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Diary / Merzouga•Sahara
꽤 긴 거리를 달려 드디어 메르쥬가에 도착했다. 나와 나의 짐과 나의 가이드 따따 압둘을 실어다 준 스패니쉬 커플은 쿨하게 손을 흔들며 미리 예약해 둔 다른 호텔로 떠났다. 나는 따따 압둘을 따라 흙으로 만들어진 영화 세트장 같은 건물의 호텔로 들어갔다. 방을 내어준 주인은 짐을 풀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바로 사막으로 떠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늘 그랬듯 카메라, 토이 카메라, 즉석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ipod을 챙겨 호텔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따따 압둘은 한 외국인 커플을 가리키며 함께 할 일행이라고 소개시켜주었다. 그리고 호텔 앞쪽으로 좀 더 걸어나가 가이드를 만나면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 가게 될 거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그 커플과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낙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베르베르족의 푸른색 전통 의상을 입은 가이드가 몇 마리의 낙타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낙타를 잡고 있던 가이드에게 낙타의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 거친 갈기를 가리키며 이건 레게 헤어 스타일이며 *밥 말리(Bob Marley)가 낙타의 이름이라 했다. 고개를 들어 모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맑은 공기 때문인지 같은 색깔의 모래 언덕 때문인지 이곳은 마치 원근법이 무시된 다른 차원의 세상처럼 보였다. 가까워 보이는 모래 고비를 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Tomas와 Fazia의 말대로 생애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면 죽기 전 한번은 꼭 봐야만 하는 풍경이었다.
신기하게도 낙타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군데 군데 풀이 돋아 난 곳에서 잠시 허기를 채운 것을 빼고는 마치 그들의 출근길, 퇴근길처럼 유유히 그리고 익숙히 사막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와 함께 온 커플 중 남자는 유독 낙타를 힘들어했다. 사실 처음 올라탔을 때도 그랬다. 어마어마한 높이도 그랬지만 일어설 때, 뒷다리를 먼저 일으키고 꿇고 앉아 있던 앞다리를 들어올리는 움직임 탓에 몸이 낙타를 따라 앞으로 쑤욱 쏠렸다가 또 다시 뒤로 쑤욱 밀려났다. 낙타의 걸음 걸음이 또한 그러해서 모래에 낙타의 발이 푹푹 박힐때마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앞으로 쏠리고 또 뒤로 쏠리는 불편한 느낌을 감수해야 했다. 아마 남자라면 더 불편했을 것 같은 시승감. 남자의 불편함을 낙타도 느꼈는지 나중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기도 했다. 뒤로 따라오던 남자는 강한 영국 발음으로 '내 낙타는 유아기를 잘못 보낸 게 분명해. 뭔가 욕구 불만이 있는 것 같다구.' 라고 가이드에게 어필했지만 시크한 우리의 가이드는 무심히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얼마나 걸어 들어왔는지, 나 역시 불편함을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 찾아올 때쯤 저 멀리 소박한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낙타에서 내려 천막으로 들어가보니 모래 위에 깔린 낡은 카펫과 테이블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마저도 열악해서 천막 곳곳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 짐을 내려놓고 심심한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는 천막 안으로 들어와 이곳에선 해가 일찍 떨어질 것이니 따듯하게 옷을 입으라고 했다.
"Ah, where is a toilet?"
"There is a big toilet out of there. Hahaha"
물어보나마나 한 질문을 했다. 가이드는 여기는 사방이 화장실이니 마음껏 쓰라며 웃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공기는 새까매졌고 하늘엔 작은 불빛들이 하나 둘 열렸다. 그리고 이내 말 그대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빛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어릴 적 언니와 함께 문구점에 들러 야광 별을 사다가 힘들게 천장에 붙여놓고 5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조악한 별빛을 보면서 감탄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마 그때에도 이런 별빛을 꿈꾸었던 게 아니었을까? 똑 같은 별이지만 제 각각의 빛과 크기가 있었다. 수십만 아니 수십억만가지의 별의 표정. 나는 말 그대로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이런 풍경엔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음악이 어울리겠다 싶어 가져온 아이팟으로 음악을 틀었다. 하지만 가이드가 다가와 볼륨을 내리며 말했다.
"음악은 언제든 들을 수 있지,
하지만 이런 고요함은 이곳 말고는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 그 고요함을 즐겨봐."
소음을 뺏기고 나니, 이내 정적과 생각만이 남았다.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모래알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 그저 숨이 붙어있는 모래 알갱이 같은 생명체라는 것뿐 아닌가. 한동안 별빛만을 바라보고 있자니 생각은 곧 유치해지면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한참 뒤 천막으로 되돌아왔고 나는 하루 동안의 노곤함과 사막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던 크고 작은 생각들을 얇은 카펫 위로 뉘이고 잠을 청했다. 뒤척일 때마다 카펫 아래의 모래가 라텍스 침대처럼 이리 저리 모양을 바꾸었다.
잠을 청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이 낯선 여행자가 반갑지만은 않았는지 거대한 사막의 기운에 압도 당한 듯 새벽녘엔 가위에 눌리고 말았다. 겨우 악몽에서 깨어 났지만 두 눈을 뜨고 있음에도 주변은 어둠과 적막뿐이었다. 음악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뻗어 ipod을 켰지만 그마저도 방전이었다. 거의 공황에 가까운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즈음 구멍난 천막을 통해 들어온 작은 불빛을 발견하고는 그 빛을 향해 더듬더듬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아! 그것은 별빛.
천막은 추위 보다는 별빛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까보다 더 거대한 별 무리들이 차가워진 사막을 따듯하게 밝히고 있었다. 다시 잠들기가 두려워 별빛 말고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밤을 지새고 있자니 그제야 아까 사막으로 들어 올 때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Do you know what the Sahara means?
It means 'nothing'."
*Bob marley 자매이카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레게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이자 작곡자로 꼽힌다
** Sigur Rós
아이슬란드의 록 밴드 시규어 로스는 영어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며, 아이슬란드어 발음으로 표기하면 [ˈsɪːɣʏr ˈrouːs]. 시규어 로스의 가사는 아이슬란드어, 영어 (〈All Alright〉), 그리고 보컬 욘 소르 비르기손이 만든 언어인 희망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희망어는 주로 아이슬란드어로 Vonlenska 또는 이를 영어로 해석한 Hopelandic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