이를 골목대장 삼은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루루 흙먼지를 일으키며 따라가고 있었다. 장난감이 남아도는데도 투정 부리는 한국의 조카들 모습도 떠오르고,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서 얼마 남진 않았지만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려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사준다면 그건 선물이 되지만 그 어린 손에 현금을 쥐어 주는 건 그들도 예의 없는 동냥이 되어버리니까.

우리는 길 한가운데에서 그랑 택시 (grand taxi)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질감과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돌산으로 가득한 에라시디아의 한 가운데에서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고 그 사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내게 연신 호기심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잘되었다 싶어 인상이 강한 개구쟁이 두 명에게 카메라를 꺼내 보이며 의사를 물었고, 통통한 볼따구로 몇번씩이나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거절하던 꼬마 녀석은 호기심에 못 이겼는지 이내 다가와 ‘Madam?’ 하며 자신의 초상권을 허락했다. 몇 가지 포즈를 취해주던 두 꼬맹이는 작은 액정 속 자신들의 사진을 보며 까르륵거리더니 고맙다며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아이들은 이내 흙먼지와 함께 사라지고 나는 다시 따따 압둘과 지루한 돌산 한가운데 남겨진 채 시간을 보냈다. 따따 압둘의 집에서 메르쥬가까지는 그랑 택시로 일인당 20Dh정도면 충분하다고 들었으나, 내 주머니 사정을 모르는 따따 압둘은 무슨 속셈인지 자꾸만 높은 갚을 부르는 택시만 골라 왔다. 그렇게 몇 대의 택시를 보내고 한 시간쯤 더 흐르자 해가 지려했다. 초조했다. 한 시간 안에 교통편을 마련하지 못하면 일정이 바뀔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황량함이란...

그때, 나와 따따 압둘이 있는 곳으로 귀여운 봉고차 한대가 들어와 섰다. 잠시 잠이라도 깨려고 가려는건지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운전석에서 내렸고, 나는 무슨 촉이라도 온 듯 없던 용기를 끌어 모아 뛰어가 말을 걸었다. 메르쥬가로 가는 길이라면 함께 가도 되겠냐고. 남자는 여자친구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오는 길이며 마침 메르쥬가로 가던 중이라며 선뜻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모로코에서의 첫 히치하이킹,

마치 잡지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현실적인 페이스의 스페니쉬 커플이.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히피 스타일의 봉고차로. 마치 드라마처럼 흔쾌히 낯선 동양의 아가씨에게 히치 하이킹을 허락하다니. 택시와 나 사이에서 어떻게든 거간료를 남겨 보려 했던 따따 압둘을 돌아보니 입 꼬리는 애써 웃고 있었으나 조금은 불편한 표정으로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사실 조금만 무리했다면 따따 압둘의 가족에게는 고마운 여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백수로 돌아다니며 버텨야 하는 앞으로의 날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더 불편한 상황들과 마주하는 것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드디어 말로만 듣던, 책에서만 읽던, 엽서에서만 보던 사막이 있는 곳. 사막으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배낭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흙먼지와 함께 뒤로 흩날리는 에라시디아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직관과 우연에 의존한 채 흘러가는 이 목적 없는 여행이 아직은 내 편인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