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Morad의 전화번호

Morocco Diary / Tagazout>Essaouira

by 이인

타가줏에서 외부로 나가는 버스가 몇없어 하염 없이 기다리다가 길가에 버려진 박스 한 쪽을 뜯어 '에싸웨라'라고 적고는 패기 있게 길가에 섰다. 사하라 다음 두번째 히치 하이킹이었다. 한참 뒤, 흙먼지를 날리며 하얀색 낡은 승용차가 멈추어 섰다.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이 아저씨는 외양과는 달리 제법 영어를 할 줄 아는 분이었다. 심지어 한국말 까지도. 에싸웨라로 가는 동안 얘기를 나누어보니 그는 한국에서 몇 년간 일을 한적이 있다고 했다.


“와, 그럼 기억나는 한국말 있나요?”

“아, 당연히 있지!”


그러더니 "야이, 씨팔노마!” 를 시작으로 육두문자들을 술술 뱉어내는게 아닌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어디서 그런 말들을 배웠냐고 물어보자 공장에서 배웠다고 하셨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한국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애써 변명은 해보았지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을 이 아저씨는 이 순진한 애송이 같은 동양의 여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허허허' 하고 억지 웃음을 지어 줄 뿐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에싸웨라에 도착했고 그는 배낭을 내려주며

'난 앞으로 한국에 갈 일도 가고 싶지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만나서 반가웠네. 안-녕-히 가-세-요~ 굿럭!' 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희뿌연 매연을 남기며 가던 길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뙤약볕 아래에서 애처로이 피켓을 들고 서 있던 이 한국인 여행자에게 친히 조수석을 내어주셨으니 앞으로 여행하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갚을 것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발걸음은 이미 집과 같은 Riad Sidi Magdoul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일정을 계획할 생각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오래간만에 배낭을 정리하면서 세탁도 할 겸 몇 벌 안 되는 옷 주머니들을 탈탈 털어 내니 주머니에서 전화번호가 하나 툭 떨어졌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샤프샤오엥에서 연주하던 무리 중 시각 장애인이었던 Morad가 머물 곳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며 전해준 번호였다.


지도를 더듬어 보니 그가 말한 동네는 모로코의 수도인 라밧 (Rabat) 근처에 있는 살레 (Sale)라는 동네였다. 모로코 남쪽의 끝까지 내려와봤으니 이번엔 애정 없이 지나쳐온 모로코의 허리 즈음으로 다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날 기억 못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일의 행선지, 라밧에서의 행운은 무작정 이 번호에 걸어보기로 했다.



대서양을 향해 떨어지던 태양.
예리하게 날 선 아틀라스의 거대 산맥.
모든 예술가들의 영감인 사하라.
텍스트로만 만나온 그 장엄한 풍경들이
이곳에서는 나의 일상이 되고
그 감흥들은 다시 텍스트가 되어
고스란히 일기장을 채워가고 있다.
만족과 불만이 교차하는 날들을 지나
다시 나를 걷게하는 힘은
이땅의 낯설음과 이곳의 사람들이다.