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Diary _ Essaouira again
따따 압둘과 서둘러 작별 인사를 했다. 강렬했던 사막에서의 날들을 뒤로하고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에싸웨라를 떠나기 전 Yassine, Abedu와 크리스마스는 반드시 함께 보내자는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갈 계획이었다. 딱히 정해진 계획이 없다고 말했던 Sera와 Max는 내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함께 에싸웨라로 향하는 일정에 동행하기로 했다.
사람은 아는 게 없으면 다소 무모 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남는 게 시간이고 모자란 건 돈이니 그냥 웨싸웨라로 가는 가장 싼 방법을 택했던 것뿐인데 그 대가는 혹독했다. 게다가 그렇게 선택한 버스는 그다지 싼 편도 아니었다. 처음엔 또 흥정이나 해볼 심산으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이전에 봐온 그것처럼 허름했다. 두어 번 발을 구르면 닳을 대로 닳은 버스 바닥이 툭하고 떨어져 나가버릴 것 같기도 했다. 겨우 행선지만 확실히 하고 이 버스에 몸을 실었을 뿐, 전혀 루트도 모른 채 버스에 몸을 맡긴 나는 처음엔 해맑게도 창 밖 구경에 감탄하다가 그것이 곧 지루한 풍경으로 바뀌자 한 잠 청하기로 했다.
버스가 어찌나 덜컹거리는지 몇 번이나 눈을 뜨고 감았다. 게다가 예상치 못하게 점점 이 버스가 한 없이 오르막길을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즈음 동시에 한기가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 버스에 올랐을 때 따듯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터운 패딩이나 목도리 등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풍경이 의아했었다. 그때만 해도 거 참, 패션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만 하고 말았는데도 손을 엉덩이 아래에 꼭 끼워 넣고 부동자세로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는 다들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두터운 옷들 틈으로 팔짱을 낀 채 편히 주무시고 계셨다.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왔다. 말이라도 좀 해주지. 나는 겨우 초봄에나 꺼내 입을법한 얇은 카고 팬츠와 후드티 하나 달랑 걸치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원망의 눈길을 보내봤자 소용이 없었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입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듯 새하얗게 뿜어져 나왔고 낡은 컨버스와 얇은 양말 사이 사이까지도 추위가 파고들었다. 잠시 버스가 정차한 틈을 타 트렁크의 배낭을 꺼내고 겨우 세벌 챙겨 온 윗도리 아랫도리를 모조리 다 꺼내 겹쳐 입었다. 뭐, 지금까지도 그렇긴 했지만 패션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솔기가 터질 것처럼 부푼 몸에 모로코 전통의상인 질레바를 그 위에 레이어드하고 나자 그제야 조금 한기가 잦아들었다.
따닥따닥 거리며 부딪히던 윗니 아랫니가 좀 잠잠해지자 문득 바깥 풍경이 궁금해져 김서린 창을 닦아냈다. 창 밖 풍경은 온통 산뿐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설산의 풍경. 게다가 사람들로 빼곡한 이 낡은 버스가 달리는 길은 말 그대로 비포장 도로에 난간도 없는 낭떠러지 길이었다. 중간중간 다른 버스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안전장치 없이 공중곡예를 하는 아슬아슬한 서커스 단원처럼 서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조금씩 여유를 만들어 비껴 가야만 했다. 내 돈을 내고 황천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 황천길에서는 추워서 죽거나 떨어져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에 온 몸이 다시 떨려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이들에겐 이런 날들이 다반사인 듯했다. 아니라면 다들 어쩜 그리 무심히 잠을 잘 수 있는 것인지. 나중에야 정보를 찾아보니 얇은 카고 바지 그리고 후드 티로 패기 있게 올랐던 그 버스는 반나절 동안 하이 아틀라스 산맥을 지나오는 진짜 황천길 버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었다면 감히 그런 버스에 대차게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탔던 버스, 게다가 이렇게 낡은 버스 치고는 어이없이 표 값이 비쌌던 이유도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수십 명의 목숨을 데리고 곡예를 하듯 하이 아틀라스 산맥을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버스였으니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저 사지 멀쩡히 에싸웨라로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열네 시간 꼬박 냉동 보관되어 있던 몸은 마라케시에서 잠시 사람 구실을 했다가 다시 마라케시에서 다시 그랑 택시에 구겨져 들어갔다. 그리고 두 시간여를 더 달려 무사히 에싸웨라에 도착했다.
이곳엔 처음 와 본다는 Sera, Max를 데리고 마치 내 집을 찾아 가듯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하면서 나누는 수많은 약속들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크리스마스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이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즈음엔 다시 돌아오겠다고 뱉었던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곧 떠오를 새해를 Yassine, Abedu와 함께 에싸웨라에서 보기로 했던 그 약속을.
메르쥬가에서 만나서 함께 온 이 친구들에게도 그들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이곳에 투어리스트를 상대로 한 미끼 질이 많아 이 친구들이 날 호텔 미끼라 생각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잠시, Hotel rihad로 들어서자 때마침 그곳에 있던 나의 친구 Yassine, Abedu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인 Christine, Ahmed 아저씨까지 나와 우리를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Yassine은 전에 묵었던 ‘내 방’ 키를 내어주며 위안이 되는, 그래서 너무 듣고 싶던 그 한마디를 건넸다.
‘Welcome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